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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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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220623129849
유형
위키
출처
위키백과
연도
2022
분야
연예
문맥 (context)
최민수(崔民秀, 1962년 3월 27일 ~ )는 대한민국의 배우로 아버지 최무룡의 연예인 2세다. 생애 최민수는 1962년 3월 27일,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한때 경기도 파주시에서 유년기를 보낸 적이 있다. 최무룡은 1960년대와 1970년대의 인기 배우로, 강효실과는 연극 무대에서 만났다. 최민수의 외할머니는 눈물의 여왕으로 유명한 배우 전옥이고 외할아버지인 강홍식은 무성영화 시기의 배우이자 가수이며, 북한 최초의 영화감독이다. 신장은 180cm이고 체중은 75kg인 그는 1985년 연극 방황하는 날들로 데뷔하였다. 출연작/활동 >> 영화 >> 드라마 >> 연극 >> 방송/예능 >> 그 외 방송/예능 >> 앨범 >> 단체 >> 광고 >> 홍보대사 >> 수상 및 후보 >> 논란 >> 2003년 이민발언 및 소송 사건 2003년 8월 18일에 방영된 SBS 대하드라마 야인시대 111회분 가운데 이승만 독재 정권에 관한 선전을 위해 연예인들을 불러모으자, 이에 반대하는 연예인들을 협박, 폭력을 가하는 장면이 나옴과 동시에 영화 배우 최무룡이 임화수에게 구타를 당하는 장면이 방송되었는데, 이 부분에 대해 최민수는 한 달 뒤 9월 29일 오후 2시에 기자회견을 열어 "이 장면은 허구이며 패소하면 이 나라를 떠나겠다."라는 발언 등으로 2억 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본 회원이 3년 전인가 연기자 최민수의 소송을 담당했는데, 이길 수 없는 소송임이 거의 명백했으나, 1심 패소 후 항소하여 억지로 조정으로 유도해 겨우 서울방송의 유감 표명을 받아 낸 사건입니다. 물론 위 사건은 승소인 것도 아니고 패소인 것도 아닌.. 굳이 말하자면 99% 패소 사건입니다. 본 회원은 '사과'를 강력 주장하였으나, 결국 '유감'으로 결론 났습니다. 청구금액에 연연하지 않는 최민수의 순수함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여튼... 아래의 기사와 같이 서울방송의 자그마한 양보가 결과적으로 이민을 가겠다고 공언한 최민수를 안 가도 되도록 도운 셈입니다. 임화수는 이승만, 부 부통령로 불리던 곽영주, 자유당의 이기붕 등 절대적 권력 비호 아래 연예계 분야의 이인자 노릇 하던 인물이었고, 권력을 위해서면 출신지와 나이를 속이기는 물론, 남자 배우들에게 폭력을 가하고, 여자 배우들에겐 권력자들에게 상납하기도 하였으며, 여배우들을 정치인들의 노리개로 삼은 연예계 성상납시스템을 만든 최초로 평가받기도 하다. 측근에 따르면 '임화수는 약한 사람을 발길로 차거나 그렇게 난폭한 사람이 아니었다'고 하지만, 여배우에게 주먹을 날린 적도 적지 않았다. 운명의 손에서 한국영화 사상 처음으로 키스신을 선보였던 윤인자는 "임화수 때 제명처분 당할 뻔했잖아. 임화수가 청와대 가면 쩍하면 여배우들 불러가고 그랬는데 ‘난 못 간다. 남편 있는 여자가 그거 왜 가니’ 그랬더니 ‘윤인자는 제명처분을 줘야 한다’고 그랬다”고 전한다. 6작품이나 가케모치(동시출연)하는 통에 제작자들의 사정으로 제명처분을 면했다는 윤씨는 반말을 지껄이는 임화수에게 대든 적도 있었다는데, “(내가) 소리를 질렀더니 (임화수가) 멋쩍어가지고. 쩍하면 주먹 나갔잖아”라고 덧붙인다. 목에 핏대 높였다가 목으로 피 토하는 상황이 비일비재했다고 한다. 또한 임화수의 비서이던 눈물의 곡절이라는 별명으로도 유명한 차민섭은 24시간을 임화수 옆에서 온갖 폭력에도 노예 비서로 일하기도 했다. 