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산출물 · 한국어 지식관계

요시다 타쿠로

uuid
eb32d628-8f5c-5654-b068-0a20f97ed7c2
doc_id
A220623133898
유형
위키
출처
위키백과
연도
2022
분야
경제
문맥 (context)
요시다 타쿠로(요시다 다쿠로, 1946년 4월 5일 ~ )는 일본의 싱어송라이터이다. 작곡가로서 곡을 제공할 때는 入江剣이라는 예명을 쓰기도 한다. 카고시마현 이사시에서 태어나 히로시마에서 성장, 대학까지 히로시마에서 마쳤다. 가수인 요스미 케이코(四角佳子), 배우 아사다 미요코(浅田美代子)와 이혼하고 현재 세 번째 부인인 배우 모리시타 아이코(森下愛子)와 살고있다. 부인인 모리시타 아이코가 속해 있는 타케다 기획[http://www.153-0051.com/takeda/ 竹田企画] 소속이다. 음반사는 ELEC Record~CBS SONY~For Life Records~Imperial Records~Avex를 거쳐왔다. 생애 >> 성장 과정 양친이 조선 라남구역에서 이주해온 사람들로 양친의 출생지나 성장 배경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는 없다. 타쿠로는 가고시마현 오쿠치 시에서 태어났으나 왜 가고시마였는지는 모른다고 말했다.。부친은 요시다가의 양자로 가고시마현청에 근무. 가고시마현의 향토사에 관한 연구를 하는 일을 했다. 아마추어 시기 1966년 대학교 2학년때 일본 콜럼비아사가 주관한 포크 콘테스트에 응모해서 츄고쿠 지역 2위, 전국 3위로 입상했다. Take Five에서 따온 리듬에 산리즈카 투쟁을 소재로 한 가사를 입혔다. 레이블은 제대로 된 일거리를 가져오지 않아1994 타쿠로는 일본방송협회 오디션을 봤지만 후지야마 이치로가 그를 떨어트렸다.. 히로시마 포크무라(広島フォーク村)의 앨범이 나와 공연을 했지만 관객은 거의 없었다. 2006 이 공연 관계자로 고토 유타카(後藤由多加)를 만나 이후 오래 관계를 유지한다.20111980. 71년 고토와 함께 아티스트가 주체적으로 음악제작을 할 수 있는 프로덕션인 유이 음악공방을 설립한다. 히로시마 포크무라의 후배 오쿠보 카즈히사의 그룹에 곡을 제공한다. 주변에 곡을 준 것은 처음이었다. Odyssey 시기 1972년 CBS로 이적했다.1976 이적해서 발매한 싱글 結婚しようよ는 오리콘 앨범 차트 3위까지 오르며 40만장 이상 팔렸다. 이때까지 포크라고 하면 장발의 젊은이들이 반체제적 음악을 하는 것 정도로 인식되고 있었는데 단숨에 보통사람들에게 인지되기 시작했다. 하위문화였던 포크가 주류문화에 편입된 것이다. 旅の宿도 히트하게 되자 그에겐 수많은 작곡의뢰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몹스(モップス)에겐「たどりついたらいつも雨降り」를 네코(猫)에겐「雪」「地下鉄に乗って」등을 주는 등 타쿠로는 포크 가수일 뿐 아니라 팔리는 작곡가로서의 이름도 얻기 시작했다. 영화 百万人の大合唱에서는 극중에서 타쿠로의 곡 今日までそして明日から를 합창하는 장면이 들어가기도 했다. 6월에 나가노현 가루이자와정의 성 바오로 교회에서 四角佳子와 결혼했다. 젊은이들 사이에서 마을 교회에서 결혼할래요라는 요청이 붐을 이룰 정도로 타쿠로는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 CBS는 요시다만의 레이블인 오디세이(Odyssey)를 설립해주었다. 73년 백밴드였던 야나기다 히로 그룹을 더 발전시켜 신로쿠몬센(新六文銭)을 결성한다. 하지만 공연 뒤 여대생에게 폭행사건으로 소송을 당해 체포되어 8일간 구류를 지냈지만 거짓신고로 판명되어 불기소 석방되었다. 석방 직후 다시 활동을 개시했지만 공연도 다수 취소되고 곡도 방송금지 당하는 등 자숙하게 되었다.2007 곡이 삽입된 스바루 렉스(후지 중공업), 테크닉스(파나소닉) 등의 광고도 중단되었다. 잡지 明星에 타쿠로의 자필 수기가 실렸다. 