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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갑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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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c_id
A220623193342
유형
위키
출처
위키백과
연도
2022
분야
스포츠
문맥 (context)
진갑용(陳甲龍, 1974년 5월 8일 ~ )은 전 KBO 리그 삼성 라이온즈의 포수이자, 현 KBO 리그 KIA 타이거즈의 수석코치다. 그의 아들은 KBO 리그 롯데 자이언츠의 투수인 진승현이다. 수 시절 >> [[OB 베어스]] 시절 고려대학교 체육교육학과 졸업 후 1997년 OB 베어스의 2차 1순위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 그러나 1999년 홍성흔의 입단으로 주전에서 밀려 2군을 전전했고, 결국 당시 감독이었던 김인식과 구단 사장에게 트레이드를 요청했다. 팀에서 이를 받아들여 그 해 트레이드 마감 기일인 7월 31일에 포수가 필요했던 삼성 라이온즈에 투수 이상훈을 상대로 한 현금(4억) 트레이드를 통해 이적했다. [삼성 라이온즈]] 시절 진갑용을 영입하기 전에 삼성 라이온즈에서는 이만수의 노쇠화 이후 박선일, 김성현, 김영진, 정회열이 배터리를 맡았지만, 이만수만큼의 기량을 보여 주지 못해 포수난을 겪고 있었다. 김영진의 경우 1997년 연속 경기 때의 낫아웃 오판 사건으로 인해 팀에서 2001년에 내야수 김승권을 상대로 한화 이글스에 트레이드했다. 원년 프랜차이즈 포수 스타 이만수가 1994년 1루수로 전향 후 수준급 포수가 장기간 부족했던 팀 사정상 기회를 얻어 단비와 같은 존재로 좋은 활약을 펼치며 오랫동안 팀의 주전 포수로 자리잡았다. 1990년대 내내 포수난을 겪었던 탓에 트레이드로 그를 데려온 뒤에도 곧이어 LG 트윈스의 포수였던 김동수를 FA 계약을 통해 영입하기도 했는데, 오히려 팀에서 부진해 2001년 말에 SK 와이번스로 트레이드됐다. 반면 그는 당시 배터리코치였던 조범현의 조련을 받아 당당히 주전 경쟁에서 살아남으며 주전 자리를 굳혀갔다. 그의 트레이드는 팀의 성공적인 트레이드 중 하나로 꼽혔다. 팀이 2002년 정규 시즌 및 2002년 한국시리즈 통합 우승을 하는데 큰 기여를 했고, 그 해 데뷔 첫 골든 글러브를 받았다. 2003년 시즌 후 주장 자리를 물려받아 2008년 시즌까지 팀을 잘 이끌었다. 2005년~2006년 시즌 연속 우승을 일궈 냈고, 2008년 시즌까지 12년 연속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는 데 큰 기여를 하며 전성기를 구가했다. 2008년 시즌 후 박진만에게 주장 자리를 물려줬다. 2010년에 부진했던 강봉규를 대신해 2011년 팀 주장 자리에 복귀했으며, 페넌트레이스 우승을 거쳐 2011년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했고, 그 해 아시아 시리즈에서 우승했다. 2012년까지 주장을 맡았고, 시즌 후 2013년에는 최형우에게 주장을 넘겨줬다. 구선수 은퇴 후 은퇴 직후 삼성 라이온즈의 전력분석원을 맡았고, 2017년에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연수코치로 활동했다. 연수를 마치고 귀국하여 삼성 라이온즈에서 배터리코치를 맡았으나, 2019년 시즌 후 삼성과 재계약하지 못하고 KIA 타이거즈의 배터리코치로 옮겼다. 김종국이 감독으로 승격된 후에는 KIA 타이거즈의 수석코치로 선임됐다. 국가대표 경력 고려대학교 체육교육학과 2학년 때 출전했던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을 계기로 국가대표팀에 입문했고, 애틀랜타 올림픽에 참가했다. 그 해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은 1승 6패로 최하위를 기록했고, 시드니 올림픽부터 프로 선수의 출전이 허용됐다. 애틀랜타 올림픽 후 그는 오랫동안 국가대표팀을 거쳤으며 그가 병역 문제를 해결했던 1998년 방콕 아시안 게임, 2006년 WBC,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등 국가대표팀의 베테랑 주전 포수로 여러 차례 활약하며 3개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다. 베이징 올림픽의 경우 대회 중 허벅지 부상을 당하며 어려움을 겪었으나 대표팀 주장으로서 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며 좋은 활약을 펼쳐 대표팀이 9전 전승 금메달을 따는 데에 크게 공헌했다. 논란 >> 별명 >> 그 외 장남 진승현도 야구선수로 활동하고 있으며, 경북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022년 롯데 자이언츠의 2차 2순위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 포지션은 진갑용과 달리 투수(우투우타)다.
지시문 (instruction)
주어진 원문을 읽고 필요한 정보를 파악하여, 원문에 근거해 질문에 답하라.
질문 (question)
진갑용이 삼성 라이온즈에서 주전 포수로 자리 잡기 전, 팀이 겪고 있던 포수진의 구성 상황과 그 과정에서 발생한 인적 변화는 어떠했는가?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1. 1과제 해석task_interpretation

    진갑용 영입 전 삼성 라이온즈 포수진의 구성 상태와 트레이드 및 영입을 통한 인적 변화를 파악한다.

