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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사랑 통권 제141호2016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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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기관
문화재청
발행연도
2016
KD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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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 불가 (is_impossible)
True
문맥 (context)
진안·장수와 함께 전라북도의 지붕이라 불리는 무주. 삼국시대 당시 신라와 백제의 국경이 맞닿아 있던 요충지이자, 덕유산국립공원을 품고 있는 청정 지역이다. 특히나 빼어난 경치를 자랑하는 무주 구천동 33경의 속내는 너무 깊어 오랫동안 덮어뒀던 책장을 여는 일과 같다. 발을 디딜 때마다 한장씩 펼쳐지는 반전의 풍광은 등산객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충분하다. 세차게 휘몰아치던 폭포를 뒤로한 지 10분 남짓 걸어왔을까. 세상의 고요는 모두 모인듯한 맑은 소(沼)가 하늘을 오롯하게 담아내고 있다. 장장 70리에 걸쳐 흐르는 계곡이 이처럼 물살의 완급이 급하다 보니, 마치 우리네 인생의 굴곡과도 같다. 무주 구천동 33경은 나제통문(羅濟通門)을 출발점으로 덕유산국립공원 중턱에 위치한 백련사까지의 28㎞ 사이에 숨어있다. 일부는 차량으로 이동이 가능하지만 대부분은 튼튼한 두 다리로 구불구불한 산길을 타야만 한다. 무주의 설천면과 무풍면을 막고 있던 암벽을 뚫어 만든 나제통문을 지나는 순간, 구천동으로의 수고롭지만 후회 없을 여정이 펼쳐진다. 앞서 구천동이란 이름이 계곡의 굽이가 9천 번 헤아린다는 데서 유래한 바 있다고 했는데, 또 다른 사연이 하나 더 있다. 거문고 타는 소리가 들린다는 3경 청금대를 지나면 명승 제55호이자 6경인 일사대 일원이 나타난다. 하천 침식 작용에 의해 배의 돛대 모양으로 형성된 기암절벽은 그야말로 절경이다. 그뿐만 아니라 일사대 주변은 소나무와 활엽수가 어우러져 있어 가을이면 사시사철 푸른 소나무와 붉은 단풍이 서로를 물들이려 살을 부대낀다. 그다음으로는 구천동의 3대 명소 중 하나인 11경 파회가 모습을 드러낸다. 정적이었던 소(沼)에서 급류가 암석에 부딪히는가 하면 다시 고요한 연못이 되는 황홀한 선경이 펼쳐진다. 변화무쌍한 물살의 모습이 신비롭다. 넓게 자리 잡은 암반 사이로 유연하게 흐르는 계류를 보며 풍류를 즐길 줄 아는 이들은 이미 아지트로 삼았을 파회. 커다란 바위 위에 25인 춘추계원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시 한 수 읊지 않고서는 배길 수 없는 감성에 젖었을 사람들이다. 파회에는 좌중을 압도하는 크기의 바위가 자리잡고 있는데 그 위에 노송 한 그루가 뿌리를 내리고 있다. 바위에 뿌리를 내린 것이 기특한 천년송은 그 위엄도 당당하다. 12경에 해당되는 수심대는 병풍처럼 둘러싼 절벽산이 금강산의 일만이천 봉을 연상케 한다고 해서 소금강이라고도 불린다. 14경까지는 자동차로 접근이 가능하다. 하지만 15경부터는 오직 산길 구보다. 구천동 계곡은 각각의 규모가 작은 편인데, 산길이 펼쳐지는 15경 월하탄은 물줄기가 꽤 큰 폭포다. 등산객들은 위험하기 때문에 밤의 풍경을 볼 수는 없으나 월하탄의 폭포수는 달빛 아래서 장관을 이룬다고 한다. 수직 낙하를 통해 들려오는 깨끗하고 청아한 물소리가 몸 안에 시원한 기운을 불어넣는다. 월하탄까지 갔다면 구천동 자연관찰로라고 푯말을 붙인 구천동 옛길도 한번 들러보자. 느림의 맛을 느낄 수 있도록 복원해낸 길이다. 자연에 취해 걷다 보면 16경으로 넘어가는 길목에 놓인 순국비와 수호비를 지나칠 수도 있다. 월하탄과 인월담 사이에 있는 의병대장 문태서 순국비와 구천동수호비를 보면 이곳이 항일격전지였음을 알 수 있다. 호남 의병장 문태서와 의병들은 1908년 일본군 헌병대와 격전을 벌였으며 용맹함으로 승리를 거뒀다. 문태서는 1906년 덕유산을 중심으로 의병활동을 일으킨 인물이다. 순국비 옆에 세워져 있는 구천동수호비는 한국전쟁 당시 구천동 계곡에 몸을 숨겼다가 인민군에 의해 희생당한 이들을 추모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 한양도성은 백악·낙산·목멱·인왕의 사산과 동서남북을 기준으로, 4개의 대문과 4개의 소문이 있다. 한양도성의 남쪽 대문 숭례문은 수도 한양의 상징적인 건물이다. 1398년에 완공되었는데, 1448년에 중건하였다가 1479년에 다시 개축했다. 2008년 화재로 훼손되었으나 2013년에 복구되었다. 동쪽 대문 흥인지문은 1396년에 창건되었는데, 1868년에 낮은 지반을 높이는 토목공사와 함께 중건됐다. 