포라이프 이후 시기 1975년 카마야츠 히로시(かまやつひろし)에게 我が良き友よ를 주었는데 이 곡 또한 히트했다. 75년 고액납세자 순위가 발표되었는데 이노우에 요스이가 7위를 요시다 타쿠로가 5위를 기록한다.1980 75년 6월 소니의 요시다 타쿠로, 폴리도르 레코드의 이노우에 요스이, ELEC의 이즈미야 시게루, 벨우드의 小室等 등이 모여 For Life 레코드를 설립한다. 이를 계기로 요시다 타쿠로는 이름을 가나가 아닌 한자로 표기하기 시작했다. 부인 요시코와 이혼했다. 모리야마 료코에게 歌ってよ夕陽の歌を를 제공해서 그녀가 포크의 여왕 소리를 다시 듣게 만들었다. 니가타현의 요시다 초의 유지 단체인 若者共和国가 의뢰하여 92년에 吉田町の唄를 발표했다. 04년에는 노래비가 건립되기도 한다. 94년 日本をすくえ'94 〜奥尻島、島原・深江地区救済コンサート〜 행사에 참여했고 제45회 NHK 홍백가합전에도 처음 출연했다. 99년 자신이 설립했던 포라이프와 뮤지션 계약을 해지한다. 2000년 임페리얼 레코드로 이적했고 03년에는 폐암수술을 했으나 곧 회복하여 가을부터는 공연을 시작했다. 08년 모교인 히로시마 슈도대학에 재학중 발표한 今日まで そして明日から의 노래비가 세워졌다. 09년 에이벡스 그룹으로 이적했다. 그해 마지막 전국투어를 시작했지만 만성기관지염의 재발로 다수의 공연이 중단되었다. 평가 자신의 삶과 연애경험 등을 주제로 한 타쿠로의 노래들은 기존의 포크팬들에게 대중영합주의, 상업주의, 배신자, 타락했다 등의 비판을 받았다. 합동공연에서 사람들이 '돌아가'를 연호하기도 했다. 심지어 돌을 던지는 경우도 있었다. 언더그라운드만이 포크라 믿는 사람들은 음반이 팔려나가기만 해도 상업 가수가 되었다며 적대시하는 경우가 꽤 있었다. 72년 일본무도관에서 열린 フォーク・オールスター夢の競演音搦大歌合戦에서는 기후현의 산에서 지내다가 오랜만에 무대에 선 오카바야시 노부야스의 다음에 등장한 타쿠로에게 격한 '돌아가' 연호가 나와서 노래가 들리지 않을 지경이었다. 1994 맥주병같은 것이 날아와서 실제로 타쿠로가 돌아가버린 적도 있다.1980 당시 공연중에 객석에서 욕설이 들린 것은 흔한 일이었지만 보통 타쿠로 정도의 인기 아티스트에게는 벌어지지 않는 일이었다. 하지만 타쿠로의 공연에서는 일상다반사였다. 타쿠로는 여성 팬들이 생긴 첫번째 포크싱어였다. 잡지에 '타쿠로의 공연에는 여학생들이 많아 마치 포 리브즈의 공연같았다' 등의 악의에 찬 기사도 실렸다 1992 동료 포크싱어들 사이에서도 저놈은 포크가 아니야라는 비난이 있었고 타쿠로는 그렇다면 나는 포크가 아니어도 좋다고 치고나오게 된다. 반체제, 반상업주의가 포크의 본질이라는 포크 팬들이 엄청나게 비판했지만 타쿠로는 대중에 영합했다기 보다는 매일의 생활속에서 벌어지는 개인적인 마음을 일상적인 언어로 노래한 것 뿐이었다.2001 오히려 그는 구태의연한 포크적 폐쇄성과 결별하고자 했다.2001 포크 싱어가 성찰적으로 들어가는 경향이 있지만 그는 평범하고 직선적인 생각을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욕설이 들리던 말던 노래를 계속하는 자세로 그는 지지자를 늘려갔다. 모든 젊은이가 저항적 민중가요 풍의 포크를 지지한 것은 아니며 타쿠로는 동시대 보통 젊은이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았다. 72년에 연합적군이 벌인 아사마 산장 사건에서 동료를 린치, 살해한 정황이 드러나는 등 학생 운동에 어쨌든 공감해주던 사람들의 지지도 약해졌으며 60년대의 기운도 점차 사라져갔다. 요시다 타쿠로의 인기상승은 그런 세상의 변화를 느끼게 했다. 요시다 타쿠로의 결혼합시다(結婚しようよ), 이노우에 요스이의 우산이 없어(傘がない)등을 들었을때 정치의 계절이 끝났음을 느꼈다는 논평도 있다. 최초로 메시지 포크를 부른 가수중 하나인 요시다가 반년만에 결혼합시다같은 곡을 낸 '변절'에 관해 伊藤強는 이미 일본에서 정치의 계절은 끝난 상태였고 끝나버린 것에는 뭘 말해도 의미가 없다. 요시다 타쿠로는 시대의 변화를 예민하게 냄새맡은 것이다라고 평했다. 菊池清麿는 타쿠로의 등장은 싱어송라이터라는 스타일은 정착시켰을 뿐 아니라 현실에 발을 디딘 동세대감을 어필하는 청년문화의 등장이었다라고 했다. 富澤一誠는 요시다가 없었다면 현재의 J-pop은 없었지도 모른다고까지 말한다. 