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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나라사랑 제84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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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TS-00119997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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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기관
국가보훈처
발행연도
2016
KDC
190
답변 불가 (is_impossible)
False
문맥 (context)
오늘의 한반도 주변 현실을 보면 부정하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상황은 너무나 엄중하다. 북한과 같은 비합리적 집단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은 무엇을 말하는가? 앞으로 북한은 어떤 요구조건을 내세우면서 수용되지 않을 경우 핵무기를 사용하겠다고 협박할 것이다. 그러한 과정에서 핵무기가 우발적이거나 충동적으로 사용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북한이 남한을 향해 핵무기 공격을 하면 미국이 응징보복으로 북한을 공격할 것이고, 그러면 북한은 모든 핵무기를 남한에 쏟아 부을 가능성이 크다. 상상조차 하기 싫은 일이 벌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 민족의 대부분이 죽거나 부상하게 되고, 도시는 붕괴될 것이며, 좁은 한반도는 불모의 지대로 변할 것이다. 어쩌면 우리 민족의 역사가 종료될 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전략적 대응책은 무엇인가. 현 상황에서 북한의 핵무기 사용을 억제할 수 있는 것은 미국 밖에 없다.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외교력과 핵전력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이 한반도를 공격할 경우 ‘한미동맹’에 따라 미국의 대규모 핵전력에 의한 응징보복을 당할 것이다. 이것이 두려워 북한은 핵사용을 마음먹기가 쉽지만은 않다. 그런 면에서 오늘의 상황에서 첫 번째 전쟁 억제력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한미동맹의 강화’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외부 전문가들은 북한의 핵능력을 높게 평가하고 있다. 미국의 북한핵 전문가인 헤커(Sigfried Hecker)는 작년 1월에 북한이 이미 플루토늄 핵무기 6개와 우라늄 핵무기 6개로 모두 12개의 핵을 보유하고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또 올브라이트(David Albright)는 2020년에 북한은 최소 20개, 최대 100개까지 핵무기를 보유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이번 제4차 핵실험을 통해 북한은 진정한 수소폭탄에는 성공하지 못한 것으로 판단되지만, 그 이전 단계인 증폭핵분열탄(bosted fission bomb) 개발에는 성공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 무기는 동일한 양의 핵물질로 그 위력만 2~5배 증대시키는 형태인데, 소규모 핵융합을 통해 다량의 중성자를 일시에 공급함으로써 핵분열 연쇄반응의 효율을 높인다. 소규모 핵융합을 위해서는 중수소와 삼중수소가 필요한데, 중수소는 바닷물에서 쉽게 추출할 수 있다. 다만 삼중수소는 리튬6에 중성자를 대량으로 조사하는 과정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원자로가 있어야 하는데, 북한이 2007년 6자회담 합의에 의하여 가동을 중지했던 영변의 5MWe 원자로가 이러한 목적으로 가동됐을 가능성이 있다. 북한이 증폭핵분열탄을 만들었다면, 이 과정에서 사용한 기술과 삼중수소를 활용하여 미래에는 수소폭탄을 제조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핵 위협이 현실화된 오늘, 우리는 아직도 핵무기의 무서움을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 핵무기가 폭발하면 지상에 대형 구덩이와 대규모 화염이 발생하며, 강력한 폭풍이 전달되고 버섯 모양의 구름이 형성된다. 그 과정에서 열복사선이 빛의 속도로 전파돼 화재를 발생시키고, 이들이 결합해 인명을 살상하면서 건물을 파괴시킨다. 또한 초기방사선으로서 감마선과 중성자가 발산되고, 낙진(落塵)이 잔류방사능을 발산하면서 광범위한 지역을 오염시켜 인근은 죽음의 지역으로 전락하고 만다. 1945년 8월 일본의 히로시마는 약 16KT, 나가사키에는 약 20KT의 원자폭탄이 투하된 바 있고, 그 결과 히로시마에서는 9~16만6,000명, 나가사키에서는 6~8만명 정도가 사망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피폭자의 수는 70만명 이상이라고 한다. 1945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와 같은 동일한 핵폭탄이 서울에서 폭발할 경우 인구밀도가 높아서 6~10배 정도 많은 사상자가 예상된다는 분석도 있다. 따라서 북한이 개발한 것으로 추정되는 10~20kt의 핵무기가 서울에서 폭발하면 100만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할 것으로 판단된다. 