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맥 (context)
''로마 제국의 원로원''은 고대 [[로마 제국]]에 있던 정치 기관이다. [[로마 공화정]]이 무너진 뒤, 헌법상의 권력의 균형이 [[로마 원로원]]에서 [[로마 황제]]에게로 옮겨졌다.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를 시작으로, 로마 황제와 원로원은 이론상으로는 동등한 정부 기구였다. 그러나 실제로 황제가 정부의 실질적 권한을 지니면서 제정 시기 원로원의 권한은 없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에 따라, 원로원 입회권은 실제 권한보다는 명성과 사회적 위치를 바라던 이들이 많이 찾는 것이 되었다. 초기 황제들 시대에 입법권, 사법권, 선거권이 [[고대 로마의 민회]]에서 원로원으로 옮겨졌다. 그럼에도 황제가 원로원에 대해 완전한 장악력을 행사하면서, 원로원은 황제가 자신의 전제적 권한들을 행사하는 수단으로써 역할을 하는 데 그쳤다.
== 과정 ==
초대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는 그의 양아버지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900명까지 그 인원을 늘린 원로원을 물려받았다. 아우구스투스는 원로원의 규모를 줄이기를 바랐고, 원로원 의원들의 명단을 세 번의 개정 과정을 거쳐 줄여냈다. 이 개정 과정이 완료된 시기에, 원로원의 규모는 600명으로 줄어들었으며, 이때 이후로, 원로원의 규모가 극적으로 바뀐 적은 없다. 원로원의 규모를 줄이기 위해, 아우구스투스는 미천한 출신의 원로원 의원들을 쫓아냈고, 그 뒤에 그는 원로원 의원이 되는 법을 정해놓은 규범들을 개정하였다. 아우구스투스의 개혁이 이뤄지고 나서, 원로원 의원은 자유민 신분의 시민권자이어야만 했고, 'lex Julia de vi private' 법에 해당하는 어느 범죄 행위에 대해 유죄 판결이 없어야 하며, 최소한 1,000,000 [[세스테르티우스]]만큼의 재산을 갖춰야 했다.
제정 시기에, 공화정 말기의 경우처럼, [[재무관]]으로 선출되면 원로원 의원이 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제정 시기에, 원로원 의원 계급이어야 재무관직이 될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이었고, 원로원 의원 계급이 되려면 원로원 의원의 아들이어야만 했다. 누군가가 원로원 계급이 아닐 경우, 원로원 의원이 될 수 있는 방식 두 가지가 존재했다. 첫 번째 방식에선 황제가 재무관직으로 선출하는 허가를 내려주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황제가 칙령(adlectio)을 내려 원로원에 임명시키는 것이었다.
아우구스투스의 'lex Julia de senatu habendo' 법의 통과로, 이 명단은 지위 순에 따라 의원들을 나열하였다. 황제는 항상 동료 의원들보다 우선적으로 나열되었고 그 뒤를 ‘[[집정관]]’ (최고 정무관)과 전직 집정관이 뒤따랐고, 그다음엔 "[[법무관]]" (그 다음 최고 정무관)과 전직 법무관들 순으로 이어졌다. 선출직 의원들의 임기는 지위를 결정할 때 고려되며, 선출직 원로원 의원들이 황제가 임명한 동일한 직위의 원로원 의원들보다 반드시 높이 쳐주는 것은 아니었다.
원로원 의원 계급 출신들은 모든 로마 시민권자들의 사교복인 [[토가]] 가장자리에 붉은색상의 자줏빛 넓은 줄무늬로 구분되었다.
제정 시기에, 원로원에 대해 황제가 지닌 권력이 절대적이었는데, 이는 부분적으로 황제가 종신직이었기 때문이었다. 원로원 회의 중에, 황제는 두 집정관 가운데에 앉았고, 보통은 의장 역할을 하였다. 제정 초기의 원로원 의원들은 관련 없는 사항에 대해 묻거나 원로원에 어떤 조치를 취할 것을 요구할 수 있었다. 고위 관직의 의원들이 하위 관직의 의원들보다 우선으로 발언을 했으며, 황제의 경우에는 언제든지 발언을 할 수 있었다. 황제와 집정관 외에, 법무관들도 원로원 회의의 의장을 주관할 수 있기도 했다.
원로원은 보통 [[칼렌드]](매달 첫 번째 일)나 [[이데스]](매달 15일 쯤)에 [[쿠리아 율리아]]에서 모였으며, 9월과 10월에는 좀 더 계획된 회의가 잦았다. 그 밖의 회의들은 그때그때 열렸다. 아우구스투스 치세에, [[정족수]]는 400명으로 맞춰졌으며, 이따금 과도한 의원 부재가 정족수에 필요한 원로원 의원 수를 줄이기도 했고, 어떤 경우에는, 정족수에 관한 규정들을 완전히 없애기도 하였다.
