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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8인문정책연구총서_창의사회 구현을 위한 한국적 인문정책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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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Y_201508120645198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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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기관
경제‧인문사회연구회
발행연도
KD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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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 불가 (is_impossible)
False
문맥 (context)
당대 독일, 즉 독일신성로마제국은 오스트리아황제국과 프로이센 왕국을 제외하면 대부분 수많은 독립 군소군주국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 군소군주국들은 주로 공작이 다스리는 공국들로 각각 다양성을 가지고 있었고, 외형적으로 귀족 중심의 봉건 사회의 시스템을 가지고 있었지만 내면적으로 군주 귀족들은 여러 방식으로 자신의 백성들과 소통하는 방식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것은 일차적으로 공작, 귀족들의 통치를 유지하는 정치적 통치기술이었지만, 결과적으로 그것은 자신의 백성들과 소통을 가져오게 되었다. 특히 이것이 가능하게 된 것은 군소군주국들의 통치면적이 턱없이 작은 지역이었다는 데 있다. 당시 독일신성로마제국에서 프로이센이나 그 외의 몇 군주국들은 제외하면 대부분의 공국들은 중앙집권의 프랑스나 영국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조그만 지방을 다스리고 있었고, 상대적으로 조금 넓은 지역을 다스리는 공국은 그 공국에 속하는 작은 지방들에 봉건적 자치권을 주는 방향으로 통치가 시행되었다. 따라서 독일의 공국들은 중앙집권의 왕국보다는 더 넓은 사회적 소통의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들을 통해 당시 독일사회에서 인문 정신과 시대정신은 같은 맥락에 있게 되고, 문화와 예술은 현실 정치와 결코 분리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주게 된다. 즉 당시 독일사회의 문화와 예술의 인문학적 발전에서 분석할 수 있는 점은, 인문적 창의성도 시대의 정신이자 문화와 연결되어야 하며 긍정적 의미에서 정치적 연관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 시기 독일에서 연극이 창조적 시민교육의 수단으로 추천된 것도 바로 이런 맥락에서 가능했고, 이것은 현재 독일사회의 문화정책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당시 독일의 대표적인 계몽주의 극작가이자 연극이론가인 고트홀트 에프라임 레싱은 연극이 시민들의 감정과 의식을 계몽하는 교육적 수단임을 주장했고, 이를 통해 이른바 ‘시민비극’과 새로운 희극의 정의가 가능하게 되었다. 그의 연극 및 예술관은 독일 전역에서 광범위하게 수용되었고 괴테, 쉴러와 같은 후배 예술가들과 많은 시민계급의 지식인들에 의해 독일문화와 예술의 핵심 기준으로 발전하게 된다. 당시 독일 젊은 작가들을 중심으로 해서 강력하게 전개된, 독일적 문화의 정체성에 대한 주장인 ‘슈투름 운트 드랑’ 운동은 레싱의 예술관에 영향을 받아 발생했다고 할 수 있으며, 이런 주장은 특히 독일의 많은 군소공국 궁정들에서 문화 및 인문정책의 일부로 수용된다. 18세기 독일사회가 창의사회로 발전하게 된 핵심적 요인 중 하나는 문화와 예술의 지원이 정부와 군주에 의해 제도적으로 이루어진 데 있다. 또한 상류사회의 고급문화뿐만 아니라 다수 시민의 일상문화 내지 민중의 문화도 제도적으로 후원되고 장려되었다. 바이마르 공국의 궁정처럼 이른바 ‘문예궁정’으로 인정받는 궁정들은 문화와 예술을 후원함으로써 창의적 인재들을 끌어들이거나 배출하고, 사회 전체적으로는 많은 시민들을 교육시키는 장치를 마련하고자 했다. 바이마르 궁정이 후원하거나 바이마르 궁정과 협력한 대표적 인사는 시인이자 자연과학자, 장관이자 정치인으로 활동했던 괴테를 중심으로 해서 계몽주의 소설가 빌란트, 극작가 쉴러, 역사철학자 헤르더, 작가이자 프로이센 정부의 외교관인 빌헬름 폰 훔볼트 등을 들 수 있다. 