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맥 (context)
1975년에는 3대혁명소조운동의 뒤를 이어 3대혁명붉은기쟁취운동이 발기되었다. 3대혁명붉은기쟁취운동은 당이 직접 지도하는 대중운동으로 이 운동의 추진 과정에는 3대혁명 소조를 적극 활용할 것이 요구되었다. 3대혁명붉은기쟁취운동은 사상, 기술, 문화의 ‘3대혁명’을 대중적 운동으로 추진하는 것으로서, 사상의식의 변화, 기술혁신의 추구, 문화혁명의 추진 등을 목표로 하였다. 사상분야에서는 “사회의 모든 성원들을 참다운 주체형의 공산주의혁명가로 만드는 과업”, 기술분야에서는 “기술혁명을 통해 로동에서의 본질적차이를 없애고 근로자들을 힘든 로동에서 해방하며 공산주의의 물질적요새점령을 적극 다그쳐나가는것”, 그리고 문화분야에서는 온 사회의 인테리화를 실현하기 위해 “모든 근로자들을 고중졸업정도의 일반지식과 한가지 이상의 현대적기술을 소유한 지식있고 능력있는 사회주의건설자로 만드는것”을 당면목표로 추진하고 “근로자들의 기술문화수준을 대학졸업정도의 수준에 끌어올리기 위한 사업”을 다양하게 전개하였다.
일정한 목적 하에 돌격대를 묶어 현장에 파견하는 방식도 대중운동의 중요한 형태였다. 1976년에는 ‘7.1 과학자, 기술자돌격대’가 검덕광산 등에 파견되었다. 과학자, 기술자 돌격대는 갱작업의 종합적기계화와 무선통신에 의한 생산지휘체계의 실현을 위해 자동화계기기구들을 만들어 기여했다. 중앙광업연구소 과학자들은 갱작업의 종합적기계화를 위해 여러 가지 현대적인 채굴설비를 연구 완성했다. 특히 수직갱작업을 더 안전하고 쉽게 하기 위한 연구와 생산능률을 2배 이상 높일 수 있는 착암기 연구에서 성과를 거두었다. 1980년에는 ‘2·17 과학자돌격대’가 인민경제 주요단위에 파견되어 「생산도 학습도 생활도 항일유격대식으로!」라는 구호 아래 과학연구사업을 진행하였다. 과학자돌격대는 1980년에만 260여건의 연구과제를 수행하고 370여건의 과학적발명과 기술혁신안을 생산에 도입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1980년대 말부터는 ‘4·15기술혁신돌격대’가 활동하기 시작했다. 4·15기술혁신돌격대의 목표는 기업소 자체적인 기술개발 및 생산공정의 개선을 추진하는 것으로, 인력으로 하기 힘든 일을 기계화하기 위한 창안품을 고안하는 활동을 했다. 이들은 대학을 졸업하고 현장에 보내진 인력이 주를 이루며 대개 당원들로 구성되었다. 주로 현장 지도를 수행하는 3대혁명소조와는 달리 4·15기술혁신돌격대는 실제로 힘든 현장체험을 주로 담당했다. 한 돌격대는 남여 약 20명 가량으로 구성되었으며, 아침 조회 후 작업을 배치 받는 등 하나의 작업반처럼 운영되었다. 서창청년탄광에 파견된 ‘4·15기술혁신돌격대’의 사례를 보면 반년 간 연간 기술혁신과제의 70%를 수행했으며, 탄광 일군들은 참모회의나 기술견학을 6차례 조직해 돌격대의 기술혁신 활동을 도왔다.
숨은 영웅 따라배우기 운동은 이전의 대중운동과 달리 개인이 숨은 영웅이 된다는 점에서 인테리들의 참여가 보다 용이한 대중운동이라 판단된다. 실제로 최초의 숨은 영웅은 새로운 품종을 개발한 과학자 백설희였다. 1979년 10월 작물을 새로운 품종으로 육종해 수확을 거둔 여성과학자(백설희)에게 당원증을 수여하고 불면불휴의 노력을 다한 숨은 영웅의 전형으로 내세웠는데, 생물학박사증을 김일성이 직접 수여하고 노력영웅칭호를 부여했다. 새로운 벼품종을 개발한 ‘오랜 인테리’ 출신 농학박사에게도 노력영웅칭호를 수여하고 숨은 영웅의 본보기로 내세웠다. 외에도 “1980년대 초반 이후 6년간 평안남도의 노동자, 농민, 과학자, 기술자 중 약 1천 여명의 숨은 영웅들이 배출”되었다고 하며 1988년에는 ‘전국영웅대회’ 및 ‘전투영웅대회’가 개최되기도 했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북한은 생산노동과 분리되어 개별적으로 진행되는 정신노동의 특성으로 인해 인테리의 사상성, 즉 혁명성과 조직성, 규율성이 노동계급보다 약하다고 판단하고, 인테리들이 대중 속으로 들어가 대중운동에 참가하는 방안을 통해 인테리의 사상성을 담보하고자 하였다. 이에 따라 북한의 인테리들은 건국사상총동원운동을 비롯하여 천리마작업반운동, 3대혁명소조운동 등 다양한 대중운동에 참가해왔다. 북한은 정권 초기부터 건국사상총동원운동의 일환인 문맹퇴치사업, 사상개조사업 등에 인테리들을 동원하였고, 1960년대에는 천리마작업반운동, 1970년대~2000년대에는 3대혁명소조운동을 비롯한 다양한 대중운동 참가를 통한 현실체험, 현장체험을 인테리의 사상성 제고방안으로 추진하였다. 이와 같은 북한의 정책은 결과적으로 인테리의 전문성 저하 문제를 야기하였다.
