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맥 (context)
이대로 볼 수만 없었던 우리는 지난 2000년에 개최된 남북 정상회담에서 경의선 복원에 합의하면서 수풀에 잠들어 있던 마터2형 10호 증기기관차 화통이 눈에 들어왔다. 마터2형 10호는 분단의 아픔을 보여주고 앞으로 다가올 평화의 그날을 앞당겨줄 소중한 가치를 지닌 상징물로 등록문화재 제78호로 등록하였다. 이를 영구 보존하기 위해 여러모로 노력한 끝에 ㈜포스코의 기술을 동원하여 정밀조사하여 최적의 처리방안을 수립하였다. 녹 제거, 부식방지 처리, 재부식 예방조치 등의 과정을 거쳐 2009년 6월 25일 경기관광공사는 많은 국민이 동족상쟁의 아픔을 볼 수 있도록 지금의 자리에 이전하여 공개하게 되었다. 비와 직사광선을 피할 수 있게 지붕을 만들고 그 아래 자리를 잡은 마터2형 10호 증기기관차는 외관상 어느 하나 온전한 곳이 없다. 1,020개의 탄알이 뚫고 들어간 곳은 벌집과도 같고 화통의 외관은 갈기갈기 찢기고 구겨 있다. 이것이 동족 간의 아픈 상처이다.
“하회별신굿탈놀이에만 있는 탈이 백정탈입니다. 극 중에서 백정은 ‘저놈의 소새끼 불알이 크다 해서 뚝 따 묵으마 양기에 억시게 좋을시더’ 하며 양반을 조롱하죠. 탈놀이 기간만큼은 소작농으로 일하면서 양반들에게 쌓아왔던 울분을 마음껏 분출하고 학대하던 양반들을 조롱해도 처벌받지 않았죠. 탈놀이는 양반, 천민 구별 없이 모두가 함께 즐기는 문화였습니다.” 하회별신굿탈 놀이는 평등한 세상을 바라는 민중들의 부르짖음이었다. 별신굿 기간에는 양반과 상민, 부자와 빈자로 나누어진 사회 틀 속 억눌림과 억압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별신굿이 끝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는 순간 본래의 신분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지만 그 기간 동안만이라도 없는 자, 눌린 자들이 마음껏 자유를 누리고 자기들의 스트레스를 날려버릴 수 있었다. 비록 15일이라는 짧은 기간이지만 그들에게는 자유를 누리며 평등한 세상에서 자아를 실현할 수 있는 열린 세계였다.
안동하회가면극연구회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전승자를 찾는 것이었다. 쉽지 않을 거라 예상은 했지만 막상 찾아나서 보니 모래밭에서 바늘 찾기였다. “하회마을을 중심으로 그 일대를 다 돌아다녔어요. 전승자를 찾아야만 기록을 남길 수 있으니까요. 그 당시엔 안동시내에 다니는 버스가 한 대뿐이었는데, 그걸 타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돌아다니면서 수소문했죠. 엄청 고생했어요” 수개월 만에 찾은 전승자가 바로 1980년 하회별신굿탈놀이 초대 보유자로 인정된 이창희 선생이다. 하늘이 돕지 않았다면 그를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이재수라는 이름으로 한참 찾아다녔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재수는 아명이고 본명은 이창희였어요. ‘상놈’이라는 신분이 드러날까 봐 자식들이 아버지의 정체를 숨겨왔더군요. 아버지는 탈놀이를 한 적도 없고 하회마을에 산 적도 없다고 말이에요.” 몇 달 동안 설득한 끝에 선생과 가족의 허락을 받아냈고 영영 사장될 뻔했던 하회별신굿탈놀이의 채록이 이루어졌다. 채록한 것을 토대로 보고서를 작성해 경상북도에 제출하고 곧이어 합숙에 들어갔다. 안동하회가면극연구회 회원들은 차도 다니지 않는 외딴 마을의 작은 초등학교에서 150일 동안 합숙하며 이창희 선생에게 하회별신굿탈놀이를 배웠다.
