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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정책포커스 2015 봄호 Vol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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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Y_201506100248002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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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기관
경제‧인문사회연구회
발행연도
KDC
000
답변 불가 (is_impossible)
True
문맥 (context)
우리나라는 짧은 시간 내에 압축적인 경제성장을 이루었지만 정치나 사회 발전은 늦었다고 일반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정치와 사회 발전을 앞당기는 방법은 무엇인가? 뒤집어서 경제 발전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의 경제 발전은 우수한 정부에 의하여 선도되었다고 하지만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하였던 원동력은 과학기술의 발전, 그리고 이를 가능하게 한 국민들의 지식역량에 있다. 2차세계대전 이후 후진국에서 출발하여 선진국의 문턱까지 도달한 나라는 한국, 싱가포르, 대만, 홍콩 등 아시아 4개국에 불과하다는 사실, 남미와 동남아 국가들은 모두 중진국 함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데 한국은 벗어날 수 있었다는 사실, 지금 우리나라 소득의 원천이 어디에 있는가를 생각해보면 다른 무엇보다도 과학기술, 지식의 발전이 없었다면 가능하지 않은 일임을 알 수 있다. 정치나 사회는 불합리하였지만 경제와 산업에서는 과학적인 접근을 우선시하였으므로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하였다고 외부에서 평가한다. 마찬가지로 정치와 사회 면에서 발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과학적인 접근을 우선시하는 방식이라고 본다. 다행스럽게도 우리나라는 거대한 국책연구원 조직을 가지고 있으며 사회과학을 중시하는 사회적인 풍토나 자원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지금도 회자되고 있는 이유는 미래사회를 그리면서 등장시켰던 상상 속의 산물들이 하나씩 현실에서 구현되고 있기 때문이다. IT 기술의 비약적 발전으로 구축된 디지털 환경은 방대하고도 다양한 정보를 끊임없이 생성시키고 있고, 이러한 빅데이터를 분석함으로써 보다 체계적인 미래 예측이 가능해지고 있다. 또한 영화가 제작된 시점으로부터 반세기가 지나서야 상용화될 것으로 그려진 홍채인식로봇은 이제 더 이상 상상 속의 산물이 아니다. 홍채를 비롯한 망막, 얼굴, 음성 등에 대한 생체인식기술은 정보보안이나 의료 분야에서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범죄예방 및 수사를 위해 형사사법 분야에서도 부분적으로 접목되고 있다. 나아가 착용만 하면 인간의 신체적 한계를 초월하게 만드는 입는 로봇(Wearable Robot)이나 무인자동차도 가까운 시일 내에 상용화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외교·안보 분야 정책연구에 특화되어 있던 CSIS는 1980년대 이후 냉전이 종식되고, 외교·안보 분야의 정책연구 수요가 감소하면서 새로운 먹을거리를 찾아 나선다. 특히 1980년대 이후 미국이 경제에 어려움을 겪고 국제경제를 둘러싼 이슈들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전문가 그룹으로부터 제기됨에 따라 CSIS는 국제경제 이슈를 정면으로 다루기 시작한다. 1990년대에 CSIS가 추진한 프로젝트는 국내 문제에 보다 더 집중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은 것으로, 외교·안보 중심의 전통적인 분야와는 다소 거리가 있어 보였지만 이후 결실을 맺어 ‘강력한 미국 위원회(Commission on the Strengthening of America)’로 진화하였다. 백악관 집무실에 국가안보위원회를 모델 삼아 국가경제위원회와 국가경제 보좌관(Economic Advisor) 직을 신설하는데 결정적 단서를 제공하였다. 