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맥 (context)
한국에서 경제적 위기조성이 정권 교체에 따라 급격히 확대된 것과 달리, 이스라엘에서의 경제적 위기는 198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에 이르기까지 점진적으로 조성되었다. 우선 첫 번째로, 1978년 이스라엘과 이집트는 캠프데이비드 평화 협정을 체결하여, 이스라엘의 안보위기가 감소되었다. 이로 인해 이스라엘 정부는 1967년 프랑스 무기금수조치와 같은 사태의 위험성이 낮아졌다고 판단하고, 자국 무기체계보다는 미국의 대이스라엘 군사원조에 의존하고자 하였다. 이에 이스라엘 국방부는 무기체계 획득 권한을 이스라엘 군(IDF; Israel Defense Force)에 일임하였는데, 방위산업 육성보다는 첨단 무기체계의 도입을 우선시하는 군의 특성상, 미국 무기체계 수입이 증가하게 되었다. 미국은 FMS 자금을 이스라엘 화폐(셰켈)가 아닌 달러로 지급하였는데, 이스라엘은 이를 주로 미국 무기를 획득하는 데 사용하였고, 이는 이스라엘 자국 방위산업체들에게는 경제적 차원의 위기로 작용하게 되었다.
아울러, 이스라엘 정부는 1995년 「입찰의무규정(Mandatory Tender Regulations, 5755-1995)」을 도입하여 모든 정부 부처의 조달 사업 진행 시 반드시 경쟁 입찰을 거치도록 규정함으로써, 기존 국영기업・국가기관이 독점해 왔던 이스라엘 방위산업에 민간 기업과 해외 업체가 주요 경쟁자로 등장하게 되었다. 작아진 시장 규모, 해외 업체의 시장 잠식, 민간 기업의 등장 등으로 이스라엘 내수 시장에는 치열한 경쟁구도가 형성되었다. 이러한 치열한 경쟁 환경으로 인해, 이스라엘 방산업체들은 생존을 위한 방편으로 적극적인 해외 수출시장 개척, 첨단기술 R&D 투자, M&A를 통한 성장과 사업영역 확장 등을 추진하기 시작하였고, 2000년대부터는 세계 방위산업을 주 도하는 수준으로까지 성장할 수 있는 주요 배경이 되었다.
이를 위해 이스라엘은 사회 전반에 주택보급 및 인프라 건설과 같은 다양한 개발 요구가 상존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부분에 대한 투자를 줄이 고 방위산업에 지원을 집중시켰다. 또한 이스라엘 정부는 방위산업에 대한 투자자임은 물론 주요 고객으로서, 자국 생산 무기체계를 집중적으로 구매함으로써, 자국 방산업체들에 대한 경제적 유인을 지속적으로 제공하였다. 이스라엘 정부의 방위산업에 대한 투자 및 구매는 주로 국영 방위산업체인 IMI, IAI 등을 통해 이루어졌는데, 이것이 업체들이 세계적인 생산능력을 보유하는 데 직접적인 원인이 될 수 있었다. 이에 따라 종사자 수 기준으로 볼 때, 1975년 이스라엘 방위산업은 1967년에 비해 3배 증가하였으며, 1975년부터 1985년에 이르는 기간에도 2배에 해당하는 성장을 이루게 되었다. 특히 1975년부터 1985년 기간 중에는 이스라엘 방위산업의 성장에 따라 무기 수출도 활성화되었는데, 남아프리카공화국, 대만, 아르헨티나 등의 제3세계 국가들이 주요 수출대상국이었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주의하여야 할 것은 안보위기 하나만으로는 무기의 자체생산 필요성 및 가능성이 충분히 설명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후발국 방위산업의 업체들이 무기를 자체생산하기 시작하는 것은 일부 경제적인 동인이 함께 제공될 때 더욱 실현 가능한 일일 것이다. Brauer(2002, 2007)에 의하면, 안보 위기 상황에서 무기수출입통제 등과 같은 수급 불안요인이 발생할 경우 후발국은 무기의 자체생산을 시작한다고 한다. 이때 후발국의 무기생산은 높은 고정비용과 산업기반(industrial infrastructure)의 부재로 인해 일반적으로 국제시장으로부터 수입하는 경우에 비해 높은 비용을 발생시키게 되는데, 이를 상쇄시키고 자체 생산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정치적 개입이 불가피하게 된다(Brzoska, 1999). 여기서의 정치적 개입은 방위산업에 대한 정부의 보조금 지원이 한 가지 예가 될 수 있는 것으로서, 바꾸어 말하면 높은 비용에도 불구하고 국내 생산을 위해 경제적 유인(economic incentives)을 제공한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경제적 위기와 안보위기는 모두 후발국 방위산업 발전을 위한 동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두 위기요소 가운데, 후발국 방위산업의 초기 단계에서는 안보위기가 더욱 중요한 동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초기단계는 주로 후발국의 방위산업 진입, 즉 무기생산 착수 시기라고 할 수 있는데, 많은 방위산업 문헌들은 안보전략적 요구가 후발국이 무기를 생산하기 시작하는 원인임을 지적하고 있다.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되는 상황이 조성되는 경우 무기 수요는 증가하게 되며, 이때 국가는 무기의 주요 수요자로서 해외로부터의 무기수입은 물론 국내에서의 조달도 고려하게 된다. 특히 안보위기 상황에서 국내에서의 무기조달, 즉 무기 자급에 대한 필요성이 확대되면, 후발국은 방위산업에 진입하게 되며 점차 생산량을 늘려나갈 수 있게 된다.
