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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나라사랑 제84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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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TS-00119997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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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기관
국가보훈처
발행연도
2015
KDC
190
답변 불가 (is_impossible)
False
문맥 (context)
안중근의사가 순국한 지 105주기를 맞았다. 그의 삶의 여정 속에서 보여주었던 자주독립의 의지와 동양평화의 염원은 100여년이 지난 지금도 큰 ‘울림’으로 다가오는 요즘이다. 광복 70년을 맞아 더 선명하고 크게 느껴지는 안중근의사의 살신성인 업적과 사상을 한눈에 볼 수 있는 특별 전시회가 마련됐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 1층 기획전시실에 열린 안 의사의 삶과 사상을 재조명하는 특별전, ‘울림, 안중근을 만나다’. 이번 전시회에는 하얼빈 의거 전·후 안중근의사의 모습을 조명하고, 안 의사가 말한 의거의 목적인 ‘국권 회복’과 ‘동양 평화’에 대한 염원을 엿볼 수 있는 다량의 자료들을 만나볼 수 있다. 3개 파트로 나눠 전시된 이번 특별전에서는 안 의사가 순국 이후 발간되거나 제작된 전기와 엽서, 영화, 의사의 삶이 실린 교과서 등을 통해 다양하게 기억되고 기록된 그의 삶과 사상을 살펴볼 수 있다. 1부 ‘하얼빈 역에 울린 총성’에서는 애국계몽운동에서 의거에 이르기까지 국권회복을 위해 노력한 안중근의사의 삶의 여정을 살펴볼 수 있다. 안중근의사의 의거 사실을 묻는 전보, 의거 다음날 발행된 ‘경성일보호 외 ’, 의병 활동 과정에서 ‘빌렘 신부에게 보낸 엽서’가 실물 자료로 전시돼 있다. 이외에도 안중근의사가 말한 일본의 침략상과 관련해 당시 정세를 보여줄 수 있는 유물들이 다량 전시돼 있다. 2부 ‘뤼순에 울린 외침’에서는 안중근 의사가 의거 이후 재판정에서 밝힌 의거의 진정한 목적과 동양 평화에 대한 염원을 엿볼 수 있는 자료들로 구성돼 있다. 현재까지 필사본으로 전해지고 있는 ‘동양평화론’과 더불어 안중근의사의 마음을 새긴 친필 유묵 10여 점을 선보였다. 안중근의사기념관에서 기탁한 유묵‘박학어문약지이례’(보물 제 569-13호)와 함께 ‘경천’, ‘임적선진위장의무’(보물 제 569-26호), ‘욕보동양선개정략시과실기추회하급’(보물 제 569-21호) 등이 전시돼 있다. 3부 ‘가슴에 품은 사진 한장, 대한국인 안중근’에서는 안중근의사를 기리는 우리들의 모습을 반추할 수 있는 자료들을 소개하고 있다. 안경신 선생은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평양 만세운동에 적극 참여했다. 임시정부 수립과 함께 전국적으로 항일운동단체가 조직될 때 선생은 대한애국부인회의 교통부원으로 임시정부에 군자금을 전달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그러나 대한애국부인회 조직이 일제경찰에 발각돼 더이상 활동이 어려워지자 선생은 1920년 중국으로 망명해 임시정부의 군사기관인 광복군총영에서 활동했다. 광복군총영은 1920년 7~8월경 미국의원시찰단의 방한을 계기로 세계 여론에 한국 독립의 필요성을 호소하고자 폭탄 거사를 실행키로 했다. 결사대 중 제2대에 파견된 선생은 폭탄을 직접 소지하고 평양으로 잠입했다. 거사 분위기 조성을 위해 평양 시내에 뿌린 경고문의 영향으로 일제 경찰의 삼엄한 경비가 있었으나 1920년 8월 3일 밤 평남도청과 평양부청 등에 폭탄을 투척해 평남도청 제3부인 평남경찰부 건물을 파괴했다. 선생은 당시 임신한 상태임에도 거사를 주도했으며, 출산 직후인 1921년 3월 일제 경찰에 체포됐다. 선생은 사형을 구형받았으나 평양복심법원으로부터 징역 10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선생은 무력적인 투쟁만이 독립을 쟁취할 수 있다고 보고 임신부임에도 불구하고 강인한 투쟁정신으로 평양 시내 일제 통치기관에 폭탄을 투척했다. 독립신문 창간, 독립협회 창립 등 조국의 자주 독립을 위해 평생을 바친 송재 서재필 선생을 추모하는 ‘제2회 송재 문화제’가 지난달 8일 전남 보 성군 서재필기념공원에서 열렸다. 