원로원에 발의된 법안의 대부분은 황제나 원로원 내 황제의 지지자들이 발의한 것들이었다. 초기 원수정 시기에, 아우구스투스와 티베리우스는 직접적으로 법안을 제안하는 대신에 사적으로 로비 활동을 하며 원로원에 자신들의 영향력을 숨기려는 의식적인 노력을 하였다. 어느 황제나 원로원의 활동들을 문서(acta senatus)로 엮을 법무관들을 택했는데, 이 문서에는 제안된 법안들, 공문들, 원로원에서 발표된 연설문의 요약문 등이 있었다. 이 문서는 기록 보관소에 보관되는 동시에, 문서의 일부는‘매일의 일’을 뜻하는 ‘[[악타 디우르나]]’라고 하는 문서로 발표되어 그 뒤에 대중들에게 알려졌다.
[[히스토리아 아우구스타]](엘라가발루스편 4.2과 12.3)에 따르면, 황제 [[엘라가발루스]]는 그의 어머니 혹은 조모에게 원로원의 활동에 참여하도록 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엘라가발루스는 재위 시기에 여성이 원로원 계급에 속한 거같이 남성처럼 원로원에 참석했던 유일한 황제였다." (David Magie'의 번역). 또한 히스토리아 아우구스타에 따르면, 엘라가발루스는 세나쿨룸(senaculum)이라 하는 여성용 원로원을 설치했는데, 세나쿨룸은 의류, 전차 운전, 장신구 등에 관하여 기성 부인들에게 적용되는 법률을 제정했다 (엘라가발루스편 4.3 및 아우렐리아누스편 49.6). 이 이전에, [[네로]]의 어머니인 [[소 아그리파]]가 커튼 뒤로 가려진 채 원로원의 활동을 ‘들었다’라고 [[타키투스]]가 전하였다('Annales', 13.5).
== 권한 ==
[[고대 로마 민회]]가 제정 수립 이후에도 회의를 계속하는 한편, 이들의 권한들은 원로원으로 모두 이전되었고, 따라서 원로원의 칙령 (senatus consulta)들은 완전한 법적 효력을 얻었다. 제정 시기 원로원은 속주들에 대한 권한 정도를 유지하는 데 그치긴 했지만, 이들의 입법권은 재정 및 행정 속성의 주된 본질이었다. 원로원은 또한 축제 및 종교 행사를 관장하고, 특별한 훈장들을 수여하며, 누군가(보통은 황제)의 법적책임을 면해주고, 신전 및 대중 경기 대회를 관리하기도 하였으며, 조세법을 제정하기도 했다 (황제의 묵인이 있을 경우에만). 그렇지만, 국가 종교 행사 및 국가 토지에 대한 실질적 권한은 없었다.
제정 초기 동안에, 고대 로마 민회들이 가지고 있던 모든 사법권이 원로원으로 이전되었다. 예시로, 이때부터 원로원은 형사 재판에 대한 관할권을 지녔다. 이때 집정관이 관장하고, 원로원 의원들이 배심원단을 구성하며, 판결은 칙령 (senatus consultum)의 형태로 전해지는 한편, 판결은 상고가 되지 않고, 황제는 거부권 행사를 통해 유죄를 선고받은 이를 사면할 수 있었다. 원로원의 관할권에 있던 속주들마다 자기네들 만의 법정이 있었고, 집정관의 권고에 따라, 이 속주들의 법정 결정들은 원로원에 상고될 수도 있었다.
이론적으로, 원로원은 새로운 황제들을 선출했고, 동시에 민회와 함께, 새 황제에게 지휘권 ([[임페리움]])들을 수여했을 것이다. 황제가 죽거나 퇴위하면, 원로원은 보통 그를 신격화했을 것이며, 이따금씩 죽은 황제가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로마에서 황제의 모든 흔적들을 없애내려는 칙령 ([[기록말살형]])을 내리기도 했을 것이다. [[티베리우스]] 황제는 민회의 모든 선출 권한들을 원로원으로 이전했고,, 동시에 이론적으로, 원로원은 새 정무관들을 선출했는데, 황제의 인가가 선출이 완료되기 앞서 항상 필요했다. 그렇지만 이런 사실이 있음에도, 선출 과정은 깊은 논쟁과 활발한 정쟁이 남아있었다.
