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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향전의 수용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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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TS-00047966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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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TS-00047966808_3
발행기관
月印
발행연도
2007
KDC
000
답변 불가 (is_impossible)
True
문맥 (context)
이와 같은 쓸 수 있는 텍스트에 대한 높은 가치 평가는 텍스트의 생산자와 사용자, 소유자와 소비자, 저자와 독자를 무자비하게 가르고 있는 문학 제도에 대한 비판적 인식 아래 이루어진 것이다. 바르뜨는 독자가 이런 제도적 분리에 의해 문학 텍스트에 대해 일종의 나태함에 빠지게 된다고 한다. “독자는 자동사적이며(intransitive), 심각하다. 독자는 기표의 신비나 글쓰기의 즐거움에 접근하지 못하며, 그에게는 단지 텍스트를 받아들일 것인가, 거부할 것인가라는 보잘 것 없는 자유만을 갖고 있을 뿐”이라고 바르뜨는 현재 독자의 상황을 진단한다. 바르뜨는 읽기를 ‘국민투표’에 비유한다. 국민투표의 함의를 좀더 자세히 살피기 위해 ‘주권’의 문제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홉스가 주권을 국가와 지배자에게 이전시켰던 반면 루소는 인민들이 주권을 보유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주권은 인민들로부터 기원하며 인민들에게 머물러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홉스와는 다른 방향에서 주권에 관한 주장을 펼치면서 루소는 개인들이 자신의 삶을 규제하는 법의 제정에 직접 참여하여야 한다고 역설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국민투표라는 형식이 얼마나 비민주적인 것인지 드러난다. 이와 같은 정치적인 상황은 현재의 문학 문화에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텍스트 생산자와 교육자와 비평가를 포함한 텍스트 관리자들은 학습 주체를 포함한 텍스트의 소비자들의 ‘지배자’이며, 피지배자와 지배자를 가르는 문학 제도는 일종의 ‘국가’이다. 현재 정치 상황에서 주권이 국가에게 있으며, 개인들이 자신의 삶을 규제하는 법에 대해 아무런 권한이 없듯이 문학 텍스트의 생산과 평가, 관리는 오직 전문가의 몫이며, 상호텍스트적 과정들로 이루어진 문학 문화에 대해서 독자들의 참여는 배제되어 있다. 그리고 국민투표를 행하면서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현대 사회의 대중과 바르뜨가 말한 “나태한 상태에 빠진 독자”는 유사한 상황에 있다. 대중이 자신의 삶에 대한 규칙, 법의 제정을 정치가에게 위임하듯이 독자는 비평 텍스트의 생산은 비평가의 몫이며, 문학 텍스트의 생산을 오직 작가라는 전문 직업인의 몫이라고 간주한다. 바르뜨는 텍스트의 생산에 있어 독자와 세계 사이의 관계를 재정립하고, 독자를 글쓰기 및 텍스트 직조의 즐거움으로 그들을 이끌어야 한다면서, ‘아마추어의 문명’을 요구하였다. 그는 독자를 글쓰기의 즐거움, 텍스트를 제조하는 즐거움으로 인도하기 위해 독자와 텍스트 생산 세계와의 관계를 재확립할 필요가 있다고 한다. 즉 독자가 텍스트 생산의 세계 속에서 제외되어 있는 현실을 바꿀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문학 생산자와 소비자를 명확히 구분하고 있는 선험적인 요소는 텍스트에 대한 권한이 전문가에 속해 있다는 가정이다. 이 가정이 지속되는 한, 한 편에서는 창조하고 한 편에서는 소비하는 관계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가정 하에서, 본고와 같은 문학 텍스트 생산 과정에 대한 연구는 그것이 독자에게 유용한 ‘해석 방법’이 아니므로, 학습 주체를 포함한 문학 소비자에게는 별 필요가 없는, 즉 ‘교육적이지 않은 것’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구분을 폐기할 때, 탈신비화된 문학 생산 과정에 대한 분석은 곧 아마추어에게 쓰기의 즐거움에로 인도할 수 있는 도구를 마련해 주는 것이며, 창조적 과정에 대한 조작적 접근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야우스가 말하는 ‘지평’은 당대인에게 필연적으로 주어진 선험적인 것인 동시에 행위자에 의해 변화시킬 수 있는 구성물이기도 하다. 