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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평화통일 어떻게 만들 것인가 제네바 합의 이후 20년의 교훈과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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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Y_201702060545422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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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기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발행연도
2014
KDC
340
답변 불가 (is_impossible)
True
문맥 (context)
전두환 정부는 1982년 1월 22일 남북한 기본관계에 관한 잠정협정의 체결을 제안하였다. 동 잠정협정 속에는 호혜평등에 입각한 상호관계 유지, 분쟁의 평화적 해결, 체제인정과 내정불간섭, 휴전(정전)체제의 유지·군비경쟁 지양과 군사적 대치상태 해소, 교류협력, 서울·평양 상주연락대표부 설치 등이 포함되었다. 이어 1982년 2월 1일 서울-평양 도로 연결, 이산가족 상봉, 설악산·금강산 자유관광 공동구역 설정, 공동어로구역 설정 등 사회개방 및 교류협력 분야 이외에 긴장완화 분야에서 비무장지대 공동경기장 시설 마련·이용, 자연생태계 공동학술조사, 군사시설 완전철거, 군사책임자간 직통전화 설치·운용 등 20개 시범실천사업을 제안하였다. 북한에 대한 인식은 무력에 의한 공산화 통일 야욕을 버리지 않고 있으며, 폐쇄적이고 병영화된 무력도발 집단이라는 불신에 토대를 두고 있었다. 통일은 북한 지역에 자유민주주의를 확산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평화통일을 위해서는 남북 간 신뢰를 쌓고 대화를 통해 전쟁을 방지하고 비정상적인 남북관계에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1960년대에 ‘선 건설, 후 통일’의 기치를 내건 박정희 정부는 1970년 8월 15일 ‘평화통일 기반조성을 위한 접근방법’ 구상을 통해 대화와 교류를 통한 남북관계 개선, ‘선 평화 후 통일’ 등의 노선을 내세웠다. 남북한의 첫 합의서인 7.4 남북공동성명에서는 통일 3원칙 이외에, 긴장상태 완화, 신뢰 분위기 조성, 중상·비방 중지, 무장도발 금지, 남북 간 다방면 교류, 적십자회담 개최, 서울-평양 간 직통전화 개설, 남북조절위원회 구성·운영, 합의사항의 성실한 이행 등에 합의하였다. 1973년 6월의 ‘6.23 평화통일외교선언’에서는 평화통일 노선 위에서 상호 내정불간섭 및 상호 불침략, 남북대화 지속 노력, 남북한 국제기구 동시 참여 및 유엔 동시가입 불반대, 이념과 체제가 다른 국가에 문호 개방 및 개방 촉구 등을 밝혔다. 이어 1974년 1월 18일 대통령 연두기자 회견에서 남북 상호불가침협정을 체결하여 통일시까지의 평화공존을 제안하였고, 1974년 8월 15일 ① 평화정착을 위한 상호 불가침협정 체결, ② 문호개방, 신뢰회복을 위한 남북대화의 성실한 진행과 다각적 교류·협력 실현, ③ 토착 인구비례에 의한 남북한 자유총선거 등 ‘평화통일 3대 기본원칙’을 천명하였다. 이명박 정부는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 기간 동안 나타난 남북관계의 외형적 성장이 질적 발전을 이끌어내지 못했다고 보았다. 한국의 지원과 협력에 상응하는 북한의 변화를 끌어내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북한이 선군정치를 고수하고, 개방과 변화에 나서지 않으며, 남북 간 긴장완화와 신뢰구축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 북핵문제가 최우선과제로 다루어지지 않았으며, 두 정부 아래서의 대북정책에 대한 국민의 우려와 비판이 증가했다고 평가했다. 이에 따라 남북관계를 실용과 생산성의 기준에 따른 성과를 내도록 추진하고 원칙에 철저할 것임을 강조하였다. 중점 추진과제로는 진정성 있는 남북대화, 한반도 평화정착, 상생과 호혜의 남북경협, 사회·문화 교류 활성화, 인도적 문제 해결 등을 제시하였다. 이명박 정부는 소위 ‘원칙 있는 남북관계 발전’ 추구 노선을 견지하였으며, 정책 목표는 ‘비핵·개방·3000 구상’으로 상징되었다. 국가안보전략으로 이명박 정부는 ①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 유지, ② 국민안전 보장 및 국가번영 기반 구축, ③ 국제적 역량 및 위상 제고로 설정하고, 그 기조의 하나로 새로운 평화구조 창출을 제시하였다. ‘새로운 평화구조 창출’이란 남북관계의 미래지향적 발전, 한미 간 공통의 가치와 신뢰를 바탕으로 한반도 평화정착과 지역안정 및 세계평화에 기여하는 ‘21세기 전략동맹’ 추진, 그리고 주변국들과 긴밀한 협력관계 구축 등이다. 세부과제로 군사적 신뢰구축 및 군비통제 추진을 제시하였다. 이명박 정부는 스스로의 정책을 “원칙을 바탕으로 유연한 대북정책을 통해 남북관계를 정상적으로 발전시켜 나가고자 노력하였(다)”고 하면서, 그러나 “북한이 남북대화를 거부하고 강경조치를 지속하면서 남북관계를 악화시켰(다)”고 평가하였다. 