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맥 (context)
파비오 칸나바로, 장교 OMRI (ˈfaːbjo kannaˈvaːro, 1973년 9월 13일, 나폴리 ~)는 이탈리아의 전 프로 축구 선수이며, 현재 축구 감독이다.
칸나바로는 역대 최고 수비수들 중 한 명으로 꼽힌다. 그는 주로 이탈리아에서 활동하였다. 그는 나폴리에서 신고식을 치른 후 파르마에서 7년을 보내며 코파 이탈리아를 두 차례 우승하고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1999와 UEFA컵 1998-99 우승을 거두었다. 이후, 인테르나치오날레와 유벤투스를 거친 그는 2006년에 파비오 카펠로 감독과 유벤투스에서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해 2007년과 2008년에 라 리가 2연속 우승을 거두었다. 유벤투스에 2009-10 시즌 동안 1년 복귀한 후, 그는 두바이의 알아흘리에 입단하였고, 2011년에 잦은 부상을 당한 뒤 은퇴했다. 은퇴 후, 그는 알아흘리의 감독직 일원으로 합류했고, 2011년부터 2013년까지는 전세계적 홍보대사와 기술 고문을 겸직하였고, 2013년부터 2014년까지는 수석 코치를 역임했다. 2014년 11월, 그는 광저우 에버그란데 감독으로 취임했다. 2016년 6월 9일, 그는 중국 2부 리그 톈진 취안젠의 감독으로 취임했다.
칸나바로는 이탈리아 국가대표팀에서도 성공을 거두었다. 그는 1994년과 1996년에 UEFA U-21 축구 선수권 대회 2연패를 기록한 이탈리아 대표팀의 주역이었다. 1997년, 성인 대표팀 경기에 처음으로 출전한 그는 UEFA 유로 2000에서 조국의 결승행에 일조해 대회의 팀 일원으로 선정되었고, 2002년에 파올로 말디니가 은퇴한 이후부터 주장을 맡았다. 칸나바로는 독일에서 열린 2006년 FIFA 월드컵에서 이탈리아의 우승을 이끌었고, 수비에서의 뛰어난 활약으로 이탈리아 대표팀 지지자들로부터 '"베를린 장벽"' (Il Muro di Berlino)의 별명을 얻었는데, 이탈리아는 5경기를 무실점으로 마쳤고, 단 2골만 허용했으며, 두 골 모두 정상적인 방법으로 실점한 골이 아니었다. 그는 대회 후 최우수 선수 부문에서 2위로 선정되어 실버 볼을 받았다. 2009년, 그는 말디니를 제치고 국가대표팀 역사상 최다 출전 선수로 이름을 올렸다. 2010년 6월 25일, 2010년 FIFA 월드컵에서 이탈리아가 조별 리그에서 조기에 탈락하면서, 그는 136경기 출전 2골 득점을 기록하고 성인 국가대표팀 은퇴를 선언했다. 도합하여, 그는 이탈리아를 대표로 4번의 FIFA 월드컵, 2번의 UEFA 유럽 축구 선수권 대회, 1996년 하계 올림픽, 그리고 2009년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에 참가했다. 그는 현재 잔루이지 부폰에 이어 최다 경기 출장 2위를 기록하고 있고, 79경기로 이탈리아 국가대표팀 최다 출전 주장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는 2006년 FIFA 올해의 선수로 선정되었고, 2006년 발롱도르로 석권해 10년 동안 이 상을 획득한 유일한 선수이자, 독일의 프란츠 베켄바워와 마티아스 자머에 이어 이 상을 탄 3번째 수비수로 기록되었다. 2007년, 그는 라우레우스 세계 스포츠 올해의 스포츠인의 최종 후보 6인으로도 선정되었다. 소싯적, 칸나바로는 바뇰리에서 활약하다가 그의 유년 시절 선망의 구단인 나폴리의 스카우터들에게 포착되었다.
