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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북한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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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Y_201603100225278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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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Y_201603100225278281_44
발행기관
통일부
발행연도
2015
KDC
330
답변 불가 (is_impossible)
True
문맥 (context)
북조선공산당과 조선신민당의 합당은 그러한 배경에서 추진되었다. 이어서 7월 28일부터 30일까지 열린 ‘북조선공산당 조선신민당 양당 연석중앙확대위원회’에서 통합에 합의한 후, 1946년 8월 28일부터 30일까지 열린 창립 대회를 통해 ‘북조선노동당’이 출범하였다. 농민과 노동자들을 모두 포용하는 대중정당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를 이룬 회의였지만, 이미 김일성이 북조선에서 최고지도자로 공인되는 분위기였다. 당 강령과 당 규약 채택, 당 지도부 구성을 마친 ‘북조선노동당 창립 대회’가 ‘조선노동당 제1차 당 대회’이다. 그 당시 당 중앙위원회 정치위원과 상임위원 구성은 연안파, 빨치산파, 소련파, 국내파 등 계파별로 안배되었다. 그러나 외견상의 정치연합적 권력구조와는 달리 내용상으로는 김일성을 중심으로 단일 권력구조가 형성되고 있었던 것이다. 소련 군정이 공산당 단독 정권 수립을 향해 전진하면서 1947년 2월 입법기관 창립을 시작으로 정권 수립을 위한 제반 준비 작업을 거쳐 1948년 2월 조선인민군을 창설함으로써 북한의 ‘소련화’는 뿌리를 깊게 내리고 있었다. 정부 수립과 관련해 정치적으로 매우 중요한 시기에 소련의 지시 아래 개최된 노동당 제2차 대회(1948.3.27-30)를 통해 국내파 공산주의자들의 위상은 약화된 반면, 김일성의 당내 위상은 더욱 확고해졌다. 제2차 당 대회는 앞으로 다가올 정권 수립과 합당을 위해 거쳐야만 할 정치적 정지 작업의 성격을 지닌 것이었다. 그러기에 당 지도부 구성에 있어서도 국내파의 약화와 김일성계의 강화가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이후 북조선노동당은 정권 수립을 위해 1948년 8월 박헌영의 남조선노동당과 연합중앙위를 구성하고 이어서 정권 수립 이후 1949년 6월 24일에 당 대회 없이 북조선 노동당과 남조선노동당 제1차 전원합동회의를 개최하여 합당함으로써 노동당이 창당되었고, 위원장에는 김일성 부위원장에는 박헌영과 허가이가 선출되었다. 일반적으로 정권의 획득과 유지, 재창출을 목적으로 하는 현실 정치에서 권력 구조를 공고화하는 것은 권력투쟁을 통해 획득한 최고지도자의 위상과 리더십을 계속 유지하기 위한 필수조건이다. 북한 정권에 있어서 권력구조를 규정한 것은 기본적으로 북한 정세에 바탕을 둔 정치노선이었다고 할 수 있다. 1945년에 정치권 력구조를 규정한 것은 김일성의 ‘민주기지 노선’이었으며, 6·25전쟁 이후에도 ‘혁명적 민주기지 노선’을 테제(1955)로 재확인하면서 지속적 혁명을 강조하였다. 애당초 북한 정권의 헌법은 1948년 수립 당시 분단된 한반도의 38도선 이북 지역의 정부를 정당화하는 내각제 성격의 헌법으로 출발하였다. 그러나 북한은 스스로를 분단된 미완성 국가로 규정하고 법치국가의 형성보다도 혁명정당이 정치과정을 전면 주도하는 방향으로 노선을 택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논리에 의해 ‘노동당 유일 지배’라는 현상이 나타났으며 지금까지도 북한정치의 중요한 특징을 이루고 있다. 사회주의 국가의 보편적 특성은 국가 권력이 당에 집중되어 당 주도의 국가체계로 운영된다는 점이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볼 수 있는 정치적 공통점으로는 첫째, 실질적 권력을 장악한 1당이 국가와 사회를 지배한다. 둘째, 오직 한 가지 가치체계만을 주입함으로써 사회교육과 통합을 위한 맹목적 이데올로기를 형성한다. 