그런데 인테리의 전문성 제고 또한 경제발전을 강조해온 북한에게 중요한 해결과제였다. 북한은 정권 초기부터 남북분단이라는 특수한 역사적 상황 속에서 남한과의 체제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경제발전을 적극 추진해왔으며, 경제 발전에 필수적인 인테리의 전문성 제고를 강조해왔다. 다른 한편 북한은 사회주의사회를 표방했기 때문에 공산주의 사회로의 발전을 위한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의 분리’ 극복문제 또한 핵심적인 과제로 상정되었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인테리의 사상성 제고 또한 중요한 과제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러므로 북한은 경제발전에 필수적인 인테리의 전문성과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의 분리’ 극복을 위한 인테리의 사상성 제고를 동시에 강조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전문성보다 사상성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정책이 전개되었으며, 그 결과 북한 인테리의 전문성 제고는 여전히 해결과제로 남아있게 되었다.
북한의 경제상황은 2009년 화폐개혁 실패의 후유증으로 인플레이션이 심화되고 환율이 상승세를 보이는 등 상당히 불안정한 모습을 보인 바 있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의 모습을 보면 이같은 불안정에서 벗어나고 있는 모습이다. 또한 2006년 제정된 상업은행법이 이후 별다른 후속조치가 없어 사실상 사문화되는 등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던 금융부문에서도 새로운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당국이 공개적인 방식으로 정책목적을 홍보하거나 대대적인 개혁을 추진한다는 공식 발표는 아직까지 나오지 않고 있다. 북한당국은 음성적으로 확산되던 시장경제적 요소를 상당히 받아들여 경제측면의 개혁을 시도하였던 과거 7.1조치가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실패했던 경험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실패를 거울 삼아김정은 집권 이후에는 이와는 다른 방식의 개혁을 시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다만 북한당국자 사이에서 재정과 금융분야 개혁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시장경제의 확산이 체제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완전히 불식된 것은 아닌 상태에서 공개적이고 떠들썩하지는 않지만 매우 중요한 개혁조치들을 매우 조심스럽게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지시문 (instruction)
다음 문맥을 읽고 질문에 답하시오.
질문 (question)
북한이 인테리의 사상성을 제고하기 위해 추진한 정책들이 결과적으로 어떠한 문제를 야기하였는가?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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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과제 해석
task_interpretation북한이 인테리의 사상성을 높이려 했던 정책적 노력과 그로 인해 발생한 부정적 결과를 파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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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정보 추출
information_extraction인테리의 사상성 제고를 위해 추진된 구체적인 방안과 그 목적을 추출한다.
- 인테리들이 대중 속으로 들어가 대중운동에 참가하는 방안을 통해 인테리의 사상성을 담보하고자 하였다.
- 1970년대~2000년대에는 3대혁명소조운동을 비롯한 다양한 대중운동 참가를 통한 현실체험, 현장체험을 인테리의 사상성 제고방안으로 추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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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근거 선택
evidence_selection정책의 목적(사상성 제고)과 그에 따른 결과(전문성 저하)가 명시된 문장을 선택한다.
- 이와 같은 북한의 정책은 결과적으로 인테리의 전문성 저하 문제를 야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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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논리 통합
logical_integration북한은 인테리의 사상성을 강화하기 위해 대중운동 참여와 현장체험을 강조하는 정책을 펼쳤으나, 이러한 과정이 인테리의 전문성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했음을 연결한다.
- 인테리의 사상성을 담보하고자 하였다.
- 이와 같은 북한의 정책은 결과적으로 인테리의 전문성 저하 문제를 야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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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결론 도출
conclusion_formulation인테리의 사상성 제고를 위한 대중운동 참여 및 현장체험 중심의 정책이 인테리의 전문성 저하라는 문제를 일으켰다는 결론을 도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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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답변 생성
answer_generation질문에 대해 명확하고 간결한 서술형으로 답을 작성한다.
근거 (evidence)
- 인테리들이 대중 속으로 들어가 대중운동에 참가하는 방안을 통해 인테리의 사상성을 담보하고자 하였다.
- 1970년대~2000년대에는 3대혁명소조운동을 비롯한 다양한 대중운동 참가를 통한 현실체험, 현장체험을 인테리의 사상성 제고방안으로 추진하였다.
- 이와 같은 북한의 정책은 결과적으로 인테리의 전문성 저하 문제를 야기하였다.
- 인테리의 사상성을 담보하고자 하였다.
최종 답변 (final_answer)
인테리들이 대중 속으로 들어가 대중운동에 참가하게 하거나 3대혁명소조운동 등을 통해 현실체험 및 현장체험을 하게 함으로써 사상성을 제고하려 했던 정책은 결과적으로 인테리의 전문성 저하 문제를 야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