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맥 (context)
1906년, 피에르 발키어르스 레오폴 감독은 팀의 색상과 그 해에 거둔 3연승의 성과 (프랑스전 5-0 대승, 네덜란드전 5-0, 3-2 승리)에 빗대어 선수들에게 '붉은 악마' (Les Diables Rouges) 라는 명칭을 처음으로 사용하였다.p=65 벨기에 왕립 축구 협회의 정기 출간물인 '스포츠 인생' (La Vie Sportive)의 최종전 경기 리포트에서, 발키어르스는 자신의 팀이 '작은 붉은 악마' ("Petits Diables Rouges") 처럼 활약했다고 기재하였다. 1906년의 경기에서 5골씩 기록하였으며, 총 23번의 경기에서 26골을 기록한 골잡이 로버르트 더 페인은 벨기에의 첫 주연이었다.
1910년, 윌리엄 맥스웰은 붉은 악마의 첫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그의 임기에, 중앙 공격수 알퐁스 시스가 국제무대에 첫 발을 들였다. 역사학자 리처드 헨쇼에 따르면, 시스는 "벨기에의 세계 대전 이전의 역대 최고 선수로 (...) [그는] 대개 비영국인들 중 가장 기술이 뛰어난 공격수로 수식되었다."p=76 축구는 제1차 세계대전 기간동안 대체적으로 중단되었고, 1915년부터 1918년까지 프랑스를 상대로 몇 차례 비공식 친선전을 치렀다. 비극적이게도, 벨기에 국가대표 선수 3명이 전사하였다.2008 또 6명은 24세의 나이에 폭격에 의해 사망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지면서, 국제 축구 대회는 1940년대에 중단되었다. 조세프 메르망, 레오폴 아눌, 그리고 앙리 코팡와 같은 공격 자원들과, 센터백 루이 카레와 같은 선수들이 1948년과 1954년 사이에 국가대표팀을 떠났다.p=76 벨기에는 1950년대에서 1960년대까지 열린 8개의 주요 대회 중 스위스에서 열린 1954년 FIFA 월드컵, 단 한차례에만 출전하였다. 황금기 직전인 1960년대에 활약한 4차례 벨기에 올해의 선수 수상자 파울 판 힘스트는 벨기에의 UEFA 주빌리 어워드 (1954년과 2003년 사이)의 주인공으로 뽑혔고, IFFHS에 의해 벨기에 세기의 선수로도 선정되었다. 그는 1974년까지 국가대표팀 선수로 활약하였다.
국가대표팀의 상황은 1970년대 초, 레몽 후탈스의 지휘 하에 개선되었다. '하얀 악마' (Les Diables Blancs)의 벨기에는 FIFA 월드컵과 UEFA 유럽 축구 선수권 대회 첫 승에 성공하였는데, 이 업적은 각각 1970년과 1972년에 달성하였다. 3위로 마감한 UEFA 유로 1972는 UEFA 유럽 축구 선수권 대회 처녀 출전 대회였다. 수비형 미드필더이자 3차례 벨기에 올해의 선수 상을 받은 빌프리트 판 무르는 1970년에서 1972년까지의 부흥기에 활동하였다. 1970년대 초, 후탈스는 벨기에 1부리그의 최고 선수로 손꼽히는 선수를 '벨기에' 성인 국가대표팀과 훈련시켰는데, 1901년대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외국인이 조합된 온전한 국가대표팀이 아니었다.2014 1973년, 예선 최종전에서 명백한 골이 취소되면서 1974년 FIFA 월드컵 출전권이 날아갔다. 주요 대회 본선행을 위한 이어지는 두 차례의 시도도 물거품으로 끝났다. 1970년대 이래, 오프사이드 트랩이 벨기에 국가대표팀에 의해 체계적으로 사용하면서 팀의 주요 강점으로 자리잡았는데, 이는 1960년대에 피에르 시니발디 안데를레흐트 감독이 고안한 수비적 전술이었다.
벨기에는 1982년과 2002년까지의 모든 FIFA 월드컵 대회 본선에 참가하여 대개 2라운드 이상의 성적을 냈다. 티 감독의 임기 후, 파울 판 힘스트와 로베르 와세주 감독이 국가대표팀의 1라운드 통과를 일구어냈다. FIFA의 개인적 인식을 떠나서, 벨기에는 1986년에 준결승전까지 진출하였다. 한편, 1990년과 1994년의 대회에서는 지역 조별 예선에서 본선으로 직행하였으나, 1986년처럼 1998년과 2002년 대회에서는 고전 끝에 홈앤 어웨이 방식의 플레이오프전을 통해 본선에 올라왔다.
