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맥 (context)
보불전쟁(1870~71) 패배로 출범한 프랑스 제3공화국 정부를 장악한 왕당파는 민의를 무시하고 왕정복고를 꾀하며 굴욕적인 조건으로 독일과 종전협정을 체결하여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려 하였다. 정규군을 동원한 공화정 정부의 파리코뮌에 대한 본격적인 진압은 5월 21일에 시작되었다. 7일간 이루어진 진압작전은 매우 처참하고 잔인하게 진행되어 '피의 일주일'이라 불리기도 한다. 이듬해에는 투표를 통해 신임을 얻은후 1852년 12월에 제2제국을 선포하며 황제에 즉위했다. 제2제정의 전반기는 경제호황으로 인해 순조로웠으며 국내외 정책들도 대부분 좋은 성과를 거두었다. 크림전쟁 승리, 파리도심 정비, 은행제도 현대화, 철도체계 개선, 해운업 양성, 노동자 권리증대, 농업 근대화, 공교육 강화 정책 실행등은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제정 후반기(1860년~)에는 여러 국내외 정책 실패로 위상이 추락하였다.
보불 전쟁
외채상환 요구를 빌미로 착수한 멕시코 원정(1861~67) 실패는 국내외적으로 프랑스의 위상 실추와 함께 군전력 손실도 컸다. 1866년에 프로이센이 오스트리아를 패배시키며 독일통일의 주도권 다툼에서 승리함으로써 독일 남부지역에 대한 프랑스의 영향력은 축소되었고 연이은 통일독일을 위한 프로이센의 세력확장 정책으로 인해 프랑스와 갈등을 빚기 시작했다. 프로이센 비스마르크의 노련한 외교정책은 프랑스를 외교적으로 거의 고립상태에 놓이게 만들었다.
1868년, 혁명으로 이사벨 2세를 축출하며 들어선 스페인 혁명정부는, 프로이센 빌헬름 1세의 친척 레오폴트 공에게 스페인 왕위계승을 제안하였다. 프랑스는 이에 대해 외교결례를 무릅쓰면서까지 격렬히 반대했다. 빌헬름 1세도 반대했으나 비스마르크는 이를 프랑스와 전쟁을 하기위한 좋은 빌미로 보고 엠스 전보사건등을 일으키며 외교적 농간을 부렸다.
이로인해 프랑스 국민감정이 격해지자 나폴레옹 3세는 1870년 7월에 프로이센에 대해 선전포고를 했다. 전쟁은 철저하게 전쟁준비를 진행해온 프로이센에게 유리하게 돌아갔고 같은해 9월 스당 전투에서 프랑스 군이 패배하며 나폴레옹 3세가 생포되고 말았다. 패전소식이 파리에 전해지자 공화주의자들은 1870년 9월 4일, 제정폐지와 더불어 새로운 공화정을 선포하였다.
제3공화국
강베타등 공화파들이 주도하여 임시 국민방위정부를 구성했고 수도 사령관인 트로쉬 장군을 지도자로 임명하였다. 종전협상은 비스마르크의 무리한 요구로 결렬되었으며 임시정부는 전투를 계속 수행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프랑스는 전투에 연패하며 9월 18일 파리가 포위당했다. 포위된 파리는 극도로 비참한 겨울을 보낸후 이듬해 1월 28일, 항복했다. 프로이센은 휴전을 받아들였지만 대표성있는 정부와의 종전협상을 요구했다. 1871년 2월 8일, 독일군의 점령하에 조급하게 치뤄진 선거에서는 왕당파가 임시정부의 의회를 장악하였다. 티에르가 행정수반으로 선출되어 정부조직을 갇추었으나 제2제정의 무능으로 망국에 가까운 비참한 결과가 빚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심판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선거와 이를 통해 구성된 정부에 대해 파리 시민들의 반감은 거셌다.
왕정복고를 꾀하는 왕당파가 이끄는 공화정이라는 태생부터 기형적인 의회와 티에르 정부는 독일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조약을 체결하며 기득권 유지를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2월 26일, 티에르가 이끄는 정부는 알자스-로렌의 할양, 50억 프랑의 전쟁 배상금, 독일군의 파리입성을 기본조건으로 하는 종전협약을 독일과 진행하였던 것이다.
파리 코뮌 >> 파리 시민의 반발
공화정을 지지했던 대다수의 파리 시민들은 굴욕적인 조건에 크게 반발하였고 굴욕적인 강화보다는 항전을 원했으며 왕당파가 장악한 의회의 왕정복고 시도를 반대했다. 3월 1일 파리 시민들에게는 매우 치욕적인 사건이 발생하였다. 독일군이 승전행사를 위해 승리행진을 하며 파리 시내로 입성한 것이었다. 승전행사는 간소하게 진행되었으나 파리 시민들은 분노하였으며 검은 조기를 내걸었고 파리 시민의 의사와 고통을 외면했다.