이런 엄중한 상황을 감안하면 이제 우리 국민들은 일치단결해 현재의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 북한 핵은 우리의 생존이 달린 문제이고, 따라서 우리가 해결책을 마련해야 한다. 주인 스스로가 보리를 베고자 할 때 종달새가 집을 옮기는 것처럼, 우리 스스로가 나서서 우리가 해야 할 일, 또는 국제사회로부터 지원을 받아야할 일을 식별하고, 관련된 모든 조치들을 체계적으로 구현시켜야 한다. 일각에서 주장하고 있는 핵무장론은 해결책이 아니다. 우리가 핵무기를 가진다고 하더라도 안전은 보장되지 않고 오히려 한반도에서 핵전쟁 가능성이 높아질 뿐이다. 게다가 한국은 플루토늄이나 농축우라늄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핵무기 개발이 불가능하다. 문제는 핵무장 여부를 둘러싼 찬반 논란을 하느라 북핵 해결을 위한 방안들의 구체화만 지체시킬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고 북한과 극단적인 대결만을 할 수 없다는 게 고민이다. 북한은 핵무기 개발로 군사적으로 우세해졌고, 따라서 한국은 그것을 감수하면서 남북관계를 진전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캐나다는 6·25전쟁이 일어나자 육·해·공군을 모두 파병했다. 미국과 호주에 이은 세 번째의 육·해·공군 파병이었다. 결코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캐나다는 6·25전쟁이 발발하고 유엔이 한국지원에 대한 결의를 하게 되자 이를 적극 지지하고 나섰다. 라우렌트(Louis St. Laurent) 수상은 1950년 6월 30일 의회 연설을 통해 “캐나다가 유엔의 지원결의를 이행하는데 참여하는 것은 유엔회원국의 일원으로서 평화를 회복하기 위한 집단안보 활동의 일부를 캐나다가 담당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하면서 파병의사를 명확히 밝혔다. 캐나다는 자국의 국방환경을 고려하여 먼저 해군을 파병했고, 이어 공군과 지상군을 파병했다. 캐나다는 1950년 7월 4일 유럽을 순방중인 해군 구축함 3척을 먼저 한국해역으로 파견했다. 캐나다 해군은 하와이의 진주만을 경유, 오랜 항해 끝에 7월 30일 한국해역에 도착한 후 미 극동해군에 배속되어 해상작전활동에 들어갔다. 캐나다 해군은 전쟁기간 내내 3척의 구축함을 유지한 채, 동서해안을 넘나들며 해안초계, 항공모함 엄호, 열차파괴 작전 등의 다양한 임무를 수행하며 유엔군의 해상작전을 지원했다. 콜롬비아는 남아메리카의 유일한 참전국으로 해군과 육군을 파병했다. 6·25전쟁이 발발했을 때 남아메리카 국가들은 한국에 대한 지원의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자국의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선뜻 나서기가 힘든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콜롬비아가 파병을 결정하게 된 데에는 정부, 의회, 국민들의 유엔안보리 결의에 대한 절대적 지지와 미국의 협조가 크게 작용했다. 콜롬비아는 19세기 초에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한 이래 줄곧 가톨릭 교리를 신봉하면서 세계평화와 자유를 부르짖어 왔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유엔의 창설회원국으로서의 긍지와 자부심을 갖고 어떤 나라보다 유엔헌장을 충실히 따르고자 노력했다. 콜롬비아가 한국에 군대를 파병한 데에는 그런 종교적, 역사적, 정치적 배경이 넓게 깔려 있었다. 1950년 7월 중순, 유엔사무총장으로부터 파병요청을 받은 콜롬비아는 먼저 해군 프리깃함 1척을 파견하기로 결정하고, 9월 18일에 유엔과 미국에 이를 통보했다. 곧이어 육군부대 파병도 검토했다. 하지만 지상군 파병에는 여러 가지 문제로 인해 시일을 끌다가 파병부대의 수송, 훈련, 무기, 식량 등 일체를 미국이 부담한다는 약속을 받고 육군을 파병하게 됐다. 콜롬비아의 파병은 1951년 중순에 이루어졌다. 1951년 4월 중순 중공군의 4월 공세로 전쟁이 다시 가열되자 해군의 프리깃함 파딜라호가 콜롬비아를 출발해 1951년 5월 8일, 일본 사세보 항에 도착했다. 콜롬비아 해군은 미 극동해군에 배속됐으나, 3일 후 영국함대가 주축이된 서해안 봉쇄전대로 다시 배속돼 서해상에서 해상초계작전에 들어갔다. 이후 콜롬비아 해군은 주로 동해상에서 활동하며 적 해안포대 포격, 소해함 엄호작전, 수송선단 호위작전을 수행했다. 콜롬비아 해군은 전쟁 기간 내내 프리깃함 1척을 유지하며 소형함정이 할 수 있는 다양한 임무를 수행함으로써 유엔군의 해상작전에 기여했다. 콜롬비아는 해군에 이어 곧 육군도 파병했다. 1,080명으로 편성된 콜롬비아 보병대대는 1951년 5월 21일 미 수송선을 타고 출발, 25일간의 긴 항해 끝에 6월 15일 부산에 도착했다. 부산에서 콜롬비아 대대는 이승만 대통령과 한미 양국의 고위 장성 그리고 부산시민들로부터 열렬 한 환영을 받았다. 한국 전선에서 콜롬비아 대대는 미 제24사단 제21연대에 배속돼 1951년 8월 6일부터 전투에 투입됐다. 이때 콜롬비아 대대는 화천 북쪽의 흑운토령전투를 시작으로 금성 진격전 등 수없이 많은 전투를 치렀다.
지시문 (instruction)
다음 문맥을 읽고 질문에 답하시오.
질문 (question)
북한이 증폭핵분열탄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삼중수소를 확보하기 위해 활용했을 가능성이 있는 시설은 무엇인가?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1. 1과제 해석task_interpretation

