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산출물 · 한국어 지식관계

3.15 부정선거

uuid
f4bb5f60-24b9-5606-a2c7-bc9cca9cd917
doc_id
A220623203776
유형
위키
출처
위키백과
연도
2022
분야
정치
문맥 (context)
3·15 부정선거는 1960년 3월 15일 부정 선거에 의해 실시된 대한민국 제4대 대통령 선거와 대한민국 제5대 부통령 선거를 말한다. 후보 대통령 선거에는 이승만 자유당 후보와 조병옥 민주당 후보 등 2인만이 입후보하였다. 그 외에도 출마를 시도한 정당 및 후보자가 있었으나, 자유당 측에서 공권력과 정치 깡패를 동원해 대대적인 입후보 방해를 자행해 모두 무산되었다. 부통령 선거에는 이기붕 자유당 후보, 장면 민주당 후보 외에 김준연 통일당 후보, 임영신 대한여자국민당 후보도 입후보하여 4인의 후보가 나오게 되었다. 자유당 그러나 김준연 통일당 부통령 후보, 임영신 대한여자국민당 부통령 후보 등이 대통령으론 이승만을 지지한다면서 부통령 선거전에 뛰어들어, 이승만 지지 표가 갈려서 패했던 4년 전 부통령 선거 때의 상황이 재현될지 모른다는 긴장감이 돌게 되었다. 민주당 조병옥은 선거를 한 달 가량 앞둔 1960년 2월 15일 지병으로 미국에서 요양하던 도중에 갑자기 사망하는 바람에 이승만은 단독후보가 되었다. 지난 대선 때 신익희가 유세 중 사망하였던 것에 이어 민주당은 두번째로 선거 운동 기간 동안 대선 후보를 잃게 되었다. 통일당 통일당은 1959년 11월 17일 중앙위원회를 개최하고 이승만 대통령을 대통령 후보, 김준연 당 위원장을 부통령 후보에 각각 지명할 것을 결의하였다. 통일당은 1959년 11월 18일 대의원 515명 중 399명이 참석한 가운데 전당대회를 개최하고 이승만 대통령을 대통령 후보, 김준연 당 위원장을 부통령 후보로 지명하였다. 출마 포기 후보 >> 민족주의민주사회당 노농당은 1959년 12월 20일 대의원 420명 중 250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전당대회에서 당명을 민족주의민주사회당으로 개칭하고 전진한을 대통령, 이훈구를 부통령에 지명했다. 그러나 자유당의 공권력을 동원한 입후보 방해 공작 때문에 애를 먹었으며, 선관위가 당명 변경이 법적으로 하자가 있다며 민사당 당적자로서의 후보 등록을 받아주지 않는 등 어려움에 부딪힌 민사당은 결국 입후보를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반독재민주수호연맹 반독련은 1960년 2월 8일 각파 대표자 회의를 열고 장택상을 대통령, 박기출을 부통령에 지명했다. 그러나 후보 등록 서류를 3번이나 길거리에서 괴한들에게 빼앗기고, 깡패들이 장택상의 집안까지 침입해 협박을 하는 등 치열한 입후보 방해 공작이 벌어졌고, 장택상은 이에 본인의 입후보가 좌절될 시 야당의 조병옥 후보를 지원할 것이라며 여당에게 후보 등록 방해 공작을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 천신만고 끝에 두 후보는 후보 등록 마감일인 2월 13일 밤 후보 등록 서류를 제출했으나, 서류 미비를 이유로 각하되어 끝내 입후보에 실패하였다. 이후 이강학 당시 치안국장은 후보 등록 방해는 사실 장택상의 자작극이었다고 주장하였다. 이강학의 주장에 따르면 장택상은 반독련의 대선 후보로 확정된 후 이강학을 만나 사실 자신은 이승만 대통령과 맞서 싸우고 싶지 않은데 반독련이 와해 위기라 어쩔 수 없이 후보직을 수락했다며, 부디 자신의 후보 입후보를 방해해달라고 요청하였다고 한다. 장택상은 이강학이 거짓말을 하는 것이라며 완강히 부정하였다. 기타 서상일 민주혁신당 간사장은 민주혁신당 후보로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려 했으나 민주혁신당의 정당 등록 불허 등을 이유로 1960년 1월 9일 입후보 포기를 선언하였다. 김달호 전 진보당 부위원장은 무소속으로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려 했으나 각종 입후보 방해 공작으로 인해 입후보를 할 수가 없다며 1960년 2월 13일 입후보 포기를 선언하였다. 의사 한기도는 1960년 2월 13일 무소속 대통령 후보 등록 서류를 제출했음에도 법정 요건 미비를 사유로 등록이 거부되었다. 이후 자신이 유권자 추천서를 경찰에게 강탈 당하는 등의 입후보 방해를 당했다고 주장하였다. 선거 운동 기간 >> 부정 선거 계획 선거를 앞두고 자유당은 불리한 조건에 놓여있었다. 전쟁 이후 미국의 무상 원조가 줄어 민생고가 심해진데다 부정부패가 만연하여 자유당은 국민들의 지지를 잃고 있었다. 