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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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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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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
2022
분야
스포츠
문맥 (context)
오승환(吳昇桓, 1982년 7월 15일 ~ )은 KBO 리그 삼성 라이온즈의 투수이다. 마추어 시절 빠른 공을 던지는 투수로 이름이 나 MLB 스카우트들의 관심을 얻었지만 팔꿈치 인대가 파열됐다. 이후 타자로 전향하고 고등학교 2학년 때 경기고등학교로 전학을 갔다. 그는 전국 대회에서 타자로서 별다른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고, 팔꿈치 부상 경력이 있어 프로 팀과 대학 팀의 관심을 많이 받지 못했다. 당시 단국대학교의 강문길 감독은 고등학교 초기 그가 뛰어난 투수였다는 점에 주목했고 투수로서의 자질을 발견해 단국대학교에 입학할 것을 권유했다. 진학 후 단국대학교 1학년 때 갑자기 팔꿈치를 다쳐 팔꿈치 인대 접합 수술을 받았다. 3학년이 돼서야 제한적으로 2이닝씩 투구할 수 있게 됐고, 재활에 더욱 매진한 그는 3학년 때 시속 138km/h에 머물던 구속을 졸업할 무렵에 148km/h가 넘게 끌어올렸다. 국 프로야구 시절 >> [[삼성 라이온즈]] 시절 >> [[2005년]] 시즌 2차 1라운드 지명에서 팀의 지명 순위는 전체 5순위였다. 팀보다 상위 지명 순위를 가진 네 팀은 모두 고졸 선수를 지명했지만, 팀은 단국대학교 졸업 예정인 그를 지명했다. 경기고등학교 때부터 잘 알려진 선수도 아니었고, 단국대 시절 팔꿈치 수술을 받는 등 두 번의 수술 경력이 있는 투수를 지명한다는 것은 다소 모험이었다. 시즌 개막 후 중간 계투를 맡았다. 그 해 7월 당시 마무리 투수였던 권오준이 부진에 빠지자 팀은 그에게 마무리를 맡기고 권오준에게 셋업맨을 맡겼다. 이 둘은 K-O 펀치라고 불렸다. 이후 신인답지 않게 마무리 투수로서 독보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한국시리즈 3경기에 등판해 7이닝 무실점, 11탈삼진, 평균자책점 0의 완벽한 마무리 능력을 보이며 한국시리즈 MVP로 선정됐다. 시즌 후 신인왕과 한국시리즈 MVP를 동시에 차지했는데 이는 그가 유일한 케이스였고, 팀 내 역대 3번째 신인왕을 수상했다. 또 KBO 최초 시즌 승리, 세이브, 홀드 모두 10개 이상을 기록했다. [2006년]] 시즌 10월 1일 현대전에서 47세이브를 기록하며, 일본의 이와세 히토키가 가지고 있던 아시아 통산 최다 세이브 기록인 46세이브를 경신했다. 이는 진필중이 가지고 있던 한 시즌 최다 세이브(42개) 기록과 이와세 히토키가 2005년에 세운 한 시즌 최다 세이브(46개) 기록을 깬 아시아 신기록이었다. [2007년]] ~ [[2008년]] 시즌 9월 18일 KIA전에서 데뷔 후 3년 180경기 만에 최단 기간 세 자릿수 세이브를 기록했다. 2년간 꾸준한 성적을 올려 세 시즌 연속 세이브 부문 1위를 차지했다. 덕분에 야구 국가대표팀에 선발됐다. 하지만 그는 승리하는 경기마다 등판하며 과부하로 인해 구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2009년]] 시즌 6월 21일 LG와의 더블 헤더 2차전에서 박용택에게 데뷔 후 첫 만루 홈런을 허용했다. 이후 마운드에 글러브를 집어던졌다. 어깨 부상까지 당하며 시즌을 마감했고, 데뷔 후 가장 부진한 성적을 기록했다. 그를 대신해 권혁, 정현욱 등이 번갈아 가며 마무리를 맡아 불펜이 과부하에 걸리는 원인이 됐다. 이 영향으로 2년간 구원왕을 이용찬, 애킨스, 손승락에게 내줬다. [2010년]] 시즌 종전 시즌부터 생겨난 부상의 여파가 이어지며 마무리 자리를 넘겨줬고, 등판 수가 현저히 줄었다. 마운드 위에서는 2009년 시즌과 같은 구위의 저하가 드러났으며, 그는 2년 연속 4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시즌 16경기에 등판했다. [2011년]] 시즌 많은 휴식과 훈련을 한 그는 스프링캠프에서 이례적으로 147km/h의 공을 던졌다. 