매일 폭력 당할 때마다 눈물을 흘려 '눈물의 곡절'이라는 별명이 붙여졌다. 임화수에게 구타당했던 이른바 김희갑 구타사건의 당사자 희극배우 김희갑은 사건 당시 입을 다물었던 그는 병원 침상에 누워서야 "반공 예술인단 주최 행사에 소극적이라는 이유로 구타당했다."라고 말하였고 이어 “최무룡, 김진규 등 임화수에게 안 맞은 사람이 거의 없다.”라며 “권력과 폭력의 무방비지대에 있는 자신들을 국민이 보호해달라”고 호소하였다. 그러나 김희갑 구타사건은 곽영주 등이 권력의 압박을 받으면서 합의로 끝났다. 한편, 임화수가 경찰에 불려다녔다는 이유만으로 관련인들을 불러 책임을 물었고 이 자리에서 곽영주는 “이봐, 임화수씨로 말하면 한국 예술계의 대표적 인사요, 앞으로 문교 장관이 되실 분이란 말이야”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후 전치 2개월의 진단서를 받았던 김희갑은 2주 만에 병원을 나서야 했고, 관련 경찰 책임자는 파면당했다. 당시 보도기사, 한국군사재판사(5·16 군사정변) , 유지광의 자서전 대명 등 임화수가 폭력적이라는 증거는 수두룩하다. 특히 유지광의 자서전 대명에서는 실명은 물론 노골적으로 임화수를 평가하기도 한다. 한편, 당사자인 최무룡이 역시 증언하였다. 또한 최민수는 생전에 부친인 최무룡과 초등학교 6학년 때 2개월 동안 같이 살았으며, 사이가 좋지 않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후 최민수는 2004년 1심에서 패소 후 MBC 주말연속극 한강수타령으로 활동을 재개하였으며 2010년에 최민수는 묵묵부답으로 SBS 드라마 아버지의 집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대부업 광고 논란 2000년에 이어 2007년 최민수는 아내 강주은과 함께 출연한 대부업 업체 광고로 논란을 낳았다. 노인 폭행 무혐의 2008년 4월 21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에서 70대 노인과 실랑이를 벌이다 폭행한 혐의로 불구속 입건된 후 노인 폭행과 협박 혐의를 조사한 서울 서부지검이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이 사건을 맡았던 서울 서부지검 404호 담당자는 스포츠동아와의 통화에서 “26일 밤 무혐의로 최종 결론 났다. 폭행은 피해자와 합의했고 처벌을 원치 않아 공소권이 없고 흉기를 사용하며 협박한 부분이 무혐의로 결정됐다”고 말했다. 최민수가 하얏트 호텔에서 볼일을 본 뒤 이태원 쪽으로 자신의 차를 직접 운전하고 내려오다 벌어진 일이다. 한 음식점 손님들의 도로 앞 불법 주차로 교통 정체가 생기면서 최민수가 불법 주차 차량을 옮겨 줄 것을 건의하자 한 노인분이 먼저 도발을 해왔다. 그는 바로 앞 건물의 업소 주인이었고, 나중에 그의 딸과 아들 등 가족들이 나와 가세하면서 다툼으로 이어졌다. 당시 언론과 여론은 노인의 말만 듣고 진실 여부를 확인하지 않고 최민수에게 불리한 거짓 상황들을 보도 하였고 그가 사건 당시 기자회견을 열고 무릎을 꿇은 채 대국민 사과를 하였다. 그는 "어떤 이유로도 이번 일은 용서받을 수 없다. 머리 숙여 사죄드린다. 국민 앞에서 떳떳하고 정당해야 할 배우가 그렇게 못했다. 내 자신이 나를 용서 못하겠는데 누가 용서하겠는가? 만약 (폭행혐의가) 사실로 밝혀지면 나를 용서하지 말라"고 했다. 70세 노인과 말다툼을 벌린 일 자체만으로 고개를 숙였다. 추후 업소 주인이었던 70세 노인의 언론 인터뷰 내용이 거짓이었음이 밝혀졌음에도 어떤 언론도 그 사실을 보도하거나 최민수에게 사과의 기사를 싣지 않았다.
지시문 (instruction)
주어진 원문을 읽고 필요한 정보를 파악하여, 원문에 근거해 질문에 답하라.
질문 (question)
최민수가 2003년 SBS 드라마 '야인시대' 관련 소송 사건 이후 연기 활동을 재개한 시점과 그 작품은 무엇인가?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1. 1과제 해석task_interpretation

