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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와 번영의 한반도 구축방안 총괄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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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Y_201810150407529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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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기관
경제·인문사회연구회
발행연도
2018
KDC
340
답변 불가 (is_impossible)
False
문맥 (context)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첫째, 성과목표가 도입되었던 2016년 이행결과를 살펴본 결과, 예방, 참여, 보호의 3개 분야에 6개 세부과제 중 4개 세부과제에서 설정했던 성과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 성별영향분석평가와 성인지예산서 등 성인지적 접근을 위한 제도 운영이 제한적으로 이뤄졌고, 통일부 정부위원회의 여성비율에서도 2014년 이후 하향세를 보여 정부위원회 여성참여율 40%이라는 정부목표에도 미치지 못했다. 둘째, 여성의 참여 측면에서도 남북협상에 참여하는 여성은 대표자격 보다는 실무인력이었으며, 통일준비를 위한 인력양성에서도 여성비율이 증가하는 것으로 보이나 실제 배출되는 인원상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의사결정구조에서의 여성참여는 여성의 수요, 성인지적인 관점에서의 정책 수립, 이행, 평가 등을 위해 매우 중요한 기반이 되고, 그렇기 때문에 여성계에서 지속적으로 제기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큰 변화를 확인하기 어려웠다. 셋째, 시민단체와의 교류 역시 남북교류 자체를 지원하는 차원에서나, 성인지예산제도 운영 등 통일정책에서의 성인지적 관점 통합에 있어서 시민단체와 어떻게 협의했는지를 확인하기 어려웠다. 공공정책과 정치에서 여성의 대표성 보장을 위한 여성정책 환경이 이처럼 우호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2000년 남북정상회담은 예외적이었다. 정상회담 공식수행원 중 여성은 한 명도 없었고, 분야별로 구성된 24명의 특별 수행원 중 정당·사회단체 13명, 경제계 10명 등 23명이 남성이었다. 여성계의 몫은 이화여자대학교 장상 총장이 유일했다. 2007년 2차 정상회담에서는 여성가족부 장관을 포함할 것을 요구했으나 여성 관련 의제가 없다는 이유로 제외되었다. 그러나 특별 수행원 중 여성계 인사 3명, 기업 대표로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예술계 대표로 국악인 안숙선 등 5명의 여성이 참여하여 비록 여성계의 요구인 30%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1차 정상회담 보다 여성의 대표성은 증가하였다. 정상회담 이후 2015년까지 약 300건의 남북 당국간 회담이 있었으나 이 중 9건만 여성 대표가 1인 포함된 회담이었고, 최근까지 당국간 회담 참여 경험이 있는 여성은 4명에 불과했다. 한편 통일부 소관 위원회에서의 여성 참여는 공공정책 형성과정에서 여성 참여 확대를 위한 정책으로 추진해 오던 정부 위원회 여성 비율 확대 정책의 적극적 추진에 따라 지난 20년간 전반적으로 증가해 왔다 평화와 번영의 한반도 정책 추진에서 여성의 참여를 확대하기 위해서는 첫째, 통일정책 및 통일 과정에서 여성 참여 권리를 보장하는 법적·제도적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둘째, 통일정책 결정 과정에서의 여성 참여를 확대할 뿐 아니라, 남북정상회담은 실제 평화구축 프로세 =스에서의 여성 참여도 확대되어야 하고, 이를 위한 여성인력의 양성이나 역량 강화를 위한 제도 =적 기반이 마련되어야 한다. 셋째, 정부 부처 내 평화·통일정책에서의 여성의제를 추진하기 위한 기구가 필요하다. 청와대 여성평화특임 비서관을 설치하거나, 여성평화특별대사를 선임하거나, 통일부내 여성통일정책전담기구를 설치하는 방안이 있을 수 있다. 통일부 내 전담기구 혹은 여성평화통일 전담자를 두는 방안과 더불어 여성가족부도 정부 내에서 평화·통일정책의 주요 행위자로, 북한의 성평등정책 혹은 여성정책과의 협력 혹은 추동을 위한 파트너(거점)로서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넷째, 여성참여를 위한 거버넌스 체계도 활성화해야 한다. 해외사례에서 공식적인 평화 프로세스 채널 이외에 여성단체들이 캠페인, 옹호활동을 통해 정부에 다양한 집단의 요청사항을 가시화하고, 동 이슈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환기시킴으로써 공식 프로세스에 통합되면서 영향력을 발휘하기도 하였다 남북 간 경제교류는 대부분 경공업 분야를 중심으로 추진되고 있으며, 개성공단에서도 「개성 공업지구지원에관한법률」 시행령 제9조 제1항의 4.