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맥 (context)
문화재청은 11월 12일부터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주관으로 ‘백제왕도 핵심유적 보존·관리사업’의 하나인 백제 사비시대 왕궁터 ‘부여 관북리 유적’(사적 제428호) 발굴조사를 시작했다. ‘부여 관북리 유적’은 백제의 마지막 도읍지였던 부여의 사비시대 왕궁터로, 북쪽으로 부소산성을 등지고 남쪽으로 부여읍 시가지가 내려다보이며, 서쪽으로 백마강이 굽이쳐 흐르고 있다. 문화재청은 2015년 백제역사유적지구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면서, 유적의 체계적인 보존·관리를 위하여 백제왕도 핵심유적 사업을 추진 중이다. 또한,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는 사비 왕궁터 관련 지역에 대한 체계적인 중장기 학술조사계획을 마련하고 있다. 부여 관북리 유적 조사는 1982년부터 2014년까지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를 포함한 충남대학교박물관, 한국문화재재단, 백제고도문화재단 등 10개의 조사 기관에서 시굴·발굴조사를 진행하였다. 조사 결과, 대형건물터·지하창고시설·연못·도로·공방터, 수로시설 등이 발견되었다. 성질이 다른 흙을 서로 번갈아 가면서 쌓아올리는 성토(盛土) 기술로 쌓은 층에서 나온 것들로, 같은 방향으로 배치되어 일정한 규칙성도 있다.
수리 전 미륵사지 석탑은 반파되어 6층 일부까지만 남아있는 모습이었다. 창건 당시 석탑은 7층 또는 9층이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정확한 층수, 비례, 상륜부 양식 등은 규명되지 않았으며, 17세기 전후 시기에 붕괴된 것으로 추정된다. 1915년 일본인들은 흐트러진 석탑과 주변을 정비하고 무너진 부분에 콘크리트를 덧씌워 보강하였다. 당시의 작업은 불안정한 석탑의 추가 붕괴를 막기 위한 응급수리의 성격이었다. 미륵사지 석탑은 1998년 구조안전진단 결과 석탑의 붕괴면에 보강된 콘크리트의 노후와 구조적 불안정성 때문에 1999년 해체수리가 결정되었다. 당시의 수리방침은 석탑의 구조 및 보존 상태 등에 대한 자료가 확보되지 않은 상황이었기 때문에 체계적인 조사연구를 거쳐 수리방법을 정하고 신석재의 사용은 최소화 한다는 것이었다. 또한 석탑의 특수한 양식, 풍화훼손 정도, 수리난이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수리에 필요한 시간을 충분히 고려하도록 하였다. 이에 국립문화재연구소는 2001년부터 본격적인 석탑의 해체에 착수하여 2010년까지 해체 및 발굴 조사를 마치고 2013~2017년 6층까지 석탑의 조립을 완료하였다. 미륵사지 석탑은 오랜 기간 동안 다양한 논의를 거쳐 원래 남아있던 6층까지 수리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문화재의 원형 보존은 원래의 재료를 얼마나 잘 보존할 수 있는지가 중요한 문제다. 허나 전통적인 방법만으로는 한계가 있어 현대의 첨단 과학기술이 필요하다. 미륵사지 석탑의 경우에도 석재가 풍화되거나 기울어지거나 파손된 것이 많아 이에 대한 현황 조사와 보존처리에 다양한 과학기술이 접목됐다. “미륵사지 석탑은 기울어짐, 붕괴 등 복잡한 형상을 가지고 있어 2차원 자료만으로는 정확한 조사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2002년부터 2010년까지 3차원 형상정보 구축을 위한 3D 스캐닝을 진행했습니다. 2014년부터 2017년까지 진행된 석탑 조립과정에서도 활용되었고요. 3D 스캐닝은 대상물에 레이저를 쏜 뒤 돌아오는 시간을 이용해 거리를 계산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 이를 통해 석탑의 형태에 대한 3차원 정보를 컴퓨터에 기록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수십미터 원거리에서 실시하는 광대역스캔과 50cm 내외의 근거리에서 실시하는 정밀스캔으로 정보를 모았다. 이는 석탑의 복잡한 형상에 대한 정밀한 분석, 구조해석, 모델링, 공사설계, 조립검측 등의 분야에 활용되었다.