그 후 시범 경기에서 5경기 5이닝 무실점, 2세이브, 6탈삼진, 평균자책점 0, 최고 구속 148km/h를 기록했다. 시즌 첫 등판에서 1.1이닝 무실점, 2볼넷, 2탈삼진을 기록하며 첫 세이브를 올렸다. 5월 7일 그가 가지고 있던 최소 경기(12경기) 두 자릿수 세이브와 타이 기록을 세웠다. 5월 20일 두산 베어스전에서 블론 세이브를 기록했지만, 신명철의 끝내기 안타로 승리 투수가 됐다. 8월 2일 넥센 히어로즈전에서 역대 최소 경기(37경기) 30세이브 타이 기록을 세웠다. 8월 12일 KIA 타이거즈전에서 최연소(만 29세 28일), 최소 경기(334경기) 통산 200세이브 세계 신기록을 세웠다. 8월 27일 두산 베어스전에서 16경기 연속 세이브를 기록하며, 2006년 정재훈의 15경기 연속 세이브 기록을 경신했다. 9월 10일 LG 트윈스전에서 1이닝 1실점으로 역대 최소 경기(47경기) 40세이브를 기록했다. 10월 1일 SK 와이번스전에서 그가 가지고 있던 아시아 세이브 타이 기록(47세이브)을 세웠다. 그는 두산 베어스, LG 트윈스를 제외한 5개 구단을 상대로 점수를 허용하지 않았다. 한국시리즈 2차전에서 구원 등판해 2이닝 3탈삼진을 기록했고,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 구원 등판해 1.1이닝을 막으며 KS 통산 최다 세이브인 6세이브를 기록했다. 한국시리즈에서 3세이브를 기록하며 한국시리즈 MVP에 올랐다. 또 KBO 최초 무패 구원왕 기록을 세웠고, 역대 세이브 1·2위간의 최대 격차 기록을 경신했다. [2012년]] 시즌 시범 경기 첫 등판부터 안정광에게 2점 홈런을 맞는 등 총 3실점하며 블론 세이브를 기록했다. 4월 13일 넥센 히어로즈와의 경기에서 시즌 첫 등판해 1.1이닝 무실점, 1탈삼진을 기록하며 시즌 첫 세이브를 기록했지만 11일 후 롯데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 6실점하며 부진했다. 경기 후 그의 평균자책점은 10점대로 치솟았다. 하지만 이틀 후인 4월 26일에 1이닝 무실점, 1탈삼진을 기록하며 시즌 4세이브를 기록했다. 그는 5월 8일 롯데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 우여곡절 끝에 6세이브를 기록했고, 5월까지 총 10세이브를 기록했다. 그는 6월 9일 SK 와이번스와의 경기에서 구원 등판해 연속 삼진을 잡아내며 시즌 첫 승을 기록했다. 그는 6월까지 총 15세이브를 기록했으며, 7월 1일 넥센 히어로즈와의 경기에서 김용수의 KBO 개인 통산 최다 세이브 기록인 227세이브를 경신했다. 7월 12일 LG 트윈스와의 경기에서 통산 229세이브를 기록했다. 9월 2일 넥센 히어로즈와의 경기에서 시즌 30세이브를 기록했다. 9월 5일 LG 트윈스와의 경기에서 세이브 부문 1위에 등극했다. 시즌 막판 컨디션 조절 등을 이유로 1군 엔트리에서 제외돼 최종적으로 통산 249세이브를 기록하는데 그쳤다. 10월 31일 SK 와이번스와의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 세이브를 기록하며 PS 최다 세이브 타이 기록을 세웠다. [2013년]] 시즌 좋은 활약을 계속 보여줬다. 한국시리즈 2차전에서는 오재일에게 결승 홈런을 허용하기 전까지 PS 6타자 연속 탈삼진 타이 기록을 포함해 4이닝을 완벽히 막아냈다. 11월 22일 2년 9억엔에 일본의 한신 타이거스에 입단했다. 본 프로야구 시절 >> [[한신 타이거스]] 시절 >> [[2014년]] 시즌 3월 29일에 첫 등판했다. 첫 타자인 아베 신노스케를 초구 플라이로 잡았지만, 다음 타자인 호세 셀레스티노 로페스에게 안타를 허용했다. 다음 타자인 야노 켄지, 하시모토 이타루를 범타 처리했지만 1이닝동안 32구나 투구했다. 첫 세이브를 기록한 그는 4월 3일 주니치와의 경기에 등판했으나 NPB 데뷔 후 첫 실점을 기록했다. 5월 28일 세이부와의 경기에 구원 등판했지만, 3실점(비자책)으로 NPB 데뷔 후 첫 블론 세이브와 첫 패전을 기록했다. 