나폴리
칸나바로는 처음에 나폴리의 볼보이로 그의 우상인 디에고 마라도나와 치로 페라라의 활약상을 지켜보았다. 그는 나중에 구단의 유소년 아카데미에 합류했다. 젊은 파비오는 선수단에서 부동의 주전을 맡던 마라도나를 강한 태클로 저지해 나폴리 훈련에 임하던 도중 명성을 쌓았다. 이 거친 태클은 동료들과 나폴리 감독진을 노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당사자 마라도나는 유망주를 변호하며 그가 원하는 방식으로 경기할 수 있도록 장려했다. 페라라와 중앙 수비를 맡은 그는 기대감에 부응하며 태클, 배급, 그리고 공을 뺏고 나서의 공격 전개 능력을 선보였다. 그는 1995년 1월 8일, 밀란과의 산 시로 원정 경기에서 첫 골을 기록했다. 그러나, 그의 믿음직한 활약에도 불구하고, 마라도나가 떠난 나폴리는 재정난에 허덕였고, 칸나바로는 훗날 UEFA컵과 코파 이탈리아, 그리고 세리에 A 올해의 수비수 상을 획득하게 되는 파르마로 매각되었다. 칸나바로는 1995년까지 나폴리에 남아 60번에 가까운 구단 경기에 출전해 1골을 기록했다. 당시 파르마는 재정난에 빠졌고, 인테르는 극적으로 세리에 A 우승을 유벤투스에 내주었고, 4년 연속 무관을 차지한 구단은 거물 공격수 호나우두가 떠나면서 선수단 재조직에 집중하고 있었다. 프란체스코 코코와 그의 파르마 동료 에르난 크레스포와 함께, 칸나바로는 엑토르 쿠페르가 이끄는 인테르나치오날레의 주요 신입생들 중 한 명이었다. 토리노 이주로, 그는 파르마 시절 동료였던 릴리앙 튀랑과 잔루이지 부폰과 재회했고, 셋은 다시 세리에 A의 가장 공포스러운 수비를 재결성했다. 그들과 함께 잔루카 참브로타, 잔루카 페소토, 알레산드로 비린델리, 조나탕 제비나, 그리고 페데리코 발차레티가 조합되었다. 이 선수단은 2004-05 시즌과 2005-06 시즌에 2시즌 연속으로 '작은 방패'를 획득했지만,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 2시즌 연속으로 8강에서 탈락했다. 전자의 시즌에 칸나바로는 구단의 상징적인 존재들인 파올로 몬테로와 치로 페라라와 조합되었다. 칸나바로는 토리노 거함에서 훌륭게 시즌을 보내며 이탈리아 축구 오스카상인 '오스카르 델 칼초'를 4차례 차지했는데 2005년과 2006년에 올해의 수비수와 이탈리아 올해의 선수로 선정되었다. 마드리드와 프랑스 국가대표팀의 전 선수인 지네딘 지단이 사용한 등번호 5번을 받았다. 칸나바로는 마드리드에서 3시즌을 보내며 2006-07 시즌과 2007-08 시즌에 라 리가 우승을 거두었고, 2006년 FIFA 올해의 선수로 선정되었고, 2006년 발롱도르의 주인공도 되었다.
마드리드에서의 마지막 시즌인 2008-09 시즌에 들어, 칸나바로의 기량은 빠르게 하락하였다. 노쇠화로, 그는 리오넬 메시와 페르난도 토레스 같은 발빠른 선수들을 상대로 고전하며 레알 마드리드의 다실점 원인으로 지적되었다. 2009년 5월 19일, 칸나바로는 계약 종료와 함께 2009-10 시즌을 앞두고 유벤투스로 복귀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베르나베우에서의 마지막 경기에, 그는 지지자들의 기립 박수를 받았다. 2013년 4월, 칸나바로는 '마르카'지에 의해 "레알 마드리드 역사상 최우수 11인"의 일원으로 꼽혔다.
