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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정책포커스 2015 봄호 Vol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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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기관
경제‧인문사회연구회
발행연도
KD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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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 불가 (is_impossible)
True
문맥 (context)
21세기 동아시아는 질서 재편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있다. 신민족주의의 열풍이 불고 영토 분쟁과 역사 갈등이 여러 지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평화로운 공존과 공동의 번영이 필요하고 양 강대국의 틈에 놓인 한민족의 생존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한민족은 분열 시대를 거쳐 60여 년 동안 분단 상태에 놓여 있다. 영토의 분열 또는 상실이란 단순한 땅이나 자연환경의 손실이 아니다. 그 땅과 인연을 직간접으로 맺은 삶과 역사의 상실, 그리고 분열이다. 때문에 문화가 왜곡되거나 감추어져왔을 뿐만 아니라 사람 또한 분열되었다. 즉 분열은 공동체의 파괴로 이어졌다. 한민족은 생성 과정과 종족을 비롯한 구성요건의 특성으로 인하여 일종의 역사유기체적인 성격이 강했다. 그러므로 초기부터 모든 국가들은 계승성과 정통성을 근거로 통일을 지향해 왔다. 이제 통일이 절실하게 필요한 시점이 되었고, 실제로 실현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통일의 개념과 가치, 그리고 무엇보다도 실현방법론에 대하여 살펴보고, 이를 위한 인식의 전환을 꾀해야 한다. 통일신라는 몇 가지 한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통일에 근접한 상태였고 민족사적으로 평화구도를 정착시켰다. 우리는 신라인들의 역사의식이나 국제질서에 대한 인식, 국제환경에 대응하는 방식 등을 통해서 21세기 남북통일의 의미와 가치, 방법론 등에 대한 다양하고 실질적인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신라가 통일을 이룩하는 과정과 결과, 그 후 취한 정책 등으로 말미암아 동아시아에서 통일한민족의 위상과 역할을 찾을 수 있다. 특히 삼국통일의 주역이었던 신라의 정치인들과 지식인들은 우리에게 모델이 되고 있다. 신라는 지정학(地政學, geo-politics)의 관점, 지경학(地經學, geo-economy)의 관점, 지문화(地文化, geoculture)의 관점에서 볼 때 발전 가능성이 가장 낮았다. 더욱이 삼국통일이라는 민족사적 과업을 실현할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6세기 초 이후 150여 년 남짓한 짧은 시간 안에 국가를 비약적으로 발전시키고 통일사업을 완성시켰다. 신라는 어떻게 삼국통일을 준비하였을까? 국가집단의 의지와 구체적이고 거시적인 국가정책의 입안, 그리고 지속적이고 적극적인 추진이 있었을 것이다. 통일신라는 지정학적인 위치가 유리했으므로 해양을 통한 모든 국가들 간의 교류에 중간자 역할을 수행하였다. 동아지중해 세계에서 모든 지역을 물리적·사상적으로 연결하면서 무역과 문화 및 인적 교류의 중간자 역할을 담당하였다. 일본은 신라 선단의 도움으로 당나라와 교류하였으며, 실크로드 지역의 문물들을 수입할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동아시아 세계가 만남과 교류를 통해 평화를 유지하는 데 지대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신라의 삼국통일이 가진 의미는 또 있다. 민족의 공질성을 회복하여 민족통일의 진정한 의미를 구현했다는 것이다. 신라는 내부의 공동체 의식을 강화시키는 정책들을 취했다. 고구려·백제 유민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였고, 그들의 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질적으로 높은 한민족 문화를 생성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넷째, 불교를 활용하여 사상을 통일하고, 상징물 등을 통한 홍보활동을 성공시켰다. 불교는 논리적이고 조직적으로 체계화된 고등종교였다. 따라서 부처는 전통 종교의 제사장이나 ‘마립간(麻立干)’ 같은 정치지도자보다 우월한 위치에 있었다. 이러한 논리를 빌어서 왕은 자신을 부처와 동일시하였다. 법흥왕, 진흥왕, 마야부인 등의 불교식 호칭 등은 부처와 왕가를 동일시 하려는 종교정책의 일환이었다. 또한 통일사업의 주요한 주체가 된 인재들을 양성하였다. 원광, 자장, 의상 등 통일에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한 승려들은 유학한 승려들이었다. 불교는 정치적으로 통일을 이룩한 후에 더욱 의미 있는 역할을 담당했다. 외세와 외국군대를 끌어들여 일으킨 전쟁은 당연히 갈등을 유발했을 것이다. 정복당하고 온갖 피해를 당한 백제와 고구려 유민들은 사회적·문화적·사상적 통일을 이룩하는 데 비협조적이고 부정적인 태도를 취했을 가능성이 높다. 더욱이 권력 쟁탈전과 맞물려 갈등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증폭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통일의 당위성과 명분을 전파하고 인식시키는 일은 더욱 중요했다. 삼국을 통일해야 했다는 논리를 계발하고, 이를 국가정책으로 추진하는 일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일이었다. 다섯째, 인재양성 정책을 취하고 종교와 정파를 초월한 지식인의 역할을 부여했다. 지증왕부터 문무왕에 이르기까지 임금들의 역할이 가장 컸지만 그 밖에도 많은 지식인들이 이 사업을 주도하였다. 김이사부와 김이차돈은 삼국통일 정책의 초석을 놓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화랑도는 불교와 기존의 전통종교를 습합시켜서 만든 전사 집단이었다. 이 인재양성시스템을 적극 활용하면서 통일된 지도이념 내지 행동원리를 조직화시키고 전파하였다. ‘세속오계’를 만든 사람은 일종의 정치승려인 원광이었고, 통일의 주역인 김춘추와 김유신은 화랑도의 일원이었다. 또한 김유신을 필두로 한 가야계 무장들이 있었다. 어쩌면 신라 왕정에 가장 비판적일 수 있는 망 가야의 유민세력들을 포섭하여 삼국통일전쟁에 끌어들인 것은 매우 탁월한 정책이었다. 둘째. 국토질서 재편전략을 입체적으로 성공시켰다. 신라는 산업의 발달을 추진하면서 경제생활을 향상시켰다. 또한 영토를 확장하면서 교통망을 확충하고 거점 도시들을 육성했다. 이렇게 해서 권력을 중앙으로 집중시키고 관리체제를 일원화하였다. 국제질서에 능동적으로 진입하고 무역을 활발하게 벌이고 발달된 외국문화를 수용하기 위해 해양활동을 강화시키고 해륙국가의 형태를 갖출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진흥왕 시대에는 한강 하구와 남양만을 장악하였고, 대 중국항로를 개설하였다. 셋째, 군사력을 확충하고, 고난도의 외교정책을 성공시켰다. 신라는 국력이 상대적으로 미약했다. 고구려와 수나라 간에 전운이 감돌 때 수나라에 사신을 파견하고, 걸사표(乞師表)를 보내기까지 하였다. 이어 당나라가 건국하자 친당정책이라고 평가될 정도로 대당 편중외교를 펼쳤다. 이때 최고의 실력자이면서 통일의 주역이 된 김춘추는 당나라를 방문하고 귀환하다가 고구려의 순라군에게 잡힐 뻔한 위기를 겪기도 하였다. 또한 그는 비록 실패로 끝났지만 백제를 압박할 목적으로 적대국이었던 고구려와의 연합을 모색하였다. 일설에는 일본열도로 건너가서 왜 세력을 활용하려고 645년의 대화개신에 적극적으로 개입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한 국가 또는 민족이 생존하고 발전하는 데 분열과 통일이 얼마나 중요한 가는 동서고금의 역사가 입증하고 있다. 우리 역사에는 분열되었던 시대가 몇 번 있었다. 하지만 동일 혈통, 동일 언어, 유사 문화, 공통의 역사경험을 공유한 집단들은 서로 경쟁하고 갈등을 빚기도 하였지만, 정치적 통일과 민족공동체 형성을 단계적으로 실현시켜 왔다. 필자는 고구려의 전성기를 민족의 2차 핵이 형성된 단계로 파악했다. 1995년에 발표한 논문에서 이 시기를 ‘re-foundation’의 시대라고 보았다. 미완성의 통일을 이룩한 시대라는 규정이다. 그 후 수나라, 당나라와 벌인 동아시아(동아지중해) 국제대전에서 고구려와 백제의 멸망, 일본 열도의 이탈이 생겼고, 그 결과 완성된 것이 신라의 삼국통일 또는 남북국시대이다. 따라서 그 시대를 3차 핵의 생성이라고 설정했고, 불완전한 통일이라고 규정했다. 그 후 4차, 5차의 단계를 거쳐 우리는 현재 6차 단계인 남북의 통일을 눈앞에 두고 있다.
지시문 (instruction)
다음 문맥을 읽고 질문에 답하시오.
질문 (question)
신라의 삼국통일 과정에서 김춘추가 당나라를 방문했을 당시, 그를 위협했던 고구려 군대의 구체적인 부대 명칭은 무엇인가?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1. 1과제 해석task_interpretation