이 날 포수였던 히다카 다케시는 그와 처음으로 호흡을 맞췄는데, 일본 언론에서는 히다카 다케시가 그의 공에 익숙하지 않은 것을 패전의 이유로 꼽았다. 7월 21일 23번째 세이브이자 한일 통산 300세이브 기록을 세웠다. 9월 21일 주니치와의 경기에서 동점 상황에 타자로 나와 데뷔 첫 안타를 기록했다. 9월 26일 37세이브를 기록하며 센트럴 리그 세이브 1위를 확정지었고, 9월 27일에 38세이브를 기록하며 선동열의 일본 프로 야구 한국인 최다 세이브 기록을 경신했고, 데뷔 첫 해 센트럴 리그 구원왕에 올랐다. 그는 한국인 최초 일본 프로 야구 구원왕이 됐고, 39세이브는 외국인 투수 첫 시즌 최다 세이브 기록이었다. 9월 26일 ~ 10월 1일까지 5경기 연속 등판했는데, 이 기간 동안 실점 없이 3세이브를 올렸다. 그 중 두 개가 2위 자리를 다투던 히로시마 도요 카프를 상대로 거둔 것이었다. 그가 입단해서 등번호 22번을 받았을 때 팬들은 의아해 했는데, 많은 연봉에다 후지카와 규지의 등번호까지 줄 필요가 있느냐는 이유였다. 게다가 그가 삼성 라이온즈 시절 47세이브로 한 시즌 아시아 최다 기록을 세운 것도 후지카와 규지의 46세이브 기록을 넘어선 것이기 때문에 탐탁해 하지 않았다. 그는 10월 11일 히로시마 도요 카프와의 센트럴 리그 클라이맥스 시리즈 퍼스트 스테이지 1차전에 등판해 1이닝 무피안타, 무실점, 3탈삼진으로 퍼펙트 피칭을 했다. 그는 임창용 이후 3년 만에 일본 PS에서 세이브를 기록한 한국인 투수가 됐다. [2015년]] 시즌 4월 29일 야쿠르트전에서 구원 등판해 1이닝 무실점으로 세이브를 기록하며, 팀의 외국인 개인 통산 최다 세이브 신기록을 세웠다. 시즌 63경기에 등판해 69.1이닝 2승 3패, 66탈삼진, 41세이브를 기록했다. 국 프로야구 시절 >>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시절 >> [[2016년]] 시즌 4월 11일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의 경기에서 구원 등판해 1이닝 무피안타, 2탈삼진, 무실점 퍼펙트 피칭으로 MLB 첫 승을 기록했다. 시즌 초에는 셋업맨으로 나섰지만, 시즌 전반기가 끝나기 전 기존 마무리 투수였던 트레버 로젠탈의 부진으로 인해 그가 마무리 투수로 보직이 변경됐다. 7월 21일에는 샌디에고 파드리스를 상대로 더블 헤더 1차전과 2차전에서 모두 세이브를 기록하며 한국인 투수 최초 더블 헤더 경기에 모두 나와 세이브를 기록했다. 시즌 76경기에 등판해 79.2이닝 6승 3패, 103탈삼진, 19세이브를 기록했다. [2017년]] 시즌 3월에 WBC 국가대표팀에 선발돼 위력적인 투구를 보여줬다. 시즌에 들어와서는 기존 마무리 투수였던 트레버 로젠탈이 지난 시즌 부상과 부진 등으로 밀려나 마무리 투수로 시즌을 시작했다. 전반기에는 지난 시즌과 다름 없는 좋은 활약을 펼쳤으나 후반기에는 슬라이더의 난조로 인해 다소 부진했다. 시즌 1승 6패, 20세이브, 4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토론토 블루제이스]] 시절 >> [[2018년]] 시즌 원 소속팀이였던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의 계약 종료 후 새 팀을 알아보던 중 친한 친구인 추신수가 있는 텍사스 레인저스가 그에게 좋은 계약 조건과 마무리 투수 보장을 내세우면서 계약에 임박했으나 메디컬 테스트에서 탈락해 계약이 무산됐다. 그 후 2월 27일에 1+1년 최대 750만 달러의 계약을 맺었다. [콜로라도 로키스]] 시절 내야수 채드 스판버거, 외야수 포레스트 월이 토론토 블루제이스로, 그가 콜로라도 로키스로 가는 2:1 트레이드를 통해 이적했다. 국 프로야구 복귀 >> [[삼성 라이온즈]] 복귀 콜로라도에서 방출돼 2019년 8월 6일에 연봉 6억원에 계약을 체결하며 복귀했다. 2020년 6월 9일에 1이닝 2피안타, 무실점을 기록했다. 이후 6월 16일 두산 베어스전에서 세이브를 기록하며 한미일 통산 400세이브를 기록했다. 2021년 4월 25일 KIA 타이거즈전에서 KBO 최초 통산 300세이브를 달성했다.
지시문 (instruction)
주어진 원문을 읽고 필요한 정보를 파악하여, 원문에 근거해 질문에 답하라.
질문 (question)
오승환이 2014년 일본 프로야구 한신 타이거스 시절 달성한 구원왕 기록의 주요 의의는 무엇인가?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1. 1과제 해석task_interpretation