유벤투스 복귀
칸나바로는 레알 마드리드와의 계약이 2009년 여름에 만료되면서 귀환 결정을 내렸고, 3년 전에 떠났던 유벤투스에 복귀했다. 칸나바로는 새 시즌을 훌륭히 시작했는데, 그는 니콜라 레그로탈리에, 마르틴 카세레스, 즈데네크 그리게라, 파비오 그로소, 그리고 조르조 키엘리니와 훌륭한 수비 조합을 이루어 잔루이지 부폰 앞에 배치되었다. 그러나, 가을부터 유벤투스 선수단의 기량이 급격히 하락했다. 2009년 말 부상을 기점으로, 칸나바로는 개인 기량의 회복에 어려움을 겪었고, 유벤투스는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 조 3위를 차지해 탈락했다. 그의 활약상은 더 이상 신뢰할 수 없게 되어 고향 구단 나폴리조차 칸나바로 본인의 구단 합류 의사를 두 번 이상 밝히고도 거절하기에 이르었다. 그는 두바이 연고 구단 소속으로 16경기에 출전해 2골을 넣었다. 2011년 7월, 칸나바로는 심각한 무릎 문제로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주치의는 그가 더 이상 활약하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알아흘리에서 은퇴한 지 1년이 지난 후, 그는 인도 리그의 실리구리에 합류해 제이-제이 오코차, 에르난 크레스포, 그리고 로비 파울러와 함께 입단할 것으로 밝혀졌고, 실리구리는 그의 '최저금'인 $50,000를 웃도는 $830,000에 영입되었다. 그러나 리그는 칸나바로가 은퇴를 번복하지 않으면서 성사되지 않았다.
국가대표팀 경력 >> 청소년 국가대표팀
칸나바로는 1990년대 중반 체사레 말디니 감독 체제의 이탈리아 U-21 국가대표팀 일원으로 첫 국제 무대 성공을 거두었는데, 1994년과 1996년에 연달아 UEFA U-21 축구 선수권 대회 우승을 거두었고, 나중에 성인 대표팀에서도 동행할 알레산드로 네스타와 함께 수비를 맡았다.
성인 국가대표팀 초년
1997년 1월 22일, 그는 북아일랜드와의 친선경기에서 이탈리아 국가대표팀 신고식을 치렀다.
이탈리아는 2002년 FIFA 월드컵 이후 말디니의 완장을 물려받으면서 어깨가 무거워졌지만, 선수단을 이끄는 능력, 평정심, 영감을 주는 활약으로 즉시 선수단의 지지를 받았고, 이탈리아가 UEFA 유로 2004와 2006년 FIFA 월드컵 본선에 오르게 도왔다. 그는 9월 7일, 이어지는 아제르바이잔과의 UEFA 유로 2004 예선전 원정 경기에서 신임 주장으로 명명되었고, 이탈리아가 2-0으로 이겼다. 10월 12일, 나폴리에서 벌어진 이탈리아와 세르비아 몬테네그로와의 예선전 경기에서, 그는 지역민들의 기립 박수를 받았고, 경기는 1-1 무승부로 끝났다.
칸나바로는 튀니스에서 벌어진 튀니지와의 2004년 5월 30일자 경기에서 첫 국가대표팀 득점을 기록했는데, 이탈리아는 이 경기에서 4-0으로 이겼다. 포르투갈에서 열린 UEFA 유로 2004는 실망스럽게 끝났다. 칸나바로는 0-0으로 비긴 덴마크전과 1-1로 비긴 스웨덴과의 두 경기에서 2번의 경고를 받아 조별 리그 최종전에 결장했다. 이탈리아는 불가리아를 2-1로 이겼지만, 골득실차로 다음 라운드 진출에 실패했다.