    2003년 소송 사건 이후 최민수의 활동 재개 시점과 재개 시 출연한 작품을 찾는다.

    • 2003년 8월 18일에 방영된 SBS 대하드라마 야인시대 111회분 가운데 이승만 독재 정권에 관한 선전을 위해 연예인들을 불러모으자, 이에 반대하는 연예인들을 협박, 폭력을 가하는 장면이 나옴과 동시에 영화 배우 최무룡이 임화수에게 구타를 당하는 장면이 방송되었는데, 이 부분에 대해 최민수는 한 달 뒤 9월 29일 오후 2시에 기자회견을 열어 "이 장면은 허구이며 패소하면 이 나라를 떠나겠다."라는 발언 등으로 2억 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2. 2정보 추출information_extraction

    소송 이후의 활동 기록을 본문에서 탐색한다.

    • 최민수는 2004년 1심에서 패소 후 MBC 주말연속극 한강수타령으로 활동을 재개하였으며
  3. 3근거 선택evidence_selection

    활동 재개 시점(2004년)과 작품명(한강수타령)을 직접적으로 명시한 구절을 선택한다.

    • 2004년 1심에서 패소 후 MBC 주말연속극 한강수타령으로 활동을 재개하였으며
  4. 4논리 통합logical_integration

    2003년 소송 사건 이후 2004년에 활동을 재개했다는 시간적 흐름을 연결한다.

  5. 5결론 도출conclusion_formulation

    2004년에 MBC 주말연속극 '한강수타령'으로 활동을 재개했다는 결론을 도출한다.

    • 2004년 1심에서 패소 후 MBC 주말연속극 한강수타령으로 활동을 재개하였으며
  6. 6답변 생성answer_generation

    질문에 맞춰 시점과 작품명을 포함하여 답변을 작성한다.

    • 2004년
    • MBC 주말연속극 한강수타령
근거 (evidence)
  • 2003년 8월 18일에 방영된 SBS 대하드라마 야인시대 111회분 가운데 이승만 독재 정권에 관한 선전을 위해 연예인들을 불러모으자, 이에 반대하는 연예인들을 협박, 폭력을 가하는 장면이 나옴과 동시에 영화 배우 최무룡이 임화수에게 구타를 당하는 장면이 방송되었는데, 이 부분에 대해 최민수는 한 달 뒤 9월 29일 오후 2시에 기자회견을 열어 "이 장면은 허구이며 패소하면 이 나라를 떠나겠다."라는 발언 등으로 2억 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 최민수는 2004년 1심에서 패소 후 MBC 주말연속극 한강수타령으로 활동을 재개하였으며
  • 2004년 1심에서 패소 후 MBC 주말연속극 한강수타령으로 활동을 재개하였으며
  • 2004년
  • MBC 주말연속극 한강수타령
최종 답변 (final_answer)
최민수는 2004년 1심 패소 후 MBC 주말연속극 '한강수타령'을 통해 활동을 재개하였다.
핵심 해석 (core_interpretation)
최민수는 2003년 드라마 관련 소송 사건 이후 2004년 1심 패소 후 MBC 주말연속극 한강수타령으로 연기 활동을 재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