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맥 (context)
회복력(resilience)이라는 용어는 ‘다시 뛰어오른다(to jump back)’는 뜻의 라틴어 리실리오(resilio)에서 비롯되었다. 회복력은 생태학 분야에서 처음 사용되기 시작하였는데, 1973년 Holling에 의해 소개되었다. Holling은 동요 및 혼란에 대해 기존의 상태를 유지하려는 생태계의 역량을 이해하기 위한 개념으로 정의하였다. 처음에는 생태학·공학 등에서 많이 사용되었으나, 요즘은 경영·교육·사회·정책 등 다양한 분야에서 회복력이 연구되면서 그 개념도 사회동학과 연결지어져 확장되었다. 시스템 내외부 충격으로 인해 발생하는 불안정성을 극복하여 시스템 기능을 회복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지속가능한 미래를 추구하면서 현재 우리가 어떤 삶의 방식을 가지고 있는지를 살펴보자는 성찰적 의미의 행동전략이 요구된다고 하겠다.
1세기경 한반도의 동해안에서 건너온 신라인계 집단은 2세기경부터 동쪽으로 이동하여 이즈모(出雲)의 사철지대를 점령하였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8대 아달라(阿達羅)왕 때(158년) 연오랑(延烏郞)과 세오녀(細烏女)가 일본에 건너가 소국의 왕과 왕비가 되었다. 유사한 이야기가 「일본서기(日本書紀)」에도 있다. 신라의 왕자인 아메노히보코(天日槍)가 배를 타고 건너왔다는 것이다. 천일창은 혼슈 남단의 동해와 붙은 시마네(島根)현의 이즈모(出雲) 지역에 정착한 세력을 말한다. 233년에는 해상에서 왜와 화공전을 벌였으며, 유례(儒禮) 니사금 때인 289년에는 왜국이 쳐들어온다는 정보를 듣고 병선을 수리했다. 295년에는 백제와 공모하여 왜국을 치려는 계획을 세웠으나 일부의 반대로 중지하였다. 이처럼 신라는 초기부터 해양활동과 깊은 연관을 맺고 있었다.
필자는 동아시아의 지리적이고 문화적인 특성을 설명할 목적으로 육지와 해양을 두 가지 관점에서 유기적으로 동시에 접근해 들어가는, 특히 소외되었던 해양의 위치와 역할을 재인식하는 ‘해륙사관(海陸史觀)’을 설정했다. 그리고 국가가 성장하려면 대륙과 해양을 유기적으로 연결한 ‘터’ 속에서 생성하고 발전한 해륙국가(海陸國家)여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이는 신라도 마찬가지였다. 신라는 경상북도의 경주 일원을 중심으로 건국했다. 하지만 포항·울산을 비롯해서 외부로 영토를 확장해 갔다. 그리고 경제생활의 향상과 영토의 확장 및 권력의 중앙집중화와 관리체제의 일원화를 목적으로, 대외적으로는 교류와 무역 진출, 그리고 방어를 목적으로 해양활동은 필요했다. 따라서 육지영토 외에 남해동부, 서해중부, 동해 중부해안 일대를 장악하고, 주변 해역에 영향력을 강화해야만 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신라는 지증왕, 법흥왕, 진흥왕 시대에 해양과 관련된 국가정책들을 추진하였다. 교통망의 정비, 해양방어체제의 구축, 선부서의 설치, 조선산업의 발전 등이 이루어졌다. 이러한 정책의 중심에 있던 인물이 이사부이다.
그후에 진흥왕이 어린 나이로 등장했고, 즉위 2년째인 541년에 이사부는 병부령에 임명되어 내외병마사를 관장했다. 이는 상대등·시중을 겸할 수 있는 관직으로서 이사부는 어린 임금을 제외한 명실 공히 최고의 실력자로서 국가정책을 입안하고 실행할 수 있었다. 그는 국가가 발전하고 왕권을 확립하면서 국제사회에서 인정을 받으려면 우선 신라의 정체성을 세우는 일이 선결과제임을 간파했다. 따라서 국가의 위상을 국내외에 과시하는 작업으로서 역사서인 ‘국사’를 편찬할 것을 제안하고 책임을 맡았다. 이어 정복작전을 펼치기 시작했다. 단양 시내에서 남한강 수로를 굽어보는 언덕에는 소위 단양 적성비가 서있다. 그 비문에는 고구려의 영토인 적성지역을 공격해서 점령한 이사부의 공적이 새겨져 있다. 그는 549년을 전후해서 한강의 상류지방을 공격해서 신라의 영토를 넓혔다. 훗날 온달장군이 수복을 꾀하다가 실패한 곳이기도 하다.