FIFA 월드컵 우승
칸나바로는 마르첼로 리피 감독 하에 2006년 FIFA 월드컵에서 평정심을 유지하며 우승으로 이끌었다. 그는 개최국 독일과의 준결승전에서 연장전 끝에 2-0으로 이기는데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다. 연장전 막판 이탈리아가 1-0으로 앞서는 와중에 독일이 공격을 감행하자, 칸나바로는 페어 메르테자커를 너머 구역에 들어온 공을 걷어냈다. 이후, 그는 앞으로 전진해 루카스 포돌스키의 공을 뺏어 중원의 프란체스코 토티로 연결해 알베르토 질라르디노의 도움을 거쳐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가 넣은 이탈리아의 두 번째 골로 연결되었다. 그러나, 그의 정점을 찍은 순간은 2006년 7월 9일, 100번째 경기에 출전한날 밤에 FIFA 월드컵 트로피를 들어올린 것이었다. 칸나바로는 대회에 690분을 뛰어 단 한 번도 경고나 퇴장하지 않았다. 결승전에서 보인 수비에서의 활약으로, 그는 결승전이 열린 베를린을 따 "베를린 장벽"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칸나바로는 UEFA 유로 2008 이후 국가대표팀 은퇴할 계획을 접었고, 부상은 그에게 오기를 불어넣어 이탈리아를 2010년 FIFA 월드컵까지 이끌게 결정하도록 만들었다.
최다 출장기록 경신
브라질을 상대로 한 이탈리아의 2009년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조별 리그 최종전 경기에서, 칸나바로는 파올로 말디니와 초다 출장 기록으로 어깨를 나란히 했지만, 0-3으로 패해 조별 리그에서 실망스럽게 탈락하면서 빛이 바랬다. 2009년 8월 12일, 스위스와의 친선전에서 칸나바로는 127번째 국가대표팀 경기에 출전해 126번 출전한 말디니를 제치고 이탈리아 국가대표팀 최다 출장 선수가 되었다. 전 대회 우승국은 1라운드에서 파라과이와 뉴질랜드에 비긴 후, 슬로바키아에 패해 탈락했다. 이탈리아가 조별 리그 통과에 실패한 후, 칸나바로는 국가대표팀 은퇴를 선언했다.
감독 경력 >> 알아흘리
은퇴 후 2011년 8월 25일, 칸나바로는 두바이 알아흘리의 전세계적 홍보대사와 기술 고문으로 취임했다. 2013년 7월, 코스민 올러로이우가 알아흘리의 신임 감독으로 취임하면서, 칸나바로는 1군 수석코치로 이직했다. 그는 이직 첫 시즌에 알아흘리의 UAE 아라비안 걸프 리그와 UAE 리그 컵 우승에 공헌했다.
2014년 6월, 칸나바로는 전 소속 구단 레알 마드리드의 감독진으로 취임해 지네딘 지단을 대신해 카를로 안첼로티의 수석 코치를 맡을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러나, 이 직위는 페르난도 이에로가 가져갔다.
광저우 에버그란데
2014년 11월 5일, 칸나바로는 중국 슈퍼리그의 전 시즌을 포함해 4차례 우승을 거둔 광저우 에버그란데의 신임 감독으로 취임해 그의 전 국가대표팀 감독이었던 마르첼로 리피의 바통을 이어받았다. 그는 당일 구단의 감독으로 입단식을 치렀다. 2015년 6월 5일, 광저우 에버그란데는 톈진 터다와의 슈퍼리그 경기 후 즉시 루이스 펠리피 스콜라리가 그의 후임을 맡을 것임을 발표했다.
알나스르
2015년 10월 24일, 칸나바로는 호르헤 다 실바를 대신해 사우디아라비아의 알나스르 감독으로 취임했다. 2016년 2월 11일, 칸나바로는 알나스르와의 계약을 해지했다.
톈진 취안젠
2016년 6월 9일, 톈진 취안젠은 7경기 무승을 거둔 반데를레이 루솀부르구를 해임하고 칸나바로를 신임 감독으로 내정했다. 톈진 취안젠은 당시 리그 8위에 올라 있었다. 2016년 10월 22일, 칸나바로는 톈진 취안젠을 중국 리그 1 2016 우승으로 이끌어 중국 슈퍼리그 2017 승격을 확정지었다.
광저우 에버그란데 복귀
2017년 11월 9일, 칸나바로는 루이스 펠리피 스콜라리 감독 후임으로 광저우 에버그란데 감독으로 취임했다. 계약기간은 5년이라고 밝혔다. 2021년 9월 28일 칸나바로는 광저우 FC와 상호합의 하에 계약을 해지 했다.
