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맥 (context)
구매력의 차이는 식생활뿐 아니라 의복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북한은 경제난 이전에는 국가로부터 의복을 배급받아 입었지만 경제난 이후 의복의 공급은 사실상 중단되었으며 의복을 개인적으로 구입하였다. 또 시장을 통해 중국산 제품이 대량 유입되면서 옷을 구입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게 되었다. 최근에는 계절마다 한두 벌 옷을 구입하는 비율도 늘어나는 추세이다. 또 시장을 통해 유입되는 중국 및 남한 드라마를 시청하고 주인공의 패션을 따라하는 등의 생활이 변화하고 있다. 최근에는 김정은의 부인 리설주를 따라 하이힐이나 미니스커트가 유행하고 있다는 언론 보도도 있다. 리설주가 착용한 옷과 액세서리 모조품은 중국에서 만들어져 시장에 나오고 있다. 유행에 민감한 북한의 젊은이나 부유층은 매스컴에 영향을 받아 한국 드라마나 리설주의 패션을 따라 하기 위해 패션잡지를 보고 옷을 맞춰 입거나 해외에서 들여온 수입품을 구매하면서 북한 내 유행을 선도하고 있다.
배급체계는 북한 주민의 주거 생활에도 적용되어 왔다. 북한 주택의 소유권은 당국이며 주민들은 배정받은 주택에서 입사증을 받고 임대료(사용료)를 내며 생활 할 수 있는 권한만 부여받는다. 주택 배정은 직장과 직위에 따라 주택 유형, 평수에서 차등 배분된다. 평양시를 제외한 지방의 일반 노동자 등 주민은 대부분 11평 정도의 일자형 다가구 주택, 일명 하모니카 주택을 배정받는 경우가 많다. 농민의 경우 농촌 문화주택을 배정받아 거주한다. 2016년 유엔인구기금(UNFPA)과 북한 중앙통계국이 공동으로 발간한 「2014년 북한의 사회경제, 인구통계, 보건 조사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Socio-Economic, Demographic and Health Survey 2016)」에 따르면 북한 주민의 주거 유형은 연립주택 42%, 단독주택 33%, 아파트 25% 순서로 나타나지만, 평양의 경우 62.9%의 주민이 아파트에 거주하여 지역별 차이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980년대 말 이후 북한은 동유럽 사회주의권과 소련의 붕괴라는 위기에 직면하여 체제 생존의 위협을 느끼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주체사상의 논리적 보강을 통해 북한식 사회주의의 우월성을 강조하는‘우리식 사회주의’를 제시하였다. 북한은 1990년대 들어서 1994년의 김일성 사망과 1990년대 중반 심각한 경제난에 직면하는 등 정권 수립 이후 심각한 체제 위기를 겪었다. 1990년대의 이러한 위기는 그동안 북한이 주체사상을 통해 내세워 왔던 자주·자립적인 정치·경제체제의 수립과는 정반대되는 암울한 현실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모순적인 현실은 주체사상의 영향력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2000년대 들어서 군을 전면에 내세운 위기관리체제를 뒷받침하는 선군정치가 통치논리로 부상하였다. 그러나 2011년 12월 김정일이 사망하고 김정은이 권력전면에 등장한 이후 2012년 4월 개정된 노동당 규약 서문과 2016년 5월 개정된 노동당 규약 서문에서는 당의 유일한 지도사상으로‘김일성-김정일주의’를 내세우고 있다.
북한군 병사는 주요 특수부대를 제외하고 평균 군 복무 기간의 3분의 1에서 2분의 1을 건설, 영농 등 비군사 노동 활동에 종사하게 된다. 병사에 대한 부대의 급식 상황은 2000년 초 개선되면서 외부 지원의 영향으로 다소 나아졌으나, 미사일 발사, 핵실험 등 군사적 도발로 인해 국제사회의 대북지원이 중단되면서 다시 악화되었다. 주식은 보급되고 있으나 부식은 직접 구매하거나 부대가 소재한 지역의 특징에 따라 영농, 어로, 채취 등 방식을 통해 자체적으로 해결하고 있는 실정이다. 군인들의 단백질 보충을 위해 많은 부대가 염소와 돼지 등의 가축을 직접 사육하고 콩작물을 경작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7.1 경제관리 개선 조치’(2002.7.1.) 이후 군대에서도 부대 운영을 위해 자체 해결해야 할 사안들이 적지 않아 상당수의 부대에서 외화벌이, 영리활동, 근로 동원 등 수익 사업을 위한 경제활동을 묵인하고 있는 실정이다. 병사들은 경제적으로 부수입이 많은 국가보위성 예하 국경 경비대 배치를 선호하기도 한다. 또한 생필품과 부식 보급이 열악하여 일부 군인들의 일탈 행위가 나타나고 있고, 군민(軍民)관계를 해치는 사례도 발생하고 있다.