UEFA 유로 1980 준우승 이후, 벨기에는 대륙 대회에서 그리 큰 성과를 내지 못하였는데, 이후에 참가한 1984년 대회와 2000년 대회에서 모두 조기에 탈락하였다.
이 시기에, 가장 애용된 포메이션은 4-4-2로, 장-마리 파프와 미셸 프뢰돔과 같은 수문장, 얀 쾰레만스와 프랑키 판 데르 엘스트와 같은 미드필더, 에릭 헤러츠와 같은 재능있는 라이트백, 플레이메이커 엔조 시포, 그리고 뤼크 닐리스와 에르빈 판던베르흐와 같은 스트라이커들과 같은 다수의 세계구급 선수들이 배치되었다. 위의 붉은 악마의 선수들은 2000년에 들어 모두 은퇴하였다. 2002년 FIFA 월드컵이 종료된 후, 마르크 빌모츠와 헤이르트 페르헤연과 같은 값진 베테랑 선수들도 은퇴하였다. 같은 시기 와세주 감독도 지휘봉을 내려놓았고, 에메 앙튀앙니스가 후임 감독이 되었다.
암흑기
2002년 이후로 벨기에는 5대회 연속으로 주요 대회 본선행에 실패하였고, 감독도 자주 바뀌었다. 앙튀앙니스의 계약은 UEFA 유로 2004와 2006년 FIFA 월드컵 본선행이 좌절되면서 2005년 이후로 갱신되지 않았다. 레네 판더레이컨이 2006년 1월에 그의 후임 감독이 취임했으나, 벨기에 국가대표팀의 순위는 서서히 낮아졌고, 2007년 6월에는 역대 최저 FIFA 랭킹인 71위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UEFA 유로 2008과 2010년 FIFA 월드컵 본선행 실패 후, 벨기에 왕립 축구 협회는 2009년 4월에 판더레이컨 감독을 경질하였다. 그의 수석코치였던 프랑키 베르코테랑이 감독 대행을 맡았다.
같은 시기 신세대 유망주로 구성된 벨기에 U-21 국가대표팀이 2007년에 2008년 하계 올림픽 본선행을 확정지었고, 젊은 붉은 악마들은 베이징에서 열린 2008년 대회에서 4위를 차지하였다. 훗날 이들 중 17명이 성인 국가대표팀 선수가 되는 젊은 선수단 은 대개 수비 능력과 강력한 중원이라는 특징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성인 국가대표팀에서 바로 성공을 일구어내지는 못하였다. 2009년 9월, 하위팀 아르메니아 (당시 FIFA 랭킹 125위)에게 1-2로 발목을 잡히자, 베르코테랑 대행 감독이 사임하였고, 딕 아드보카트가 신임 감독으로 부임하였다. 그러나, 취임 6개월만에, 아드보카트 감독이 러시아 사령탑을 노린다는 추측 속에 사임하였다. 조르주 레이컨스가 2010년 5월에 그의 후임감독으로 계약이 만료되는 2012년까지 직위를 맡게 되었다. 레이컨스의 임기에, 붉은 악마는 UEFA 유로 2012 플레이오프행 진출권을 아깝게 놓쳤다. 레이컨스 감독은 2012년 5월에 지휘봉을 내려놓고 클뤼프 브뤼허의 감독이 되었다. 레이컨스의 후임으로, 2009년부터 수석 코치를 맡고 있던 마르크 빌모츠가 감독 대행을 맡게 되었다.