서쪽 대문 돈의문은 전차노선이 복선화되면서 1915년에 철거되었고, 북쪽 대문 숙정문은 암문(성벽에 누 없이 만들어 놓은 문) 형태로 남아있었는데 1976년에 수리하고 그 위에 문루를 새로 세웠다. 고려시대부터 개경과 남경을 잇는 길에 세워진 북서쪽 소문인 창의문은 인조반정을 거친 후 1742년에 중건되었다. 남동쪽 소문 광희문은 1975년에 도로 확장과 함께 남쪽으로 이축되었으며, 북동쪽 혜화문은 1939년 전차 부설과 함께 철거되었다가, 1994년 북쪽으로 옮겨 새로 건설했다. 남서쪽 소문 소의문은 도로 정비와 함께 1914년에 철거됐다. 이렇듯 각 대문들은 오백여 년 동안 지속되어온 조선왕조 수도 한양의 역사와 20세기 근대의 역사를 함께 보여주고 있다. 고려시대 건축물 가운데 현재 남아있는 몇 안 되는 건물 중 하나인 임영관 삼문(객사의 정문)을 들어서면 ‘과연 객사란 어떤 역할을 했던 곳일까’란 궁금증이 인다. 단어의 의미로 봤을 때는 여관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조선시대에는 사신을 접대하는 국가 기관이었으며 전패(殿牌: 임금을 상징하는 ‘殿’ 자를 새겨 각 고을의 객사에 세운 나무패)와 궐패(闕牌: 중국 황제를 상징하는 ‘闕’ 자를 새긴 나무패)를 모셨던 시설로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렇기 때문에 객사는 관아 시설 중에서 규모가 가장 크고 화려하며 전망이 좋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객사는 주로 왕이 지방 군현에 보낸 사신이나 외국 사신들이 이용하였다. 이외에도 객사는 지방관리가 왕에 대한 예를 다하는 곳으로 ‘삭망례’를 올리는 곳이었다. 삭망례란 임금을 직접 배알하지 못하는 지방관리가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 객사 전청(殿廳)에 놓인 전패와 궐패를 향하여 절을 올리는 것을 말한다. 사적 제388호 강릉대도호부 관아는 고려부터 조선에 걸쳐 중앙 관리들이 강릉에 내려와 머물던 건물터로, 최초 지정 시에는 ‘강릉 임영관지’였다가 임영관이 복원되면서 2011년에 ‘강릉 임영관’으로 바뀌었다. 그 이후에 동헌 등 관아 건물이 복원되면서 읍치 공간을 아우르는 ‘강릉대도호부 관아’로 명칭이 변경됐다. 강릉대도호부 관아는 건물지 유구가 양호한 상태로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어 고려시대 이후 관아의 건물지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서 의미가 있으며, 관아 내 임영관 삼문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문으로 역사적 가치가 높다. 문 위에 임영관(臨瀛館)이라고 쓰인 현판은 고려 공민왕이 신돈과 시종 반야를 데리고 낙산사(洛山寺) 관음에 후사를 빌기 위하여 왔다가 우천으로 인해 강릉에서 10일간 머무를 때 썼다고 전해진다. 강릉 행정 중심 공간이었던 강릉대도호부 관아는 일제강점기에 임영관 삼문(국보 제51호)과 호적·농사·병무·교육·세금·재판·풍속의 7가지 정사에 관한 일을 베풀었다는 칠사당(강원도 유형문화재 제7호)을 제외하고 대부분 훼손됐다. 2023년까지 복원을 계획 중인 강릉대도호부 관아는 임영관에 이어 관아의 아문, 동헌, 의운루 등을 순차적으로 복원하며 점차 본래의 모습을 되찾고 있다. 그러나 지도와 지리지를 하나의 세트로 하여 유용한 지리정보체계를 구축하고 싶어 했던 김정호의 의지마저 꺾인 것은 아니었다. <청구도> 이후에도 김정호의 지도 제작 활동은 계속되었다. 그중에서도 <대동여지도>(1861년, 22책)는 김정호를 역사에 남게 한 작품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이 지도에서 물줄기는 하류에서 두 줄기로 이어지다가 상류의 어느 지점에서 한 줄로 묘사된다. 두 줄과 한 줄이 만나는 지점은 뗏목이나 배가 다닐 수 있는 종점에 해당한다. 도로는 실제와는 달리 직선으로 표시되어 있다. 도로 위에는 10리마다 점이 찍혀 있는데, 그 간격은 일정하지 않다. 평야지대나 하천을 따라가는 곳에서는 지도상의 평균 간격(2.5cm 정도)으로 유지되는 데 비해, 산간 도로에서는 10리 간격이 급격하게 좁아진다. 언뜻 보면 이해하기 힘든 이 간격 차이에는 여행자들을 위한 배려가 담겨 있다. 여행자는 좁은 간격의 10리 표시를 보고 산간에 가파른 도로나 굽은 도로가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처럼 <대동여지도>는 조선 지도학의 성과를 수렴한 지도라는 점에서뿐만 아니라, 사용자를 고려한 지도라는 점에서도 특별하다.
지시문 (instruction)
다음 문맥을 읽고 질문에 답하시오.
질문 (question)
강릉대도호부 관아의 복원 계획 중 임영관, 아문, 동헌, 의운루 외에 추가로 복원될 예정인 건물이 있는가?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1. 1과제 해석task_interpretation