이들은 모두 예술과 문화계의 인사들이었으나 당대 독일 궁정의 정치와도 광범위하게 연관을 맺고 있었다는 점이 특이하며, 나아가 그들은 모두 시대의 인문 정신을 주장한 대표적 인물이기도 했다. 20세기 초 독일의 바이마르 공화국은 한편으로 예술과 모더니즘 문화의 융성이라는 성공을 거두었으나, 정치적 혼란과 1920년대의 경제적 어려움, 허약한 민주제도라는 어려움을 겪었다. 이런 어려움은 이후 독일에서 히틀러의 NS 정부가 들어서게 하는 일종의 통로 역할을 하게 만든다. 바이마르 공화국의 실패의 원인에 대해 사회적 소통의 부재, 사회통합 구조의 미비 등을 그 중요한 요인으로 지적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당대의 인문학은 사회적 소통과 통합을 위한 메커니즘으로 작동하지 않았으리라 판단한다. 바이마르 공화국이 실패한 원인은 여기서도 발견할 수 있다. 즉 바이마르 공화국에서 인문학의 활력 상실 혹은 인문학의 통합적 시각의 상실은 당시 독일사회의 소통의 기반을 현저하게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으며, 사회의 구성원들이 미래에 대한 비전을 상실하고 불안의 내면 영역으로 도피하게 만들었다. (1) 분단기간 중 양독일의 상이한 발전에도 불구하고 예술과 문화는 독일민족의 지속적인 단일성 유지의 기초가 되었다. 그것들은 궁극적으로 유럽통합을 지향하는 독일의 국가적 통일과정에 있어 독자적이며 필요불가결한 기여를 하고 있다. 통일된 독일의 세계 속에서의 위치와 이미지는 그의 정치적인 비중과 경제적인 능력 이외에도 그의 문화국가로서의 의의에 좌우된다. 대외 문화정책은 동반자적인 공동 작업을 바탕으로 한 문화교류를 우선목표로 한다. (2) 제3조에 언급된 지역에서의 문화적 재산은 훼손되어서는 안 된다. (3) 문화적 임무수행과 자금 조달문제는 보장되어야 하며 기본법상의 관할권 분담에 따라 새로운 주들과 지방자치단체들도 서독 연방의 각 주와 똑같은 문화, 예술의 보호와 진흥의 의무를 지닌다. (4) 지금까지 중앙 집중적으로 운영되던 문화시설과 기관은 그것이 위치한 주나 지방자치단체의 담당기관에 이양된다. 연방정부를 통한 부분적 재정조달은 예외적인 경우에, 특히 베를린 주에 대해서는 가능하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사회에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는 것은 인문학이라 할 수 있으며, 인문학은 우리 사회 발전의 새로운 내적인 원동력이 되어야 한다. 인문학이 사회 발전에 대한 구체적 방향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인문정책의 형태로 나타나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 연구는 인문학이 현재 우리 사회의 창의적 발전에 기여하게 하는 인문정책을 연구하고자 한다. 우리 사회의 창의적 발전을 위한 인문정책에 대한 연구에서 필요한 것은 창의적 모델이다. 세계 역사적 시각에서 볼 때 근대 시민사회의 형성기부터 인문학의 발전에 필요한 담론과 철학적, 사상적 기초를 제공해 왔던 국가는 프랑스와 독일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두 나라는 서로 대비되는 정치와 사회의 문화를 가지고 있었지만 근대 인문학의 발전을 주도해 왔다. 그것은 이들 국가가 서로 다른 차원에서 인문학이 지니는 공공재로서의 성격에 주목하여 일찍부터 과감한 인문정책을 펼쳤기 때문에 가능했다. 여기에 정부나 공적 차원의 지원체계가 중요한 역할을 했고, 지식인과 예술가들이 창의적 사상과 이념을 펼칠 수 있게 지원했다. 2. 독일사회에서 인문학이 사회 발전을 위한 핵심적 위치를 점할 수 있었던 것은 경제와 연관을 맺고 있었기 때문이다. 인문학은 사회의 경제적 생산과 분배에 정당성을 부여하거나 자본의 투자에 대한 근거를 제공하기도 했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도 인문학의 잠재적인 국가경쟁력을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인문학 관련 연구개발을 경제 및 산업 분야와 연관해서 추진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인문학 기초연구 외에 그 기초연구를 응용한 응용연구와 경제와 경영, 산업 분야와의 융합연구 등이 지속적으로 추진될 수 있게 제도화해야 한다. 3. 18세기 독일사회가 창의사회로 발전하게 된 핵심적 요인 중 하나는 문화와 예술의 지원이 정부와 군주에 의해 제도적으로 이루어진 데 있다. 또한 상류 사회의 고급문화뿐만 아니라 다수 시민의 일상문화 내지 대중문화도 제도적으로 후원되고 장려되었다. 바이마르 공국의 궁정처럼 이른바 ‘문예궁정’으로 인정받는 궁정들은 문화와 예술을 후원함으로써 창의적 인재들을 끌어들이거나 배출하고, 사회 전체적으로는 많은 시민들을 교육시키는 장치를 마련하고자 했다.
지시문 (instruction)
다음 문맥을 읽고 질문에 답하시오.
질문 (question)
18세기 독일사회가 창의사회로 발전할 수 있었던 핵심 요인과 바이마르 공국과 같은 '문예궁정'이 수행한 역할은 무엇인가?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1. 1과제 해석task_interpretation