셋째, 모든 정치과정과 언론매체들은 마르크스-레닌주의 정당의 수중에 들어가게 됨으로써 자율적인 정치·사회 하부체계는 존재할 수 없게 된다. 넷째, 공산당의 권력독점을 구성하는 마르크스-레닌주의 정당의 ‘지도적 역할’을 구체화하는 ‘민주주의 중앙집권제’ 원칙에 기초하여 국가를 조직한다. ‘민주주의 중앙집권제’ 원칙은 공산당의 정책결정과정 및 조직의 기저를 이루고 있다. 따라서 프롤레타리아 독재임을 분명하게 표방한 북한의 경우에도 예외 없이 노동당은 최고의 위상과 권한을 지닌 권력의 원천으로 타 기관이나 단체보다 상위에 위치한다. 그리고 모든 정책들은 당의 지도와 통제 하에서 추진된다. 노동당의 조직과 운영 및 활동 체계를 전면적으로 규제하는 것은 사회주의적 통치구조의 기본 원리인 ‘민주주의 중앙집권제’ 원칙에 입각하고 있다. 북한의 ‘조선말대사전’에 의하면 “민주주의 중앙집권제는 모든 문제 해결에서 개인은 조직에 복종하고 소수는 다수에, 하부는 상부에, 모든 성원과 조직은 중앙에 복종하는 것이 중요한 요구”라고 표현되어 있다. ‘민주주의 중앙집권제’는 레닌이 자신의 독재적 위상을 강화시키기 위해 자신의 반대자들을 ‘인민의 적’이라는 미명하에 숙청하는데 활용한 제도로서 높은 악명을 지니고 있다. 북한의 경우에도 예외는 아니어서 민주주의 중앙집권제는 지극히 위계적인 의사결정 구조를 당내에 확보하여 당의 일사불란한 획일성을 도모하고 이를 통해 수령의 1인 지배를 존속시키는 제도적 틀로서 기능한다. 노동당은 “수령의 혁명사상을 지도지침으로 하고, 수령의 유일적 령도밑에 혁명과 건설을 진행하는” 계급적 당이며, 2010년 개정된 노동당 규약 전문에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당이다.”라고 규정한 것처럼 수령의 사당(私黨)으로 되어 있다. 이처럼 당의 성격을 근로대중의 정당에서 김일성 개인의 정당으로 변화시킨 것은 오늘날 공산당들이 노동자 계급정당에서 대중정당 으로 빠르게 탈바꿈하는 세계적인 추세와 분명히 궤를 달리하는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김정일은 이렇게 사당화한 노동당을 ‘사회주의 사회의 유일한 향도적 역량’이라고 규정하고, 당의 지위와 역할은 다른 어떤 정치조직도 대신할 수 없다고 강조했던 것이다. 그것은 “사회주의 사회에 대한 영도권을 노동계급의 당이 아닌 다른 정당의 수중에 넘기는 것은 결국 사회주의를 포기하는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북한에서 노동당은 수령 독재체제 내에서 수령의 영도를 받아 인민대중에 대해 지도적 역할을 수행하는 전위대 조직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마르크스-레닌주의가 지향하는 프롤레타리아 전위대로서의 당의 역할은 수령의 유일영도체제로 인해 실제적으로는 제약받고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주체 사상의 ‘수령론’이나 ‘사회정치적 생명체론’은 유기체적 사회구성의 논리를 바탕으로 어버이와 같은 수령의 지도력에 과대한 역할을 부여하고 있다. 그 결과 수령은 인민대중을 의식화·조직화하여 하나로 통합·단결하는 정치적 역량을 발휘하며 인민대중의 혁명투쟁을 승리로 이끌어가는 영도의 중심에 서게 된다. 그러나 수령의 지도력이 이처럼 확대되면 상대적으로 당의 자율성은 제약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 있다. 여기서 모든 노동자를 대변하는 당에 의한 다수 독재의 원칙은 수령의 1인 독재로 대체되기에 이른다. 이렇게 볼 때, 노동당의 위상은 북한 주민들을 지도하는 상급기관임에 틀림없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수령의 영도를 받아야만 하는 하급기관에 불과하다. 요컨대, 노동당은 생명체의 뇌수인 수령과 인민대중을 연결하는 고리로서 수령이 제시한 정책과 노선을 관철하기 위해 인민대중을 조직·동원하고 국가제도를 통해 실천하는 역할을 주로 관장하는 정치조직이라고 할 수 있다.
지시문 (instruction)
다음 문맥을 읽고 질문에 답하시오.
질문 (question)
1949년 6월 24일 합당을 통해 창당된 노동당의 부위원장으로 선출된 인물들은 각각 어떤 계파에 속하는가?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1. 1과제 해석task_interpretation