해방 직후 북한 지역의 정치 지형은 다양한 정파들이 각축하는 구도로 형성되었다. 국내파로는 조만식을 중심으로 한 우익 민족진영과 박헌영을 중심으로 한 좌익 공산주의진영이 세력을 확대하는 가운데 해외파로는 허가이 등의 소련파와 김두봉, 무정등의 친 중국 연안파 등이 정치의 중심 파벌들을 구성하였다. 여기에 김일성 등의 항일 빨치산 세력이 경쟁에 가담하였다. 38도선 이북지역에서의 정권 수립을 위한 권력 투쟁 과정에서 김일성은 소련의 비호 아래 정적들을 제거하고 권력을 장악해 나갔다. 6.25전쟁 이후 북한의 권력층 내부에서는 북한의 재건과 향후 국가발전 전략과 관련하여 정파 간 갈등이 발생하였다. 이러한 갈등은 1956년 ‘8월 종파사건’으로 이어지게 되며, 김일성은 이 사건을 통해 중공업 우선의 사회주의 국가발전 전략을 관철시키는 한편 자신과 대립하던 정파들을 숙청하였다. 그리고 흐루쇼프(옛 표기는 흐루시쵸프)의 스탈린 격하 운동으로 시작된 중·소 간 이념분쟁의 와중에서 김일성은 자주적 사회주의국가 건설을 내세우며 소련파 및 연안파 등을 외세 의존적인 정파로 지목하여 이들을 추가적으로 제거함으로써 권력 독점의 확고한 토대를 마련하였다.
1960년대 김일성은 1967년 5월 노동당중앙위원회 제4기 제15차 전원회의를 계기로 북한에서 수령 중심의 유일체제를 구축하였고, 같은 해 12월 16일 최고인민회의로부터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로 추대되었다. 이후 북한은 절대자로서의 ‘수령’을 정점으로 하여 당과 인민대중이 일심 단결된 형태로 수령의 유일적 영도 아래 통치되는 유일체제를 구축했다. 오늘날 북한의 세습정권과 수령중심의 1인 독재체제 형성의 이정표 역할을 한 것은 김일성 유일체제를 공식화한 1972년 ‘사회주의 헌법’이었다. 사회주의 헌법은 김일성의 권력에 도전하는 정치적 반대세력에 대한 숙청을 통해 북한의 정치체제가 김일성 유일체제로 변화되는 과정을 반영한 것이다. 또한 사회주의 헌법은 당의 지도 이념으로 마르크스-레닌주의와 병렬하여 주체사상을 명시하였으며, 1948년 헌법에서 채택한 ‘내각제’를 폐지하고 국가주석제를 신설함으로써 정치권력의 집중과 강화에 역점을 두었다. 이로써 국가주석은 중앙인민위원회를 직접 지도하고 군의 최고사령관 및 국방위원회 위원장을 겸직함으로써 실질적 권력을 장악하게 되었다. 국가주석은 국가주권을 대표하는 수반(首班)으로 최고인민회의에서 선출되지만 소환되지 않는 절대 권력자로 규정된 것이다.
북한은 1972년 최고인민회의 제5기 제1차 회의에서‘사회주의 헌법’을 통해 최고 인민회의 상임위원회를 폐지하고 주석제를 채택하였다. 그 이전의 북한의 권력 구조는 노동당 총비서가 내각수상을 겸하고 최고인민회의의 상임위원장이 명목상 국가원수를 맡는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1972년 헌법에서는 국가의 모든 권력을 장악한 주석이 국가원수였다. 국가주석은 당이 국가를 지도한다는 원칙 아래 주권의 최고지도기관으로 설치한 중앙인민위원회, 정무원 그리고 재판소와 검찰을 직접 지도할 뿐만 아니라 ‘전무력(全武力)의 최고사령관’및 국방위원회 위원장을 겸임함으로써 전권을 장악하게 되었다. 이렇게 제정된 사회주의 헌법을 통해 노동당 총비서 겸 국가주석인 김일성은 당과 국가를 대표하는 수령의 지위를 확립하게 되었다.
지시문 (instru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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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question)
1972년 사회주의 헌법 제정 이전의 북한 권력 구조는 어떠한 형태였는가?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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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과제 해석
task_interpretation1972년 사회주의 헌법이 도입되기 전 북한의 권력 구조와 형태를 파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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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정보 추출
information_extraction헌법 제정 이전의 권력 구조에 관한 문장을 추출한다.
- 그 이전의 북한의 권력 구조는 노동당 총비서가 내각수상을 겸하고 최고인민회의의 상임위원장이 명목상 국가원수를 맡는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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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근거 선택
evidence_selection권력 구조의 핵심 구성 요소인 노동당 총비서, 내각수상,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의 역할을 포함한 문구를 선택한다.
- 노동당 총비서가 내각수상을 겸하고 최고인민회의의 상임위원장이 명목상 국가원수를 맡는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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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논리 통합
logical_integration추출된 정보를 바탕으로 당시 권력의 분산 혹은 명목상 구조를 정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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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결론 도출
conclusion_formulation노동당 총비서가 내각수상을 겸임하고,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명목상의 국가원수 역할을 수행하던 구조임을 도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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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답변 생성
answer_generation질문에 대한 최종 답변을 작성한다.
근거 (evidence)
- 그 이전의 북한의 권력 구조는 노동당 총비서가 내각수상을 겸하고 최고인민회의의 상임위원장이 명목상 국가원수를 맡는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 노동당 총비서가 내각수상을 겸하고 최고인민회의의 상임위원장이 명목상 국가원수를 맡는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최종 답변 (final_answer)
노동당 총비서가 내각수상을 겸임하고, 최고인민회의의 상임위원장이 명목상 국가원수를 맡는 형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