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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낙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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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c_id
A220623125138
유형
위키
출처
위키백과
연도
2022
분야
연예
문맥 (context)
주식회사 가이낙스(株式会社ガイナックス영어표기 : GAINAX Co., Ltd.)는 애니메이션을 주력으로 한 영상 작품, 컴퓨터 소프트웨어의 기획, 제작 및 판매를 주된 사업내용으로 하는 일본의 기업이다. 개요 1995년에는 사회현상을 일으킨 애니메이션 신세기 에반게리온을 제작했다. 주요 대표작으로는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 톱을 노려라! 등이 있다. 1980년대 후반부터 컴퓨터 게임제작을 시작하여 1990년대 초반에는 프린세스 메이커 시리즈 등의 작품이 성공을 거뒀다. 사명의 유래 사명은 시마네현(島根県)의 동부 돗토리현(鳥取県)의 서부 방언(운바쿠 방언(雲伯方言))으로 거대한, 엄청난 이란 의미인 가이나에 미지를 뜻하는 X를 붙인 것이다. 또 가이나라고 하는 방언 자체는 시고쿠(四国)의 일부인 에히메현(愛媛県)과 또한 바다를 사이에 둔 오이타현(大分県)의 연안 부에서도 사용된다. 제작체제 주로 다른 회사에 하청하는 형식을 취하지만(많은 TV시리즈가 타사와의 공동 명의로 제작되었다.) 2004년부터 발매된 OVA 시리즈 톱을 노려라2!(トップをねらえ2!)부터는 왕립우주군~오네아미스의 날개~( 王立宇宙軍〜オネアミスの翼~)이래 설립된 제작 부서가 자체 제작을 했다. 종래의 작화 협력뿐 아니라 타사 TV시리즈의 상호 하청도 행하고 있다. 판권관리 비교적 관대해서 팬들에게 에반게리온의 화상을 웹상에 사용하는 것을 부분적으로 허가한다. 공식 사이트의 톱 페이지에서의 만화가, 일러스트레이터들과의 협동작업, 위에서처럼 소속 스탭이 타사에 파견 제작협력 공식 동인지의 컨테스트적 발행을 적극적으로 행하는 등, 타사와는 차별화 된 활동으로 주목 받고 있다. 본 사의 스탭과의 협동잡업을 행하는 기회가 많은 외부 감독으로서는 다이치 아키타로(大地丙太郎), 호소다 마모루(細田守), 오시이 마모루(押井守)를 들 수 있다. 성인용의 컨텐츠 타사가 자사작품의 이미지를 지키기 위해 18금 동인작품에 대해 엄격한 자세를 취하는 반면 가이낙스는 자사의 일반 애니메이션 작품의 캐릭터를 사용한 전뇌학원3 톱을 노려라!(電脳学園3 トップをねらえ!), 에바와 유쾌한 친구들 탈의보완계획!(エヴァと愉快な仲間たち 脱衣補完計画!)과 현재 근무하고 있는 사원을 다룬 가이낙스 연쇄살인사건(에로)( ガイナックス連続殺人事件(エロ)) 등의 성인취향의 게임을 자체적으로 제작하고 있다. 팬 들 사이에는 이러한 행위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다. 내역 >> 동인시대 1981년의 일본 SF대회 DAICON3의 오프닝 애니메이션에 관련된 간사이(関西)의 대학생들이 SF 용품점 제네럴 프로덕츠를 활동의 기반으로 DAICON FILM으로서 영상제작에 참여했다. 오카다 토시오(岡田斗司夫), 다케다 야스히로(武田康廣), 아카이 다카미(赤井孝美), 야마가 히로유키(山賀博之), 안노 히데아키(庵野秀明), 무라하마 쇼지(村濱章司) 등이 그들이다. 제네럴 프로덕츠는 오카다 토시오가 부모님의 회사인 오카다 자수(岡田刺繍)의 한 부문으로서 설립한 회사로 위에 언급한 모든 멤버는 오카다 자수의 사원이었다. 가이낙스의 설립 1984년, 왕립우주군~오네아미스의 날개~의 제작 당시 제네럴 프로덕츠에서 독립한 오카다 토시오는 가이낙스를 설립했다. 이것에 오카다의 친구로 TV애니메이션 렌즈맨(レンズマン)의 프로듀서를 담당했던 이노우에 히로아키(井上博明)를 맞이하여 가이낙스를 발족했다. DAICON FILM의 마지막 작품이 된 자주제작 특촬 영화 야마타노오로치의 역습(八岐之大蛇の逆襲)의 판매원 반다이가 스폰서가 된 왕립우주군~오네아미스의 날개~는 대작으로서 제작, 1987년 공개되었다. 당초에는 왕립우주군의 완성과 더불어 해산할 예정이었지만, 왕립우주군의 흥행성적이 적자였기 때문에 경영을 계속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 애니메이션 제작의 하청이나 하하청을 하게 되었고 수익개선을 위해 애니메이션 기획, 제작을 시작한다. 1989년부터 1990년에 걸쳐 이케자와 사토시(池沢さとし)가 〈주간 플레이보이〉에 연재한 만화 비트쇼트!!