춘향전은 다시 쓰이고 읽히면서 지평의 영향을 받는 동시에 새롭게 지평을 형성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야우스가 말하는 지평은 사회학적 토대를 결여한 단순히 문학적인 기대 지평일 뿐이다. 이에 대해 문학 외적 요소를 포함하는 사회학적 지평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가능하다. 지평의 개념이 과거와 현재의 상호텍스트적인 대화의 결과인 지평의 융합을 설명하는 데는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통일된 하나의 문화와 추상화된 수용자 일반을 의미하는 경향이 있기에 사회학적 관점에서 비판이 되는 것이다. 특히, 문화란 한 시대에 하나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기에 하나의 지배적인 문화를 무비판적으로 가정하는 ‘지평 융합’ 혹은 ‘과거와 현재와의 대화’는 문제적 개념이 된다. 이 연구도 이러한 해석학에 대한 비판적인 입장에 동의한다. 문화란 결코 단일한 과정이 아니어서 정태적인 지평의 설정이란 의미가 없으며, 가다머가 행하고 있듯이 ‘전통’이라는 끈으로 과거와 현재를 단순히 묶어 낼 수도 없다. 학습 주체와 과거의 텍스트가 대화적 관계를 이루어 물음과 대답, 주고받음, 상호 어긋남과 일치 속에서 의미의 의사소통을 수행하는 대화로서의 해석학적 경험은 텍스트에 대한 이해를 단지 객관적 지식관의 영역에만 머물게 하지 않고, 해석자의 언어로 텍스트의 의미를 옮기는 과정을 포함한다. 텍스트의 의미 자체는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며, 해석자 자신의 생각이 텍스트의 의미를 일깨우는 데 항상 개입된다는 해석학의 시사는 현재 교육이 가정하고 있는 객관적인 지식이나 수동적인 학습자관을 반성하게 하는 것이다. 춘향전이 형성되었던 사회적 상황을 넘어서 다른 사회적, 문화적 문맥에 처한 수용자의 이해의 연쇄에 자신을 개방하고 있으며, 끊임없이 재문맥화되고 탈문맥화된다는 사실은 춘향전이 관계적 가치를 지니고 있는 고전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춘향전에 대한 지식은, 관계적 가치를 가진 고전으로서 춘향전이 각 시대의 수용자들에 의해 변형되는 통시적인 상을 보여줄 수 있을 때 인간화되며, 궁극적으로 학습 주체가 춘향전과 자신의 관계를 생산해 낼 수 있을 때 자기화될 수 있을 것이다. ‘동아시아’라는 말은 단지 지정학적인 위치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문화적 공동체를 지칭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지리(geography)’라는 말의 어원은 ‘대지 위에 쓰기’라는 것이라고 한다.이러한 관점에서 ‘동아시아’로 묶일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고전(古典)이라는 공유된 문화적인 자산을 바탕으로 전고를 활용한 표현을 하였던 문화적인 현상으로 인해서이다. 이렇게 보았을 때, 중국의 고사를 마치 제 것처럼 활용한 글쓰기 방식은 단지 신재효 개인에게 한정된 현상이 아니라 동아시아 문화의 전형적인 특성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전고를 활용해 표현을 하고 그러한 표현을 통해 대상을 이해하는 것은 동아시아 문화에 참여하고 동아시아 문화라는 범주를 견고하게 하는 문화적인 실천이라고 할 수 있다. 전고를 활용한 은유적 표현을 통해 살필 수 있는 또 다른 함의는 바로 문화의 보수성이다. 은유는 두 기호의 어떤 공통적 특성만을 돋보이게 할 뿐, 그 이외의 다른 특성들은 밑보이게 하거나 숨긴다. 따라서 은유에 의해서 성취되는 이해와 지식은 전체적인 것이 아니라 언제나 부분적인 것에 그친다. 물론 이렇게 부분적인 이해를 통해서 문화적 체험을 개념의 체계로 치환할 수 있는 은유의 능력은 ‘은유의 진정한 힘’이라고 일컬어지기도 한다. 그렇지만 은유로 세계를 파악하는 능력은 근대적 개념의 ‘진보’에는 그리 큰 도움을 주지 못한다. 전고를 활용한 은유는 현실적 사실들의 차별성을 무화시키며, 전고가 제공하는 백과사전의 세계로 환원시키는 구조로 인하여 새로움의 창안보다는 새로운 것마저 이미 있는 것을 바탕으로 파악하는 보수적인 성격을 갖기 때문이다.
지시문 (instruction)
다음 문맥을 읽고 질문에 답하시오.
질문 (question)
바르뜨가 주장한 '아마추어의 문명'을 실현하기 위해 독자와 텍스트 생산 세계 사이의 관계를 재확립하는 구체적인 방법은 무엇인가?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1. 1과제 해석task_interpretation

