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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한 문화정책 비교와 통일지향적 문화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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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Y_201704100501239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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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Y_201704100501239181_7
발행기관
한국문화관광연구원
발행연도
2016
KDC
330
답변 불가 (is_impossible)
True
문맥 (context)
1980년대 후반 이후, 김정일은 서구문화 일반과 남한문화의 사상적 침투, 특히 청소년의 외부문화 접촉을 우려한다. 김정일은 사회주의의 몰락을 동구 청소년들이 서구문화를 접한 것과 연결짓고, 서구문화와 남한문화의 접촉을 경계한다. 미국문화를 집중 비난한 김일성과 비교하여 김정일은 미국문화뿐 아니라 서구문화 자체를 경계하는데, 이 시기는 사회주의 붕괴, 남북교류, 그리고 세계화가 시작된 시점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 방향인 외부문화 접촉에 대한 억압적 통제는 북한에서 일찍이 수행했던 방법이다. 이것이 형법에 반영된 것은 2004년으로 2012년 개정형법에서도 그대로 유지된다. 형법에 따라 외부문화 접촉에 노동단련형(교화형)에 처하는 것에 대해서는 해석이 두 가지다. 하나는 체제유지를 위한 형법 강화로 보는 견해이고, 다른 하나는 이전에는 적대방송 청취를 반국가범죄로 인식하여 훨씬 강한 처벌을 했다면 ‘반국가적 목적 없이’라는 단서에 따라 외부방송 청취에 비교적 가벼운 처벌을 취한다는 입장이다. 전자는 북한이 이질문화를 규제하는 것으로 해석하고, 후자는 북한이 광범위한 남한 대중문화 접촉에 현실적 접근을 한 것으로 해석한다. 문화의 세계화정책은 네 가지 분석단위에서 남북한의 차이가 가장 크다. 첫째, 외부문화의 개방의 차이다. 남한은 노태우 정부 시기에 북방외교를 통해 (구)사회주의 국가의 문화를 개방했고, 1998년에는 일본대중문화를 개방했다. 일반적인 규제(미풍양속)를 제외하고는 특정 체제, 특정 국가라고 해서 문화예술을 유통․향유를 금지하지 않는다. 북한은 여전히 (구)사회주의 국가의 문예물에 한해서 그것도 선택적으로 개방할 따름이 다. 2010년대 조선중앙TV에서 방송한 외국영화는 (구)소련과 중국에 집중되고, 특히 1980년대 사회주의 가치를 보여주는 소련영화가 가장 많이 방송된다. 2010년대 들어 조선중앙TV에서 서방국가의 스포츠 경기를 녹화 방송하지만 서방국가의 영화․드라마 방송은 극히 예외적이다. 외부문화 수용의 차이는 세계화에 대한 인식, 문화에 대한 인식, 그리고 현재의 문화수준과 관련된다. 남한의 ‘문화 세계화’는 남한 문화의 세계진출에 역점을 두지만 그만큼 외부문화를 개방한다는 의미도 있다. 일본대중문화 개방(1998), 스크린쿼터제 축소(2006)는 세계화의 흐름에 따른 것이다. 또한 문화가 가치와 의미의 체계이지만 외부문화를 접한다고 하여 정체성에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니라고 판단한다. 이것은 남한문화의 경쟁력에 대한 자신감의 표현이기도 하다. 이에 반해 북한은 세계화를 ‘일체화’라고 규정하면서 ‘조선민족제일주의’와 ‘우리식 사회주의’를 무너뜨리려는 제국주의 사상문화적 침투로 인식한다. 조선민족과 사회주의 유지를 위해서는 주민의 사상이 중요한데 ‘문화의 옷’을 입은 제국주의 사상의 침투인 ‘문화의 세계화’를 받아들일 수 없다. 문화를 체제의 사상교양, 선전선동 수단으로 여기는 북한은 문화개방을 할 수 없다. 제7차 당 대회에서 언급한 것처럼 영화예술이 침체된 북한으로서는 1970년대의 ‘대전성기’처럼 자신들의 문예물, 유일사상체계를 사상교양하는 문예물의 창작을 독려한다. 당-국가가 독점한 문화예술이 뚜렷한 작품으로 형상화되지 못한 시점에서 북한은 더욱이 문화개방을 할 수 없다. 