이 시대에 우산국은 해양 전략적인 가치가 아주 컸다. 이 작전의 성공으로 신라는 동해 중부의 해안지방과 해양을 안정되게 확보하였으며, 훗날 그가 관여한 북진정책을 완수하는 토대를 놓았다. 이뿐만 아니라 고구려가 일본열도로 건너가는 중요한 항로를 봉쇄하였다. 그가 능동적이고 독자적으로 추진한 것인지 왕명에 의한 국가정책의 일환인지는 확인할 수 없다. 하지만 그 이후의 행적을 고려한다면 그의 생각과 견해가 작용했을 가능성은 매우 크다. 분명한 사실은 신라가 동해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해륙정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는 계기가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뒤를 이어 법흥왕이 등장하였다. 그는 어쩌면 상의했을지도 모르는 이차돈의 순교를 하나의 계기로 활용하여 왕족들과 귀족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불교를 국교로 삼았다. 그리고 불교의 논리와 고급문화를 이용하여 약한 왕권을 강화하고 임금의 위상을 한층 높여 놓은 후에 다양한 정책을 구사하여 국가를 한층 발전시켜 나갔다. 거기에 그와 특별한 관계를 지녔던 이사부의 역할이 있었다.
경기도 파주시 교하읍의 심학산은 해발 194m의 낮은 산이다. 낮지만 꼭대기에서의 전망이 매우 좋아 남녀노소 주민들이 두루 산책하며 전망을 즐기는 공원이자 전망대다. 한강 하류의 물줄기와 너른 들판 경관을 함께 누릴 수 있는 곳이다. 연말연초, 뜨고 지는 해에 관심이 많은 때다. 가벼운 산행을 겸한 한나절 나들이를 즐기며 심학산 정상에 올라볼 만하다. 천천히 20~30분 걸어 오르면 바로 산꼭대기다. 심학산 줄기는 동·서로 길게 뻗어 있다. 교하읍 동패리에서 출판단지 쪽으로 이어지는데, 산봉우리는 한강 하류 쪽인 서쪽 끝부분에 솟았다. 등산로 들머리는 대여섯 곳에 있다. 동패리 교하배수지, 서패리 꽃마을, 약천사, 배밭 등이다. 동패리 배수지 쪽에서 오르는 다소 기다란 산길 말고는 대체로 산 밑에서 정상까지 30분 안쪽에 오를 수 있다. 800m 안팎의 거리다. 어느 쪽에서 시작하든 걸어 오르다가 마지막에 가파른 계단길을 만난다. 계단길로 200m 정도 오르면 운동시설과 팔각정이 있는 산꼭대기다.
정상 전망은 장쾌하다고까지 할 만하다. 팔각정에 오르면 서울을 관통하고 흘러오는 한강 물줄기가 파주 뜰과 김포 뜰 지나 오두산 통일전망대를 거쳐 임진강 하류 합수지점까지 나아가는 풍경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다. 물론, 고개를 한참 돌려야 한다. 북한 개성 땅에서부터 강화도 쪽 산들, 돌아서면 북한산 봉우리까지 손에 잡힐 듯 바라다 보인다. 정자 바닥에 설치된 동판에 개성 35㎞, 인천 42㎞, 의정부 29㎞라 적혀 있다. 심학산은 본디 심악산이라 불렸는데, 영조 때 궁궐에서 기르다 날아간 학을 이 산에서 찾으면서 심학산(尋鶴山)이 됐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저물녘이 되면 해는 한강을 황금빛으로 물들이다 물길 건너 김포 쪽 산 능선으로 넘어간다. 한강물이 금빛으로 물들 무렵엔 팔각정 안까지 금빛 햇살이 쏟아져 들어온다. 일부러 오후 느지막이 산에 올라 해넘이까지 감상하고 내려가는 주민들도 있다. 길쭉한 산줄기 둘레를 따라 산자락을 도는 6.8㎞ 길이의 완만한 둘레길도 있다. 한 바퀴 도는 데 2시간 정도 걸린다.
지시문 (instru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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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question)
신라의 이사부가 우산국 작전을 성공시킴으로써 얻은 전략적 이점은 무엇인가?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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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과제 해석
task_interpretation이사부의 우산국 작전 성공이 가져온 전략적 결과와 이점을 파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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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정보 추출
information_extraction이사부와 우산국 작전에 관한 정보를 문맥에서 추출한다.
- 이 작전의 성공으로 신라는 동해 중부의 해안지방과 해양을 안정되게 확보하였으며
- 고구려가 일본열도로 건너가는 중요한 항로를 봉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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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근거 선택
evidence_selection작전 성공의 직접적인 결과로 명시된 두 가지 핵심 요소를 선택한다.
- 동해 중부의 해안지방과 해양을 안정되게 확보
- 고구려가 일본열도로 건너가는 중요한 항로를 봉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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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논리 통합
logical_integration확보된 해양 영토와 항로 봉쇄라는 두 가지 요소를 결합하여 전략적 가치를 도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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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결론 도출
conclusion_formulation신라가 동해 해안과 해양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고구려의 일본행 항로를 차단했다는 결론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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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답변 생성
answer_generation추출된 정보를 바탕으로 질문에 대한 답변을 구성한다.
근거 (evidence)
- 이 작전의 성공으로 신라는 동해 중부의 해안지방과 해양을 안정되게 확보하였으며
- 고구려가 일본열도로 건너가는 중요한 항로를 봉쇄하였다.
- 동해 중부의 해안지방과 해양을 안정되게 확보
- 고구려가 일본열도로 건너가는 중요한 항로를 봉쇄
최종 답변 (final_answer)
신라는 동해 중부의 해안지방과 해양을 안정되게 확보할 수 있었으며, 고구려가 일본열도로 건너가는 중요한 항로를 봉쇄하는 전략적 이점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