[[베스파시아누스]] (재위: 서기 69-79년) 치세 때, 원로원 의원들은 로마의 궁정 내 고위 관료 및 황제를 직접적으로 대표하는 속주의 통치자라는 높아진 지위를 부여받았다. 동시에, [[에퀴테스|기사 계급]]들은 초기 황제들이 자유민들에게 부여했던 행정직들에 종사했다. 원로원의 경우, 이 늘어난 책무는 조언을 제공하고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늘어난 기회를 보장해주었다. [[플라비우스 왕조]]가 무너진 시기에, 원로원은 [[네르바]]를 새 황제로 선출할 수 있었는데, 이는 제정 수립 후 원로원의 결정권이 작동했던 최초의 사례였다. 그어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사후에, 후임 황제들이 원로원 의원들을 좀 더 적대시하게 되었고 덜 자주 원로원과 조언을 받으면서, 원로원은 더욱 중요성을 잃어갔다. 원로원은 [[교황 호노리오 1세]]가 쿠리아를 교회로 전환한 630년에는 해체된 것이 분명하다. 그렇지만 [[콘스탄티누스 1세]] 치세 때 설치된, [[동로마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폴리스]]에도 원로원이 계속해서 있었다. [[비잔티움 원로원]]은 역사에서 사라져버린 최소 14세기 중엽까지 존재했었다.
== 참고 자료 ==
== 각주 ==
== 추가 참고 도서 목록 ==
=== 1차 사료 ===
지시문 (instruction)
주어진 원문을 읽고 필요한 정보를 파악하여, 원문에 근거해 질문에 답하라.
질문 (question)
제정 시기 원로원 의원이 되기 위한 조건 중 재산 기준과, 원로원 계급이 아닌 사람이 원로원 의원이 될 수 있는 두 가지 방식은 무엇인가?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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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과제 해석
task_interpretation원로원 의원의 자격 요건(재산 기준)과 비계급자의 의원 임명 방식 두 가지를 묻는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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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정보 추출
information_extraction재산 기준과 원로원 의원이 되는 두 가지 방식을 본문에서 찾는다.
- 최소한 1,000,000 [[세스테르티우스]]만큼의 재산을 갖춰야 했다.
- 누군가가 원로원 계급이 아닐 경우, 원로원 의원이 될 수 있는 방식 두 가지가 존재했다. 첫 번째 방식에선 황제가 재무관직으로 선출하는 허가를 내려주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황제가 칙령(adlectio)을 내려 원로원에 임명시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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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근거 선택
evidence_selection질문에 직접적으로 대응하는 재산 수치와 두 가지 방식을 선별한다.
- 최소한 1,000,000 [[세스테르티우스]]만큼의 재산을 갖춰야 했다.
- 황제가 재무관직으로 선출하는 허가를 내려주는 것
- 황제가 칙령(adlectio)을 내려 원로원에 임명시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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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논리 통합
logical_integration재산 요건과 임명 방식을 결합하여 답변 구조를 설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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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결론 도출
conclusion_formulation재산 기준은 1,000,000 세스테르티우스이며, 방식은 황제의 재무관직 선출 허가와 황제의 칙령(adlectio)을 통한 임명이다.
- 최소한 1,000,000 [[세스테르티우스]]만큼의 재산을 갖춰야 했다.
- 황제가 재무관직으로 선출하는 허가를 내려주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황제가 칙령(adlectio)을 내려 원로원에 임명시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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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답변 생성
answer_generation질문에 명시된 두 가지 요소를 포함하여 최종 답변을 작성한다.
- 최소한 1,000,000 [[세스테르티우스]]
- 황제가 재무관직으로 선출하는 허가를 내려주는 것
- 황제가 칙령(adlectio)을 내려 원로원에 임명시키는 것
근거 (evidence)
- 최소한 1,000,000 [[세스테르티우스]]만큼의 재산을 갖춰야 했다.
- 누군가가 원로원 계급이 아닐 경우, 원로원 의원이 될 수 있는 방식 두 가지가 존재했다. 첫 번째 방식에선 황제가 재무관직으로 선출하는 허가를 내려주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황제가 칙령(adlectio)을 내려 원로원에 임명시키는 것이었다.
- 황제가 재무관직으로 선출하는 허가를 내려주는 것
- 황제가 칙령(adlectio)을 내려 원로원에 임명시키는 것
- 황제가 재무관직으로 선출하는 허가를 내려주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황제가 칙령(adlectio)을 내려 원로원에 임명시키는 것이었다.
- 최소한 1,000,000 [[세스테르티우스]]
최종 답변 (final_answer)
원로원 의원이 되기 위한 재산 기준은 최소한 1,000,000 세스테르티우스이며, 원로원 계급이 아닌 사람이 의원이 되는 방식은 황제가 재무관직으로 선출하는 허가를 내려주는 방식과 황제가 칙령(adlectio)을 내려 원로원에 임명시키는 방식 두 가지이다.
핵심 해석 (core_interpretation)
제정 시기 원로원 의원이 되기 위한 재산 기준은 최소한 1,000,000 세스테르티우스이며, 비원로원 계급이 의원이 되는 방식은 황제의 허가 또는 칙령 임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