미륵사지 석탑의 수리원칙과 기술적 방법을 마련하기 위해 단계적으로 진행한 학술 및 기술 연구는 크게 ‘기초조사연구’, ‘보존과학 조사연구’, ‘구조 및 재료 연구’, ‘수리기술 연구’로 분류할 수 있다. 기초조사연구는 석탑의 원형과 현황을 규명하기 위한 가장 기본단계의 연구로 석탑의 해체조사 및 3D스캐닝 기록화, 기단부 발굴조사, 출토유물 수습조사, 축조기법 연구 등이 이루어졌다. 보존과학 조사연구는 석탑과 주변의 보존환경 조사, 표면오염물 조사, 가공도 및 풍화도 조사, 파손부재 보강기술 연구 등 원래의 부재를 최대한 재사용하기 위한 과학적 보존처리 방법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구조 및 재료 연구는 석탑의 구조해석을 통한 붕괴원인 조사연구, 구조안정성 평가 연구, 신석재 공급지 조사연구, 무기질재료 연구 등으로 석탑의 구조적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었다. 수리기술 연구는 기초토층 보강 판축다짐, 공극 충전 및 보강용 무기질재료, 풍화등급별 파손부재의 구조보강, 부재접합용 장치 등 선행된 연구결과를 정리하여 특허기술로 발전시킨 것이다. 한편 2009년, 석탑 1층 내부 중앙의 첫 번째 심주석에서 발견된 사리장엄구는 백제지역 최대의 고고학적 성과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단일 문화재 보수정비 사업에 막대한 예산과 엄청난 인력이 투입되는 데다 진전이 빠르지 않아 오해의 시선이 하나 둘 싹트기 시작했다. 1999년 미륵사지 석탑의 해체 수리를 결정할 당시의 기본 방침은 원형에 대한 자료 부족, 풍화 등 훼손 정도, 구조 및 양식의 특수성, 수리의 난이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충분한 시간을 갖고 수리하도록 했다. 따라서 국립문화재연구소는 미륵사지 석탑에 대한 다양한 학술조사를 진행하고, 실험연구를 통해 수리 기술을 개선했다. 어느 것 하나도 허투루 하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모든 구성원이 한 걸음 한 걸음 신중히 걸었다. 이와 동시에 미륵사지석탑 보수정비 사업에 대해 의문을 갖는 사람들을 이해시키기 위한 노력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미륵사지 석탑 보수정비 사업이 10년 가까이 진행되던 어느 날,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석탑 1층 심주석의 사리공 기단부에서 사리장엄구가 발견된 것이다. 이때 발견된 금제사리봉영기(金製舍利奉迎記)로 미륵사의 조성연대가 확인됐다. 이와 더불어 금동제사리외호(金銅製舍利外壺), 금제사리내호(金製舍利內壺), 각종 구슬 및 공양품을 담은 청동합 6점도 발견됐다. “사리장엄구가 발견됨으로 해서 미륵사의 창건 배경, 주체 등이 규명됐습니다.
신문왕은 682년 아버지인 문무왕의 뜻을 이어받아 감은사를 창건하였다. 감은사의 창건은 문무왕의 위업을 기리기 위한 것이지만, 통일 이후 쌍탑가람의 등장과 새로운 사리장엄구의 등장이라는 측면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1959년 감은사지 서탑에서, 1996년 동탑에서 사리장엄구가 각각 발견되었다. 감은사지 서탑과 동탑의 사리장엄구는 금동외함-전각 모양 내사리기-수정사리병으로 구성되지만, 세부적으로는 차이를 보인다. 전각 모양 내사리기는 동탑의 경우 중앙 화염보주 주위에 4구의 승려와 사천왕이 있어 주악상과 무동이 장식된 서탑과는 차이를 보이고, 서탑 사리장엄구에는 없는 사자가 기단에 장식되어 있는데, 둘 다 화려하면서도 세밀한 장식이 돋보인다. 감은사지 동서탑의 사리장엄구는 양나라의 사리장엄구를 따랐던 신라의 사리장엄구가 통일 이후 새로운 양식을 수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감은사지 동서탑의 사리장엄구 이후 통일신라의 사리장엄구는 다양한 형식으로 제작되며, 건탑 세력의 확대와 조탑경(造塔經: 탑을 세울 때 근거가 되는 경전)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의 영향으로 법사리와 작은 탑이 제작되는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한다.