부흥기
감독 대행을 2경기 맡은 후, 빌모츠는 정식 감독으로 승격되어 레이컨스 전임 감독을 대신하게 되었다. 벨기에 국가대표팀은 그의 지휘 하에 발전하였고, 2013년 10월에 당시 최고 FIFA 랭킹인 5위까지 상승하였다. 2013년에 들어, 몇 해외 언론은 2014년 FIFA 월드컵 예선전에 참가중인 벨기에 국가대표팀이 새 황금 세대를 꾸렸다고 보았다. 벨기에는 케빈 미랄라스, 로멜루 루카쿠, 그리고 크리스티앙 벤테케와 같은 공격 자원 외에도, 에덴 아자르, 드리스 메르턴스, 그리고 케빈 더 브라위너와 같은 측면 자원, 무사 뎀벨레, 마루앙 펠라이니, 그리고 악셀 비첼과 같은 미드필더 등의 선수들을 보유해 기회를 창출할 큰 잠재력을 지녔다. 필드 선수들의 견고한 수비도 두드러졌는데, 뱅상 콩파니, 얀 페르통언, 토마스 페르말런, 그리고 토비 알데르바이럴트의 자원이 있고, 골대를 지킬 수문장으로도 티보 쿠르투아와 시몽 미뇰레가 있었다. 이 선수단은 주로 4-2-3-1 포메이션에 따라 배치되며, 벨기에는 2014년 FIFA 월드컵 예선 A조에서 1위를 차지해 마침내 본선에 진출하는데 성공하였고, 젊은 선수단은 성공을 이어나가 본선에서도 4경기를 연속해서 이겼다. 그에 따라 벨기에는 역사상 2번째로 FIFA 월드컵 8강 진출의 업적을 이룩하였다. 벨기에는 12년만에 월드컵에 진출해 8강전에서 아르헨티나에게 0:1로 패했으나 벨기에 축구 역사상 2번째로 8강 진출이라는 기록을 세우고 2014년을 마무리한다.
2014년 6월, 빌모츠는 2018년 FIFA 월드컵까지 연장하였다. 라자 나잉골란과 디보크 오리기와 같은 선수들은 그의 선수단에 공격력을 더하였다. 2015년 초, 벨기에는 UEFA 유로 2016 예선전에 통과하였다. 2015년 6월, 벨기에 국가대표팀은 또다시 역대 최고 FIFA 랭킹 기록을 세웠는데, 이번에는 1위까지 올라갔다. UEFA 유로 2016에서 8강 진출로 인해 빌모츠는 경질되었다. 마르크 빌모츠 후임으로 로베르토 마르티네스가 부임하였다. 이에 프랑스의 레전드였던 티에리 앙리가 수석코치로 부임하였다.
팀 이미지 >> 중계권
처음으로 중계된 벨기에 국가대표팀의 경기는 1931년 5월 3일자 경기였다. 휘스트 더 마윈크 기자가 라디오를 통해 벨기에와 네덜란드간 경기를 해설했었다. 이 경기는 벨기에 최초로 중계된 스포츠 경기로도 기록되어 있다.
몇십년 후, 텔레비전이 경기 중계의 매체로 더 선호되었다. 59%의 벨기에인이 네덜란드어를 사용하고, 41%가 프랑스어를 사용함에 따라, 국가대표팀 경기는 두 언어로 모두 중계된다. 벨기에가 다수의 대회에 출전했던 1980년대와 1990년대초, 리크 더 사덜레이르가 자신의 감정적이면서 유머감 있는 어조의 경기 해설로 국내에서 가장 유명한 축구 해설가가 되었다. 초창기 경기는 지상파 채널인 BRTN과 RTBF에서 각각 네덜란드어와 프랑스어로 해설했으나, 1994년을 기점으로 vtm (자매 채널인 카날 2와 함께) 이나 플랑드르의 VIER 등의 케이블 채널들이 중계권을 사들였다. 벨기에 국가대표팀의 UEFA 유로 2016 예선전 경기의 중계권은 VRT, RTBF, 그리고 케이블 방송사 BeTV와 텔레네트가 가지고 있다. 벨기에 국가대표팀 역사상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 경기는 2014년 FIFA 월드컵의 벨기에와 미국간 16강전 경기로 1120만명의 벨기에 국민들 중 총 400만명이 시청하였다.
2014년 4월, VRT는 2014년 FIFA 월드컵 예선전 당시 국가대표팀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다루는 '모두가 악마' (Iedereen Duivel) 라는 9부작 다큐멘터리를 처음으로 방영하였고, 같은 시기에 텔레네트에서도 선수 개개인에 대해 다룬 '붉은 영웅들' (Rode Helden)이라는 8부작 다큐멘터리를 방영하였다.