이처럼 김정일 집권기의 북한 TV는 중국, 러시아, 구사회주의 국가의 영화․드라마를 반복적으로 보여줄 뿐 서방문화는 영국영화 1편을 제외하고는 방송하지 않는다. <벡캄처럼 뽈을 차라>는 영국영화라기보다는 일종의 스포츠로 인식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으로 보인다. 2000년대 후반 이후 조선중앙TV는 다양한 외국 스포츠 경기를 방송한다. 2006년 도하아시안게임을 시작으로 아시안게임, 올림픽, 월드컵 중계를 하고 있다. 이것은 “문화․오락적 영역에서 주민들의 욕구 불만을 스포츠 분야를 통해 충족시키고자 하는 북한 당국의 노력의 일환”이다. 외국 스포츠 중계는 김정은 시대에 이르러 더욱 활발해진다. 대표 사례가 2013년 유럽축구선수권대회 방송이다. 이것은 김정은 시대의 특징 가운데 하나인 체육강국 실현과도 관련이 있으며, 영화․드라마에서 외국작품을 거의 방영하지 않는 것과 다른 현상이다. 외국 스포츠는 문화예술에 비하여 ‘사상문화적 침투’와의 연관성이 높지 않다고 판단한 것이다. 북한은 식량난을 벗어났지만 계획경제와 시장경제의 병존을 통해 체제를 유지한다. 배급경제를 기억하는 동시에 시장에 적응하지 못하는 40대 중반 이상 주민, 시장에서 실패한 주민들은 불만이 많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경제가 성장해야 되는데 북한 정권은 이를 해결할 의지를 갖고 있지 않다. 이명박 정부의 5.24조치(2010), 박근혜 정부의 개성공단 폐쇄(2016), 그리고 핵실험에 따른 국제 제재로 인해 북한경제가 원활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중국과의 교역이 활발해졌지만 남북관계가 원활하다면 한결 경제상황이 나아졌을 것이다. 북한은 핵실험과 대륙 간 탄도미사일 발사로 국제 제재를 받고 있기 때문에 1990년대 초반만큼은 아니지만 고립의식을 지닐 수밖에 없다. 따라서 ‘우리식 사회주의’와 ‘조선민족제일주의’에 따른 문화정책을 펼치는 것이다. 북한에서 다시 문화정책과 문예이론이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고난의 행군’을 어느 정도 벗어난 1990년대 후반, 유훈통치를 끝낸 김정일 집권기(1998년~)부터다. 이 시기 실천 이데올로기는 ‘사회주의 강성대국’, ‘선군사상’이다. 순수 이데올로기는 주체사상이지만, 실천 이데올로기는 ‘사회주의 강성대국’, ‘선군사상’ 등으로 변한다. ‘강성대국’은 “주체의 사회주의 나라”로 정치․군사․경제․문화에서 세계적 수준의 “영원한 이상국”을 의미하는데 김정일은 2012년(김일성 출생 100년)을 강성대국 원년으로 삼고자 했다. 한편 ‘선군사상’은 “총대에 의해 혁명이 개척되고 전진하며 완성된다는 원리”, “‘총대 철학’에 기초한 혁명원리”다. ‘선군사상’ 또는 선군정치 담론의 핵심어는 노동당-군대의 불가분성, 영웅 김정일이 선도하는 정치, 당과 수령을 결사옹위하는 총폭탄정신에 따른 수령의 군대, 당의 군대, 혁명의 군대 등이다. 사회주의 강성대국 건설, 선군사상 완수를 위한 문화예술의 역할은 ‘선군혁명 문예론’으로 표현된다. ‘총대’를 강조한 김정일 시대의 문화정책이 ‘선군혁명 문예이론’으로 발현된 것이다. 2002년․2003년 김정일은 담화를 통해 혁명전통 못지않게 민족적 전통이 중요함을 강조한다. 혁명전통을 도외시하는 건 아니지만 민속명절, 민속놀이, 예의도덕, 인사법, 언어, 민족 옷, 민족 음식, 민족예술을 포괄적으로 언급하고, 출판․방송․박물관의 활용을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이전과 뉘앙스가 다르다. 김정일 집권기에는 ‘우리식 사회주의’를 위해 ‘조선민족제일주의’를 거듭 강조하면서 1990년대 초반보다 상대적으로 민족적 전통의 중요성을 인정한 것이다. 이처럼 유훈통치가 끝나고 김정일 집권기인 2000년 초반에 민족적 전통의 확대를 꾀한다. 전통문화의 확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가 2001년부터 연 4회 발행하는 잡지 「민족문화유산」 발간, 2005년 김정일의 민족문화 관련 담화를 모은 책자 「민족문화유산과 민족적 전통에 대하여」 간행이다. 잡지 「민족문화유산」에서 다루는 영역은 문화유산(북한식으로 문화유물), 전통예술, 역사일반, 민속, 생활문화 등으로 매우 다양하다.
지시문 (instruction)
다음 문맥을 읽고 질문에 답하시오.
질문 (question)
김정일이 2012년을 강성대국 원년으로 삼고자 했던 구체적인 정치적 이유는 무엇인가?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1. 1과제 해석task_interpretation

