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맥 (context)
1960년대 중반 김일성이 1인 지배체제를 확고히 구축한 이후에 북한은 김일성 독재의 정당성 강화를 위해 본격적으로 국방 체육을 군중체육과 결합하였다. 군중체육은 곧 ‘주체사상’의 경제적 실현을 위해 천리마운동과 결합되었고 생산성 향상이라는 명제와 연결되었다. 1970년대는 냉전시대로 민주주의 체제와 사회주의 체제간의 스포츠전쟁이 한참이었다. 양 진영의 엘리트 선수들의 승리는 체제의 우월성을 과시하는 이미지상징이 되었다. 이 시기 북한에서도 체육은 생산성 향상의 참여중심 체육이면서 체제 우월성을 증명하는 선전의 도구로 적극 활용되었다. 1980년대에도 김정일은 ‘주체체육’과 체육의 발전을 통해 노동력 및 국방력 강화와 국제사회에서의 위상 높이기를 도모했다. 그러나 1990년을 전후하여 시작된 경제난으로 체육기반이 약화되어 실질적 발전은 이루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김정일은 체제 유지를 위해 매달 두 번째 일요일을 ‘체육의 날’로 지정하는 등 체육의 대중화와 생활화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구하고자 노력했지만 부족한 재정지원, 주민들의 개인주의화, 체육활동보다 경제활동에 대한 주민들의 관심 등으로 성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체육을 매개로 남한과의 관계 개선에서 어느 정도의 성과는 거두었다고 볼 수 있다.
둘째, 핵보유국 의지를 결코 포기하지 않는 김정은 정권과 국제사회와의 타협 국면 전환, 전환 이후 해법 모색 및 점진적 프로세스 과정들이 사실상 쉽지 않고 만만치 않은 시간을 소요케 할 것으로 예측되기 때문이다. 북한은 2006년 1차 핵실험 이후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를 2017년 말 현재 9번째 받고 있다. 최근의 2375호 제재 조치로 북한은 외화벌이의 90% 이상에 해당되는 3대 수출 상품인 광물자원, 의류위탁가공 제품, 수산물 등의 수출 규제뿐만 아니라, 석유 제품에 대한 수입 규제도 받게 되었다. 여기에다 미국의 촘촘한 양자제재도 가중되고 있는 상황이다. 불량국가와 국제사회 간에 타협 국면이 조성되고 해법 프로세스들이 만들어지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됨을 이란, 쿠바 국가들의 사례가 보여준다. 이러한 조건 속에서 결국 김정은 정권은 향후에도 ‘북한식 변화 경로’를 반복해 나갈 것으로 판단되고 있다.
두 차례의 북·일 정상회담에도 불구하고 송환된 유골 진위 논란과 북한의 핵과 미사일 실험으로 북일 관계 개선은 쉽게 진전되지 않았다. 2004년 5월 22일 김정일과 고이즈미 총리는 1년 8개월 만에 제2차 정상회담을 갖고 수교회담을 재개하기로 합의하였다. 북한에 납치되었다가 사망한 후 2004년 12월 일본으로 송환된 요코타 메구미의 유골 진위 여부 논란이 증폭되면서 일본 국민의 대북 감정이 악화되었고, 북한은 납치 문제가 모두 해결되었다고 주장하면서 반발하였다. 북한이 2006년 7월 5일 미사일 발사와 10월 9일 1차 핵실험을 강행하자 일본은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를 주도하고 대북 독자제재 조치를 발표하였다. 북한이 2009년 4월 장거리 미사일 발사와 5월 2차 핵실험을 강행하자 일본은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 제1874호(2009.6.12.)에 동참하면서 대북 수출 전면 금지 등 독자적으로 대북제재 강화를 통한 압박 전략을 구사하였다.
북한은 아베 정부 출범 이후 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위한 노력에 적극 나서고 있다. 2013년 5월 납북자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이지마 내각 관방 참여가 방북하고, 2014년 북·일 간 국장급회담이 수차례 개최되었다(2014.3., 2014.5., 2014.7.). 특히 5월 26~28일 스웨덴에서 진행된 북·일 국장급 회담(스톡홀름 합의)에서 북한 측은 ‘특별조사위원회’를 설치하여 행방불명자를 포함한 납북 일본인 전면 재조사, 재북 일본인 유골 조사를 실시하기로 합의하였다. 그러나 2016년 초 북한의 4차 핵실험에 대응하여 일본이 조총련 간부 재입국 금지, 대북 송금액 제한 등의 독자제재안을 발표하자 북한은 이를‘스톡홀름 합의 파기’라고 반발하면서‘재북 일본인 재조사 중단 및 특별조사위원회 해체’를 발표하였다.
