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맥 (context)
고려시대 문인 익재(益齋) 이제현(1287~1367)의 후손 이홍근 선생은 상사를 경영하여 자수성가하였다. 개성 출신인 그는 1926년 함경북도 성진읍에서 종합물산상회를 차렸고 1940년경 개성으로 돌아와서 양조회사 사장으로 활동했다. 그는 상거래를 하면서 교유하게 된 일본인들이 문화재를 감상하는 모습에 자극을 받아 문화재 수집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고 본격적인 문화재 수집은 한국전쟁기 이후부터 시작되었다. 그는 1946년 서울로 이사를 하면서 장남 상협 일가를 개성에 머무르게 하였다. 이후 장남 일가와 생이별을 하는 아픔을 겪었고 이를 달래기 위해 문화재 수집에 더욱 애정을 쏟았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종로 당주동, 인사동 골목으로 고미술품이 쏟아져 나왔기에 그는 아침저녁으로 돌아다니면서 수집하기도 했고, 찾아온 단골상인들로부터 문화재를 구입하기도 했다. 그는 “위조품도 사야지 진품을 구할 수 있다”는 마음으로 수집에 임했다. 그리고 “좋지 않은 물건을 가지고 온 상인에게도 돈을 주어야지 그 돈으로 다음에 좋은 물건을 사서 가지고 올 수 있다”라는 말을 자주 했다고 한다. 이렇듯 그는 문화재 수집 철학을 세우고 관련 서적을 읽으며 전문 지식을 쌓아갔다.
결구라 함은 이음과 맞춤을 모아 표현한 말로써, 이음은 부재 간을 길이방향으로 연결한 것을 의미하며, 부재 간이 가로, 세로 방향의 어떤 각을 가지고 짜임이 되는 것을 맞춤이라고 한다. 한옥은 수직부재와 수평부재를 조합해 공간을 형성한 후, 눈과 비를 막아주는 지붕과 내·외 간의 바람과 열기, 냉기의 이동을 막는 흙벽과 창호를 설치하여 완성한다. 집을 짓기 위해서는 수직부재인 기둥과 수평부재인 대들보, 창방, 도리 등이 만나는 부위를 튼튼하게 결속시키기 위한 지혜가 필요하다. 그 방법으로 각종 결구법이 발전하게 되었다. 우리 문화유산인 한옥을 감상할 때 대개는 첫눈에 지붕의 장중함과 지붕곡선의 아름다움에 시선이 끌리게 된다. 그리고 벽체와 창호에서는 간결성과 연속성, 변화성과 함께 섬세함의 기예를 복합적으로 느끼면서 감탄을 자아낸다. 이러한 공간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각종 부재 간의 결구가 매우 중요하다. 결구부를 표면에서 바라보면 그 속 내부의 짜임이 어떻게 되었으며 그 성능은 어떻게 다른지 알 수 없다.
결구법은 구조적인 성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우선시하여 발전해왔다. 결구되는 단면내부에서 접합부 강성을 높이고, 변형률을 흡수하기 위한 형태와 성능을 갖추어야 한다. 가구구조는 말 그대로 여러 부재가 결구된 형태로 되어있는 구조를 말한다. 근대 건축물 중에서 한옥구조와 비슷한 구조로 강구조가 있는데 강구조에서는 접합부를 용접이나 고장력볼트 등으로 수직, 수평부재 등을 체결하여 구조물을 완성해나간다. 그러나 한옥에서 가구구조는 부재 간의 단면 내에서 각종 장부형태로 바심질(마름질한 재목들을 깎거나 파서 다듬는 일)하여 결합한다. 이러한 결구 방법의 적용으로 수세기 동안의 외부 환경 변화에도 끄떡없는 공간을 제공하게 된다. 현대과학기술과 비교하여도 결코 뒤처지지 않는 기술력과 함께 경제성과 의장성을 겸비한 건축술이라 할 수 있다.
대들보의 경우는 숭어턱 형상으로 바심질을 하는데 이 때 또한 기둥 상부가 보의 어깨로써 감싸지도록 한다. 구조적인 힘의 부담을 기둥과 결구되는 단면 내로 전달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러한 구조는 힘의 전달과 함께 의장성도 고려한 것이다. 보머리와 보의 등, 어깨부분에서 변화성을 주기 위해 보머리에 계눈각을 조각하고 어깨부분은 소매걷이 처리를 하여 무겁고 둔탁해 보일 수 있는 보의 형태를 아름답게 했다. 대들보가 설치된 후 도리가 얹히는데 도리의 역할은 서까래에서 내려오는 하중을 기둥으로 전달하는 것이다. 보의 숭어턱 상부는 두겁주먹장 형상으로 결구되는데 이는 서까래에서 하중이 전달될 때 결구부위에서 이완되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또한 보목부분에서 상부하중의 전달력으로 인해 발생하는 강한 지압력이 발생하는데, 이 지압력이 결구부위에서 맞물림(interlocking) 효과와 더해지면서 결구가 완성된다고 할 수 있다.