    • 진갑용을 영입하기 전에 삼성 라이온즈에서는 이만수의 노쇠화 이후 박선일, 김성현, 김영진, 정회열이 배터리를 맡았지만, 이만수만큼의 기량을 보여 주지 못해 포수난을 겪고 있었다.
  2. 2정보 추출information_extraction

    이만수 이후의 포수 명단과 팀의 문제점, 그리고 구체적인 인적 이동 사례를 추출한다.

    • 이만수의 노쇠화 이후 박선일, 김성현, 김영진, 정회열이 배터리를 맡았지만
    • 김영진의 경우 1997년 연속 경기 때의 낫아웃 오판 사건으로 인해 팀에서 2001년에 내야수 김승권을 상대로 한화 이글스에 트레이드했다.
    • LG 트윈스의 포수였던 김동수를 FA 계약을 통해 영입하기도 했는데
  3. 3근거 선택evidence_selection

    포수난의 원인(이만수의 1루 전향 및 노쇠화)과 구성원들의 변화(김영진의 트레이드, 김동수의 영입)를 핵심 근거로 선정한다.

    • 이만수의 노쇠화 이후 박선일, 김성현, 김영진, 정회열이 배터리를 맡았지만, 이만수만큼의 기량을 보여 주지 못해 포수난을 겪고 있었다.
    • 김영진의 경우 1997년 연속 경기 때의 낫아웃 오판 사건으로 인해 팀에서 2001년에 내야수 김승권을 상대로 한화 이글스에 트레이드했다.
    • LG 트윈스의 포수였던 김동수를 FA 계약을 통해 영입하기도 했는데
  4. 4논리 통합logical_integration

    이만수의 부재로 인한 포수난 상황에서 여러 선수가 배터리를 맡았으나 기량 부족을 겪었고, 김영진의 트레이드와 김동수의 FA 영입 등 인적 교체가 이루어졌음을 연결한다.

  5. 5결론 도출conclusion_formulation

    삼성 라이온즈는 이만수의 노쇠화와 1루 전향 이후 박선일, 김성현, 김영진, 정회열 등이 포수를 맡았으나 기량 부족으로 포수난을 겪었으며, 이 과정에서 김영진을 한화로 트레이드하고 김동수를 FA로 영입하는 등의 변화가 있었다는 결론을 도출한다.

    • 이만수의 노쇠화 이후 박선일, 김성현, 김영진, 정회열이 배터리를 맡았지만, 이만수만큼의 기량을 보여 주지 못해 포수난을 겪고 있었다.
    • 김영진의 경우 1997년 연속 경기 때의 낫아웃 오판 사건으로 인해 팀에서 2001년에 내야수 김승권을 상대로 한화 이글스에 트레이드했다.
    • LG 트윈스의 포수였던 김동수를 FA 계약을 통해 영입하기도 했는데
  6. 6답변 생성answer_generation

    질문에 요구된 구성 상황과 인적 변화를 종합하여 답변을 작성한다.

    • 이만수의 노쇠화 이후 박선일, 김성현, 김영진, 정회열이 배터리를 맡았지만, 이만수만큼의 기량을 보여 주지 못해 포수난을 겪고 있었다.
    • 김영진의 경우 1997년 연속 경기 때의 낫아웃 오판 사건으로 인해 팀에서 2001년에 내야수 김승권을 상대로 한화 이글스에 트레이드했다.
    • LG 트윈스의 포수였던 김동수를 FA 계약을 통해 영입하기도 했는데
근거 (evidence)
  • 진갑용을 영입하기 전에 삼성 라이온즈에서는 이만수의 노쇠화 이후 박선일, 김성현, 김영진, 정회열이 배터리를 맡았지만, 이만수만큼의 기량을 보여 주지 못해 포수난을 겪고 있었다.
  • 이만수의 노쇠화 이후 박선일, 김성현, 김영진, 정회열이 배터리를 맡았지만
  • 김영진의 경우 1997년 연속 경기 때의 낫아웃 오판 사건으로 인해 팀에서 2001년에 내야수 김승권을 상대로 한화 이글스에 트레이드했다.
  • LG 트윈스의 포수였던 김동수를 FA 계약을 통해 영입하기도 했는데
  • 이만수의 노쇠화 이후 박선일, 김성현, 김영진, 정회열이 배터리를 맡았지만, 이만수만큼의 기량을 보여 주지 못해 포수난을 겪고 있었다.
최종 답변 (final_answer)
삼성 라이온즈는 이만수의 노쇠화 이후 박선일, 김성현, 김영진, 정회열이 배터리를 맡았으나 이만수만큼의 기량을 보여주지 못해 포수난을 겪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김영진은 2001년 한화 이글스로 트레이드되었고, LG 트윈스의 포수였던 김동수를 FA 계약을 통해 영입하는 등의 인적 변화가 있었다.
핵심 해석 (core_interpretation)
삼성 라이온즈는 이만수의 노쇠화 이후 포수난을 겪었으며, 박선일, 김성현, 김영진, 정회열 등이 기용되거나 김영진의 트레이드와 김동수 영입 등 인적 변화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