능직 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깁슨 (기업) 기타, 하모니카 홀더를 목에 건 채 악보대에 가사카드를 놓고 앉아 노래한다. 종종 객석을 향해 뭔가 외치는 타쿠로의 스타일은 많은 젊은이들이 따라했다. 별게 아니어도 좋으니까 자기 주변을 노래하고싶다는 마음은, 타쿠로의 출현으로 음반을 들을 뿐 아니라 자작곡을 만들어 부르고 싶다는 생각은 우리세대에 많을 것으로 확신한다. 그런 친근함이 요시다 타쿠로를 누구보다도 매력적으로 보이게 했다. 타쿠로 이후 이런 경향이 일반화되었다. 70년대 이전엔 포크나 록에서 꼭 자작곡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타쿠로 이후 그것이 당연하게 되었다. 200120032003 타쿠로 효과로 기타, 청바지와 능직 셔츠가 많이 팔려나가기 시작했다. 2009 타쿠로 이전엔 해외 뮤지션들을 커버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후 많은 젊은이들이 타쿠로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2006 타쿠로 붐은 중학생들에게까지 영향을 주었으며 다들 나도 타쿠로처럼 될 수 있다고 믿었다. 잡지 영 기타에서는 타쿠로의 기타를 기존의 포크 스타일에서 리듬 앤 블루스의 필링과 비트 (동음이의)가 가미되어 아주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자신만의 기타 반주로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는 곡을 연주했다고 평가했다. 드디어 일본에서 멋진 시인이자 음악가인 포크 싱어가 태어났다고 호평했다1992. 잡지 신보 저널은 타쿠로와 그 동료들을 뉴 포크라는 제3의 흐름이라고 소개했다.1980 언더그라운드 포크, 칼리지 포크에 이은 흐름이라는 것이다. 이 뉴 포크가 메이저로 부상했다. 1980 뉴 포크는 그 외에 아웃 포크, 청바지 포크라고도 불렸으나 이것들은 모두 타쿠로 이후에 등장한 명칭들이다. 음악과 생활방식 양쪽에서 밥 딜런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는 것은 알려져있다. 타쿠로는 "기타 한대로 자신의 음악을 발표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인생이 바뀌었다. 음악 스타일과 멜로디를 좋아하긴 했지만 그를 이데올로기로 동경했던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포크의 신, Blowin' in the Wind의 저항 영웅, 비틀즈에게 마약을 가르친 반역자 등의 평가를 받았던 밥 딜런의 이미지는 타쿠로가 심야방송 등에서 그를 칭송하고 그의 곡을 틀었기 때문에 형성된 것이다라는 것이 나카모리 아키오(中森明夫)의 의견이다. 타쿠로가 라디오에서 딜런이다 딜런~! 하고 떠들고 다니는 통에 이전보다 판매고가 5배이상 늘었다는 말도 있다.2009 그는 일본에서 밥 딜런을 퍼트린 일등공신이다. 우라사와 나오키나 미우라 준 같은 인물들은 중학교때 요시다 타쿠로가 되겠다고 결심했다하며 타쿠로를 통해 딜런도 알게되었다고 했다. 또 소니뮤직은 73년 타쿠로가 선곡한 딜런의 베스트 앨범『BOB DYLAN; Gift Pack Series10』을 낸 적이 있다. 특히 타쿠로 초기 곡들은 딜런의 모방 혹은 표절이라는 말이 있다. 스스로 '맛있는 멜로디가 있다'라고 이전 인터뷰에서 밝힌 적이 있는데 이것은 표절에 대한 발언이라는 말도 있고, 코무로 테츠야와의 대화에서도 표절에 대해 말하면서 '그땐 잔뜩 베꼈었지'라고 말한 적이 있다.
지시문 (instruction)
주어진 원문을 읽고 필요한 정보를 파악하여, 원문에 근거해 질문에 답하라.
질문 (question)
1980년 For Life 레코드를 설립할 당시 참여한 인물들과 각자의 소속 음반사는 무엇인가?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1. 1과제 해석task_interpretation

