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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득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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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220623166730
유형
위키
출처
위키백과
연도
2022
분야
문화
문맥 (context)
''홍득기''(洪得箕, [[1635년]] [[음력 11월 27일]] ~ [[1673년]] [[음력 11월 26일]])는 [[조선]]의 문신이자 부마이다. [[조선 효종|효종]]의 둘째 딸인 [[숙안공주]]와 혼인하여 ''익평위''(益平尉)에 봉해졌다. [[병자호란]]때 전사한 [[홍명구]]의 손자이다. == 생애 == === 출생과 가계 === [[1635년]](인조 13년) 11월 27일, [[홍중보]](洪重普)와 어머니 [[한산 이씨]](韓山 李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남양 홍씨|남양]]이며, [[고려]] [[고려 공민왕|공민왕]]의 외조부인 [[홍규 (고려 후기)|홍규]](洪奎)의 후손이다. 할아버지는 평안도 관찰사를 지낸 남녕군(南寧君) [[홍명구]](洪命耉)이며, [[병자호란]] 당시 [[강원도]] [[김화군|김화]](金化)에서 전사하였다. === 혼인과 부마 책봉 === [[1648년]](인조 26년), 의빈(儀賓) 간택에 들었으며, [[1649년]](인조 27년) 당시 세자였던 [[조선 효종|봉림대군]](효종)의 둘째 딸인 숙안군주([[숙안공주]])의 부마로 결정되어 익평부위(益平副尉)에 책봉되었다. 이해에 [[조선 인조|인조]]가 승하하자, 인조의 3년상을 치르고 혼례를 올릴 예정이었으나, [[청나라]]의 [[도르곤]]이 구혼칙서를 보내 조선의 공주나 왕녀와 혼인할 뜻을 내비치자, [[1650년]](효종 1년) 11월, [[조선 효종|효종]]은 절차를 간략히 하여 홍득기와 [[숙안공주]](淑安公主)의 가례를 행하였다. 이후 숙안공주와의 사이에서 아들 [[홍치상]](洪致祥)을 낳았다. === 행적 === 익평위 홍득기와 [[숙안공주]] 부부는 민간의 토지를 탈취하고, 크고 작은 여러가지 문제를 일으켜 백성들에게 폐를 끼쳤다. 또한 수차례 저택 공사 등으로 대간의 탄핵을 받았으나 이때마다 [[조선 효종|효종]]과 [[조선 현종|현종]]이 비호하였다.{{인용문| :“익평위(益平尉) 홍득기(洪得箕)의 궁노(宮奴)가 우금(牛禁)을 범해 놓고도 : 이를 단속한 관리를 마구 때렸는가 하면, : 또 궁노를 이끌고 본조 참의 {{font color|#4b7099|이척연}}(李惕然)의 집에 가서 난동을 부렸으니, : 이는 예나 지금이나 없던 변고입니다. : 궁노를 엄하게 다스려 법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풍조를 징계하소서.”|[[효종실록]] 8권,효종 3년(1652년 청 순치(順治) 9년) 1월 12일 (을유)|align=center}} :"익평(益平, 홍득기)의 궁노(宮奴)는 완산(完山) 등에 전장(田庄)을 설치하고 : 청평(靑平, [[심익현]])의 궁노는 호내(湖內) 등에 전장을 설치하였다 합니다. : 나라안의 작은 전지라도 어찌 임금의 땅이 아니겠습니까. : 산택(山澤)이 개간되지 않았다면 그만이겠으나, : 개간되었다면 백성이 그 가운데에서 대대로 갈아먹되 : 공전(公田) 사전을 가리지 못하는 것이 어찌 한정이 있겠습니까. : 입안(立案)하여 준 내수사 소속의 기름진 전토가 분명히 부족한 것이 아닌데, : 무슨 까닭으로 불분명한 민전을 침탈하여 그 근방에 사는 신구(新舊) 백성이 : 집을 헐리고 살곳을 찾아 이곳 저곳 떠돌아다니게 합니까."|[[효종실록]] 9권,효종 3년(1652년 청 순치(順治) 9년) 11월 13일 (신사)|align=center}} [[1660년]](현종 원년), 사신으로 [[청나라]] 연경에 다녀왔다. 이듬해에 광덕대부(光德大夫)로 직위가 올랐다. [[1666년]](현종 7년) 3월, [[조선 현종|현종]]이 [[온양온천]]에 행차할 때 배행하여 호위한 공으로 성록대부(成祿大夫)에 진봉되었다. 같은해 12월 동서인 동평위 [[정재륜]]과 함께 탄핵되었다. 홍득기와 정재륜의 가노와 포수 등이 국경을 넘어 사냥한 일로 처벌된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함경도]] 등지에서 사냥을 하여 피물을 싣고 돌아오다 붙잡히는 일이 발생하였기 때문이다.{{인용문| :"북변에 사건이 발생하는 것은 대부분 삼(蔘)과 사냥 때문입니다. : 지난번에 동평위(東平尉) [[정재륜]](鄭載崙, [[숙정공주]]의 남편)의 가노(家奴)가 : 국경을 넘어 사냥한 일에 대해 이제 막 처벌되었는데, : 지금 들으니 익평(益平) · 동평(東平) 두 궁의 궁노와 포수 4명이 : [[삼수군|삼수]], [[갑산군|갑산]] 등지에 들어가 사냥을 하여 피물(皮物)을 많이 싣고 : 사잇길로 몰래 돌아오다가 감사에게 발각되어 현재 [[안변군|안변]](安邊)에 잡혀 있다 합니다. : 그중에는 병조의 공문을 가진 자도 있었는데, 그 공문에 이르기를 : ‘포수 아무개 등이 지나는 곳의 각 관아는 금지하지 말라.’ 고 하였습니다. : 홍득기(洪得箕)와 정재륜 등이 가노를 들여보내 변방의 금지령을 함부로 범하여 : 백성들이 본받게 한 것만도 이미 매우 놀라운데, : 병조에서 금지하지 말라는 공문을 작성해 주었으니 역시 매우 불가한 일입니다. : 이러한데도 그냥 놔두면 뒤폐단을 막기가 어렵습니다. : 홍득기 · 정재륜 및 병조의 당해 당상을 파직하도록 명하소서." :하니, 왕이 우선 추고만 하라고 명하였다.|[[현종실록]] 13권,현종 7년(1666년 청 강희(康熙) 5년) 12월 5일 (신해)|align=center}} === 사망 === [[1673년]](현종 14년) 11월 26일 졸하였다. 부음이 전해지자 [[조선 현종|현종]]은 매우 슬퍼하며 3일간 조회를 중지하고 장례에 필요한 물품을 공급하고 사후 3년 동안 녹봉을 지급하였다. 당시 세자였던 [[조선 숙종|숙종]] 또한 내시를 보내 치조하였다. [[여주시|여주]] 소유곡에 장사지냈다가 [[이천시|이천]] [[설봉산]]으로 이장하였다. 후에 [[숙안공주]]와 합장하였다. == 가족 관계 == == 각주 ==
지시문 (instruction)
주어진 원문을 읽고 필요한 정보를 파악하여, 원문에 근거해 질문에 답하라.
질문 (question)
홍득기가 받은 관직 중 성록대부(成祿大夫)와 광덕대부(光德大夫)는 각각 어떤 계기로 부여되었는가?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1. 1과제 해석task_interpretation