(ビートショット!!), 서키트의 늑대II 모데나의 검(サーキットの狼II モデナの剣)을 오리지널 비디오 애니메이션(OVA)로 제작했고 또 사일런트 뫼비우스(サイレントメビウス)의 게임화에도 손을 대게 된다. 이를 기획한 오카다는 창의적인 발상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적자를 변제하기 위해 ‘이건 팔린다’라는 생각으로 만든 상업적인 작품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PC게임으로의 진출 1989년부터는 오카다의 발안에 의해 PC용의 컴퓨터 게임제작을 시작하여 애니메이션과 더불어 기획, 제작을 계속한다. 기타쿠보 히로유키(北久保弘之)도 감독한 전뇌학원(電脳学園)시리즈, 민다나오에 의한 배틀 스킨 패닉(バトルスキンパニック) 등 이 있고, 특히 아카이가 감독과 캐릭터 디자인을 담당한 1991년의 프린세스 메이커(プリンセスメーカー) 시리즈는 큰 성공을 거둬 다른 메이커들이 모방할 정도로 육성 시뮬레이션 게임이라는 장르를 개척하게 되며 아카이도 인기 창작자가 된다. 오카다에 의하면 게임 제작은 애니메이션 제작의 적자를 해소하고 가이낙스 경영을 떠받치게 되었다고 한다. 변혁기 1992년 제네럴 프로덕츠는 원더 페스티발(ワンダーフェスティバル)의 권리를 카이요도우(海洋堂)에게 위임한 후에 가이낙스와 병합했다. 같은 해에는 창설 멤버였던 마에다 마히로(前田真宏)들이 독립하여 곤조(GONZO)를 설립, DAICON FILM시대 이후 계속 회사를 이끌던 사장의 오카다도 같은 해 퇴사했다. 급성장기 애니메이션 팬들은 1988년부터 OVA 톱을 노려라!에 주목하기 시작해, TV애니메이션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는 애니메이션 잡지의 표지와 권두특집을 장식하였고 인기투표에서도 1위를 얻는 1990년의 최대 화제작이 된다. 1991년에 발표한 OVA 오타쿠의 비디오(おたくのビデオ)는 1970년대 말부터 1980년대 전반의 애니메이션 붐을 배경으로 활약했던 DAICON FILM시대로부터의 가이낙스 자신을 셀프 패러디한 작품이다. 일설에는 이 작품의 미국의 일본 애니메이션 팬들 사이에 오타쿠(おたく)라고 하는 말을 대중화 시켰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1995년의 신세기 에반게리온은 애니메이션의 한계를 뛰어넘어 기동전사 건담 이후 다시 한번 사회현상을 일으켰다. 그중 1997년의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극장판에서는 완결편의 공개가 연기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최근 동향 2007년에는 오랜만에 가이낙스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작품 천원돌파 그렌라간(天元突破グレンラガン)이 제작 방영되어, 호평을 받았다. 또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극장판 리뉴얼 4부작 에반게리온 신극장판의 제작이 결정되어 제 1작 에반게리온 신극장판:서가 극장 공개되었다. 또 이 4부작은 안노 히데아키가 새롭게 설립한 애니메이션 제작회사 카라의 작품으로 가이낙스는 원작협력과 선전협력 등의 약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탈세 사건 1999년 게임 소프트 제작을 위장한 소득은닉 탈세사건에 의해 당사의 사장인 사와무라 다케시(澤村武伺)가 체포되었다. 팬에 대한 폭언 2007년 4월 테레비 도쿄계열에서 방영된 애니메이션 천원돌파 그렌라간 제 4화의 방영 종료 후 그 때까지의 이전 3화와 동 떨어진 작풍에 비판적인 의견이 2채널과 동 애니메이션 공식 블로그에 연달아 개시되었다. 이윽고 이 의견에 반발하는 가이낙스의 여성사원이 mixi의 일기에 시청자에 대한 폭언을 한 것이 발각되었고 이 일기의 내용에 동조하는 코멘트를 쓴 mixi의 사용자 중에는 이사 중 한명인 아카이 타카미가 있었던 것이 판명되어 최종적으로는 이사직을 사임하는 사태로까지 발전했다.
지시문 (instruction)
주어진 원문을 읽고 필요한 정보를 파악하여, 원문에 근거해 질문에 답하라.
질문 (question)
가이낙스가 PC 게임 제작을 시작하게 된 배경과 그것이 회사 경영에 미친 영향은 무엇인가?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1. 1과제 해석task_interpretation

