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맥 (context)
한편 유일체제를 구축한 이후 김일성은 김정일로의 권력승계를 위한 정치적 여건 조성에 착수하였다. 이를 위해 1966년 10월 제2차 당 대표자회와 1970년 노동당 제5차 대회에서 권력구조의 변화와 함께 수령제를 확립하였다. 그 이후 김정일 후계체제 확립을 목적으로 열린 1971년 11월 당 중앙위원회 5기 3차 전원회의에서 김정일 후계문제를 검토하였다. 이러한 후계구도 속에서 1969년부터 선전선동부 부부장 및 조직지도부 업무를 맡고 있던 김정일을 1973년 9월 당 중앙위원회 제5기 제7차 전원회의를 통해 ‘조직 및 사상 담당 비서’로 선출한 데 이어 1974년 2월 개최된 당 중앙위원회 제5기 제8차 전원회의에서 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위원으로 선출함으로써 마침내 김정일은 김일성의 유일한 후계자로 추대되었다.
물론 김정일의 권력승계가 공식화된 것은 1980년 10월에 개최된 노동당 제6차 대회를 통해서였다. 당 6차대회는 후계체제 공고화 및 혁명전통의 계승발전을 공식화했다. 정치국, 비서국, 군사위원회 등 당내 3대 권력기구에 모두 선출된 사람은 김일성과 김정일뿐이었다. 김정일은 후계자로 등장한 이후 김일성 유일지배체제의 권력구조를 정당화하고 권력세습의 영속화를 위해 주체사상의 해석권을 독점하는 ‘수령론’ 또는 ‘혁명적 수령론’을 제시하였다. 1980년대 제시된 김정일의 주체사상에 대한 해석으로는 ‘혁명적 수령관’과 ‘사회정치적 생명체론’ 등이 있다. 이는 김일성이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유일한 해석자이며 주체사상의 창시자라고 했던 것처럼 김정일도 주체사상의 유일한 해석자로 권력승계를 정당화하고자 하였다.
1994년 김일성 사후 김일성 유훈통치를 해오던 북한은 1998년 9월 개최된 최고인민회의 제10기 1차 회의에서 헌법 수정을 통해 주석제와 중앙인민위원회를 폐지하고, 국방위원장을 국가 최고 직책으로 규정하는 권력구조의 개편을 단행했다. 북한 정권을 대표하는 최고 권력자를 국가 주석이 아니라 국방위원장으로 규정하였다. 또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가 종전의 국가 주석과 중앙인민위원회 기능을 통합 수행하고, 종전 정무원의 ‘행정적 집행기관’ 기능에 ‘전반적 국가관리기관’으로서의 권한을 추가하여 내각으로 개편하는 권력구조의 변화도 가져왔다. 개편된 권력구조의 특징은 첫째, 1972년 사회주의 헌법 이전의 권력구조로 복원시키면서 국방위원장의 위상을 권력의 정점으로 격상시킨 점, 둘째, 혁명원로 세대를 권력 일선에서 후퇴시키고 세대교체를 통해 신·구세대 간 조화를 꾀한 점, 셋째, 기능분립을 통한 형식상의 집단지도체제와 달리 내용상으로는 국방위원장 1인 독재체제라는 점 등으로 요약해 볼 수 있다.
서울에는 박헌영 중심의 ‘조선공산당’(1945. 9. 11)이 이미 조직되어 있었고, 각 도에는 조선공산당 도당지부가 조직되고 있었다. 소련 군정은 ‘조선공산당 서북5도 책임자 및 열성자 대회’를 개최하여 38도선 이북의 조선공산당 5도 책임자를 중심으로 한 ‘조선공산당 북조선 분국’(1945. 10. 13)을 만들었다. 북조선 분국의 설치는 38도선 이북 지역에 서울과는 별개의 공산당을 조직하여 김일성으로 하여금 그 지도권을 장악하게 하려는 소련 군정의 구상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에 따라 12월 17일부터 18일까지 개최된 제3차 중앙확대집행위원회에서는 ‘북조선공산당’으로 명칭을 바꾸면서 김일성을 책임비서로 선출하였다. 공산당을 창당한 소련 군정은 ‘북조선 5도 인민위원회연합회의’의 결과로 1945년 10월 28일 ‘북조선 5도 인민위원회 및 북조선 행정국’을 창설하였다. 그것은 소련 군정 하에 각급 인민위원회를 중앙에서 통일적으로 지도하는 기구였다. 이처럼 소련 군정은 한반도 분할 점령 3개월 만에 스탈린의 지령대로 북한만의 통치 조직 기반을 구축함과 동시에 김일성을 정점으로 하는 권력 구조의 실질적 기반을 형성함으로써 일찍이 단독 정권의 기틀을 다져 놓았다고 할 수 있다.