이를 계기로 CSIS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세계무역기구(WTO),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World Bank) 등 국제경제와 관련된 각종 기구들의 이슈를 다루며 글로벌 헬스, 기후변화의 환경적·사회적 효과 등 보다 다양한 영역에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CSIS는 1962년에 영국 국제전략연구소(IISS ; International Institute for Strategic Studies)를 모델로 조지타운대학 부설 연구소로 처음 출범하였다. CSIS가 출범하던 1960년대 초는 동서냉전이 격화되던 시기로, 미국과 소련의 패권 경쟁 또한 치열하던 시기였다. CSIS는 1962년 9월 4일 설립되었다. 공교롭게도 다음달인 1962년 10월은 전 세계를 일촉즉발의 전쟁 위기로 몰고 갔던 쿠바 미사일 위기가 일어난 시기였다. 당시 소련과 격렬하게 대립하고 있던 미국에서는 국가안보의 관점에서 국제정치 및 외교 문제를 다루고, 중장기적인 세계전략을 수립하는 데 이론적 기초를 제공하는 역할을 수행할 싱크탱크의 필요성이 적극적으로 제기되었다. CSIS는 그러한 배경하에 탄생하여 외교가의 지대한 관심과 연방정부의 전폭적인 지원하에 외교·정보 분야의 우수한 인재를 빨아들여 핵심적인 연구기관으로 빠르게 성장해 나갔다. 설립 이듬해인 1963년 1월에 개최된 컨퍼런스에서 CSIS는 「국가안보 : 향후 10년의 정치, 경제, 군사전략(National Security : Political, Military and Economic Strategies in the Decade Ahead)」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하였다. 1천 페이지가 넘는 이 보고서를 통해, CSIS는 정보 의제와 관련된 국가적 청사진을 제시하였고, 워싱턴 외교 정책의 핵심적인 프레임워크를 제공하였다. 이후 관련 실무자들은 닉슨, 포드, 레이건 행정부에 정책결정자로 다수 참여함으로써 사실상 냉전 시대 미국 외교 정책의 근간을 형성하게 된다. 1970년대 이후 CSIS는 헨리 키신저를 비롯하여 제임스 슐레진저, 빌 브록, 윌리엄 크로우, 헤롤드 브라운 등 외교 분야의 거물급 인사들이 참여함으로써 도약의 전기를 맞는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1977년에 국무장관에서 은퇴한 헨리 키신저가 하버드 대학교의 교수직을 얻길 원했으나 하버드 측이 이를 거절하자, 조지타운 대학교에서 강의를 하면서 당시 부설기관으로 있던 CSIS를 본인의 작전기지로 활용하게 된 것이 키신저와 CSIS의 관계가 돈독해진 계기였다고 한다. 필자는 작년 3월과 9월, 경제·인문사회연구회와 CSIS가 공동주최하는 국제콘퍼런스 추진과 관련된 실무협의를 위해 연구회를 대표하여 CSIS를 두 차례 방문한 적이 있다. 처음 방문했을 당시는 로드 아일랜드 애비뉴에 무려 1억달러를 들여 새로 지은 건물에 입주한 지 불과 다섯 달도 되지 않은 시점이라 최첨단 시설로 무장한 현대식 건물의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2014년 9월에 국제콘퍼런스가 열린 2층의 콘퍼런스 룸은 300명 수용이 가능한 규모로 콘퍼런스, 강의 및 토론을 위한 홀을 겸하여 방송스튜디오로까지 활용 가능한 시설이었다. 정기적으로 주요 고위 인사를 초청하는 초당적 정치인포럼이 개최되며,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척 헤이글 미국방장관 등 최고위급 인사들이 이곳에서 연설하였다. 미국에서 연구진들의 직함은 일반적으로 ‘researcher’를 쓰나 드물게 ‘scholar’를 쓰는 기관들이 있다고 한다. CSIS도 그중 하나다. 정책에 깊숙이 관여하는 연구를 수행하면서도 학자로 대우받는 CSIS 연구진의 위상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연구진의 명단이 소개되어 있는 웹사이트를 방문하면, CEO인 존 햄리(John Hamre)의 이름이 다른 직원들과 똑같이 알파벳 순서에 따라 나열되어 있는 것이 매우 인상적이다. 미국의 싱크탱크는 브루킹스연구소(Brookings Institution)처럼 객관적·과학적 정책연구를 강조하는 제1세대 싱크탱크, 정부용역프로젝트를 통한 전문지식 현장 활용을 강조하는 랜드연구소(RAND Corporation) 등과 같은 2세대 싱크탱크, 헤리티지재단(Heritage Foundation)과 같이 1970년대 이후 정치적 이념성을 강조하는 3세대 싱크탱크로 나누어진다. 헤리티지재단은 진보적 미국진보연구소(CAP; Center for American Progress)에 대비되는 3세대 이념성 보수싱크탱크 중 하나이다. 헤리티지재단은 보수적 정책과제들을 입법화시키기 위해 언론홍보, 산업계와의 연계, 정책보고서 작성 등에 치중하는 현실적 싱크탱크이기도 하다. 이 점은 중도 싱크탱크인 브루킹스연구소가 학자 중심으로 운영되는 학술적 싱크탱크와 대비된다.
지시문 (instruction)
다음 문맥을 읽고 질문에 답하시오.
질문 (question)
CSIS의 CEO인 존 햄리(John Hamre)는 어떤 학문적 배경을 바탕으로 연구직을 수행하고 있는가?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1. 1과제 해석task_interpretation