이런 혼란한 와중에 르콩트와 토마 장군이 총살당하는 사건이 벌어지자 티에르와 정부는 즉시 베르사유로 퇴각하였다. 이로써 파리는 사실상 시민들이 장악하였다. 3월 19일 파리시민과 노동자들이 주도하는 가운데 중앙위원회를 결성하였다. 베르사유에 있는 티에르 정부와 파리 국민방위대의 중앙위원회간에 협상이 있었으나 결렬되었다. 3월 26일에는 중앙위원회가 주도하에 코뮌 평의회 선거를 실시하였는데 파리 시민의 절반 정도만 참여하였다. 이렇게 하여 85명의 의원을 선출하였다. 독일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네덜란드, 벨기에, 러시아 제국, 영국등은 프랑스 정부군을 지지하였다. 당시 파리 시민들은 튈르리 궁전 정원에서 코뮈나르(코뮌 지지자) 전사자 가족을 지원하기 위한 대규모 음악회에 참석했었다. 이 틈을 타 베르사유 정부군이 파리의 방어선을 뚫고 들어왔다. 미리 심어놓은 간첩으로부터 생클루 문 인근에 수비대가 없다는 하얀 손수건 신호를 받은 베르사유군은 일차 선발부대를 보내 일대를 장악했다. 긴박한 소식이 코뮌 평의회에 알려지자 평의원들은 서둘러 산회한 뒤 방위태세를 갖추기 위해 사방으로 흩어졌다. 코뮌 군사위원회 대표 샤를 들레클뤼즈는 호소문을 발표했다.
밤이 되면서 시내에 들이닥친 정부군 본대 2만 명은 눈에 띄는 비무장 시민들에게 닥치는 대로 발포했다. 파리의 거리마다 바리케이드를 사이에 두고 치열한 시가전이 벌어졌다. 파리코뮌의 마지막 "피의 일주일(5월 21일~28일)"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파리코뮌은 비록 실패했으나, 미국 보수언론들이 파리코뮌같은 공산주의 운동이 일어날 것이라며 노동 운동 탄압을 선동했을 정도로, 기득권층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 사건이었다.
성과
프랑스 사회주의 운동은 파리코뮌 진압 이후에도 계속 생명을 유지한다. 사회주의 정당 운동은 1879년 창당된 프랑스 사회주의 노동자 연맹(Fédération des travailleurs socialistes de France, 약칭 FTSF)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후 1936년 인터내셔널 프랑스 지회(Section française de l'Internationale ouvrière, 약칭 SFIO)와 프랑스 공산당, 급진당(Radical)의 "인민전선"이 원내 과반수를 차지하여 레옹 블룸이 총리로 선출되어 상당기간 여당으로 있었다. 이후 1981년에는 프랑스 사회당의 프랑수아 미테랑 후보가 최초의 사회주의 정당 출신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이는 코뮌이 일어난지 정확히 110년 뒤였다.
파리 코뮌기간동안 여성 참정권의 실현, 아동 야간 노동의 금지, 정교 분리등의 혁신적인 정책을 주장하였고, 달력도 프랑스 혁명력이 이용되었다. 덧붙여 선택된 의원안에는 사실파의 화가인 쿠르베도 일원이 되고 있다.
평가
훗날 소비에트 연방의 창시자 레닌은 파리 코뮌을 "세계 역사상 최초로 벌어진 노동계급의 사회주의 혁명의 예행연습"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지시문 (instruction)
주어진 원문을 읽고 필요한 정보를 파악하여, 원문에 근거해 질문에 답하라.
질문 (question)
파리 코뮌 당시 베르사유에 있는 티에르 정부군을 지지했던 국가들은 어디인가?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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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과제 해석
task_interpretation파리 코뮌 상황에서 프랑스 정부군(티에르 정부군)을 지지한 국가들의 목록을 찾는 작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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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정보 추출
information_extraction본문에서 정부군 지지 세력에 관한 언급을 탐색한다.
- 독일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네덜란드, 벨기에, 러시아 제국, 영국등은 프랑스 정부군을 지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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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근거 선택
evidence_selection질문에 직접적으로 대응하는 국가 명단을 추출한다.
- 독일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네덜란드, 벨기에, 러시아 제국, 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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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논리 통합
logical_integration추출된 국가들을 나열하여 답변을 구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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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결론 도출
conclusion_formulation지정된 국가들을 포함하여 최종 답변을 도출한다.
- 독일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네덜란드, 벨기에, 러시아 제국, 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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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답변 생성
answer_generation질문에 대한 리스트 형식의 답변을 작성한다.
- 독일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네덜란드, 벨기에, 러시아 제국, 영국
근거 (evidence)
- 독일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네덜란드, 벨기에, 러시아 제국, 영국등은 프랑스 정부군을 지지하였다.
- 독일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네덜란드, 벨기에, 러시아 제국, 영국
최종 답변 (final_answer)
독일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네덜란드, 벨기에, 러시아 제국, 영국
핵심 해석 (core_interpretation)
파리 코뮌 당시 독일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네덜란드, 벨기에, 러시아 제국, 영국 등은 프랑스 정부군을 지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