주요 활동 >> 서포터
국가대표팀과 마찬가지로 벨기에 팬들은 적색을 강조하는 벨기에 삼색기로 자신들을 나타낸다. 붉은 악마의 팬들에게 가장 아름다운 추억은 1986년으로 추측되는데, 이 때에 벨기에 대표는 멕시코 월드컵이 끝난 후 '금의 환향'하는 선수들을 따뜻하게 맞이하였다. 브뤼셀의 그랑플라스는 황홀감에 찬 군중들로 가득찬 가운데, 자국 FIFA 월드컵 4강행의 성과를 낸 선수들이 주요 대회를 우승한 마냥 시청 발코니에 모습을 드러냈다. 겨우 2012년이 되어서, 지역 클럽을 지지하는 팬들이 힘을 합쳐 벨기에 국가대표팀 서포터 단체가 조직되었고, 명칭은 벨기에 왕립 축구 협회가 세워진 연도를 따 1895가 되었다. 1년 후, 1895의 회원 수는 24,000명을 돌파했다.
1982년부터 2002년까지 6대회 연속으로 FIFA 월드컵 진출에 성공한 후, 국가대표팀은 이어지는 UEFA 유럽 축구 선수권 대회와 FIFA 월드컵을 합쳐 5대회 연속으로 주요 대회 진출에 실패하였다. 부흥을 위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2004년부터 2010년까지 다수의 기자들은 벨기에 축구를 "위독하다"고 묘사하였다. 극심한 인기의 추락에도 불구하고, 일부 팬들은 암흑기에도 국가대표팀을 계속 지지하였고, 가장 충직한 팬들 중 한명은 뤼도 롤런베르흐가 있었다. 이 서포터는 1990년 이래 붉은 악마들을 따라 전세계를 돌아다녔고, 1999년 기린컵과 2006년의 2경기를 제외하고 직접 참관하였고, 2009년 아르메니아 전을 참관한 유일한 벨기에 팬이기도 했다.
2008년, 벨기에 U-23 국가대표팀이 베이징 올림픽에서 4위를 차지하였을때 팬들의 기대감이 올랐고, 이들의 일부는 나중에 성인 국가대표팀 선수로 합류하였다. 비록 2010년 FIFA 월드컵과 UEFA 유로 2012의 본선행이 무산되었으나, 이어지는 주요 대회에서의 인기와 믿음은 다시 계속해서 상승하였다.
2014년 FIFA 월드컵 예선전에서, '악마의 도전' (Devil Challenges) 라는 상호적 활동과 팬의 날 ('주요 활동' 섹션 참고) 통해 팬들과의 유대감이 증가하였다. 예선전 홈경기 시작을 앞두고, 선수들은 국가를 상징하는 색으로 된 10.5미터x11.5미터의 악마가 그려진 티포 배너를 목격하였다. 다수의 선수들이 해외의 상위 리그에서 활동하며, (예를 들어 2013년 7월을 기준으로 12명의 붉은 악마들이 프리미어리그에 소속되었다.)2013 마르크 빌모츠 감독 지휘 하에 우수한 성적을 거두어 FIFA 월드컵에서의 선전에 대한 기대와 믿음을 불어넣었다. 이렇게 인기가 절정에 이르면서, 2개의 벨기에 랜드마크가 2014년 FIFA 월드컵을 앞두고 국가의 상징색으로 장식되었다: 오줌싸개 소년 조각상은 FIFA 월드컵에 사용될 유니폼의 어린이용 유니폼을 입었고, 아토미움의 윗쪽 구는 흑색, 황색, 그리고 적색으로 덮였다.
대중 문화
팬클럽들과 SNS 웹페이지간 열정을 공유하는 것 외에도 국가대표팀의 응원은 팬 도구, 붉은 악마들에 헌정한 기타 물품의 구매로도 나타났다. 구매 물품으로는 저서, ('참고 문헌' 섹션과 '관련 저서' 섹션 참고) 영화, 만화책, 그리고 노래가 있었다. 상업적 목적 외에도, 이 물품들은 앞으로 다가올 대회에 대한 기대나 과거 경험에 대한 기억을 공유한다.
마스코트와 로고
국가대표팀은 3가지 의인화된 마스코트를 지니고 있다: 디아볼리스 (Diabolix) 라는 이름을 가진 사자, 적색의 슈퍼 악마, 그리고 팬에 의해 만들어진 현대판 악마. 2012년, 붉은 악마는 적색 삼지창을 새 문양으로 도입하였다.