    북한의 증폭핵분열탄 개발과 삼중수소 확보 사이의 연관성을 파악하여 특정 시설을 찾아낸다.

  2. 2정보 추출information_extraction

    증폭핵분열탄 개발에 필요한 요소와 삼중수소 제조에 필요한 조건을 추출한다.

    • 소규모 핵융합을 위해서는 중수소와 삼중수소가 필요한데
    • 삼중수소는 리튬6에 중성자를 대량으로 조사하는 과정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원자로가 있어야 하는데
  3. 3근거 선택evidence_selection

    삼중수소 제조를 위해 원자로가 필요하다는 점과 북한의 특정 원자로 정보를 선택한다.

    • 삼중수소는 리튬6에 중성자를 대량으로 조사하는 과정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원자로가 있어야 하는데
    • 북한이 2007년 6자회담 합의에 의하여 가동을 중지했던 영변의 5MWe 원자로가 이러한 목적으로 가동됐을 가능성이 있다.
  4. 4논리 통합logical_integration

    삼중수소 제조에는 원자로가 필수적이며, 북한이 가동을 중지했던 영변의 원자로가 해당 목적으로 다시 가동되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문맥을 결합한다.

  5. 5결론 도출conclusion_formulation

    따라서 북한이 삼중수소를 확보하기 위해 활용했을 가능성이 있는 시설은 영변의 5MWe 원자로이다.

  6. 6답변 생성answer_generation

    질문에 대한 최종 답변을 생성한다.

근거 (evidence)
  • 소규모 핵융합을 위해서는 중수소와 삼중수소가 필요한데
  • 삼중수소는 리튬6에 중성자를 대량으로 조사하는 과정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원자로가 있어야 하는데
  • 북한이 2007년 6자회담 합의에 의하여 가동을 중지했던 영변의 5MWe 원자로가 이러한 목적으로 가동됐을 가능성이 있다.
최종 답변 (final_answer)
영변의 5MWe 원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