김정은 시대 대일본 외교는 경제적 실리 확보와 중국 의존 일변도 정책의 탈피라고 평가받는다. 북한 입장에서 3차 핵실험 이후 유엔 제재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기 시작한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낮춰야하는 과제가 있다. 북한은 일본의 대북 독자제재를 중단해야 중국에 대한 경제적 의존도를 낮추고 다원화된 외교를 추구할 수 있다. 일본 또한 중국을 견제하고 동아시아에서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북한과의 관계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일본의 아베 정부도 자국 내 정치적인 요인으로 인해 납북자 문제와 북한의 핵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대북 독자제재를 중단하기 어렵다. 일본은 국제사회의 북한의 핵과 미사일 실험에 대한 유엔 대북제재에 동참하는 한편 독자제재를 추진하였다. 2016년 8월 북한의 미사일이 사상 처음으로 일본의 배타적 경제수역(EEZ)에 떨어졌고, 2017년 8월·9월 북한이 실험 발사한 중거리 미 사일이 연이어 일본 상공을 지나갔다. 이에 일본의 아베 정부는 강력한 대북 규탄 성명과 함께 한반도 인근 미·일 합동 군사훈련 등을 실시하였다. 2017년 북한의 6차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 이후 일본은 대북 독자제재안을 발표하고,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안 제2375호, 제2397호 채택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였다.
유럽연합은 북한 인권 문제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유럽연합 주도로 2003년 제59차 유엔 인권위원회(인권이사회의 전신)에서 최초로 북한 인권 결의가 채택되었으며, 2005년부터는 유엔 총회도 북한 인권 결의를 채택하여 북한 인권 상황의 심각성에 대해 우려를 표하고 개선을 촉구하고 있다. 유럽연합은 2003년부터 현재까지 유엔 북한 인권 결의 작성국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이러한 유럽연합의 북한 인권 개선 노력으로 인해 북한과 유럽연합 간 직접 대화가 단절되기도 했다. 김정은 정권은 유럽연합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교류를 지속하였다. 2011년 3월 최태복 최고인민회의 의장이 영국을 방문한 것에 이어, 2014년 9월 북한 강석주 노동당 비서가 독일과 벨기에, 스위스, 이탈리아를 방문하고, 유럽연합 가입국 의원 및 유럽 의회 대표단 등이 북한을 방문하기도 하였다. 또한 2015년 6월 북한과 유럽연합(EU)은 제14차 국장급 평양 정치대화에서 핵과 미사일, 인권 문제를 논의하였으나 합의를 보지 못하였다.
북한은 2000년대 남북관계 개선과 함께 2010년까지 유럽연합 25개 회원국(프랑스, 에스토니아 제외)과 외교관계를 수립하였다. 북한은 이탈리아와 대사급 외교관계 수립(2000.1.)을 시작으로 영국(2000.12.), 독일(2001.3.)과 외교관계를 맺었다. 북한은 2002년 대외 결제 수단으로 미국 달러화 대신 유로화 사용을 결정하기로 하였으나, 핵실험, 인권 문제 등으로 유럽연합과의 관계 개선도 어려움을 겪었다. 2000년대에도 북한은 적극적으로 동남아시아 국가들과의 관계 강화에 노력하였다. 지도자들의 북한 방문을 유도하는 등 주변 국가와의 관계 개선에 주력하였다. 북한의 핵실험, 식량 차관 등의 문제로 동남아 국가들과의 관계 개선 성과는 미미하였다.
지시문 (instruction)
다음 문맥을 읽고 질문에 답하시오.
질문 (question)
북한이 2016년 초 일본의 독자제재안 발표에 대응하여 취한 조치는 무엇인가?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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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과제 해석
task_interpretation일본의 독자제재 발표에 따른 북한의 대응 조치를 파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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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정보 추출
information_extraction2016년 초 일본의 독자제재 내용과 그에 따른 북한의 반응을 포함한 문장을 추출한다.
- 2016년 초 북한의 4차 핵실험에 대응하여 일본이 조총련 간부 재입국 금지, 대북 송금액 제한 등의 독자제재안을 발표하자 북한은 이를‘스톡홀름 합의 파기’라고 반발하면서‘재북 일본인 재조사 중단 및 특별조사위원회 해체’를 발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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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근거 선택
evidence_selection북한이 발표한 구체적인 대응 내용인 '재북 일본인 재조사 중단 및 특별조사위원회 해체'를 핵심 근거로 선택한다.
- ‘재북 일본인 재조사 중단 및 특별조사위원회 해체’를 발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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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논리 통합
logical_integration일본의 제재가 북한의 기존 합의(스톡홀름 합의)를 파기한 것으로 간주되어, 북한이 이에 맞서 재조사 중단과 위원회 해체를 선언했음을 연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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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결론 도출
conclusion_formulation북한은 일본의 제재를 스톡홀름 합의 파기로 규정하고 재북 일본인 재조사 중단 및 특별조사위원회 해체를 발표했다는 결론을 도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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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답변 생성
answer_generation질문에 대한 직접적인 답변을 작성한다.
근거 (evidence)
- 2016년 초 북한의 4차 핵실험에 대응하여 일본이 조총련 간부 재입국 금지, 대북 송금액 제한 등의 독자제재안을 발표하자 북한은 이를‘스톡홀름 합의 파기’라고 반발하면서‘재북 일본인 재조사 중단 및 특별조사위원회 해체’를 발표하였다.
- ‘재북 일본인 재조사 중단 및 특별조사위원회 해체’를 발표하였다.
최종 답변 (final_answer)
북한은 일본의 제재를 ‘스톡홀름 합의 파기’라고 반발하며, ‘재북 일본인 재조사 중단 및 특별조사위원회 해체’를 발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