보고서 내는 것이 목표였지만 보고서만으로 끝낼 수 없었다. 이어갈 사람이 필요했다. “하회별신굿탈놀이의 뿌리를 겨우 찾아냈지만 그것을 이어가는 일은 더더욱 어렵더군요. 매일 회원을 모집하러 다녔는데 반응은 싸늘했습니다. 참 힘들었죠. 부모님들의 반대도 정말 심했고요. 탈춤을 그만두지 않으면 족보에서 빼겠다고 엄포 놓는 분들도 계셨으니까요. 그래도 동료들하고 저녁에 막걸리 한잔하며 풀어버리고 다시 힘을 냈답니다.” 전국의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다니며 회원을 모집했고 많은 인원은 아니지만 꾸준히 배우려는 사람들이 있었다. 한때 회의에 빠진 적도 있었지만 그들 때문에 다른 길을 갈 수 없었다. “어느 날 문득 돌아보니 탈놀이에 미쳐 그 외에는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더라고요. 그때가 마흔 무렵이었는데 내 청춘은 다 어니 갔나, 허무하더군요. 다 치우고 이제 장가도 가고 돈도 벌어보자 싶었던 거예요. 그때 주변 사람들의 격려가 저를 붙잡아 줬어요. 전통문화를 살려내 세상의 빛을 보게 하는 일을 누가 하겠냐면서요.” 그를 지금까지 이끌어준 것은 힘을 북돋아주는 사람들, 그리고 하회별신굿탈놀이에 대한 애정이었다.
사실 나는 역사학도가 아니다. 뒤늦게 하얼빈 동북열사기념관을 둘러보다가 거기서 내 고향 출신의 동북항일연군 제3로군 군장 겸 총참모장 허형식 장군을 만났다. 나는 그때까지 내 고향 출신 일본군 장교였던 박정희 전 대통령만 알았지, 옆 마을의 구한말 13도 창의군 군사장 왕산 허위 선생과 그 어른 조카 항일명장 허형식 장군의 이름은 모른 채 살아왔다. 그 부끄러움으로 뒤늦게 국내외 항일 유적지를 십수년 째 순례하고 있다. 나는 먼저 호남벌에 창의의 깃발을 휘날렸던 의병전적지부터 답사에 나섰다. 그 가운데 양회일 의병장이 맹활약한 곳으로, 의병 전적지가 가장 잘 보존된 화순의 쌍산의소는 빠트릴 수 없었다. 그리하여 화순군청에 부탁하여 양 의병장 증손 양금렬 씨와 어렵게 전화 연락이 닿았다. 여러 번 날짜를 조정한 끝에 2008년 4월 6일로 맞췄다. 나는 그 길에 전북 의병장 답사취재 계획도 세운 바, 그 전날 남원의 전해산 의병장 생가와 무덤을 답사한 뒤 다음날 화순 쌍산의소를 찾기로 일정을 잡았다. 그런데 출발 전, 양금렬 씨에게서 전화가 왔다. 4월 5일은 한식날로 집안 어른들이 성묘 하고자 모이기 때문에 하루 당겨줄 수 없느냐는 부탁이었다. 그래서 그날 오후 늦게 화순으로 가겠다고 일정을 바꿨다.
약속한 날 남원 전해산 의병장 유적지를 둘러본 뒤 부지런히 화순군 이양면에 도착하니 오후 6시가 넘었다. 양금렬 씨와 양동하(83) 전 능주 전교, 그리고 화순군 이순도 문화해설사 등 예닐곱 분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미처 인사도 나누지 못한채, 우리 일행은 급히 두 대의 승용차에 나눠 타고 쌍산의소로 향했다. 출발한 지 30여 분 후 마침내 쌍산의소 막사 터에 이르렀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하늘만 빠끔히 보이는 그곳은 이미 해가 넘어간 지 오래였다. 쌍산의소 막사 터에서 간신히 기념촬영을 마친 뒤 사방을 둘러보았다. 아주 기막힌 천연 요새인 의병 전적지였다. 앞장선 이순도 씨는 그곳이 구한말 의병 요람지였고,한국전쟁 때는 빨치산들의 은거지로도 쓰였다고 귀띔했다. 뒤따르던 양금렬 씨가 “지난해 여름(2007. 8. 3.), 이곳이 국가지정문화재 사적지로 지정되었습니다.”
