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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영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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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c_id
A220623207904
유형
위키
출처
위키백과
연도
2022
분야
문화
문맥 (context)
어영담(魚泳潭, 1532년 ~ 1594년 음력 4월 9일)은 조선 경상도 사천현감 등을 지낸 조선 중기의 무신이다. 그는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 휘하의 장수였다. 물길을 잘 아는 것으로 유명하여 거제, 옥포, 당항포 해전 등에서 큰공을 세웠다. 자(字)는 경유(景游)이다. 생애 어영담은 임진년인 1532년에 태어났다. 그러나 그동안 어영담에 대해 연구한 이가 드물어 생몰년대가 불분명 했으나 광양문화원 사료조사위원들이 어영담의 과거 급제 문서인 ‘방목’을 입수해 1532년으로 확정 지었다. 어영담은 1564년 식년무과에 병과 3등(전체 11등)으로 합격했다. 어영담은 과거에 급제하기 이전에 음직으로 만호(고흥군 점안면 여도)를 지냈음을 방목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여도만호였다. 생년은 임진년 1532년, 몰년은 난중일기에 나오듯이 1596년 전염병으로 죽었다. 자(字)는 경유(景游)이고, 본관은 함종(咸從)이며, 경상도 함안이 거주지였고, 부친은 내금위 적순부위(정7품) 충무위 부사맹을 지내신 어심(魚深)이고, 합격당시에는 모친만 생존한 상태이고 형제는 없는 것으로 되어있다. 사실 어영담은 아들이 두명 있었는데 어응해와 어응린이다. 그러나 당시 이들은 아들을 출산하지 못해 대를 잇지 못한다. 어영담은 1580년 12월 ~ 1582년 2월까지 사천현감, 1584년 2월 ~ 1585년 3월까지 무장현감, 광양현감에는 1591년 3월에 부임했고, 임진왜란 이전에는 창성부사를 지냈다. 그 밖에 여러 군직(軍職)을 지냈다. 어영담의 전과는 이충무공의 난중일기와 임진장초에서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광양 현감으로서 옥포해전부터 시작해서 1594년 초 제2차 당항포해전까지 모두 참전해 큰 역할을 했다. 한 번은 이순신과 웅천해전에 출전했을 때 임발영이 광양현 순찰을 하면서 창고에 쌓인 600석의 양곡을 문제 삼아 어영담을 파직시켰다. 그러자 김두 등 126명의 광양지역민들이 연서를 통해 곧바로 어영담 구명운동에 나섰다. 결국 이충무공의 요청에 의해 광양현감직을 그대로 유지했으나, 윤두수 등에 의해 다시 창고의 군량미의 장부외 저장에 대한 건으로 파직된다. 이순신장군의 장계로 다시 수군조방장이 되었다. 옥포, 합포, 적진포 지역에서 해전을 치러 총 42척의 왜선을 격파하며 승리를 이끌었으며 6월 당포와 당항포, 7월 한산도, 안골포, 9월 부산포 해전에 이르기까지 크고 작은 해전을 이끈 장수(將帥)이다. 이충무공이 어영담 장군을 어떻게 생각했는지는 다음 난중일기 내용과 장계 한 편을 보면 알 수 있다. 96년 4월 초9일(정사) 맑다. 시험을 마치고 방을 내어 붙였다. 비가 쏟아졌다. 어 조방장(어영담)이 세상을 떠났다. 애통함을 어찌 다 말하랴.
지시문 (instruction)
주어진 원문을 읽고 필요한 정보를 파악하여, 원문에 근거해 질문에 답하라.
질문 (question)
어영담이 광양현감직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겪은 파직과 복직의 경과를 설명하시오.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1. 1과제 해석task_interpretation

    어영담의 광양현감 재임 중 발생한 파직과 복직의 시간적 흐름과 원인을 파악해야 한다.

  2. 2정보 추출information_extraction

    첫 번째 파직 사유와 구명 운동, 두 번째 파직 사유 및 이후의 조치 정보를 추출한다.

    • 임발영이 광양현 순찰을 하면서 창고에 쌓인 600석의 양곡을 문제 삼아 어영담을 파직시켰다.
    • 결국 이충무공의 요청에 의해 광양현감직을 그대로 유지했으나, 윤두수 등에 의해 다시 창고의 군량미의 장부외 저장에 대한 건으로 파직된다.
    • 이순신장군의 장계로 다시 수군조방장이 되었다.
  3. 3근거 선택evidence_selection

    파직의 원인이 된 구체적 사건(양곡 문제, 장부 외 저장)과 복직 경로(이순신의 요청 및 장계)를 선별한다.

    • 창고에 쌓인 600석의 양곡을 문제 삼아 어영담을 파직시켰다.
    • 윤두수 등에 의해 다시 창고의 군량미의 장부외 저장에 대한 건으로 파직된다.
    • 이순신장군의 장계로 다시 수군조방장이 되었다.
  4. 4논리 통합logical_integration

    임발영에 의한 1차 파직 -> 구명 운동 및 이순신의 요청으로 직 유지 -> 윤두수에 의한 2차 파직 -> 이순신의 장계로 수군조방장 복귀의 순서로 정리한다.

  5. 5결론 도출conclusion_formulation

    사건의 인과관계와 순서를 종합하여 답변을 구성한다.

  6. 6답변 생성answer_generation

    질문에 대해 문맥에 근거한 서술형 답변을 작성한다.

    • 임발영이 광양현 순찰을 하면서 창고에 쌓인 600석의 양곡을 문제 삼아 어영담을 파직시켰다.
    • 결국 이충무공의 요청에 의해 광양현감직을 그대로 유지했으나, 윤두수 등에 의해 다시 창고의 군량미의 장부외 저장에 대한 건으로 파직된다.
    • 이순신장군의 장계로 다시 수군조방장이 되었다.
근거 (evidence)
  • 임발영이 광양현 순찰을 하면서 창고에 쌓인 600석의 양곡을 문제 삼아 어영담을 파직시켰다.
  • 결국 이충무공의 요청에 의해 광양현감직을 그대로 유지했으나, 윤두수 등에 의해 다시 창고의 군량미의 장부외 저장에 대한 건으로 파직된다.
  • 이순신장군의 장계로 다시 수군조방장이 되었다.
  • 창고에 쌓인 600석의 양곡을 문제 삼아 어영담을 파직시켰다.
  • 윤두수 등에 의해 다시 창고의 군량미의 장부외 저장에 대한 건으로 파직된다.
최종 답변 (final_answer)
어영담은 임발영이 창고에 쌓인 600석의 양곡 문제를 제기하여 파직되었으나, 이순신의 요청으로 광양현감직을 유지했다. 그러나 이후 윤두수 등에 의해 군량미의 장부 외 저장 문제로 다시 파직되었고, 이순신 장군의 장계를 통해 다시 수군조방장이 되었다.
핵심 해석 (core_interpretation)
어영담은 광양현감직 수행 중 양곡 문제 등으로 파직되었다가 복직되는 과정을 겪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