유니폼 >> 색상
전통적으로 벨기에 국가대표팀의 홈 유니폼은 벨기에 삼색기 색상을 사용한 것으로, 특히 상하의와 양말이 모두 적색이었을 정도로 대개 적색을 주로 사용하였다. 이러한 특징이 별칭이 붉은 악마가 된 점을 뒷받침한다. 1901년에 열린 비공식 경기에서, 대표팀은 양팔에 삼색기 색상의 환이 둘러진 밝은 색상의 유니폼을 입었었다.2003 결국 1902년에 열린 벨기에의 비공식 경기에서 선수들이 " 만나는 상대마다 그들을 잘 나타낼 국가 상징색으로 된 줄무늬가 있는 유니폼"을 입기로 결정하였다.p=12 첫 공식 경기에서, 국가대표팀은 평범한 적색 유니폼을 입었고, 짧은 기간 동안 적색과 황색, 흑색의 가로 삼색 줄무늬 유니폼을 입는 실험 끝에, 본래의 적색 유니폼으로 회귀하였다.
원정 유니폼은 대체로 백색이나 흑색을 주로 사용하였고, 유니폼에 삼색기를 응용한 무늬를 넣곤 했다. 1970년, 후탈스 감독은 전통적인 적색 유니폼을 사용하는 대신에 상, 하의, 양말이 모두 흰색인 원정 유니폼을 사용하기를 원하였고, 저녁 경기에도 선수들이 잘 보이게 하고 싶었다. 이 유니폼 조합은 잔여 1970년대동안 사용되었고, 한동안 하얀 악마(De Witte Duivels / Les Diables Blancs) 가 되기도 했다. 2014년에 들어, 써드킷이 출시되었는데, 상, 하의, 양말이 모두 황색이었다.
문양
초창기에 유니폼의 심장부쪽에 벨기에의 국장으로부터 유래한 흑색 방패 안의 금색 사자가 위치했다. 1981년을 기점으로, 협회 문장이 구 사자 문장을 대체하여,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아디다스가 UEFA 유로 2016 예선을 앞두고 공개된 새 유니폼이 기본 유니폼과 동일한 디자인에 벨기에 협회 로고만 붙어있는 형태여서, 디자이너들의 유니폼 제작 성의에 대한 논란이 야기되었다.
홈구장
지금까지 벨기에 국가대표팀은 11개 도시의 23개 홈구장에서 홈경기를 치렀다. 지역 행사 외에도 여덟 차례 유러피언컵과 UEFA컵위너스컵 결승전이 열렸고, 6번의 UEFA 유럽 축구 선수권 대회 경기도 열렸다.
1930년 개장 당시 명칭은 100주년 경기장 (Stade du Centenaire / Jubelstadion) 이었고, 비공식 저지대국 더비를 보기 위해 이 거대한 경기장에 70,000명이 넘게 입장하기도 했다. 1946년에 헤이젤 경기장 (Stade du Heysel / Heizelstadion)으로 개칭되었으나, 1985년엔 훌리건들이 건물을 파손한 것으로 인해 헤이젤 참사로 이어졌다. 이 참사는 과감한 구조적 변화로 이어지게 됐고 10년간의 리모델링 공사 후, 현대화된 경기장은 1995년에 보두앵 전 국왕의 이름을 따 개칭되었다.
훈련 구장
국가대표팀 홈 경기를 앞두고, 마지막 훈련 세션만 홈구장에서 치러진다: 2007년을 기점으로 대부분의 훈련은 튀비즈의 국립 축구 센터에서 진행된다.
라이벌전 >> 저지대국 더비
벨기에는 네덜란드와 강력한 라이벌 관계를 지닌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축구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이는 양팀의 공유하는 오랜 역사를 통해 설명되며, 축구의 경우에도 양국 모두 오랜 기간 열정을 공유하기도 했다. 벨기에와 네덜란드간의 국제 스포츠 경기에서, 특히 붉은 악마와 '오라녜'간의 축구 경기는 저지대국 더비로도 불렸다. 양국이 밀접한 관계를 지님에 따라, 두 팀간의 맞대결은 적대적인 환경을 조성하지는 않으나, 대체적으로 친선전에서 조차 매우 팽팽한 분위기 속에 진행된다.