조동걸 사학자는 구한말 의병전쟁 시기를 전기(1894~1896. 10), 중기(1904~1907), 후기(1907. 8~1909. 9. 10), 전환기(1909. 11~1915. 7), 말기 (1915. 8~1918)로 나눴다. 이로 미루어볼 때 구한말 의병 투쟁기는 20여 년간이다. 의병전쟁에 참여한 의병의 수에 대체로 연인원 60만 명 내외요, 희생자 수는 15만 명 내외로 추산하고 있다. 그런데 막상 의병 전적지를 다녀보면 그때의 유물이나 유적은 거의 없었다. 순천대 홍영기 교수는 그 점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유물로는 화승총이나 진중일기 정도인데, 대부분 일제에 빼앗겨 전해지지 않습니다. 유적은 늘 일제에 쫓기는 의병들이 영구적인 시설을 새로이 만들기보다는 자연동굴이나 산성, 사찰, 재실 등 이미 지어진 건물을 이용하였기 때문에 의병만의 독자적인 유적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전남 화순 쌍산의소는 거의 완벽한 의병 유적지로 남아 있습니다.”
지시문 (instruction)
다음 문맥을 읽고 질문에 답하시오.
질문 (question)
하회별신굿탈놀이의 전승자인 이창희 선생이 탈놀이를 배우기 위해 안동하회가면극연구회 회원들과 함께 합숙했던 초등학교의 정확한 명칭은 무엇인가?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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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과제 해석
task_interpretation질문은 이창희 선생과 연구회 회원들이 합숙하며 탈놀이를 배웠던 초등학교의 구체적인 이름을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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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정보 추출
information_extraction문맥에서 이창희 선생의 신분과 탈놀이 채록 과정, 그리고 연구회 회원들이 합숙한 사실에 대한 정보를 추출한다.
- 안동하회가면극연구회 회원들은 차도 다니지 않는 외딴 마을의 작은 초등학교에서 150일 동안 합숙하며 이창희 선생에게 하회별신굿탈놀이를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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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근거 선택
evidence_selection합숙 장소가 '외딴 마을의 작은 초등학교'라는 점은 명시되어 있으나, 해당 학교의 고유 명칭은 언급되지 않았다.
- 차도 다니지 않는 외딴 마을의 작은 초등학교에서 150일 동안 합숙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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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논리 통합
logical_integration문맥을 통해 합숙 장소가 초등학교라는 사실과 그 특징(외딴 마을, 차가 다니지 않음)은 알 수 있지만, 학교의 이름을 특정할 수 있는 정보는 결합해도 나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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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결론 도출
conclusion_formulation질문이 요구하는 핵심 정보인 '초등학교의 명칭'은 문맥 내에 존재하지 않음을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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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답변 생성
answer_generation주어진 문맥만으로는 답을 확인할 수 없다는 최종 답변을 생성한다.
근거 (evidence)
- 안동하회가면극연구회 회원들은 차도 다니지 않는 외딴 마을의 작은 초등학교에서 150일 동안 합숙하며 이창희 선생에게 하회별신굿탈놀이를 배웠다.
- 차도 다니지 않는 외딴 마을의 작은 초등학교에서 150일 동안 합숙하며
최종 답변 (final_answer)
주어진 문맥만으로는 답을 확인할 수 없다.
분석 (analysis)
문맥에는 연구회 회원들이 외딴 마을의 작은 초등학교에서 150일 동안 합숙했다는 사실이 기술되어 있으나, 해당 학교의 구체적인 명칭은 제시되지 않았다. 따라서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문맥에 없는 외부 정보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