    홍득기가 받은 두 가지 직위(광덕대부, 성록대부)의 부여 사유를 구분하여 파악해야 한다.

  2. 2정보 추출information_extraction

    본문에서 광덕대부와 성록대부에 관한 언급을 추출한다.

    • 이듬해에 광덕대부(光德大夫)로 직위가 올랐다.
    • [[조선 현종|현종]]이 [[온양온천]]에 행차할 때 배행하여 호위한 공으로 성록대부(成祿大夫)에 진봉되었다.
  3. 3근거 선택evidence_selection

    광덕대부는 직위가 오른 결과로 기술되어 있고, 성록대부는 호위한 공으로 인해 진봉되었음을 확인한다.

    • 이듬해에 광덕대부(光德大夫)로 직위가 올랐다.
    • [[조선 현종|현종]]이 [[온양온천]]에 행차할 때 배행하여 호위한 공으로 성록대부(成祿大夫)에 진봉되었다.
  4. 4논리 통합logical_integration

    광덕대부는 시기적 흐름에 따른 직위 상승이며, 성록대부는 구체적인 공적(온양온천 행차 시 호위)에 의한 보상임을 연결한다.

  5. 5결론 도출conclusion_formulation

    광덕대부는 직위가 상승하며 얻은 것이고, 성록대부는 현종의 온양온천 행차 시 호위한 공으로 받은 것이다.

    • 이듬해에 광덕대부(光德大夫)로 직위가 올랐다.
    • [[조선 현종|현종]]이 [[온양온천]]에 행차할 때 배행하여 호위한 공으로 성록대부(成祿大夫)에 진봉되었다.
  6. 6답변 생성answer_generation

    질문에 따라 두 직위의 부여 사유를 명확히 구분하여 작성한다.

    • 광덕대부(光德大夫)로 직위가 올랐다.
    • [[조선 현종|현종]]이 [[온양온천]]에 행차할 때 배행하여 호위한 공으로 성록대부(成祿大夫)에 진봉되었다.
근거 (evidence)
  • 이듬해에 광덕대부(光德大夫)로 직위가 올랐다.
  • [[조선 현종|현종]]이 [[온양온천]]에 행차할 때 배행하여 호위한 공으로 성록대부(成祿大夫)에 진봉되었다.
  • 광덕대부(光德大夫)로 직위가 올랐다.
최종 답변 (final_answer)
광덕대부는 직위가 상승하며 얻게 된 것이며, 성록대부는 현종이 온양온천에 행차할 때 배행하여 호위한 공으로 진봉된 것이다.
핵심 해석 (core_interpretation)
홍득기의 광덕대부는 직위 상승으로 얻은 것이며, 성록대부는 현종의 온양온천 행차를 호위한 공으로 진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