우선 후발국은 외부의 안보위협이 존재할 경우 이를 국내에 전파하거나 확대 재생산함으로써 안보위기를 조성한다. 조성된 안보위기에 따라 국방력 강화를 통한 위협에 대응해야 한다는 논리로 무기 획득에 대한 정당성을 획득하며, 이를 통해 수요를 창출 혹은 확대한다. 이 단계에서 후발국은 무기체계의 수입을 추진 하게 되고, 일부 기술수준이 높지 않은 소형무기 생산도 시도하게 된다. 두 번째로, 조성된 안보위기 상황하에서 무기수출통제 등으로 인해 무기수급에 어려움이 발생하거나 예상되는 경우, 후발국은 자주국방이라는 합리화 근거하에 경제적 유인을 제공한다. 이를 위해 방위산업체에 대해 보조금을 지급하거나, 국산품 우선 구매나 국내 방산 공급업체 보호육성, 납품업체에 대한 수익보장, 외부에서 발생한 경제위기로부터의 보호 등 국내산업 보호육성 정책을 실시한다. 이를 통해 국내 방위산업이 자체 생산능력을 확보하도록 유도하며, 방산업체들은 해외기술 도입을 통한 무기체계 자체생산, 라이센스 생산 및 일부 수출을 시도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국내 방위산업 기반이 어느 정도 마련되면, 후발국은 자국 방위산업 내 비효율성을 제거하고, 산업 경쟁력을 강화하며, 국가예산 및 비용의 합리화를 추진할 필요성에 직면한다.
이상을 종합해 보면, 양 국가 모두 ① 안보위기 조성, ② 경제적 유인 제공, ③ 경제적 위기 조성이라는 단계를 거쳐 현재의 모습으로까지 발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들 국가는 외부로부터의 주어진 높은 수준의 안보위기하에서 무기 수요가 급증하였으며, 이를 충당하기 위해 일부 무기 생산과 더불어 해외로부터의 무기 도입을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해외 무기 조달이 어려워지게 되었을 때, 두 국가의 정부는 자주국방의 필요성을 인식하게 되었으며, 이로 인해 막대한 경제적 유인을 제공하면서 자국 방위산업체들을 육성하기 시작하였다. 이 단계에서는 기술수준이 높지 않은 무기체계를 중심으로 자체 생산을 확대하며, 일부 무기체계의 자체 개발도 시도하였다. 그러나 경제적 유인을 통한 방위산업 육성에 따라, 두 국가의 방위산업은 점차 비효율성이 높아지게 되었고, 이에 따른 산업 경쟁력 강화 및 국가예산과 비용 합리화 요구가 증대되게 되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이스라엘은 대략 1990년대~2000년대 경제적 위기조성을 시작하였다.
다음으로, 안보위기 및 경제적 유인이라는 상황하에서 어느 정도 방위산업의 기반을 마련한 후발국들이 자체생산 수준을 넘어서 자체개발 및 글로벌 경쟁력 강화 단계로 넘어서기 위해서는 경제적 위기(economic crisis)가 중요한 동인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이전 단계에서 후발국 정부가 제공하였던 각종 제도적 지원 장치들은 소요 무기의 자체생산을 위한 동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그러나 자국 방위산업 내 시장 독점화로 인한 비효율성이 지속될 수 있으며(김정호 외, 2012), 기업들은 독점적 시장 내에 안주하여 혁신활동이 저해되는 등의 역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는 기업들에게 혁신에 대한 투자를 요구・강제하거나, 기존의 보호육성 정책으로부터의 탈피, 경쟁체제 도입 및 시장자유화 등의 제도를 도입함으로써 경제적 차원에서의 위기를 조성할 수 있다.