결국 북한이 근본적인 태도를 변하지 않았기 때문에 남북관계에서 실질적인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남북관계가 악화되었다고 북한에 모든 원인을 돌렸다.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망,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등 북한의 공세가 간단없이 지속되었으며 이러한 요인들이 남북관계의 악화에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이나, 남북관계의 퇴보를 어느 일방의 잘못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 강경정책에 대해 북은 입에 담을 수 없는 비난과 욕설을 퍼붓고 목숨과 생명을 앗아가는 군사적 도발을 서슴치 않았다. 천안함 사태와 연평도 도발은 한순간에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 실패를 북의 책임으로 결론짓게 만들었다. 접촉사고를 내고 시비를 가리던 와중에 먼저 욕설을 해대고 손찌검을 하면 한순간에 그가 모든 책임을 뒤집어쓰는 것과 같다. 결국 남북관계 경색의 과정에서 오히려 국민 여론은 대북 강경과 대결 상황을 지지하게 되었고 그만큼 남북관계 개선은 더 어렵게 되었다. 북측에도 사방의 적으로 둘러싸여 있다는 이른바 ‘피포위’(under-siege) 의식에 기초해서 수령제와 선군주의를 정당화하고 있는 바, 피포위 의식은 핵심적으로 남북 적대관계를 전제로 형성되는 것이다. 북의 선군주의는 핵무기 보유에 집착하는 체제유지 경향성과 수령제와 후계자론을 고수하는 정권유지 경향성이 결합된 고도의 전체주의와 획일주의의 표현이다. 그리고 이는 피포위 의식에 토대해 정당화되고 있다. 피포위 의식을 재생산하기 위해 북한 내부적으로 남북관계는 적대성을 일정정도 유지해야할 필요가 있고 이는 곧 남북관계 개선을 제약하는 요인이 된다. 남북관계를 어렵게 하는 요인은 남과 북 내부에도 존재한다. 남측에 자리잡은 염북과 혐북 의식이 남남갈등의 심화와 함께 확산되었고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동력과 기대는 상당부분 사라졌다. 남북관계가 지속되면서 한국 사회에는 북에 대한 염증과 혐오가 지속적으로 증대되는 기이한 결과가 나타났다. 특히 이명박 정부를 지나면서 남북관계는 최악으로 치달았고 그 과정에 강경 대결의 남북관계를 지지하는 여론이 압도적으로 높아졌다. 남북관계가 악화되면서 역설적이게도 관계 개선의 필요성 대신 대북 강경론과 북한 책임론이 지배적인 여론으로 자리잡은 셈이다. 이명박 정부의 남북관계 파탄은 북한에 대한 염증과 혐오를 더욱 강고하게 만드는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가져왔다. 3대 세습을 목도하고 핵실험을 겪고 천안함 사태와 연평도 도발을 당하면서 국민들은 厭北 의식과 嫌北 의식이 확고히 자리잡게 되었다. 북과는 잘 지낼 수 없다는 회의가 깊어졌고 북은 어찌해볼 수 없는 집단이라는 인식이 확산되었다. 북한의 과도한 도발과 강경 맞대응이 지속되면서 상호 책임소재를 따져보기 전에 이미 대북 강경론은 정당화되어 버렸다. 북한과의 화해협력과 정상적 관계개선에는 아예 손사래를 치며 고개를 젓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1970년대 초 남북대화가 시작된 이래, 특히 노태우 정부 이후 역대 한국 정부는 나름대로 남북관계 개선과 평화정착, 그리고 평화통일의 기반 구축을 위한 정책을 제시하고 추진하였다. 정책 추진과정에서 때로는 일시적인 성과를 거두고 때로는 정책의 성과가 무색할 정도로 퇴보하는 상황도 경험하였다. 한국 정부의 대북‧통일정책은 그 기본 노선과 정책기조에 있어서는 상당한 지속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정책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추진하는 방법의 토대가 되는 북한에 대한 인식과 상황에 대한 판단 등에 있어서 차이가 있었으며, 그 차이는 접근 방법의 차이로 나타났고 이에 대해 남한 사회에서는 격렬한 논쟁과 갈등이 유발되기도 하였다. 남북관계는 서로의 입장에서는 선의의 국가 간의 관계가 아니다. 즉 본질적으로 상대방에 대한 불신을 전제로 하고 있다. 이러한 불신을 깨뜨리기 위해서는 남과 북이 모두 자신의 정책을 일방적으로 상대방이 수용하도록 하는 정책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물론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 민주의 이념과 가치, 국제사회의 보편적 기준과 관행, 규범 등을 양보할 수는 없다. 그러나 행위의 상응성과 교호성을 통한 신뢰의 구축을 위해서는 자신의 이익을 어느 정도 양보할 수 있는 열린 자세가 필요하다.
지시문 (instruction)
다음 문맥을 읽고 질문에 답하시오.
질문 (question)
이명박 정부가 제시한 '비핵·개방·3000 구상'을 달성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어떤 경제적 지원책을 마련하였는가?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1. 1과제 해석task_interpretation