송재서재필기념사업회(이사장 김중채) 주관으로 열린 이날 행사에는 이형남 순천보훈지청장, 유족, 광복회원, 군민, 학생 등 500여 명이 참석했다. 송재 서재필 선생은 1896년 4월 독립신문을 창간해 국민계몽운동을 전개했으며, 1898년 3월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시민 궐기대회인 만민공동회를 개최하는 등 독립과 개혁에 대한 국민의 자주 독립 사상과 자유 민권 사상을 고취하는데 힘썼다. 선생은 1925년 호놀룰루의 ‘범태평양회의’에 한국 대표로 참가해 일본 침략의 부당성을 폭로하고 대한의 독립을 요구하는 등 평생 조국 광복을 위해 헌신했다. 승려 신분으로 만세운동을 주도하고 일생을 항일 투쟁에 헌신한 김성숙 선생을 기리는 ‘운암 김성숙 선생 46주기 추모재’가 지난달 10일 국립서울현충원 현충관에서 열렸다. 운암김성숙선생기념사업회(회장 민성진) 주관으로 열린 이날 행사는 안중현 서울지방보훈청장을 비롯해 유족, 광복회원, 각계 인사, 시민 등 300여 명이 참석했다. 운암 김성숙 선생은 1919년 3월 경기도 남양주군 봉선사의 승려로 있을 때 ‘조선독립군 임시사무소’라는 명의로 동료들과 함께 격문을 만들어 인근 동리에 살포한 사건으로 일경에 체포돼 옥고를 치렀다. 이후 중국 전역의 한국인 청년들을 모아 ‘재중국조선청년동맹’을 조직하고, 1936년에는 ‘조선민족해방동맹’을 결성했다. 1938년 ‘조선의용대’간부로 임명돼 활동하던 중 1942년 대한민국임시 정부의 국무위원으로 취임했고, 이후 내무차장으로도 활동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제96주년 기념식이 지난달 13일 서울과 중국에서 각각 개최됐다. 서울에서는 13일 오전 10시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이완구 국무총리, 박승춘 국가보훈처장, 원로 애국지사, 주요보훈단체장, 학생, 시민 등 1,0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함께 걸어온 애국의 길, 함께 만들어 가야 할 통일한국’이라는 주제로 진행됐다. 이날 이 총리는 기념사를 통해 “올해는 광복 70주년이기도 하지만, 한·일 국교 정상화 50년이 되는 해”라고 밝히고 “양국이 그동안 다져온 관계발전의 토대 위에 새로운 미래로 나아가야 할 때임에도 불구하고 독도와 일본군위안부피해자 문제에서 고대사 왜곡에 이르기까지 엄연한 역사적 진실을 부정하거나 거짓으로 덮고 있다” 며 “지금이라도 역사적 사실을 직시하면서 한·일 양국의 새로운 미래를 열어갈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기념식에 이어 백범기념관대회의실에서 광복회(회장 박유철) 주관으로 광복회 임직원 및 회원, 독립운동 관련 단체장 등 4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대한민국임시정부선열 추념식이 열렸다. 한편 중국 충칭 JW메리어트 호텔과 상하이 장풍메리어트 호텔에서도 각각 11일과 13일 기념식이 개최됐다. 광복70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는 지난 달 23일 범부처협의회를 열어 광복 70년 주제어로 ‘위대한 여정, 새로운 도약’을 확정했다. 국민제안 등을 통해 공모해온 이번 주제어의 ‘위대한 여정’은 “나라를 되찾기 위한 독립운동, 전쟁의 폐허 위에서 국민의 노력으로 경제성장과 산업화를 함께 달성하여 무역 1조 달러를 달성한 세계 8대 무역강국, 동·하계 올림픽 유치와 성공적인 월드컵 개최, 전 세계에 한류를 수출하는 문화강국이자 세계 7번 째의 30-50 클럽(3만불-5천만 국민) 가입을 눈앞에 둔 광복 70년의 대한민국의 역사”를 표현했다.‘새로운 도약’은 “이러한 성취를 이뤄낸 민족적 역량과 자부심을 바탕으로 국민이 하나 되어 선진문화국가와 광복 이후 미완의 과제로 남아 있는 통일국가의 디딤돌을 만들자”는 뜻을 담았다. 정부는 광복70년 주제어를 8·15 경축 행사를 비롯한 위원회의 기념사업에 광 범위하게 사용할 예정이다. 위원회는 광복70년기념사업도 이달 중 최종 확정키로 했다. 정부는 지난달 9일 광복70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를 열고 기념사업 추진 기본계획안을 심의했다.
지시문 (instruction)
다음 문맥을 읽고 질문에 답하시오.
질문 (question)
안경신 선생이 1920년 8월 3일 밤에 수행한 거사의 구체적인 내용과 그 결과로 파괴된 건물은 무엇인가?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1. 1과제 해석task_interpretation

