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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 너머 깃든 가치 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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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Y_201811200540151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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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기관
문화재청
발행연도
2018
KD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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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 불가 (is_impossible)
True
문맥 (context)
내친김에 밀양강을 따라 올라가 본다. 이제 강은 더욱 넓어지고 반듯해진다. 밀양 아동산에 위치한 밀양 영남루는 보물 제147호로 우리나라 3대 누각 중 하나다. 진주의 촉석루와 평양의 부벽루, 밀양의 영남루. 누각에 올라 바라보는 풍경은 조선의 16경 중 하나로도 손꼽혔다고 한다. 밀양 영남루로 오르는 길은 계단부터 특이하다. 지그재그 방식이라 장애인들도 오를 수 있도록 한 배려가 마음을 뭉클하게 한다. 꽤 높은 계단을 오르고 나니 너른 터에 커다란 밀양 영남루의 전경이 드러난다. 밀양 영남루는 신라 경덕왕 때 사찰, 영남사가 폐사된 후 고려 공민왕 때 당시 군수였던 김주가 신축한 것이다. 1844년 이인재 부사가 중건한 후 오늘에 이르러 조선시대 후기 대표적 목조건물로 평가받고 있다. 누각 위로 올라가니 시원한 강바람이 불어온다. 천장에는 많은 현판들이 걸려있다. 이 중에는 퇴계 이황 선생의 작품과 함께 이인재 부사의 첫째 아들 이중석이 썼다는 영남제일루라는 글씨도 있다. 11살에 썼다는데도 글씨의 기백이 그대로 전해지는 것 같다. 누각에서 바라보는 전망은 두말 할 필요가 없다. 너른 밀양강과 푸른 녹지. 거기에 더없이 좋은 계절, 가을이 왔으니 얼마나 좋은가? 운치를 즐기면서 긴 호흡을 해본다. 자연 조건을 최대한 활용한 해자는 한성 바깥뿐만 아니라 내부에도 있었다. 경복궁 동쪽의 중학천과 서쪽의 백운동천이 그것이다. 조선왕조를 개창한 사람들은 궁궐의 입지 또한 효율적인 방어에 초점을 맞췄다. 북쪽은 북악산이 가로막고, 동쪽과 서쪽은 중학천과 백운동천이 감싸며 흐르다 남쪽에서 합류해 세 방향에서 자연 해자 역할을 하는 자리에 경복궁을 앉혔다. 궁궐 남쪽에는 정부기관을 한데 모은 육조 거리도 조성했다. 자연 해자의 보호를 받는 곳에 국가의 중추기관을 집중시킨 것이다. 중학천과 백운동천이라는 자연 해자에 1960년대 우리 손으로 콘크리트 뚜껑을 씌웠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복개 이전의 중학천 사진을 보면 바닥은 깊고, 호안은 적이 오르기 어렵도록 돌로 쌓은 수직 벽이다. 해자의 역할이라는 인식이 분명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왕조 초기에 중학천과 백운동천에 놓인 다리 역시 궁궐을 향해 몰려오는 적에 맞서 유사시에는 접어서 거둬들일 수 있는 구조였다는 학계의 연구 결과도 있다. 그럼에도 국내에서 해자를 쉽게 보기 어렵다는 인식이 없지 않은 것은 외국 여행길에서 마주친 인공 해자의 강렬한 기억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해자는 적의 침입을 막고자 성 밖을 둘러 판 물길이다. 2014년 레고랜드를 건설하는 공사가 예정된 강원도 춘천 의암호의 중도에서 둘레 403.7m의 청동기시대 사각형 환호(環濠)가 발견됐다. 해자의 일종인 환호는 영역을 구분하고 배수에도 도움이 되었겠지만, 가장 중요한 기능은 방어였다. 알파벳 U자 모양으로 파인 구덩이는 지금 깊이가 70~90cm에 너비가 1~2.4m 규모로 남아있다. 하지만 오랜 세월에 걸친 풍화작용에 따라 크게 훼손됐음을 감안하면 마을이 번성하던 시기 환호는 깊이가 1.4m 이상에 너비는 2~3m는 되었을 것으로 학계는 추정한다. 그런데 중도 유적의 사각형 환호 바깥 쪽에서는 더 큰 규모의 환호가 드러났다. 이 대(大)환호는 현재 섬의 동쪽 지역에서만 찾아볼 수 있지만, 당초에는 사각형 환호를 둘러싸고 있는 모습이었을 것이다. 해자엔 일반적으로 물을 채우는데, 고저가 일정치 않은 산성의 해자는 그게 불가능하다. 중도의 환호 역시 모래질 토양으로 물을 채울 수 없다. 이렇듯 마른 해자를 옛 사람들은 황(隍)이라 불렀다. 그런데 중도는 환호만 갖춘 것이 아니다. 중도는 북한강과 소양강이 합쳐지는 두물머리에 자리 잡고 있다. 선사시대에 이런 지혜를 발휘했으니 삼국시대에 접어들어 해자가 더욱 발전했음은 불문가지다. 선조들은 자연 지형을 방어에 이용하는 데 탁월했지만, 벌판에 세운 평지성처럼 자연조건을 활용하기 어려울 때는 매우 튼튼하고 정교한 인공 해자를 파기도 했다. 