    질문은 김춘추가 당나라 방문 중 위기를 겪었을 때 그를 잡으려 했던 고구려 군대의 특정 부대 명칭을 요구한다.

  2. 2정보 추출information_extraction

    문맥에서 김춘추의 당나라 방문과 고구려 군대와의 조우에 관한 사실을 추출한다.

    • 최고의 실력자이면서 통일의 주역이 된 김춘추는 당나라를 방문하고 귀환하다가 고구려의 순라군에게 잡힐 뻔한 위기를 겪기도 하였다.
  3. 3근거 선택evidence_selection

    김춘추를 위협한 주체로 '고구려의 순라군'이 명시되어 있으나, 질문이 요구하는 '구체적인 부대 명칭'에 대한 정보는 없다.

    • 고구려의 순라군에게 잡힐 뻔한 위기를 겪기도 하였다.
  4. 4논리 통합logical_integration

    문맥에는 '순라군'이라는 역할/직책은 등장하지만, 이것이 어떤 정식 부대 명칭인지, 혹은 그 이상의 구체적인 단위를 나타내는지는 알 수 없다.

  5. 5결론 도출conclusion_formulation

    제공된 텍스트만으로는 '순라군' 외에 질문이 요구하는 구체적인 부대 명칭을 확정할 수 없다.

  6. 6답변 생성answer_generation

    외부 지식을 동원하지 않고 주어진 문맥에 근거하여 답변 불가능 판정을 내린다.

근거 (evidence)
  • 최고의 실력자이면서 통일의 주역이 된 김춘추는 당나라를 방문하고 귀환하다가 고구려의 순라군에게 잡힐 뻔한 위기를 겪기도 하였다.
  • 고구려의 순라군에게 잡힐 뻔한 위기를 겪기도 하였다.
최종 답변 (final_answer)
주어진 문맥만으로는 답을 확인할 수 없다.
분석 (analysis)
문맥에는 김춘추가 고구려의 '순라군'에게 잡힐 뻔했다는 사실이 명시되어 있으나, 질문이 요구하는 구체적인 부대 명칭에 대한 정보는 누락되어 있다. 따라서 해당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문맥 외부의 추가적인 역사적 정보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