    안경신 선생이 1920년 8월 3일 밤에 실행한 거사의 내용과 파괴된 대상을 파악해야 한다.

  2. 2정보 추출information_extraction

    안경신 선생의 활동과 관련된 시기 및 사건 내용을 추출한다.

    • 1920년 8월 3일 밤 평남도청과 평양부청 등에 폭탄을 투척해 평남도청 제3부인 평남경찰부 건물을 파괴했다.
  3. 3근거 선택evidence_selection

    질문에서 요구하는 거사의 행위와 파괴된 건물이 명시된 문장을 선택한다.

    • 1920년 8월 3일 밤 평남도청과 평양부청 등에 폭탄을 투척해 평남도청 제3부인 평남경찰부 건물을 파괴했다.
  4. 4논리 통합logical_integration

    선생이 평남도청과 평양부청 등에 폭탄을 투척했다는 사실과 그로 인해 평남도청 제3부인 평남경찰부 건물이 파괴되었다는 인과관계를 결합한다.

    • 1920년 8월 3일 밤 평남도청과 평양부청 등에 폭탄을 투척해 평남도청 제3부인 평남경찰부 건물을 파괴했다.
  5. 5결론 도출conclusion_formulation

    안경신 선생은 평남도청과 평양부청 등에 폭탄을 투척하였으며, 이로 인해 평남도청 제3부인 평남경찰부 건물이 파괴되었다는 결론을 도출한다.

  6. 6답변 생성answer_generation

    추출된 정보를 바탕으로 최종 답변을 작성한다.

    • 1920년 8월 3일 밤 평남도청과 평양부청 등에 폭탄을 투척해 평남도청 제3부인 평남경찰부 건물을 파괴했다.
근거 (evidence)
  • 1920년 8월 3일 밤 평남도청과 평양부청 등에 폭탄을 투척해 평남도청 제3부인 평남경찰부 건물을 파괴했다.
최종 답변 (final_answer)
안경신 선생은 1920년 8월 3일 밤 평남도청과 평양부청 등에 폭탄을 투척하였으며, 이로 인해 평남도청 제3부인 평남경찰부 건물이 파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