공산당 단독 정권 수립을 마무리하기 위한 수순으로 1947년 2월부터 국가수립이 선포된 1948년 9월까지 인민회의는 5차례의 회의를 개최하였다. 특히 1947년 11월 개최된 제3차 회의를 통해 ‘조선임시헌법제정위원회’를 조직하고 12월 20일에는 헌법 초안을 마련하였다. 이듬해인 1948년 2월 소련의 도움으로 김일성이 조선인민군을 창설하고 제2차 당 대회(1948. 3)를 통해 국내파가 약화되면서 김일성의 권력장악에 유리한 환경이 조성되었다. 그러한 환경변화에 기초하여 1948년 4월 29일 북조선인민회의는 특별회의에서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헌법 초안’을 승인하였으며, 8월 25일 제1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에서 212명의 대의원을 선출하였고, ‘남조선인민대표자대회’에서 360명을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 선출하여 보냈다고 발표하였다. 이어서 평양에서는 9월 2-10일까지 572명의 대의원이 참가한 최고인민회의 제1차 회의를 개최하여 헌법을 최종 채택(9. 8)하여 공포하고 김일성을 내각의 수상으로 하는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을 수립(9. 9)했다.
북한군의 창설은 1945년 8월 광복 직후 소련군이 한반도에 진주하면서 ‘건당·건군·건국’이라는 3대 과제의 하나로 추진되었다. 당시 북한 주둔 소련군 사령부는 김일성을 내세워 정치 조직인 당을 최우선으로 결성하고 1945년 10월 12일 “북한 지역 내에 있는 모든 무장대를 해산시킬 것, 모든 무기·탄약·군용물자들을 군경무 사령관에 바칠 것, 평민 중에서 사회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시도위원회들은 소련군 사령부와의 협의 하에 기정된 인원 수의 보안대를 조직함을 허가한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하였다. 이 성명에 따라 보안대의 규모가 점차 확대되어 1946년 8월 15일 각 지역에 조직된 보안대를 통합·지도하기 위하여 평양에 보안간부 훈련대대부(訓練大隊部)를 창설하고, 1947년 5월 인민집단군 총사령부로 개칭하였다. 1948년 2월 4일 북조선인민위원회 내에 인민무력부의 전신인 ‘민족보위국’을 신설하였으며, 정권 수립 7개월 전인 2월 8일에는 ‘인민집단군’을 ‘조선인민군’으로 개칭하고 정규군 창설을 선포하였다.
1945년 8월 15일 일제의 항복 이후 북한 체제가 38도선 이북 지역에 등장하게 된 원천은 소련군의 점령이었다. 일제 패망으로부터 소련군이 주둔하기까지 북한의 정치상황은 8월 17일 조만식을 위원장으로 하는 평남 건국준비위원회와 현준혁을 중심으로 한 조선공산당 평남지구위원회의 출범과 함께 시작되었다. 하지만 이들의 활동은 대일 승전국의 자격으로 북한 지역에 군대를 진주시킨 소련의 통제와 관리 하에서 이루어졌다. 북한의 소련화는 김일성을 비롯하여 ‘88특별여단’ 출신의 공산주의자들을 중심으로 정권을 수립하는 유형으로 이루어졌다. 이를 위해 우선 소련 군정은 북한 지역에 부르주아 민주주의적 단독 정부를 수립하라는 스탈린의 지령(1945.9.20)에 따라 1945년 10월 북한 지역을 관할할 중앙행정기구와 당 차원 지원 조직의 구성 작업에 착수했다. 당시 소련 점령군의 최대 관심사는 소련에 충성하는 단독 정권의 수립을 추진할 도구인 마르크스-레닌주의적 정당을 어떻게 조직하느냐 하는 문제였다.