    질문은 바르뜨가 제안한 '아마추어의 문명'을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론적 절차나 수단을 묻고 있다.

  2. 2정보 추출information_extraction

    문맥에서 바르뜨가 '아마추어의 문명'을 요구했다는 사실과, 이를 위해 독자와 텍스트 생산 세계와의 관계를 재확립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추출한다.

    • 바르뜨는 텍스트의 생산에 있어 독자와 세계 사이의 관계를 재정립하고, 독자를 글쓰기 및 텍스트 직조의 즐거움으로 그들을 이끌어야 한다면서, ‘아마추어의 문명’을 요구하였다.
    • 그는 독자를 글쓰기의 즐거움, 텍스트를 제조하는 즐거움으로 인도하기 위해 독자와 텍스트 생산 세계와의 관계를 재확립할 필요가 있다고 한다.
  3. 3근거 선택evidence_selection

    문맥은 관계 재확립의 '필요성'과 '목적(즐거움으로 인도)'은 언급하고 있으나, 그 관계를 어떻게 재확립해야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은 명시하지 않는다.

    • 독자와 텍스트 생산 세계와의 관계를 재확립할 필요가 있다고 한다.
  4. 4논리 통합logical_integration

    문맥의 내용을 종합하면, 기존의 전문가 중심적 구분을 폐기하고 탈신비화된 분석을 통해 아마추어에게 도구를 제공해야 한다는 방향성은 제시되지만, 질문이 요구하는 '구체적인 방법' 자체는 텍스트 내에서 확정되지 않는다.

  5. 5결론 도출conclusion_formulation

    제시된 정보는 관계 재확립의 당위성과 목적에 국한되어 있으며, 이를 실행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론은 누락되어 있다.

  6. 6답변 생성answer_generation

    주어진 문맥만으로는 질문에 대한 구체적인 답변을 생성할 수 없으므로 정해진 문구로 답변을 작성한다.

근거 (evidence)
  • 바르뜨는 텍스트의 생산에 있어 독자와 세계 사이의 관계를 재정립하고, 독자를 글쓰기 및 텍스트 직조의 즐거움으로 그들을 이끌어야 한다면서, ‘아마추어의 문명’을 요구하였다.
  • 그는 독자를 글쓰기의 즐거움, 텍스트를 제조하는 즐거움으로 인도하기 위해 독자와 텍스트 생산 세계와의 관계를 재확립할 필요가 있다고 한다.
  • 독자와 텍스트 생산 세계와의 관계를 재확립할 필요가 있다고 한다.
최종 답변 (final_answer)
주어진 문맥만으로는 답을 확인할 수 없다.
분석 (analysis)
문맥은 바르뜨가 '아마추어의 문명'을 위해 관계 재확립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는 사실과 그 목적을 설명할 뿐, 관계를 재확립하는 구체적인 방법은 명시하지 않는다. 따라서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문맥 외부의 정보나 추가적인 추론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