1901년에 벌어진 첫 비공식 경기에서 잉글랜드인 4명이 조화된 벨기에 팀이 8-0 대승을 거두었다.p=12 이어지는 3차례의 비공식 맞대결에서도 벨기에가 승리하였다.1981 두 팀간의 첫 '공식' 맞대결은 1905년에 있었는데, 이때에도 벨기에는 잉글랜드인 수문장을 보유하고 있었고, 연장전 후에 네덜란드가 4-1 승리를 거두었다. 1년 후, 벨기에는 첫 공식 더비전 승리를 5-0으로 장식하였다. 양국은 1905년부터 1964년까지 세계대전 기간을 제외하고 격년으로 친선전을 치렀다. 현재까지 두 팀은 125번의 공식 경기를 치렀다.2014년 기준 최근의 국제 무대에서는 양 협회가 협력하여 최종적으로 개최에 성공한 UEFA 유로 2000과 성공하지 못한 2018년 FIFA 월드컵의 유치전을 벌였다. 양국의 여자 축구 1부 리그는 통합되어 2012년부터 2015년까지 베네리그를 조직하였다.
공감의 경기
벨기에와 프랑스간의 경기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1904년, 양국간의 첫 대결은 양국 모두에게 첫 공식 경기였고, 동시에 유럽 대륙 전체에서 두 독립 국가간의 첫 공식 경기였다. 역사적으로, 양팀은 수 차례 맞붙었다: 1970년까지 양팀은 거의 매년마다 만났었다. 벨기에는 프랑스가 국제대회에서 가장 자주 만난 상대이기도 하며, 양국간 총 73번의 공식 경기를 벌였다.2015년 기준 전체적인 양팀 전적에서는 붉은 악마가 30승으로 앞서 있는 반면, '파란 군단' (Les Bleus) 은 24번의 맞대결에서 승리했었다.
선수 >> 현재 선수 명단
다음 26인의 선수들은 UEFA 유로 2020, 그리고 2021년 6월 3일 그리스와 6월 6일 크로아티아와 친선 경기에 참가한 선수 명단이다.
최근 차출된 선수
다음 선수들은 최근 12개월 사이 벨기에 국가대표팀 선수단에 차출되었으나, 현 선수단의 일원이 아니다.
결과 및 일정
다음 경기는 UEFA 유로 2016 이후에 치러진 경기의 목록이다. 더 이전 경기들의 결과 목록은 결과 요약 문서에서 확인할 수 있다.
2018년 >> 2019년 >> 국제대회 기록 >> [[FIFA 월드컵]]
벨기에는 처음 5차례의 FIFA 월드컵 본선에 들어 1라운드에서 생존하지 못하여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1930년의 초대 FIFA 월드컵에서 득점 없이 2패를 당한 후, 1934년과 1938년 대회에서는 득점을 올리긴 했으나, 승리하지 못하였다. 1954년 대회에서는 잉글랜드와 무승부 (연장전 후 4-4로 비김)를 거두어 첫 승점을 수확하였고, 1970년 대회에서는 엘살바도르 (3-0)를 상대로 첫 승리를 거두었다.
1982년부터 2002년까지, 벨기에는 FIFA 월드컵 본선에 6대회 연속으로 예선을 통과해 진출하였고, 2라운드에 5번 올라갔다. 1982년 FIFA 월드컵 개막전에서, 벨기에는 전 대회 우승팀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1-0으로 이겨 이정표를 세웠다. 그러나, 벨기에는 2차 조별리그에서 폴란드의 즈비그니에프 보니에크에게 해트트릭을 허용하고, 소비에트 연방에 0-1로 패해 탈락하였다. 4년 후의 1986년 FIFA 월드컵 대회에서는 역대 최고 FIFA 월드컵 성적인 4위를 거두었다. 토너먼트전에서 소비에트 연방에 비해 전력이 밀리는 벨기에는 연장전 끝에 소련에 4-3 승리를 거두었다. 이후 8강전에서는 스페인을 상대로 1-1로 비긴 후 승부차기에서 승리를 거두었으나, 나중에 우승을 차지하는 아르헨티나와의 준결승전에서 0-2로 패하였다. 1990년 FIFA 월드컵에서 벨기에는 잉글랜드와 16강에서 만났다. 벨기에는 경기를 지배하였고, 엔조 시포가 골대를 두번이나 강타하였으나,pp=138–139 연장전 막판에 데이비드 플랫의 "사각" 발리슛을 헌납해 패하였다.p=167 1994년 대회에서도 벨기에는 전 대회 우승팀 독일에게 2-3으로 패해 또다시 16강에서 탈락하였다. 1998년 대회의 조별 리그에서 3무를 거둔 벨기에는 16강 진출이 좌절되었다. 2002년 FIFA 월드컵에서도 처음 두 경기를 비기며 부진하게 시작하였으나, 러시아와의 결정적인 최종전에서 3-2 승리르 거두었다. 16강에서, 벨기에는 나중에 우승을 차지하는 브라질에게 패하였다. 마르크 빌모츠의 헤딩 선제골이 호케 주니오르의 "유령 파울"에 취소된 후,p=289 브라질에게 0-2 패배를 당하였다.