1980년대에 들어서는 안보위기의 수준에 약간의 변화가 발생하였다. 당시 전두환 정권은 이전의 박정희 정권이 자주국방 기조를 유지하였던 것과는 반대로, 미국과의 군사동맹이 안보위기를 극복하는 데 더욱 중요하다고 보았다. 또한 미국 레이건 행정부는 동맹국에 대한 확고한 안전보장을 약속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따라, 1980년대 초반에는 안보위기 조성의 수준이 이전보다 눈에 띄게 줄어들게 되었는데, 이는 국내 방산업체들에게는 수요 감소라는 환경으로 작용 하게 되었다. 여기에 1970년대 말에 불어닥친 유류파동까지 겹쳐 방위산업을 포함한 중화학공업 업체들에게는 큰 부담으로 작용하였다. 이에 정부는 외부로부터의 경제적 위기는 차단하고 국내에서의 경제적 유인은 추가적으로 제공하는 정책을 택하였다. 국방부는 1980년 방위산업 육성기금을 운용하기 시작하여 방위산업을 지원하기 시작하였으며, 1983년부터는 방산 업체가 계획생산을 할 수 있도록 방산물자의 장기 소요량을 사전 통보하는 제도를 도입하였다. 또한 1983년에는 각 분야별로 주・부 전문업체를 지정하는 방위 산업 전문화・계열화 제도를 도입하여 방위산업에서의 독점체제를 더욱 강화하였다.
지시문 (instruction)
다음 문맥을 읽고 질문에 답하시오.
질문 (question)
이스라엘이 1995년 도입한 「입찰의무규정(Mandatory Tender Regulations, 5755-1995)」이 이스라엘 방위산업 내 경쟁 구도에 어떠한 변화를 가져왔는지 설명하시오.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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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과제 해석
task_interpretation이스라엘의 「입찰의무규정」 도입이 방위산업의 경쟁 구도에 미친 영향을 파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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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정보 추출
information_extraction문맥에서 「입찰의무규정」 도입과 관련된 내용을 추출한다.
- 이스라엘 정부는 1995년 「입찰의무규정(Mandatory Tender Regulations, 5755-1995)」을 도입하여 모든 정부 부처의 조달 사업 진행 시 반드시 경쟁 입찰을 거치도록 규정함으로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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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근거 선택
evidence_selection규정 도입 이후의 변화를 나타내는 구체적인 문구를 선택한다.
- 기존 국영기업・국가기관이 독점해 왔던 이스라엘 방위산업에 민간 기업과 해외 업체가 주요 경쟁자로 등장하게 되었다.
- 작아진 시장 규모, 해외 업체의 시장 잠식, 민간 기업의 등장 등으로 이스라엘 내수 시장에는 치열한 경쟁구도가 형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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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논리 통합
logical_integration경쟁 입찰 의무화가 독점 체제를 깨고 민간 및 해외 업체의 진입을 유도하여 치열한 경쟁 환경을 조성했음을 연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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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결론 도출
conclusion_formulation규정 도입으로 인해 기존의 독점 구조가 해체되고 민간 기업과 해외 업체가 경쟁자로 등장하며 내수 시장의 경쟁이 심화되었다는 결론을 도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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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답변 생성
answer_generation도출된 결론을 바탕으로 최종 답변을 작성한다.
근거 (evidence)
- 이스라엘 정부는 1995년 「입찰의무규정(Mandatory Tender Regulations, 5755-1995)」을 도입하여 모든 정부 부처의 조달 사업 진행 시 반드시 경쟁 입찰을 거치도록 규정함으로써
- 기존 국영기업・국가기관이 독점해 왔던 이스라엘 방위산업에 민간 기업과 해외 업체가 주요 경쟁자로 등장하게 되었다.
- 작아진 시장 규모, 해외 업체의 시장 잠식, 민간 기업의 등장 등으로 이스라엘 내수 시장에는 치열한 경쟁구도가 형성되었다.
최종 답변 (final_answer)
「입찰의무규정」 도입으로 인해 모든 정부 부처의 조달 사업 시 경쟁 입찰이 의무화되면서, 기존에 국영기업과 국가기관이 독점하던 방위산업에 민간 기업과 해외 업체가 주요 경쟁자로 등장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시장 규모 축소, 해외 업체의 시장 잠식, 민간 기업의 등장 등이 맞물리며 이스라엘 내수 시장에는 치열한 경쟁구도가 형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