그 오랜 시간 동안 모진 풍파도 적지 않았다. 세월의 흐름 속에 붕괴, 개축되며 몇 차례 변화를 겪었다. 1915년에는 6층 일부까지 반파된 상태로 남아있던 석탑을 일본인이 콘크리트로 덧씌우는 일도 있었다. 1999년에 석탑의 해체 수리가 결정되었고, 2001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2000년부터 익산 미륵사지 석탑 보수정비 사업에 참여한 김현용 학예사는 이 사업의 처음과 끝을 함께 하는 유일한 사람이다. 자신의 젊은 날 에너지를 모두 쏟아 부은 사업이 20년에 가까운 시간이 지나서야 마무리되고 있는 이 시점. 김현용 학예사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가장 궁금했다. “2017년말에 마지막으로 6층 부재를 올렸습니다. ‘아, 드디어 끝났구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약간 허무함이 느껴지더라고요. 물론 모든 일이 마무리된 것은 아닙니다. 석탑을 둘러싸고 있던 가설건물 철거공사부터 시작해서 내년 3월에 열릴 공개 행사, 보고서 작성 등이 남아 있어요. 지금도 매일매일 두렵습니다. 이 사업이 어떤 평가를 받게 될지, 어떤 변화를 맞을지 걱정돼요.” 20년, 단일 문화재 보수로는 최장 기간이다. 그간 230억 원의 예산이 투입됐으며 현장 인력만 해도 연 인원이 12만 명, 전문가 그룹이 100여 명에 이른다.
지시문 (instruction)
다음 문맥을 읽고 질문에 답하시오.
질문 (question)
미륵사지 석탑의 보수정비 사업 과정에서 활용된 3D 스캐닝 기술의 구체적인 작동 방식과 이를 통해 얻은 정보가 어떤 분야에 활용되었는지 설명하시오.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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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과제 해석
task_interpretation미륵사지 석탑 보수 과정에서 사용된 3D 스캐닝의 작동 원리와 활용 분야를 묻는 질문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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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정보 추출
information_extraction3D 스캐닝의 작동 방식과 활용 분야에 관한 문장을 추출함.
- 3D 스캐닝은 대상물에 레이저를 쏜 뒤 돌아오는 시간을 이용해 거리를 계산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
- 이를 통해 석탑의 형태에 대한 3차원 정보를 컴퓨터에 기록하는 것입니다.
- 이는 석탑의 복잡한 형상에 대한 정밀한 분석, 구조해석, 모델링, 공사설계, 조립검측 등의 분야에 활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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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근거 선택
evidence_selection작동 방식에 대한 설명과 활용 분야에 대한 설명을 각각 선택함.
- 대상물에 레이저를 쏜 뒤 돌아오는 시간을 이용해 거리를 계산하는 방식
- 석탑의 복잡한 형상에 대한 정밀한 분석, 구조해석, 모델링, 공사설계, 조립검측 등의 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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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논리 통합
logical_integration추출된 정보를 결합하여 작동 원리(레이저 거리 계산)와 결과물(3차원 정보 기록), 그리고 활용 분야(분석, 해석, 설계 등)를 연결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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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결론 도출
conclusion_formulation3D 스캐닝은 레이저를 이용한 거리 계산 방식으로 3차원 정보를 기록하며, 이는 정밀 분석 및 설계 등 다양한 공정에 활용된다는 결론을 도출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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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답변 생성
answer_generation질문에 대한 최종 답변을 작성함.
근거 (evidence)
- 3D 스캐닝은 대상물에 레이저를 쏜 뒤 돌아오는 시간을 이용해 거리를 계산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
- 이를 통해 석탑의 형태에 대한 3차원 정보를 컴퓨터에 기록하는 것입니다.
- 이는 석탑의 복잡한 형상에 대한 정밀한 분석, 구조해석, 모델링, 공사설계, 조립검측 등의 분야에 활용되었다.
- 대상물에 레이저를 쏜 뒤 돌아오는 시간을 이용해 거리를 계산하는 방식
- 석탑의 복잡한 형상에 대한 정밀한 분석, 구조해석, 모델링, 공사설계, 조립검측 등의 분야
최종 답변 (final_answer)
3D 스캐닝은 대상물에 레이저를 쏜 뒤 돌아오는 시간을 이용해 거리를 계산하는 방식으로, 이를 통해 석탑의 형태에 대한 3차원 정보를 컴퓨터에 기록한다. 이렇게 얻은 정보는 석탑의 복잡한 형상에 대한 정밀한 분석, 구조해석, 모델링, 공사설계, 조립검측 등의 분야에 활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