2014년 대회에서, 벨기에는 3전전승을 거둔 팀들 중에 골득실차가 가장 적었다. 그 후로, 벨기에는 미국과 흥미로운 16강 경기를 벌였고, 이 과정에서 팀 하워드 미국 수문장이 15번의 선방을 기록하였다.FIFA의 본래 경기 통계에 따르면 16번의 선방으로 기록되어 있었고, 다수의 뉴스 출처에서도 이 수치를 사용하였다. 2014년 7월 5일에 경신된 공식 FIFA 통계에서는 15회 선방으로 나와 있다. 그러나 이에 개의치 않고, 붉은 악마는 '미국팀' (Team USA)를 상대로 연장전 끝에 2-1로 이겼다. 팽팽한 8강전에서, 벨기에는 아르헨티나에게 0-1로 패해 탈락하였다.
2018년 월드컵에서는 벨기에는 조별예선에서 튀니지, 파나마, 잉글랜드를 꺾고 조 1위로 16강에 오르고 16강에서 일본에 3대2의 대역전승을, 8강에서 브라질에 2대1승리, 4강전에서는 프랑스에 0대1로 패했으나 32년만에 월드컵 4강이라는 성적으로 신기록을 세웠으며 3-4위전에서 잉글랜드를 2대0으로 완파하며 월드컵 3위라는 성과를 얻고 귀국했다.
[[UEFA 유럽 축구 선수권 대회]]
벨기에의 UEFA 유럽 축구 선수권 대회 성적은 FIFA 월드컵 성적처럼 꾸준하지 않다. 벨기에는 2차례 대회를 개최했는데, 두번째 대회는 공동 개최였고, UEFA 유로 1972에서는 서독에게 1-2로 패한 후 헝가리에 2-1로 이겨 3위를 차지 (이 대회에서 벨기에는 개최국으로써 준결승전의 4팀 중 1팀으로 참가하였다.) 하였으며, 2000년 대회에서는 1라운드에 탈락하는 실망스러운 성적을 거두었다.
벨기에의 최고 성적은 논란의 여지 없이 이탈리아에서 열린 1980년 대회에서 깜짝 준우승을 차지한 것이다. 조 1위를 차지한 벨기에는 결승전에 진출해 서독을 상대하였다. 서독의 호르스트 흐루베슈에게 선제골을 허용한 후, 레네 판더레이컨이 페널티킥으로 경기를 연장전으로 끌고 가는 것으로 보였다. 정규 시간 종료 2분 전, 흐루베슈의 2번째 골로 '독수리 군단' (Die Adler) 이 벨기에의 첫 유럽 대회 우승을 저지하였다.
UEFA 유로 1984에서 덴마크와 조별 리그 최종전을 벌여 2-0으로 앞서나갈 때만하도 다음 라운드 진출이 확실해 보였으나, 붉은 악마는 '덴마크 다이너마이트' (Danish Dynamite)에게 2-3 역전패를 당하였다. 16년 후, 벨기에는 UEFA 유로 2000을 공동 개최하면서 유럽 최고의 대회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스웨덴과의 1차전에서 2-1로 이긴 후, 이어지는 이탈리아와 터키와의 경기에서 연달아 0-2로 패해 8강 진출에 실패하였다. 이후 16년간 벨기에는 유로대회에 진출하지 못하는 부진을 겪은 후 유로 2016대회에서 16년만에 8강 토너먼트에 오르는데 성공했으나 웨일즈에 1-3의 패배를 당하고 8강에서 짐을 싸야 했다. 그 이후에도 유로 2020대회에서도 8강에서 이탈리아에 1-2의 패배를 당해 유로대회 2회연속 8강에서 패하는 쓴잔을 마셨다.
기타
기타 대회 우승 내역이나 업적은 기록 문서의 '수상' 섹션에 있다.