    질문은 강릉대도호부 관아의 복원 계획에 포함된 건물 목록을 확인하고, 제시된 건물(임영관, 아문, 동헌, 의운루) 외에 다른 건물이 더 있는지 여부를 묻는다.

  2. 2정보 추출information_extraction

    문맥에서 강릉대도호부 관아의 복원과 관련된 정보를 추출한다.

    • 2023년까지 복원을 계획 중인 강릉대도호부 관아는 임영관에 이어 관아의 아문, 동헌, 의운루 등을 순차적으로 복원하며 점차 본래의 모습을 되찾고 있다.
  3. 3근거 선택evidence_selection

    복원 계획에 언급된 건물들은 임영관, 아문, 동헌, 의운루이다. 질문에서 요구하는 '추가적인 건물'에 대한 명시적 언급은 없다.

    • 임영관에 이어 관아의 아문, 동헌, 의운루 등을 순차적으로 복원하며
  4. 4논리 통합logical_integration

    문맥에서는 복원할 건물들의 예시나 목록으로 임영관, 아문, 동헌, 의운루를 나열하고 있다. 하지만 이 목록이 전체 복원 대상의 전부인지, 아니면 일부를 나열한 것인지에 대한 정보가 없다.

  5. 5결론 도출conclusion_formulation

    문맥에 제시된 건물들 외에 다른 건물이 더 있는지 없는지를 확정할 수 있는 정보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추가 건물의 존재 여부를 판단할 수 없다.

  6. 6답변 생성answer_generation

    주어진 문맥만으로는 추가 건물의 존재 여부를 확인할 수 없으므로 답변 불가능 판정을 내린다.

근거 (evidence)
  • 2023년까지 복원을 계획 중인 강릉대도호부 관아는 임영관에 이어 관아의 아문, 동헌, 의운루 등을 순차적으로 복원하며 점차 본래의 모습을 되찾고 있다.
  • 임영관에 이어 관아의 아문, 동헌, 의운루 등을 순차적으로 복원하며
최종 답변 (final_answer)
주어진 문맥만으로는 답을 확인할 수 없다.
분석 (analysis)
문맥은 강릉대도호부 관아의 복원 대상으로 임영관, 아문, 동헌, 의운루 등을 언급하고 있으나, 이것이 복원 계획의 전체 목록인지 아니면 일부인지 명시하지 않는다. 따라서 제시된 건물 외에 다른 건물이 더 있는지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외부 정보나 추가적인 문맥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