    가이낙스의 PC 게임 제작 배경(원인)과 경영적 효과(결과)를 묻는 질문이다.

  2. 2정보 추출information_extraction

    게임 제작의 계기와 경영적 역할을 설명하는 문구를 추출한다.

    • 오카다에 의하면 게임 제작은 애니메이션 제작의 적자를 해소하고 가이낙스 경영을 떠받치게 되었다고 한다.
    • 적자를 변제하기 위해 ‘이건 팔린다’라는 생각으로 만든 상업적인 작품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3. 3근거 선택evidence_selection

    애니메이션 제작의 적자 해소를 위해 게임 제작을 시작했다는 인과관계를 확인한다.

    • 애니메이션 제작의 적자를 해소하고 가이낙스 경영을 떠받치게 되었다
  4. 4논리 통합logical_integration

    애니메이션 제작에서 발생한 적자를 메우기 위한 상업적 목적으로 게임 제작이 시작되었으며, 이것이 경영 안정화에 기여했음을 연결한다.

  5. 5결론 도출conclusion_formulation

    게임 제작은 애니메이션 제작의 적자를 해소하고 경영을 유지하는 역할을 함을 도출한다.

    • 게임 제작은 애니메이션 제작의 적자를 해소하고 가이낙스 경영을 떠받치게 되었다
  6. 6답변 생성answer_generation

    질문에 맞춰 배경과 영향을 정리하여 답변을 작성한다.

    • 게임 제작은 애니메이션 제작의 적자를 해소하고 가이낙스 경영을 떠받치게 되었다
근거 (evidence)
  • 오카다에 의하면 게임 제작은 애니메이션 제작의 적자를 해소하고 가이낙스 경영을 떠받치게 되었다고 한다.
  • 적자를 변제하기 위해 ‘이건 팔린다’라는 생각으로 만든 상업적인 작품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 애니메이션 제작의 적자를 해소하고 가이낙스 경영을 떠받치게 되었다
  • 게임 제작은 애니메이션 제작의 적자를 해소하고 가이낙스 경영을 떠받치게 되었다
최종 답변 (final_answer)
가이낙스는 애니메이션 제작에서 발생한 적자를 변제하기 위한 상업적인 목적으로 1989년부터 PC용 컴퓨터 게임 제작을 시작하였으며, 이러한 게임 제작은 애니메이션 제작의 적자를 해소하고 회사의 경영을 떠받치는 역할을 하였다.
핵심 해석 (core_interpretation)
가이낙스는 애니메이션 제작의 적자를 해소하고 경영을 떠받치기 위해 1989년부터 PC용 컴퓨터 게임 제작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