게다가 두 차례에 걸친 무리한 개헌으로 인해 민주주의와 헌법을 파괴하는 당이라는 낙인이 찍혀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유당은 이기붕을 부통령으로 당선시키기 위해 내무부 관료들과 이정재, 임화수 등 정치 폭력배들을 동원하여 부정 선거와 개표 조작을 감행하였다. 자유당은 전국의 공무원과 경찰 등 공권력은 물론 정치 깡패, 완장 부대까지 동원해 야당의 선거 운동을 방해하고 주민들에게 이승만과 이기붕을 지지하도록 압박하였다. 자유당은 또한 야당 참관인들을 갖은 핑계로 투표장에서 끌어내었으며, 투표자들을 3인 1조로 투표하게 하고 투표지를 투표함에 넣기 전에 자유당 측 참관인에게 보여주도록 하는 공개 투표를 시행했다. 유권자들에게 투표 방법을 교육하는데 쓰겠다는 핑계로 가짜 투표용지를 만들어두었다가 투표함에 무더기로 투입하는 계획을 세우기도 하였다. 이 모든 공작에는 경찰이 가담하고 있었다. 이에 야당과 몇몇 유권자들이 경찰이 수사는커녕 오히려 폭력을 조장하고 있다며 호소하였지만, 자유당은 정치 깡패들로 하여금 폭력 소동을 일으키게 해 이들을 탄압했다. 이런 상황 속에 3월 9일과 10일 전라남도 여수와 광산에서 각각 민주당 간부가 구타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하였고, 이를 계기로 민주당은 부정선거 거부 운동을 전개하였다. 선거일 선거일이 가까워지자 이들은 위에서 짠 계획들을 적용하기로 했다. 선거 전날인 3월 14일 자유당은 모든 선거함에 이승만과 이기붕이 찍혀 있는 위조 투표지를 무더기로 집어넣었다. 3월 15일 드디어 선거가 치러졌다. 이들은 투표하는 사람들에게 돈을 주는 가 하면, 한 명 당 투표 용지를 20장까지 가져가는 등의 선거 조작 행위를 저질렀다. 또한 자유당 당원들이 기표소까지 들어가 자유당을 뽑는 지 아니면 야당을 뽑는지 감시하는가 하면 야당 선거 관리인을 투표소에서 쫓아내는 행위까지 저질렀다. 이러한 부정 행위에는 자유당 소속 정치깡패들이 동원되었고 그 밖에도 내무부 소속의 공무원들까지 조직적으로 개입하였다(이 일로 내무부의 차관급과 실국장급 간부들이 구속되었고, 내무부 장관 최인규는 사형을 선고받게 된다). 선거 결과 제4대 대통령 선거 당시 총 유권자 수는 11,196,490명으로, 당선에 필요한 최소 득표수는 그 1/3인 3,732,164표였다. 유일 후보인 이승만 박사는 이를 너끈히 넘는 득표를 해 대통령 당선자로 확정되었다. 부통령 선거에서는 4년 전에 46.4%의 득표율을 기록했던 민주당의 장면 후보는 17.5%로 뚝 떨어지고 자유당의 이기붕 후보는 79.2%의 기록적 상승세를 보여서 당선에 성공했다. 대통령 선거 >> 지역별 결과 >> 부통령 선거 >> 지역별 결과 >> 재선거 결정 국회는 3월 18일 이승만과 이기붕을 각각 대통령과 부통령 당선자로 발표하였으나, 부정 선거에 대한 야권과 국민들의 반발이 거세지자 이승만 대통령은 4월 26일 대국민 담화에서 제4대 대통령 선거 및 제5대 부통령 선거를 다시 치를 것을 밝혔다. 같은 날 국회에서도 정·부통령 선거를 다시 치를 것을 요구하는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결국 다음날인 27일 대통령 당선자인 이승만은 사퇴하고, 5월 3일 국회에서 사퇴서를 정식으로 수리하면서 제4대 대통령의 재선거가 확정됐으며, 28일에는 이기붕 부통령 당선자가 사망함으로써 제5대 부통령 역시 재선거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대법원에 제기돼있던 선거 무효 소송은 소송 대상이 둘 다 없어졌고 어차피 재선거가 확정된 터라 진행되지 않았다. 본디 대통령과 부통령의 재선거는 재선거 사유 확정 이후 40일 이내로 시행돼야 했으므로 제5대 부통령의 재선거는 6월 7일, 제4대 대통령의 재선거는 12일까지 실시돼야 했으나, 5월 2일 국회에서 개헌 뒤까지 정·부통령 재선거 보류가 만장일치로 결의되고 재선거 공고권자인 허정 대통령 권한대행이 국회의 의사를 존중할 것을 표명하면서 재선거는 치러지지 않았다. 1960년 6월 15일 제2공화국 헌법이 시행되며 제1공화국의 대통령과 부통령의 직위는 없어져 재선거를 치르지 않아도 되게 되었고, 대신 제2공화국의 헌법 하에 새로이 제4대 대통령 선거를 국회 간접 선거로 실시해 윤보선이 당선되게 되었다.
지시문 (instruction)
주어진 원문을 읽고 필요한 정보를 파악하여, 원문에 근거해 질문에 답하라.
질문 (question)
3·15 부정선거가 지칭하는 구체적인 선거의 종류는 무엇인가?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1. 1과제 해석task_interpretation