    1980년 For Life 레코드 설립에 참여한 인물들과 그들이 당시 속해 있던 음반사 간의 관계를 파악해야 한다.

    • 1980 75년 6월 소니의 요시다 타쿠로, 폴리도르 레코드의 이노우에 요스이, ELEC의 이즈미야 시게루, 벨우드의 小室等 등이 모여 For Life 레코드를 설립한다.
  2. 2정보 추출information_extraction

    본문에서 For Life 레코드 설립 관련 문장을 찾아 인물과 음반사 쌍을 추출한다.

    • 소니의 요시다 타쿠로
    • 폴리도르 레코드의 이노우에 요스이
    • ELEC의 이즈미야 시게루
    • 벨우드의 小室等
  3. 3근거 선택evidence_selection

    추출된 인물과 소속 음반사 정보가 정확한지 확인한다.

    • 소니의 요시다 타쿠로, 폴리도르 레코드의 이노우에 요스이, ELEC의 이즈미야 시게루, 벨우드의 小室等
  4. 4논리 통합logical_integration

    각 인물과 소속사를 매칭하여 리스트 형태로 정리한다.

  5. 5결론 도출conclusion_formulation

    질문에 요구된 인물과 음반사 관계를 종합하여 결론을 도출한다.

  6. 6답변 생성answer_generation

    리스트 형식으로 최종 답변을 작성한다.

    • 소니의 요시다 타쿠로, 폴리도르 레코드의 이노우에 요스이, ELEC의 이즈미야 시게루, 벨우드의 小室等
근거 (evidence)
  • 1980 75년 6월 소니의 요시다 타쿠로, 폴리도르 레코드의 이노우에 요스이, ELEC의 이즈미야 시게루, 벨우드의 小室等 등이 모여 For Life 레코드를 설립한다.
  • 소니의 요시다 타쿠로
  • 폴리도르 레코드의 이노우에 요스이
  • ELEC의 이즈미야 시게루
  • 벨우드의 小室等
  • 소니의 요시다 타쿠로, 폴리도르 레코드의 이노우에 요스이, ELEC의 이즈미야 시게루, 벨우드의 小室等
최종 답변 (final_answer)
For Life 레코드 설립에 참여한 인물과 소속 음반사는 다음과 같다. - 요시다 타쿠로: 소니 - 이노우에 요스이: 폴리도르 레코드 - 이즈미야 시게루: ELEC - 小室等: 벨우드
핵심 해석 (core_interpretation)
1975년 6월 요시다 타쿠로, 이노우에 요스이, 이즈미야 시게루, 코무로 히토시는 각각 소니, 폴리도르 레코드, ELEC, 벨우드의 소속으로서 For Life 레코드를 설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