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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북한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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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TS-00119998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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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TS-00119998182_20
발행기관
통일교육원
발행연도
2017
KDC
340
답변 불가 (is_impossible)
False
문맥 (context)
북한은 1970년대 후반부터 탄도미사일 개발에 착수하여 1980년대 중반에는 사거리 300km의 SCUD-B와 사거리 500km의 SCUD-C를 생산하여 배치하였다. 이 후 1990년대 사정거리가 1,300km인 노동미사일을 배치하였으며, 2007년 사거리 3,000km 이상의 중거리 탄도미사일‘무수단’을 배치함으로써 한반도를 넘어 일본과 괌 등도 사정 범위에 포함시켰다. 2006년 7월 5일에는 대포동 2호를 시험 발사하였고, 2007년 5월 25일에는 5분 만에 발사 가능한 이동식 신형 단거리 지대지 유도탄(KN-02)을 시험 발사하였다. 또한 북한은 2009년 4월 5일 장거리 미사일을 재발사하였으나 실패하였고 2012년 4월 13일 외국의 주요 언론인을 초청한 가운데‘은하 3호’를 발사했으나 다시 실패 했다. 그러나 2012년 12월 12일 평북 동창리에서 ‘은하 3호’를 발사해 1만km로 추정되는 운반 능력을 보여 주었고, 2016년 2월 7일 ‘광명성 4호’를 발사해 1만 2천km로 추정되는 장거리 운반 능력을 확보했다고 주장했다. 북한의 핵실험이 위협적인 것은 북한이 미사일 개발과 관련해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 이외에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SLBM)을 개발하고 있다는 점이다. 북한은 2013년 SLBM 개발 정황이 포착된 이래 2015년에 4회의 사출 시험을 실시한데 이어 2016년에도 총 4차례의 사출 시험 및 시험 발사(3.16., 4.23., 7.9., 8.24.) 등을 지속하고 있다. 2017년 2월 12일 평북 방현 일대에서 ‘북극성-2형’을 고각 발사해 500여km를 비행했다. 북한은 또 하나의 위력한 전략무기라고 강조하였는데 SLBM을 지상 발사 미사일로 개량한 것으로 추정된다. 2017년 5월 14일 ‘화성-12형’ 시험 발사를 단행했고, 7월 28일 김정은 위원장 참관 하에 ‘화성-14형’을 2차 시험 발사를 했다. 그리고 11월 29일에는 김정은 위원장 현지지도 아래 ‘화성-15형’ 시험 발사 성공 보도를 하는 등 탄도미사일 시험발사에 주력하고 있다. 또한, 2016년 북한의 4·5차 핵실험 이후 미국이 유엔 대북제재 결의안 제2270·제2321호의 채택을 주도하고 독자제재를 실시함에 따라 북미 관계는 경색되었다. 2017년 3월 미국은 북한 개인과 정부 기구에 대북 독자제재안을 발의한다. 또한 미국은 2017년 5월부터 이어진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와 관련하여 북한의 석탄철광석 등의 수출을 금지하는 안보리 결의 제 2371호 채택을 주도하였고 9월 3일 북한의 6차 핵실험에 대해서는 대북원유공급을 제한하고, 북한의 섬유제품 수출을 금지시키는 안보리결의 2375호를 채택하였다. 최근에는 북한의‘화성-15형’발사와 관련하여 대북유류공급 제한을 강화하고 수출입 금지 품목을 확대하는 안보리 결의 제2397호가 채택되도록 노력하였고 이러한 잇따른 대북제재로 북미 관계는 더욱 경색된 상황이다. 한편, 2000년대 들어 북한과 미국은 강경한 외교 수사를 주고 받아왔다. 특히 부시 정부와 트럼프 정부 시기 북·미 간 외교 수사를 활용한 상호 위협의 수위가 높았다. 2002년 1월 연두 교서에서 부시 대통령은 북한을 악의 축(axis of evil)으로 규정하자, 북한은 이를 선전포고라고 비난하였다. 2017년 9월 트럼프 대통령은 유엔 연설에서 북한을 향해 “완전한 파괴(totally destroy)”34라는 단어를 사용하였고, 북한 김정은 또한 “사상 최고의 초강경 대응조치”를 취할 것이라며 위협적인 외교 수사로 대응하였다. 북·미 간 이러한 상호 위협적인 외교적 수사는 한반도의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 김정은 시대에 들어 북한의 위협적 외교 수사의 활용과 미디어를 활용한 국제외교 활동의 횟수는 증가하고 있다. 북한 인권 문제도 북·미 간 갈등을 고조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2004년 미국의 「북한 인권법」 제정 이후 최근 「대북제재법」에 따른 북한 인권 침해 관련 핵 심 인물과 기관에 대한 제재 부과 등으로 인해 북·미 간 갈등은 지속적으로 악화되고 있다. 북한 정권 수립 이후 60여 년 동안 중국과 북한의 관계는 때로 소원해지기도 하였으나 정치·경제·군사적으로 순치(脣齒) 관계로 표현될 만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냉전 시기 북한은 중국과 사회주의 이념을 중심으로 혈맹관계를 유지하였다. 하지만 1990년대 들어 북중 관계는 변화하기 시작한다. 중국은 개혁개방 이후 경제발전을 최우선 과제로 수립하고 외교 기조 또한 이념보다 실리를 추구한다. 중국은 1991년부터 북한과의 교역에서 사회주의 블록 경제의 틀 안에서 유지해 온 구상 무역을 포기하고 경화 결제를 요구하였다. 중국이 1992년 8월 한국과 외교관계를 수립하자, 북중 관계는 악화되었다. 북한은 1998년 9월 김정일 체제가 공식 출범하면서 중국과의 관계 정상화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중국과의 관계 정상화는 북한에게 단순히 전통적 우호관계의 복원만이 아니라, 국제적 고립과 경제난 타개를 위해 필수조건이었다. 중국의 경제 및 외교적 지원이 북한이 당면하고 있는 현실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절실하게 필요했다. 김정일은 2000년 5월 중국 방문 이후 2010년까지 6차례 중국을 방문하고, 장쩌민·후진타오 등 중국 국가주석들도 북한을 방문(2001.9., 2005.10.)함으로써 양국 간 친선·우호관계는 더욱 강화되었다. 2011년 5월 김정일의 중국 방문 기간(5.20.~27.)에 개최된 북·중 정상회담에서 후진타오 주석은 북중 친선관계 진전을 강조하면서 “북한의 당 대표자회 정신을 높이 받든다.”고 언급함으로써 북한의 3대 세습 지지를 표명하였다. 북한은 중국과의 협력으로 2012년 강성국가 건설 완성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고, 미·북 대화 및 6자회담 재개를 통해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를 완화하고자 하였다. 중국은 김정일 사망 이틀 후인 2011년 12월 19일 중국과 북한이 “앞으로 당·국 가·인민 간의 관계를 공고히 발전시키고,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적극 공헌하겠다.”고 발표하였다. 김정은 체제의 대중외교는‘북·중 친선 우호 협력’의 목표 아래 추진되어 왔다. 2012년 11월 등장한 중국의 시진핑 지도부는 북한과‘혈맹’보다‘정 상국가’관계를 지향하면서도 자국의 경제발전과 안보를 위해 북한과의 우 호적 관계 개선을 추구하고 있다. 북한의 핵실험 및 미사일 발사 등 군사 적 도발에 대해서는 강경한 태도를 취하면서도 북한체제의 불안정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는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에 대해 미온적으로 대처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북한은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2013년 5월 김정은 특사 자격으로 최룡해 인민군 총정치국장을 중국에 파견하였다. 그러나 2014년 7월 시진핑 주석이 한국을 먼저 방문함으로 북중 관계는 급랭하였다가, 2015년 9월 최룡해 노동당 비서의 중국 전승절 기념행사 참석과 10월 중국공산당 류윈산 상무위원의 북한 노동당 70돌 경축행사 참석을 계기로 다소 개선되었다.
지시문 (instruction)
다음 문맥을 읽고 질문에 답하시오.
질문 (question)
중국이 1990년대 들어 북한과의 교역 방식에서 기존의 구상 무역을 포기하고 요구한 방식은 무엇인가?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1. 1과제 해석task_interpretation