평양의 대성산 기슭에 터만 남은 고구려의 안학궁이 대표적이다. 안학궁은 한 변의 길이가 622m인 정사각형으로 넓이는 38만㎡에 이르렀는데, 발굴 조사에서는 사방 성벽 밖에 두른 해자가 확인됐다. 한성백제는 왕성인 풍납토성을 북쪽 고구려에 맞서 한강 남쪽에 지었다. 한강을 자연 해자로 삼는 동시에 성 밖에는 또 다른 인공 해자를 팠다. 이후 백제의 수도 웅진도성과 사비도성, 곧 공주와 부여의 왕성 역시 금강을 자연 해자로 삼은 것은 다르지 않다. 신라의 도성 월성(月城)은 동서 900m, 남북 250m의 만곡진 초승달 모양이다. 월성이라는 이름도 그래서 붙여졌을 것이다. 신라 사람들은 월성 동쪽으로 흐르는 남천에 자연 해자의 역할을 맡겼다. 반면 월성 서쪽에는 인공 해자를 팠다. 실제로 평지 성곽이 많은 일본의 옛 성들은 대부분 깊고 넓은 해자를 갖추고 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1583년 수도 교토의 외항에 지은 오사카 성이 대표적이다. 유럽에도 해자가 인상적인 옛 성이 적지 않다. 스위스 레만호의 동쪽 끝에 있는 시옹성은 물 위에 성채를 짓고 하나의 좁은 다리로만 육지와 통행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영국 켄트주의 리즈성은 아예 인공 호수를 파고 그 가운데 성을 들어앉혔다. 하지만 이제는 우리나라에서도 인공 해자를 좀 더 쉽게 찾아볼 수 있을 것 같다. 자연 해자를 활용할 수 없는 평지성에는 대부분 예외 없이 인공 해자를 둘렀다는 사실이 속속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하삼도(下三道), 곧 왜구의 침입이 잦았던 충청·전라·경상도 지역에 집중적으로 세워진 읍성(邑城)의 경우는 특히 그렇다. 해자의 존재가 확인된 곳은 진도·고현·하동·웅천·언양·김해·동래·고성읍과 울산병영성, 그리고 제주 대정읍성 등이다. 이미 고려 후기부터 왜구의 침입이 잦았던 충남 서산 해미읍성은 해자를 복원해 놓았다. 정유재란의 격전지였던 전북 남원의 남원성에서도 일부분이지만 해자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전남 강진의 전라병영성은 성벽에 이어 해자도 완전 복원한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한성, 곧 오늘날의 서울은 천험(天險)의 요새에 자리잡았다. 한성은 내사산(內四山)을 성벽으로 이어 조성한 성곽도시다. 북쪽의 북악산(342m), 동쪽의 낙산(125m), 서쪽의 인왕산(338m), 남쪽의 남산(265m)이 사방을 가로막고 있다. 그 외곽으로는 다시 북쪽의 북한산(836m), 동쪽의 용마산(348m), 서쪽의 덕양산(행주산·125m), 남쪽의 관악산(829m) 등 외사산이 에워싸고 있다. 풍수지리적 개념으로 이해되기도 하지만, 막 출범한 나라의 수도라면 당연히 방어의 효율성에 초점을 맞춰 입지를 선택했을 것이다. 한성이 해자 없는 도시라는 시각은 지나치게 미시적인 관점이다. 내사산을 수도를 이루는 성벽의 거대한 하부구조로 활용하고 외사산을 외곽 방어망으로 활용한 그들이다. 지도를 펼쳐놓고 보면 그들의 의도는 너무나도 명확하다. 북쪽으로는 임진강, 남쪽으로는 한강을 한성의 해자로 삼은 것이다. 자연적인 조건이 충분히 구비되어 있는데 해자와 같은 인공 장애물을 설치할 이유는 없다. 이성계를 옹립한 혁명 주체 세력의 한 사람인 양촌 권근(1352~1409)이 한성을 두고 “하늘이 만들어 준 견고한 성지(城地)”라 한 것은 과장이 아니다. 그러나 선조들은 이러한 제한된 내부 공간의 답답함을 창문을 만들어 외부의 아름다운 경치를 빌려 차경(借景)하였다. 한옥의 창문을 열면 몇 년이고 벽에 걸린 채 고정된 그림과 장식품의 모습이 아닌, 사계절이 변화하는 아름다운 자연을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품어 느낄 수 있었다. 어느 날 촉촉한 봄비가 내리면 창문 너머로 들려오는 낙숫물 소리에 우수에 잠기었을 것이고, 보름달이 휘영청 저 산마루에 걸릴 때면, 창문으로 들어오는 달빛 실루엣의 아름다움도 부족해서 창문을 활짝 열고 부드러운 달빛 사냥을 하기도 하였을 것이다. 수많은 시나 노래 중에서 엿볼 수 있는 창문 너머로 펼쳐지는 아름다운 시구절, 가슴이 저며오는 그리움, 이 모든 절절한 이야기들이 창문과 자연과의 조화가 이룬 대화 속에서 느껴지는 멋이 아닐까 한다. 창문은 이처럼 변화하는 사계절을 감상하게하고 자연의 아름다움에 힘입어 내면의 정서를 힘껏 분출하며 누구나 한 번쯤 시인이 될 수 있는 감성을 어루만져 주는 또 다른 매력적인 기능을 품고 있었다. 현대처럼 무선 통신시설이 없던 한옥에서의 창문은 동네 친구가 부르는 다정한 목소리를 전했고, 사랑하는 동네 처녀를 만나고 싶어 안달하던 더벅머리 동네 총각들도 창문을 통해 그들의 마음을 전달하고 싶어 했다.
지시문 (instruction)
다음 문맥을 읽고 질문에 답하시오.
질문 (question)
조선시대 하삼도 지역의 읍성 중 해자가 복원되어 있는 서산 해미읍성 외에, 현재 해자가 완전히 복원된 상태인 곳은 어디인가?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1. 1과제 해석task_interpretation

