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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공군에 쓰러진 미군 병사의 마지막 무전 “탄약 떨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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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뉴스
출처
세계일보
연도
2022
분야
정치
문맥 (context)
1951년 2월 강원도 횡성전투 당시 27세 나이로 전사한 미 육군 찰스 리처드 롱 병장(1923∼1951)의 생전 모습(왼쪽 사진). 오른쪽 사진은 미국 미주리주 인디펜던스에 있는 롱 병장의 무덤과 묘비. 유엔사 SNS 캡처 “탄약이 다 떨어졌다.” \n \n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2월 12일 강원도 횡성의 이른바 ‘300고지’. 인해전술을 앞세워 물밀듯이 쳐들어 온 중공군에 포위당한 채 가까스로 고지를 지키던 미 육군의 찰스 리처드 롱 병장이 이 한마디를 남기고 장렬하게 전사했다. 당시 그의 나이 27세였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 전선에서 독일군과 치열하게 싸우고도 살아남은 롱 병장은 고국에서 멀리 떨어진 한반도 땅에 뜨거운 붉은 피를 쏟은 채 그렇게 하늘의 별이 되었다. \n \n 유엔군사령부는 13일 6·25전쟁 당시 가장 치열했던 싸움 중 하나인 ‘횡성전투’(1951년 2월 11∼13일) 71주년을 맞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당시 세운 공로로 사후에 명예훈장(Medal of Honor)이 추서된 찰스 리처드 롱 병장의 감동적 사연을 소개했다. \n \n 유엔사에 따르면 횡성전투는 1951년 2월 11일 중공군과 북한군이 일제히 횡성을 공격하며 시작됐다. 당시 유엔군의 최전선인 횡성에는 한국군 제8사단이 배치돼 있었는데 중공군은 미군에 비해 기동력과 화력이 열세인 한국군을 쉽게 격파할 수 있으로 여겨 첫 공격 목표로 삼았다. \n \n 공세에 가담한 중공군과 북한군은 총 13만5000명이라는 어마어마한 규모였다. 한국군 8사단은 이들의 기습공격을 받고 사력을 다했으나 수적 열세를 극복하지 못한 채 심각한 피해를 입고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당장 8사단 후방에 있던 미 육군 10군단도 중공군 포위망 안에 갇힐 처지가 됐다. 무너진 8사단 장병들이 허겁지겁 후퇴하면서 미군 등 유엔군도 퇴각이 불가피해졌다. 유엔군 일원으로 미군 지휘를 받던 네덜란드군 대대가 간신히 중공군의 공격을 저지하며 시간을 버는 동안 미군은 차량 등 장비와 화포 등 무기를 대부분 버리고 황급히 철수했다. \n 1951년 2월 강원도 횡성전투 당시 유엔군 일원으로 미군과 함께 싸운 네덜란드군의 모습. 국가보훈처 제공 당시 횡성의 300고지를 지키던 미 육군 제38보병연대 M중대에 찰스 리처드 롱 병장이 있었다. 그는 적과 가까운 최전선에서 중공군의 동태를 탐지한 뒤 무전기로 박격포 소대에 적의 위치를 알려주는 임무를 수행했다. 박격포 소대는 롱 병장이 무전으로 전달해 온 지점을 정확히 조준해 포탄을 발사함으로써 적군에 큰 타격을 입힐 수 있었다. \n \n 하지만 중과부적 속에 적군은 성큼성큼 진격했고 이미 퇴각 명령이 내려진 미군은 차츰 진지를 비우고 빠져나갔다. 롱 병장한테도 “후퇴하라”는 상부의 지시가 하달됐으나 그는 이를 무시한 채 최전선에 있는 자신의 위치를 고수했다. 카빈 소총과 수류탄, 그리고 무전기를 든 채 박격포로 타격해야 할 지점을 아군에 알리는 임무를 끝까지 수행했다. 결국 중공군에 포위당한 롱 병장은 무전으로 “탄약이 다 떨어졌다”는 한마디를 남기고 전사했다. \n \n 1951년 2월 11일 횡성에서 처음 전투가 시작돼 13일 끝날 때까지 한국군 약 1000명, 미군은 2000명 가까운 사상자가 발생했다. 훗날 미 해병대는 싸움이 벌어진 횡성의 전쟁터 일대를 ‘대학살의 계곡’(Massacre Valley)이라고 부르며 희생자들을 추모했다. \n \n 1923년 12월 미국 미주리주(州)에서 태어난 롱 병장은 1941년 고교 졸업 직후 미 육군에 입대했다. 2차대전 중 미군 등 연합군과 독일군 간에 벌어진 가장 치열한 싸움으로 기록된 벌지전투(1944년 12월∼1945년 1월)에서 맹활약을 했다. 나치 독일의 항복 후에는 예비군에 편입됐다가 1950년 한국에서 6·25전쟁이 터지며 다시 현역병으로 소집됐다. 미 행정부는 롱 병장의 용기와 전공을 기려 전사 이듬해인 1952년 1월 그에게 명예훈장을 추서했다. 명예훈장은 미국에서 군인이 받을 수 있는 최고 영예에 해당한다. 이미 세상을 뜨고 없는 롱 병장을 대신해 유족이 해리 S 트루먼 대통령으로부터 훈장을 건네받았다. \n\n \n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지시문 (instruction)
주어진 원문을 읽고 필요한 정보를 파악하여, 원문에 근거해 질문에 답하라.
질문 (question)
1951년 2월 횡성전투 당시 찰스 리처드 롱 병장이 최전선에서 수행했던 구체적인 임무와 그가 전사하기 직전 남긴 마지막 무전 내용은 무엇인가?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1. 1과제 해석task_interpretation