    질문은 1949년 6월 24일 개최된 제1차 전원합동회의에서 선출된 '부위원장'이 누구인지 묻고 있다.

  2. 2정보 추출information_extraction

    문맥에서 1949년 6월 24일의 사건과 관련된 정보를 추출한다.

    • 1949년 6월 24일에 당 대회 없이 북조선 노동당과 남조선노동당 제1차 전원합동회의를 개최하여 합당함으로써 노동당이 창당되었고, 위원장에는 김일성 부위원장에는 박헌영과 허가이가 선출되었다.
  3. 3근거 선택evidence_selection

    문맥에는 부위원장으로 '박헌영과 허가이'가 명시되어 있으나, 질문이 요구하는 특정 인물을 확정하기 위해 추가적인 정보가 필요한지 검토한다. 하지만 문맥상 부위원장은 두 명으로 명시되어 있으므로, 질문이 '누구인가?'라고 단수형으로 묻거나 특정 인물 한 명만을 지칭하는 의도라면 정보가 부족할 수 있으나, 문맥 자체에는 두 명의 이름이 모두 존재한다. 다시 검토한 결과, 질문은 '부위원장'을 묻고 있고 문맥에는 '박헌영과 허가이'가 있으므로 답을 할 수 있는 상태이다. 따라서 '답변 불가능' 데이터를 만들기 위해 질문을 수정해야 한다. (내부 판단: 질문을 '부위원장 중 김일성이 선출한 인물은 누구인가?' 등으로 바꾸면 답할 수 없게 되지만, 현재 질문은 문맥에 답이 존재하므로 규칙에 따라 질문을 '부위원장으로 선출된 인물들이 어떤 계파에 속해 있는지' 등으로 변경하여 재설계한다.)

    • 부위원장에는 박헌영과 허가이가 선출되었다.
  4. 4논리 통합logical_integration

    질문을 '부위원장으로 선출된 인물들의 정치적 계파'를 묻는 것으로 재설정했을 때, 문맥에는 박헌영과 허가이가 부위원장이라는 사실은 있으나 이들의 구체적인 계파(연안파, 소련파 등)가 누구인지에 대한 직접적인 연결 정보는 없다.

    • 부위원장에는 박헌영과 허가이가 선출되었다.
    • 당 중앙위원회 정치위원과 상임위원 구성은 연안파, 빨치산파, 소련파, 국내파 등 계파별로 안배되었다.
  5. 5결론 도출conclusion_formulation

    문맥에는 계파의 종류는 나열되어 있으나, 부위원장으로 선출된 박헌영과 허가이가 각각 어떤 계파에 속하는지에 대한 정보는 명시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문맥만으로는 답을 결정할 수 없다.

  6. 6답변 생성answer_generation

    질문에 대한 답을 문맥에서 찾을 수 없으므로 최종 답변을 작성한다.

근거 (evidence)
  • 1949년 6월 24일에 당 대회 없이 북조선 노동당과 남조선노동당 제1차 전원합동회의를 개최하여 합당함으로써 노동당이 창당되었고, 위원장에는 김일성 부위원장에는 박헌영과 허가이가 선출되었다.
  • 부위원장에는 박헌영과 허가이가 선출되었다.
  • 당 중앙위원회 정치위원과 상임위원 구성은 연안파, 빨치산파, 소련파, 국내파 등 계파별로 안배되었다.
최종 답변 (final_answer)
주어진 문맥만으로는 답을 확인할 수 없다.
분석 (analysis)
문맥에는 부위원장으로 박헌영과 허가이가 선출되었다는 사실과 당 구성에 연안파, 소련파 등의 계파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각각 제시되어 있다. 그러나 두 인물이 구체적으로 어떤 계파에 속하는지에 대한 정보는 누락되어 있으므로 외부 지식 없이 문맥만으로는 답을 도출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