    질문은 조선시대 하삼도 지역의 읍성 중 해자가 '완전히 복원된' 구체적인 장소를 묻고 있다.

  2. 2정보 추출information_extraction

    문맥에서 하삼도 지역 읍성 중 해자의 존재가 확인된 곳들과 복원 관련 정보를 추출한다.

    • 조선시대 하삼도(下三道), 곧 왜구의 침입이 잦았던 충청·전라·경상도 지역에 집중적으로 세워진 읍성(邑城)의 경우는 특히 그렇다.
    • 해자의 존재가 확인된 곳은 진도·고현·하동·웅천·언양·김해·동래·고성읍과 울산병영성, 그리고 제주 대정읍성 등이다.
    • 이미 고려 후기부터 왜구의 침입이 잦았던 충남 서산 해미읍성은 해자를 복원해 놓았다.
    • 정유재란의 격전지였던 전북 남원의 남원성에서도 일부분이지만 해자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 전남 강진의 전라병영성은 성벽에 이어 해자도 완전 복원한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3. 3근거 선택evidence_selection

    해자가 복원된 곳으로 언급된 '서산 해미읍성'과 '전라병영성'을 확인한다. 해미읍성은 복원되어 있다고 명시되어 있으나, 전라병영성은 '완전 복원한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고 되어 있어 현재 완료된 상태인지 불분명하다.

    • 충남 서산 해미읍성은 해자를 복원해 놓았다.
    • 전남 강진의 전라병영성은 성벽에 이어 해자도 완전 복원한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4. 4논리 통합logical_integration

    해미읍성은 복원이 완료된 것으로 기술되어 있고, 전라병영성은 복원 계획 단계에 있다고 기술되어 있다. 질문은 '현재 해자가 완전히 복원된 곳'을 묻고 있으나, 문맥상 해미읍성 외에 현재 시점에서 복원이 완료되었다고 확정 지어 말하는 다른 장소는 나타나지 않는다.

  5. 5결론 도출conclusion_formulation

    문맥에는 해미읍성이 복원되었다는 사실과 전라병영성이 복원할 계획이라는 사실만 존재한다. 따라서 해미읍성을 제외하고 현재 완전히 복원된 다른 장소를 특정할 수 없다.

  6. 6답변 생성answer_generation

    주어진 문맥만으로는 해미읍성 외에 현재 완전히 복원된 다른 장소를 확인할 수 없으므로 답변 불가능 판정을 내린다.

근거 (evidence)
  • 조선시대 하삼도(下三道), 곧 왜구의 침입이 잦았던 충청·전라·경상도 지역에 집중적으로 세워진 읍성(邑城)의 경우는 특히 그렇다.
  • 해자의 존재가 확인된 곳은 진도·고현·하동·웅천·언양·김해·동래·고성읍과 울산병영성, 그리고 제주 대정읍성 등이다.
  • 이미 고려 후기부터 왜구의 침입이 잦았던 충남 서산 해미읍성은 해자를 복원해 놓았다.
  • 정유재란의 격전지였던 전북 남원의 남원성에서도 일부분이지만 해자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 전남 강진의 전라병영성은 성벽에 이어 해자도 완전 복원한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 충남 서산 해미읍성은 해자를 복원해 놓았다.
최종 답변 (final_answer)
주어진 문맥만으로는 답을 확인할 수 없다.
분석 (analysis)
문맥에는 서산 해미읍성이 해자를 복원해 놓았다는 사실과 전라병영성이 해자를 완전 복원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정보가 제시되어 있다. 질문이 요구하는 '해미읍성 외에 현재 완전히 복원된 곳'에 대한 확정적인 정보는 문맥에 존재하지 않으므로 외부 지식 없이 답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