    찰스 리처드 롱 병장의 전투 중 임무와 전사 직전의 마지막 무전 내용을 확인해야 한다.

  2. 2정보 추출information_extraction

    롱 병장의 임무에 관한 정보를 추출한다.

    • 적과 가까운 최전선에서 중공군의 동태를 탐지한 뒤 무전기로 박격포 소대에 적의 위치를 알려주는 임무를 수행했다.
  3. 3근거 선택evidence_selection

    마지막 무전 내용에 관한 정보를 추출한다.

    • 결국 중공군에 포위당한 롱 병장은 무전으로 “탄약이 다 떨어졌다”는 한마디를 남기고 전사했다.
  4. 4논리 통합logical_integration

    임무 내용과 마지막 무전 내용을 결합하여 답변을 구성한다.

  5. 5결론 도출conclusion_formulation

    임무는 적의 위치를 박격포 소대에 알리는 것이었으며, 마지막 무전은 탄약이 떨어졌다는 내용임을 정리한다.

    • 적의 위치를 알려주는 임무를 수행했다.
    • “탄약이 다 떨어졌다”는 한마디를 남기고 전사했다.
  6. 6답변 생성answer_generation

    질문에 요구된 두 가지 정보를 포함하여 최종 답변을 작성한다.

    • 적의 위치를 알려주는 임무
    • “탄약이 다 떨어졌다”
근거 (evidence)
  • 적과 가까운 최전선에서 중공군의 동태를 탐지한 뒤 무전기로 박격포 소대에 적의 위치를 알려주는 임무를 수행했다.
  • 결국 중공군에 포위당한 롱 병장은 무전으로 “탄약이 다 떨어졌다”는 한마디를 남기고 전사했다.
  • 적의 위치를 알려주는 임무를 수행했다.
  • “탄약이 다 떨어졌다”는 한마디를 남기고 전사했다.
  • 적의 위치를 알려주는 임무
  • “탄약이 다 떨어졌다”
최종 답변 (final_answer)
찰스 리처드 롱 병장은 최전선에서 중공군의 동태를 탐지하여 무전기로 박격포 소대에 적의 위치를 알려주는 임무를 수행했으며, 전사하기 직전 마지막 무전으로 “탄약이 다 떨어졌다”라는 말을 남겼다.
핵심 해석 (core_interpretation)
1951년 2월 횡성전투 당시 찰스 리처드 롱 병장은 최전선에서 중공군의 동태를 탐지하여 무전기로 박격포 소대에 적의 위치를 알려주는 임무를 수행하다가 탄약이 다 떨어졌다는 마지막 무전을 남기고 전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