지시문 (instruction)
다음 문맥을 읽고 질문에 답하시오.
질문 (question)
1998년 9월 개최된 최고인민회의 제10기 1차 회의를 통해 단행된 북한 권력구조 개편의 특징 세 가지는 무엇인가?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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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과제 해석
task_interpretation1998년 9월 최고인민회의 제10기 1차 회의에서 이루어진 북한 권력구조 개편의 구체적인 특징 세 가지를 추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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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정보 추출
information_extraction문맥에서 1998년 9월 최고인민회의 제10기 1차 회의와 관련된 권력구조 개편 내용을 찾는다.
- 1998년 9월 개최된 최고인민회의 제10기 1차 회의에서 헌법 수정을 통해 주석제와 중앙인민위원회를 폐지하고, 국방위원장을 국가 최고 직책으로 규정하는 권력구조의 개편을 단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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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근거 선택
evidence_selection개편된 권력구조의 특징을 직접적으로 요약하여 설명한 문장을 선택한다.
- 개편된 권력구조의 특징은 첫째, 1972년 사회주의 헌법 이전의 권력구조로 복원시키면서 국방위원장의 위상을 권력의 정점으로 격상시킨 점, 둘째, 혁명원로 세대를 권력 일선에서 후퇴시키고 세대교체를 통해 신·구세대 간 조화를 꾀한 점, 셋째, 기능분립을 통한 형식상의 집단지도체제와 달리 내용상으로는 국방위원장 1인 독재체제라는 점 등으로 요약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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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논리 통합
logical_integration선택된 세 가지 특징을 정리하여 질문에 대한 답변 구조로 결합한다.
- 첫째, 1972년 사회주의 헌법 이전의 권력구조로 복원시키면서 국방위원장의 위상을 권력의 정점으로 격상시킨 점
- 둘째, 혁명원로 세대를 권력 일선에서 후퇴시키고 세대교체를 통해 신·구세대 간 조화를 꾀한 점
- 셋째, 기능분립을 통한 형식상의 집단지도체제와 달리 내용상으로는 국방위원장 1인 독재체제라는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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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결론 도출
conclusion_formulation추출된 정보를 바탕으로 세 가지 특징을 명확하게 서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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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답변 생성
answer_generation최종 답변을 작성한다.
근거 (evidence)
- 1998년 9월 개최된 최고인민회의 제10기 1차 회의에서 헌법 수정을 통해 주석제와 중앙인민위원회를 폐지하고, 국방위원장을 국가 최고 직책으로 규정하는 권력구조의 개편을 단행했다.
- 개편된 권력구조의 특징은 첫째, 1972년 사회주의 헌법 이전의 권력구조로 복원시키면서 국방위원장의 위상을 권력의 정점으로 격상시킨 점, 둘째, 혁명원로 세대를 권력 일선에서 후퇴시키고 세대교체를 통해 신·구세대 간 조화를 꾀한 점, 셋째, 기능분립을 통한 형식상의 집단지도체제와 달리 내용상으로는 국방위원장 1인 독재체제라는 점 등으로 요약해 볼 수 있다.
- 첫째, 1972년 사회주의 헌법 이전의 권력구조로 복원시키면서 국방위원장의 위상을 권력의 정점으로 격상시킨 점
- 둘째, 혁명원로 세대를 권력 일선에서 후퇴시키고 세대교체를 통해 신·구세대 간 조화를 꾀한 점
- 셋째, 기능분립을 통한 형식상의 집단지도체제와 달리 내용상으로는 국방위원장 1인 독재체제라는 점
최종 답변 (final_answer)
첫째, 1972년 사회주의 헌법 이전의 권력구조로 복원시키면서 국방위원장의 위상을 권력의 정점으로 격상시켰다. 둘째, 혁명원로 세대를 권력 일선에서 후퇴시키고 세대교체를 통해 신·구세대 간 조화를 꾀했다. 셋째, 기능분립을 통한 형식상의 집단지도체제와 달리 내용상으로는 국방위원장 1인 독재체제라는 특징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