    1990년대 중국이 북한과의 교역에서 기존 구상 무역 대신 요구한 구체적인 결제 방식을 찾는 것이다.

  2. 2정보 추출information_extraction

    1990년대 북중 관계의 변화와 중국의 경제 정책 변화에 관한 내용을 추출한다.

    • 1990년대 들어 북중 관계는 변화하기 시작한다.
    • 중국은 개혁개방 이후 경제발전을 최우선 과제로 수립하고 외교 기조 또한 이념보다 실리를 추구한다.
  3. 3근거 선택evidence_selection

    교역 방식의 변화를 직접적으로 언급한 문장을 선택한다.

    • 중국은 1991년부터 북한과의 교역에서 사회주의 블록 경제의 틀 안에서 유지해 온 구상 무역을 포기하고 경화 결제를 요구하였다.
  4. 4논리 통합logical_integration

    중국이 구상 무역을 포기하고 새롭게 요구한 것이 '경화 결제'임을 확인한다.

    • 구상 무역을 포기하고 경화 결제를 요구하였다.
  5. 5결론 도출conclusion_formulation

    중국이 요구한 방식은 경화 결제이다.

  6. 6답변 생성answer_generation

    질문에 대한 최종 답변을 작성한다.

근거 (evidence)
  • 1990년대 들어 북중 관계는 변화하기 시작한다.
  • 중국은 개혁개방 이후 경제발전을 최우선 과제로 수립하고 외교 기조 또한 이념보다 실리를 추구한다.
  • 중국은 1991년부터 북한과의 교역에서 사회주의 블록 경제의 틀 안에서 유지해 온 구상 무역을 포기하고 경화 결제를 요구하였다.
  • 구상 무역을 포기하고 경화 결제를 요구하였다.
최종 답변 (final_answer)
경화 결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