플레이스타일
칸나바로는 그의 세대 역대 최고 수비수들 중 한명으로 꼽히며, 이탈리아 주장으로 FIFA 월드컵을 우승했고, 2006년에는 발롱도르와 FIFA 올해의 선수를 모두 석권했다. 그는 비록 경기를 읽을 수 있는 능력으로 중앙 수비수로 두각을 나타냈지만, 좌측 혹은 우측의 측면 수비수로도 배치된 적이 있는데, 그는 인테르나치오날레 시절 엑토르 쿠페르 감독에 의해 더욱 두드러졌다.
수비수로서, 칸나바로는 집중력, 힘, 예상 능력, 그리고 위치 선정에 두각을 나타냈다. 수비수 치고는 작은 신체 조건에도, 그의 높이와 공중 경합 능력은 크로스를 막아내거나, 프리킥 상황에서 득점을 가능케 한다. 현역 시절을 통틀어, 그는 역동적이며, 꾸준하고, 끈질긴 수비수로 명성을 날렸고, 가속력, 발놀림, 그리고 태클 능력으로, 지역 방어 체계와 대인 방어 체계에서 모두 두각을 나타냈다. 수비수로서의 능력 외에도, 칸나바로는 경기장 내외에서의 지휘력, 결단력, 그리고 영향력을 내며, 잔루이지 부폰이 기록을 경신하기 전까지 이탈리아 국가대표팀 최다 출전 선수였다. 그는 이탈리아 국가대표팀 최다 출전 주장의 기록을 지니고 있다.
칸나바로는 소니 인터랙티브 엔터테인먼트의 '이것은 축구 2003'의 이탈리아 표지를 장식하기도 했다. 칸나바로는 EA 스포츠의 전자오락 'FIFA 시리즈'에도 등장했다. 그는 'FIFA 14'의 궁극의 전설적인 선수들 중 한 명으로 명명되었다.
그는 2014년 FIFA 월드컵 기간에 ITV의 평론가로 출연했다.
그의 동생 파올로도 수비수이며, 현재 사수올로 소속이다. 두 형제는 2000년에서 2002년까지 파르마에서 협력했었고, 이후 파비오가 인테르나치오날레로 떠났다. 은퇴 전, 파비오는 파올로와 나폴리에서 은퇴할 의사를 밝히곤 했다.
나폴리의 전 동료이자 같이 수비를 맡았던 치로 페라라는 함께 '칸나바로 페라라 재단' (Fondazione Cannavaro Ferrara) 을 조직해 암 연구 장비 조달과 나폴리 병원의 희귀암 수술을 지원했다. 이 재단은 위기에 처한 나폴리의 유소년을 지원하는 데에도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사태에 아무런 조치도 취해지지 않았다.
2009년 10월 8일, 칸나바로는 도핑 테스트에서 양성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유벤투스 측은 심각한 말벌 독침 알레르기 반응에 쓰이는 약물로, 기량 향상과는 무관하다고 주장했다. 시급한 조치 문제로, 칸나바로는 당시 이탈리아 국가 올림픽 위원회 (CONI)의 허가를 제때 구하지 못했고, 긴급적으로 취해졌다. CONI의 정식 응답을 기다리던 도중, 그는 도핑 테스트에 응해 양성 반응을 나타냈다. CONI는 이후 그의 징계를 면했다.
2015년 2월, 파비오 칸나바로와 그의 아내 다니엘라, 동생 파올로는 2009년에 사기 및 탈세 조사 과정에서 몰수된 파비오의 거처로 무단 진입한 죄로 각각 10개월, 4개월, 그리고 6개월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셋 모두 최종 판결이 내려지기 전까지 집행이 유예되었다.
지시문 (instruction)
주어진 원문을 읽고 필요한 정보를 파악하여, 원문에 근거해 질문에 답하라.