에서 「여성기업지원에관한법률」에서도 지원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제조업 등 노동집약적 산업의 비중이 높은 점을 감안할 때 북측의 숙련된 여성인력을 활용할 수 있는 점은 장점이나, 자본 등이 취약한 여성기업의 진출을 위해서는 다양한 인센티브가 필요하다. 통일부 자료(2012)에 따르면, 2011년 8월말 기준으로, 개성공단 근로자 중 여성이 73%, 남성이 27%로 여성비율이 높아서 이를 고려한 근로환경 조성이 필요하다. 한편 남북 간 사회교류는 정부의 성향에 따라 교류 정도가 다르게 나타났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에서는 남북교류에 참여하는 민간주체가 확대되면서 협력사업 또한 다변화되었던 반면, 이명박 정부의 초기 대북정책은 이전의 두 정부에서 추진했던 대북 포용정책을 비판적인 입장에서 상생·공영정책을 추진하였으나 2008년 금강산관광객 피살사건과 2010년 천안함 폭침사건 이후 대북정책의 모든 분야가 위축되었다. 비공식적 참여는 평화 프로세스에 공식적인 일원으로 참가하지는 않지만 다양한 차원에서 평화 활동을 지원하는 것으로 정의할 수 있다. 르완다의 사례처럼 여성들은 지역사회 차원에서의 자조단체를 형성하여 소년병, 부상 피해자, 성폭력 피해자 지원, 고아 결연 사업 등을 지원하여 분쟁 후 지역사회의 회복에 기여하였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 지역사회에 만연한 불신을 완화함으로써 미시적인 관계 개선을 통해 향후 장기적인 평화 구축의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다. 아울러 거의 모든 사례들에서 여성단체들은 캠페인, 옹호활동을 통해 정부에의 요청사항을 가시화하고, 동 이슈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환기시켰으며 이는 공식 협상 프로세스와 평행적으로 진행되면서 협상 결과에 영향력을 발휘하였다. 종합적으로 살펴볼 때, 평화협상에 있어서의 여성의 참여와 여성 의제 반영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양측 협상단에 소수여도 여성이 포함되어야 하는 것이고, 소수이나마 여성이 포함된 이후에는 양측 여성 협상가들 간에 여성 의제 반영에 대한 공동의 목적의식이 결성되어야 한다. 그 이후에는 국내 여성 단체들의 결집과 특히 유엔 등의 국제기구 및 NGO 등 외부의 지원을 통해 이들 양측 여성 협상가들에게 기술적 지원을 함으로써 여성 의제가 협상에 반영되도록 해야 한다.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은 북한 식량사정이 악화됨에 따라 본격적으로 제기되었고, 1995년 수해로 북한이 국제사회 등에 인도적 지원을 요청해 온 것을 계기로 시작되었다. 현재까지 인도적 대북지원 방식은 당국 차원에서의 직접 지원 또는 민간단체 및 국제기구를 통한 간접 지원으로 추진되었는데 2011년 이후에는 당국 차원의 직접 지원은 없었다. 민간단체의 대북지원은 보건의료, 농축산, 환경, 인프라 등으로 분류하기도 하는데, 대상에 따라 어린이, 모자, 장애인, 기타 취약계층으로 나뉜다. 대북 인도적 지원사업은 시기별 정부 대북정책 기조에 따라 규모 등에서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으나, 남북관계가 경색된 이후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은 상대적으로 비중은 높아졌다.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사업은 우유나 밀가루 지원, 보육시설과 빵공장, 국수공장, 콩우유공장, 두부 공장 설립, 보육시설 개·보수 등으로 비교적 다양하게 추진되었으나 여성에 대한 지원이 모자패키지 형태로만 이루어지고 있어 여성의 건강권에 대한 고려는 매우 제한적인 것으로 보인다. 1993년 제정된 「귀순북한동포보호법」 이후 1997년에 개정된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로 기존의 귀순의 개념이 북한이탈로 대체되면서 자립·자활능력 배양에 정책의 초점이 변화하였다. 2000년대 이후 여성 비율이 큰 폭으로 증가하는 등 북한이탈주민 특성이 변화함에 따라 정부 지원정책도 다양화하여 특히 민간단체를 통한 지원사업이 활성화되었다. 그러나 북한이탈주민의 높은 여성 비율에도 불구하고 정착지원사업 중 여성을 특화한 사업은 많지 않은 상황이다. 대부분 고령자, 한부모, 장애 등 취약계층에 추가 지원하는 수준으로 추진되고 있으며, 일부 교육프로그램으로 여성특화교육을 강화하고 심리안정 및 건강회복 지원을 강화한다고는 하나 정착지원의 실질적 프로그램으로 이어지는 데 한계가 있다. 정부의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인식 개선사업은 2016년부터 본격적으로 추진되었는데, 탈북여성에 대한 이미지 역시 돌봄 등 기존의 여성성을 강조하는 이미지로 제작되고 있다.
지시문 (instruction)
다음 문맥을 읽고 질문에 답하시오.
질문 (question)
2007년 2차 남북정상회담 당시 여성 참여의 특징과 1차 정상회담 대비 변화된 점은 무엇인가?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1. 1과제 해석task_interpretation