    질문은 김정일이 2012년을 강성대국 원년으로 설정한 배경에 담긴 구체적인 정치적 이유를 묻고 있다.

  2. 2정보 추출information_extraction

    문맥에서 2012년과 강성대국, 김정일에 관련된 정보를 추출한다.

    • ‘강성대국’은 “주체의 사회주의 나라”로 정치․군사․경제․문화에서 세계적 수준의 “영원한 이상국”을 의미하는데 김정일은 2012년(김일성 출생 100년)을 강성대국 원년으로 삼고자 했다.
  3. 3근거 선택evidence_selection

    제공된 근거에는 2012년이 김일성 출생 100년이라는 사실과 강성대국 원년으로 삼고자 했다는 사실만 명시되어 있을 뿐, 왜 그 시점을 원년으로 삼으려 했는지에 대한 정치적 의도나 이유는 나타나 있지 않다.

    • 김정일은 2012년(김일성 출생 100년)을 강성대국 원년으로 삼고자 했다.
  4. 4논리 통합logical_integration

    문맥의 다른 부분들을 결합하여 김정일의 정치적 목적을 유추해 보려 해도, 2012년이라는 특정 시점과 강성대국 원년 설정 사이의 인과관계를 설명하는 정보는 존재하지 않는다.

  5. 5결론 도출conclusion_formulation

    질문이 요구하는 '구체적인 정치적 이유'는 문맥에 명시되지 않았으며, 김일성 출생 100년이라는 사실만 언급되어 있을 뿐 이를 정치적 이유로 연결할 근거가 부족하다.

  6. 6답변 생성answer_generation

    문맥에 정보가 없으므로 답변 불가능 판정을 내린다.

근거 (evidence)
  • ‘강성대국’은 “주체의 사회주의 나라”로 정치․군사․경제․문화에서 세계적 수준의 “영원한 이상국”을 의미하는데 김정일은 2012년(김일성 출생 100년)을 강성대국 원년으로 삼고자 했다.
  • 김정일은 2012년(김일성 출생 100년)을 강성대국 원년으로 삼고자 했다.
최종 답변 (final_answer)
주어진 문맥만으로는 답을 확인할 수 없다.
분석 (analysis)
문맥에는 2012년이 김일성 출생 100년이라는 사실과 김정일이 이를 강성대국 원년으로 삼고자 했다는 정보만 포함되어 있다. 질문이 요구하는 설정의 구체적인 정치적 이유는 명시되어 있지 않으므로 외부 지식이나 추가적인 추론 없이는 답을 결정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