감독
벨기에 축구 국가대표팀은 1910년을 기점으로 23명의 정식 감독과 2명의 대행 감독이 지휘하였다. 1910년 이전과 1919년에 벨기에 왕립 축구 협회 회장인 에두아르 드 라벨레유가 국가대표팀에서 활약할 선수를 소집하였다. 초창기에 외국인 감독의 지휘를 받은 벨기에는 1930년이 되어서야 헥토르 후트니크가 벨기에 출신의 감독으로는 최초로 국가대표팀 지휘봉을 정식으로 잡게 되었다.
2015년 6월 12일을 기준으로, 마르크 빌모츠는 통계학적으로 가장 성공적인 정식 벨기에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한 경기당 평균 2.17점의 승점을 획득하였다. 벨기에 국가대표팀에게 가장 성공적인 시대를 가져다 준 감독은 기 티로 UEFA 유로 1980 준우승행을 견인하였고, 6년 후에는 멕시코에서 열린 FIFA 월드컵의 4위를 차지하게 도왔다. 이 공로로 월드 사커지에서는 티 감독에게 1986년 '올해의 감독상'을 수상하였다.
지시문 (instruction)
주어진 원문을 읽고 필요한 정보를 파악하여, 원문에 근거해 질문에 답하라.
질문 (question)
벨기에 국가대표팀의 유니폼 색상 구성에 따른 분류 중, 1970년대에 사용되었으며 '하얀 악마'라는 별칭의 원인이 된 유니폼의 색상 조합은 무엇인가?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
1과제 해석
task_interpretation1970년대에 사용된 특정 유니폼의 색상 조합과 그로 인해 생긴 별칭을 확인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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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정보 추출
information_extraction1970년대 유니폼 사용 및 '하얀 악마' 별칭과 관련된 내용을 추출한다.
- '하얀 악마' (Les Diables Blancs)의 벨기에는 FIFA 월드컵과 UEFA 유럽 축구 선수권 대회 첫 승에 성공하였는데
- '하얀 악마' (Les Diables Blancs)의 벨기에는
- 1970년, 후탈스 감독은 전통적인 적색 유니폼을 사용하는 대신에 상, 하의, 양말이 모두 흰색인 원정 유니폼을 사용하기를 원하였고
- 이 유니폼 조합은 잔여 1970년대동안 사용되었고, 한동안 하얀 악마(De Witte Duivels / Les Diables Blancs) 가 되기도 했다.
-
3근거 선택
evidence_selection유니폼의 구체적인 색상 구성을 명시한 구절을 선택한다.
- 상, 하의, 양말이 모두 흰색인 원정 유니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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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논리 통합
logical_integration상, 하의, 양말이 모두 흰색인 유니폼 조합이 '하얀 악마'라는 별칭으로 이어졌음을 연결한다.
- 이 유니폼 조합은 잔여 1970년대동안 사용되었고, 한동안 하얀 악마(De Witte Duivels / Les Diables Blancs) 가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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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결론 도출
conclusion_formulation질문에서 요구하는 유니폼의 색상 구성을 정리한다.
- 상, 하의, 양말이 모두 흰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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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답변 생성
answer_generation질문에 대한 최종 답변을 작성한다.
- 상, 하의, 양말이 모두 흰색
근거 (evidence)
- '하얀 악마' (Les Diables Blancs)의 벨기에는 FIFA 월드컵과 UEFA 유럽 축구 선수권 대회 첫 승에 성공하였는데
- '하얀 악마' (Les Diables Blancs)의 벨기에는
- 1970년, 후탈스 감독은 전통적인 적색 유니폼을 사용하는 대신에 상, 하의, 양말이 모두 흰색인 원정 유니폼을 사용하기를 원하였고
- 이 유니폼 조합은 잔여 1970년대동안 사용되었고, 한동안 하얀 악마(De Witte Duivels / Les Diables Blancs) 가 되기도 했다.
- 상, 하의, 양말이 모두 흰색인 원정 유니폼
- 상, 하의, 양말이 모두 흰색
최종 답변 (final_answer)
상, 하의, 양말이 모두 흰색인 조합이다.
핵심 해석 (core_interpretation)
1970년대에 벨기에 국가대표팀이 상, 하의, 양말 모두 흰색인 원정 유니폼을 사용하면서 '하얀 악마'라는 별칭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