    2007년 2차 남북정상회담의 여성 참여 양상과 1차 정상회담과의 비교를 통한 변화를 파악해야 한다.

  2. 2정보 추출information_extraction

    2차 정상회담의 여성 참여 요구 사항과 실제 참여 인원, 그리고 1차 정상회담과의 비교 데이터를 추출한다.

    • 2007년 2차 정상회담에서는 여성가족부 장관을 포함할 것을 요구했으나 여성 관련 의제가 없다는 이유로 제외되었다.
    • 특별 수행원 중 여성계 인사 3명, 기업 대표로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예술계 대표로 국악인 안숙선 등 5명의 여성이 참여하여
    • 비록 여성계의 요구인 30%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1차 정상회담 보다 여성의 대표성은 증가하였다.
  3. 3근거 선택evidence_selection

    2차 정상회담의 제외 사유, 참여 인원 구성, 1차 대비 대표성 변화를 보여주는 문구를 선택한다.

    • 여성가족부 장관을 포함할 것을 요구했으나 여성 관련 의제가 없다는 이유로 제외되었다.
    • 특별 수행원 중 여성계 인사 3명, 기업 대표로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예술계 대표로 국악인 안숙선 등 5명의 여성이 참여
    • 1차 정상회담 보다 여성의 대표성은 증가하였다.
  4. 4논리 통합logical_integration

    2차 정상회담에서는 여성가족부 장관 참여 요구가 거절되었으나, 여성계 인사와 기업/예술계 대표를 포함한 5명의 여성이 참여함으로써 1차 정상회담 때보다 여성의 대표성이 높아졌음을 연결한다.

  5. 5결론 도출conclusion_formulation

    2차 정상회담은 여성가족부 장관 참여가 제외되는 한계가 있었으나, 여성계 및 기업·예술계 대표 등 5명의 여성이 참여하여 1차 정상회담보다 여성의 대표성이 증가했다는 결론을 도출한다.

  6. 6답변 생성answer_generation

    도출된 결론을 바탕으로 질문에 대한 최종 답변을 작성한다.

근거 (evidence)
  • 2007년 2차 정상회담에서는 여성가족부 장관을 포함할 것을 요구했으나 여성 관련 의제가 없다는 이유로 제외되었다.
  • 특별 수행원 중 여성계 인사 3명, 기업 대표로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예술계 대표로 국악인 안숙선 등 5명의 여성이 참여하여
  • 비록 여성계의 요구인 30%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1차 정상회담 보다 여성의 대표성은 증가하였다.
  • 여성가족부 장관을 포함할 것을 요구했으나 여성 관련 의제가 없다는 이유로 제외되었다.
  • 특별 수행원 중 여성계 인사 3명, 기업 대표로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예술계 대표로 국악인 안숙선 등 5명의 여성이 참여
  • 1차 정상회담 보다 여성의 대표성은 증가하였다.
최종 답변 (final_answer)
2007년 2차 정상회담에서는 여성가족부 장관을 포함하라는 요구가 있었으나 여성 관련 의제가 없다는 이유로 제외되었다. 하지만 특별 수행원 중 여성계 인사 3명, 기업 대표(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예술계 대표(안숙선) 등 총 5명의 여성이 참여하였다. 이는 여성계의 요구치인 30%에는 미치지 못했으나, 1차 정상회담과 비교했을 때 여성의 대표성은 증가한 결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