    오승환의 2014년 일본 프로야구(NPB) 한신 타이거스 시절 구원왕 달성의 의미를 묻는 질문이다.

  2. 2정보 추출information_extraction

    오승환의 2014년 시즌 기록 및 관련 성과를 추출한다.

    • 9월 27일에 38세이브를 기록하며 선동열의 일본 프로 야구 한국인 최다 세이브 기록을 경신했고, 데뷔 첫 해 센트럴 리그 구원왕에 올랐다.
  3. 3근거 선택evidence_selection

    구원왕 기록과 관련된 구체적인 성과를 선별한다.

    • 선동열의 일본 프로 야구 한국인 최다 세이브 기록을 경신했고, 데뷔 첫 해 센트럴 리그 구원왕에 올랐다.
    • 그는 한국인 최초 일본 프로 야구 구원왕이 됐고
  4. 4논리 통합logical_integration

    기록의 의미를 종합하여 한국인으로서의 상징성을 도출한다.

    • 선동열의 일본 프로 야구 한국인 최다 세이브 기록을 경신
    • 한국인 최초 일본 프로 야구 구원왕
  5. 5결론 도출conclusion_formulation

    선동열의 기록 경신과 한국인 최초의 NPB 구원왕 달성이라는 두 가지 핵심 의의를 정리한다.

    • 선동열의 일본 프로 야구 한국인 최다 세이브 기록을 경신했고, 데뷔 첫 해 센트럴 리그 구원왕에 올랐다. 그는 한국인 최초 일본 프로 야구 구원왕이 됐고
  6. 6답변 생성answer_generation

    질문에 대해 명확하고 구체적인 문장으로 답변을 작성한다.

    • 선동열의 일본 프로 야구 한국인 최다 세이브 기록을 경신
    • 한국인 최초 일본 프로 야구 구원왕
근거 (evidence)
  • 9월 27일에 38세이브를 기록하며 선동열의 일본 프로 야구 한국인 최다 세이브 기록을 경신했고, 데뷔 첫 해 센트럴 리그 구원왕에 올랐다.
  • 선동열의 일본 프로 야구 한국인 최다 세이브 기록을 경신했고, 데뷔 첫 해 센트럴 리그 구원왕에 올랐다.
  • 그는 한국인 최초 일본 프로 야구 구원왕이 됐고
  • 선동열의 일본 프로 야구 한국인 최다 세이브 기록을 경신
  • 한국인 최초 일본 프로 야구 구원왕
  • 선동열의 일본 프로 야구 한국인 최다 세이브 기록을 경신했고, 데뷔 첫 해 센트럴 리그 구원왕에 올랐다. 그는 한국인 최초 일본 프로 야구 구원왕이 됐고
최종 답변 (final_answer)
오승환은 2014년 한신 타이거스에서 38세이브를 기록하며 선동열의 일본 프로야구 한국인 최다 세이브 기록을 경신하였으며, 한국인 최초로 일본 프로야구 구원왕에 올랐다는 의의가 있다.
핵심 해석 (core_interpretation)
오승환은 2014년 일본 프로야구 한신 타이거스 시절 한국인 최초로 구원왕에 오르며 선동열의 일본 프로야구 한국인 최다 세이브 기록을 경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