질문 (question)
파비오 칸나바로가 수비수로서 보여준 기술적 특징과 신체적 조건의 특징은 무엇인가?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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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과제 해석
task_interpretation파비오 칸나바로의 수비 기술적 능력과 신체적 특성에 대한 정보를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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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정보 추출
information_extraction플레이스타일 섹션에서 기술적 능력과 신체 조건에 관한 내용을 추출한다.
- 수비수로서, 칸나바로는 집중력, 힘, 예상 능력, 그리고 위치 선정에 두각을 나타냈다.
- 수비수 치고는 작은 신체 조건에도, 그의 높이와 공중 경합 능력은 크로스를 막아내거나, 프리킥 상황에서 득점을 가능케 한다.
- 가속력, 발놀림, 그리고 태클 능력으로, 지역 방어 체계와 대인 방어 체계에서 모두 두각을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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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근거 선택
evidence_selection기술적 특징(집중력, 힘, 예상 능력, 위치 선정, 가속력, 발놀림, 태클 능력)과 신체적 특징(작은 신체 조건에도 불구하고 높은 높이와 공중 경합 능력)을 선별한다.
- 집중력, 힘, 예상 능력, 그리고 위치 선정에 두각을 나타냈다.
- 수비수 치고는 작은 신체 조건에도, 그의 높이와 공중 경합 능력은 크로스를 막아내거나, 프리킥 상황에서 득점을 가능케 한다.
- 가속력, 발놀림, 그리고 태클 능력으로, 지역 방어 체계와 대인 방어 체계에서 모두 두각을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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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논리 통합
logical_integration추출된 기술적 역량과 신체적 특성을 결합하여 정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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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결론 도출
conclusion_formulation질문에 답하기 위해 기술적 강점과 신체적 특징을 종합한다.
- 집중력, 힘, 예상 능력, 그리고 위치 선정에 두각을 나타냈다.
- 수비수 치고는 작은 신체 조건에도, 그의 높이와 공중 경합 능력은 크로스를 막아내거나, 프리킥 상황에서 득점을 가능케 한다.
- 가속력, 발놀림, 그리고 태클 능력으로, 지역 방어 체계와 대인 방어 체계에서 모두 두각을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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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답변 생성
answer_generation문맥에 근거하여 기술적 특징과 신체적 특징을 나누어 답변을 작성한다.
- 집중력, 힘, 예상 능력, 그리고 위치 선정에 두각을 나타냈다.
- 수비수 치고는 작은 신체 조건에도, 그의 높이와 공중 경합 능력은 크로스를 막아내거나, 프리킥 상황에서 득점을 가능케 한다.
- 가속력, 발놀림, 그리고 태클 능력으로, 지역 방어 체계와 대인 방어 체계에서 모두 두각을 나타냈다.
근거 (evidence)
- 수비수로서, 칸나바로는 집중력, 힘, 예상 능력, 그리고 위치 선정에 두각을 나타냈다.
- 수비수 치고는 작은 신체 조건에도, 그의 높이와 공중 경합 능력은 크로스를 막아내거나, 프리킥 상황에서 득점을 가능케 한다.
- 가속력, 발놀림, 그리고 태클 능력으로, 지역 방어 체계와 대인 방어 체계에서 모두 두각을 나타냈다.
- 집중력, 힘, 예상 능력, 그리고 위치 선정에 두각을 나타냈다.
최종 답변 (final_answer)
파비오 칸나바로는 수비수로서 집중력, 힘, 예상 능력, 위치 선정, 가속력, 발놀림, 태클 능력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또한, 수비수 치고는 작은 신체 조건임에도 불구하고 높은 높이와 공중 경합 능력을 갖추고 있어 크로스를 막아내거나 프리킥 상황에서 득점을 할 수 있는 특징이 있다.
핵심 해석 (core_interpretation)
파비오 칸나바로는 수비수로서 집중력, 힘, 예상 능력, 위치 선정, 가속력, 발놀림, 태클 능력에서 두각을 나타냈으며 작은 신체 조건에도 뛰어난 공중 경합 능력을 갖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