    질문은 이명박 정부의 정책 목표인 '비핵·개방·3000 구상'과 관련된 구체적인 경제적 지원 방안을 묻고 있다.

  2. 2정보 추출information_extraction

    문맥에서 이명박 정부의 정책 목표인 '비핵·개방·3000 구상'과 중점 추진과제(진정성 있는 남북대화, 한반도 평화정착, 상생과 호혜의 남북경협, 사회·문화 교류 활성화, 인도적 문제 해결)에 대한 정보를 추출한다.

    • 정책 목표는 ‘비핵·개방·3000 구상’으로 상징되었다.
    • 중점 추진과제로는 진정성 있는 남북대화, 한반도 평화정착, 상생과 호혜의 남북경협, 사회·문화 교류 활성화, 인도적 문제 해결 등을 제시하였다.
  3. 3근거 선택evidence_selection

    이명박 정부의 정책 목표와 중점 추진과제는 명시되어 있으나, '비핵·개방·3000 구상'을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경제적 지원책(금액, 방식, 대상 등)'에 대한 세부 정보는 누락되어 있다.

    • 정책 목표는 ‘비핵·개방·3000 구상’으로 상징되었다.
  4. 4논리 통합logical_integration

    문맥에는 '상생과 호혜의 남북경협'이라는 추진 과제가 언급되어 있으나, 이것이 '비핵·개방·3000 구상'의 구체적인 경제적 지원 내용(예: 3000이라는 수치의 경제적 의미나 구체적 지원 규모)을 설명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문맥 내의 정보만으로는 구체적인 지원책을 확정할 수 없다.

    • 중점 추진과제로는 진정성 있는 남북대화, 한반도 평화정착, 상생과 호혜의 남북경협, 사회·문화 교류 활성화, 인도적 문제 해결 등을 제시하였다.
  5. 5결론 도출conclusion_formulation

    질문이 요구하는 '구체적인 경제적 지원책'은 문맥에 명시되어 있지 않으며, 정책 목표의 명칭만 제시되어 있을 뿐 그 세부 실행 방안은 알 수 없다.

  6. 6답변 생성answer_generation

    주어진 문맥만으로는 답을 확인할 수 없음을 최종 답변으로 결정한다.

근거 (evidence)
  • 정책 목표는 ‘비핵·개방·3000 구상’으로 상징되었다.
  • 중점 추진과제로는 진정성 있는 남북대화, 한반도 평화정착, 상생과 호혜의 남북경협, 사회·문화 교류 활성화, 인도적 문제 해결 등을 제시하였다.
최종 답변 (final_answer)
주어진 문맥만으로는 답을 확인할 수 없다.
분석 (analysis)
문맥에는 이명박 정부의 정책 목표인 '비핵·개방·3000 구상'과 중점 추진과제가 언급되어 있으나, 해당 구상을 뒷받침하는 구체적인 경제적 지원책에 대한 정보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문맥 외부의 추가적인 지식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