    3·15 부정선거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 정의를 묻는 질문이다.

  2. 2정보 추출information_extraction

    본문 첫 문장에서 3·15 부정선거에 대한 정의를 확인한다.

    • 3·15 부정선거는 1960년 3월 15일 부정 선거에 의해 실시된 대한민국 제4대 대통령 선거와 대한민국 제5대 부통령 선거를 말한다.
  3. 3근거 선택evidence_selection

    질문에 직접적으로 답이 되는 선거 명칭을 선별한다.

    • 대한민국 제4대 대통령 선거와 대한민국 제5대 부통령 선거
  4. 4논리 통합logical_integration

    추출된 선거 명칭을 결합하여 정의를 완성한다.

  5. 5결론 도출conclusion_formulation

    3·15 부정선거는 1960년 3월 15일에 실시된 제4대 대통령 선거와 제5대 부통령 선거임을 도출한다.

    • 대한민국 제4대 대통령 선거와 대한민국 제5대 부통령 선거를 말한다.
  6. 6답변 생성answer_generation

    문맥에 근거하여 정확한 선거 명칭을 답변으로 작성한다.

    • 대한민국 제4대 대통령 선거와 대한민국 제5대 부통령 선거
근거 (evidence)
  • 3·15 부정선거는 1960년 3월 15일 부정 선거에 의해 실시된 대한민국 제4대 대통령 선거와 대한민국 제5대 부통령 선거를 말한다.
  • 대한민국 제4대 대통령 선거와 대한민국 제5대 부통령 선거
  • 대한민국 제4대 대통령 선거와 대한민국 제5대 부통령 선거를 말한다.
최종 답변 (final_answer)
대한민국 제4대 대통령 선거와 대한민국 제5대 부통령 선거를 말한다.
핵심 해석 (core_interpretation)
3·15 부정선거는 대한민국 제4대 대통령 선거와 대한민국 제5대 부통령 선거를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