    18세기 독일의 창의사회 발전 요인과 문예궁정의 구체적인 역할을 파악해야 한다.

  2. 2정보 추출information_extraction

    독일사회의 창의적 발전 요인과 문예궁정의 기능에 관한 정보를 추출한다.

    • 18세기 독일사회가 창의사회로 발전하게 된 핵심적 요인 중 하나는 문화와 예술의 지원이 정부와 군주에 의해 제도적으로 이루어진 데 있다.
    • 바이마르 공국의 궁정처럼 이른바 ‘문예궁정’으로 인정받는 궁정들은 문화와 예술을 후원함으로써 창의적 인재들을 끌어들이거나 배출하고, 사회 전체적으로는 많은 시민들을 교육시키는 장치를 마련하고자 했다.
  3. 3근거 선택evidence_selection

    발전 요인으로서의 제도적 지원과 문예궁정의 인재 양성 및 교육 역할을 핵심 근거로 선택한다.

    • 문화와 예술의 지원이 정부와 군주에 의해 제도적으로 이루어진 데 있다.
    • 창의적 인재들을 끌어들이거나 배출하고, 사회 전체적으로는 많은 시민들을 교육시키는 장치를 마련하고자 했다.
  4. 4논리 통합logical_integration

    정부와 군주의 제도적 지원이 창의사회의 토대가 되었으며, 문예궁정은 이를 구체화하여 인재 배출과 시민 교육을 담당했음을 결합한다.

  5. 5결론 도출conclusion_formulation

    핵심 요인은 정부와 군주의 제도적 문화/예술 지원이며, 문예궁정은 인재 유입 및 배출과 시민 교육의 장치 역할을 했다고 정리한다.

  6. 6답변 생성answer_generation

    추출된 정보를 바탕으로 최종 답변을 작성한다.

근거 (evidence)
  • 18세기 독일사회가 창의사회로 발전하게 된 핵심적 요인 중 하나는 문화와 예술의 지원이 정부와 군주에 의해 제도적으로 이루어진 데 있다.
  • 바이마르 공국의 궁정처럼 이른바 ‘문예궁정’으로 인정받는 궁정들은 문화와 예술을 후원함으로써 창의적 인재들을 끌어들이거나 배출하고, 사회 전체적으로는 많은 시민들을 교육시키는 장치를 마련하고자 했다.
  • 문화와 예술의 지원이 정부와 군주에 의해 제도적으로 이루어진 데 있다.
  • 창의적 인재들을 끌어들이거나 배출하고, 사회 전체적으로는 많은 시민들을 교육시키는 장치를 마련하고자 했다.
최종 답변 (final_answer)
18세기 독일사회가 창의사회로 발전한 핵심 요인은 정부와 군주에 의해 문화와 예술에 대한 지원이 제도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특히 바이마르 공국과 같은 '문예궁정'은 문화와 예술을 후원함으로써 창의적인 인재들을 끌어들이거나 배출하고, 사회 전체적으로 많은 시민을 교육시키는 장치를 마련하는 역할을 수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