    질문은 CSIS의 CEO인 존 햄리의 구체적인 학문적 전공이나 배경 지식에 대해 묻고 있다.

  2. 2정보 추출information_extraction

    문맥에서 존 햄리(John Hamre)라는 인물과 그가 CSIS의 CEO라는 사실, 그리고 연구진의 직함이 'scholar'로 불린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 CEO인 존 햄리(John Hamre)의 이름이 다른 직원들과 똑같이 알파벳 순서에 따라 나열되어 있는 것이 매우 인상적이다.
    • CSIS도 그중 하나다. 정책에 깊숙이 관여하는 연구를 수행하면서도 학자로 대우받는 CSIS 연구진의 위상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3. 3근거 선택evidence_selection

    존 햄리가 CEO라는 사실과 CSIS 연구진이 학자(scholar)로 대우받는다는 정보는 있으나, 존 햄리 개인의 구체적인 학문적 전공이나 배경에 대한 정보는 누락되어 있다.

    • CEO인 존 햄리(John Hamre)의 이름이 다른 직원들과 똑같이 알파벳 순서에 따라 나열되어 있는 것이 매우 인상적이다.
  4. 4논리 통합logical_integration

    문맥을 통해 CSIS가 외교, 안보, 국제경제 등 다양한 분야를 다루며 연구진이 학자로서의 위상을 가진다는 점은 알 수 있지만, 이를 통해 존 햄리 개인의 학문적 배경을 특정할 수는 없다.

  5. 5결론 도출conclusion_formulation

    질문이 요구하는 존 햄리의 학문적 배경은 문맥 내에 명시되어 있지 않으며, 제공된 정보를 결합해도 도출할 수 없다.

  6. 6답변 생성answer_generation

    주어진 문맥만으로는 답을 확인할 수 없다는 최종 답변을 생성한다.

근거 (evidence)
  • CEO인 존 햄리(John Hamre)의 이름이 다른 직원들과 똑같이 알파벳 순서에 따라 나열되어 있는 것이 매우 인상적이다.
  • CSIS도 그중 하나다. 정책에 깊숙이 관여하는 연구를 수행하면서도 학자로 대우받는 CSIS 연구진의 위상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최종 답변 (final_answer)
주어진 문맥만으로는 답을 확인할 수 없다.
분석 (analysis)
문맥에는 CSIS의 CEO인 존 햄리의 이름과 그가 속한 기관의 연구진 위상에 대한 정보는 포함되어 있으나, 그의 구체적인 학문적 배경이나 전공에 대한 정보는 명시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외부 지식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