결구의 형태는 단순하다. 그러나 장부와 장부를 감싸는 부재 간의 맞물림(interlocking) 효과로 인해 절점(節點) 부위의 결속력이 확보되는 것이다. 그 예로 가장 간단한 한옥구조 형태인 보아지(보받침)가 있는 도리집의 형태를 살펴보자. 도리집의 구성부재는 기둥, 보아지, 장혀(도리 받침 부재), 대들보, 도리(서까래를 받치기 위하여 기둥 위에 건너지르는 나무)로써 이러한 부재 모두가 기둥에서 결구된다. 기둥과 보아지는 기둥을 기둥머리에 부재가 맞춰질 수 있도록 트임을 하고 보아지를 장부로 하여 내리맞춤 한다. 이 때 보아지의 어깨를 두어 이 다음 장혀가 주먹장(주먹 모양으로 끝이 조금 넓고 안쪽이 좁게 하여, 도드라진 촉이 끼이면 빠지지 않게 되는 결구)으로 내리맞춤될 때 기둥이 갈라지는 것을 방지하고, 주먹장 맞춤되는 지압면에서 마찰력이 효과적으로 발휘되도록 한다. 장혀의 맞춤은 기둥에서 주먹장의 홈을 두고 장혀는 주먹장 장부를 두는데, 장부 하부보다 상부면을 한 푼 정도 넓게 하여 내리맞춤 시 결속력을 증대시킨다. 장혀의 역할은 이로써 끝나는 것이 아니다. 지붕상부에 발생되는 하중을 받는 도리와 대들보가 있는데 이들 부재는 단면이 크고 육중하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키가 큰 석탑을 말하라면, 단연코 국보 제11호 익산 미륵사지 석탑이다. 그러나 삼층석탑 가운데 가장 큰 석탑을 묻는다면 쉽게 답을 말하는 사람이 드물다. 답은 국보 제112호 경주 감은사지 동·서 삼층석탑이다. 규모는 삼층석탑이지만 찰주(刹柱)를 포함한 탑의 높이는 13.4m로, 규모가 큰 만큼 웬만한 삼층석탑에서 하나의 큰 돌을 사용하여 조각될 법한 옥개석이나 옥개받침석이 여기에서는 4개로 나뉘어져 있다. 이 돌들은 일대에서 나는 응회암을 이용하여 만들어졌는데, 이 돌들을 연결하기 위해 쇠로 만든 은장이 사용되었다. 은장은 크게 3가지 형태로 구분된다. 첫 번째가 나비장이다. 주로 목조건축에서 많이 사용되는데, 두 부재를 맞대고 좌우로 같은 형태의 홈을 만든 뒤, 그 홈 모양의 부재를 별도로 조각하여 홈에 끼워 두 부재를 잇는데, 이 홈이 나비를 닮아서 나비장이음이라고 한다. 두 번째가 자촉이다. 두 부재를 잇는 방식은 나비장과 같은 원리이지만 형태는 세로로 길쭉한 네모형태이다. 나비장이 주로 좌우로 벌어지는 힘에 대응하는 곳에 사용되어 벌어지는 것을 막기 위함이라면, 이 긴 자 모양의 자촉은 위아래로 이어지는 부재가 서로 어긋나지 않게 잡아주는 것이 주된 역할이다. 세 번째가 감은사지 석탑에서 보이는 도투마리 모양의 은장이다.
2012년에 수리를 마친 감은사지 서 삼층석탑에는 티타늄으로 된 은장이 복원에 사용되었다. 기존 석탑에 사용된 은장은 성분 분석 결과 90% 이상이 철(Fe)이었다. 그러나 부식으로 인해 석탑 표면에 산화물이 흘러내리는 등 보존과학적 측면에서 매우 불리하다고 판단되어 비산화물질로 제작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감은사지 석탑에 사용된 은장 가운데 일부는 바깥에 나와 있다. 어디에 있을까. 어떤 석탑은 사람의 키만 하다. 그래서 모든 층의 부재를 다 볼 수 있다. 그런데 감은사지 탑은 정말 크다. 그래서일까. 눈에 잘 띄지 않는 3층의 옥개석을 자세히 보면, 4개로 구성된 옥개석들이 은장으로 연결되어 있다. 즉 눈과 비를 직접 맞는 면에 은장이 놓여 있다. 다른 곳에서는 다 안에 숨어 있는데, 여기는 외부에 노출되어 있다. 여기뿐만이 아니다. 강물이 넘실거렸을 월정교 교각에도 은장은 노출되어 있다. 부식(腐蝕)은 금속이 공기나 물 등의 화학 작용으로 삭는 현상이다. 어쩌면 은장이 석조건축에 보편적으로 사용된 삼국시대에, 돌을 붙잡을 수 있는 가장 단단한 물질은 쇠였을 것이다.
건축은 각기 다른 재료가 만나 전체적으로 하나를 이루어낸 결과물이다. 그 각기 다른 재료는 여러 가지 방법에 의하여 서로 결합되거나 맞춰진다. 은장은 그러한 부재 간의 결합을 이루는 하나의 방법이다. 그런데 은장은 건축물을 해체하거나 짓는 과정에 참여하지 않는 이상, 찾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반드시 필요한, 없어서는 안 될 기법이자 도구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도 하나의 건축과 같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 집을 이루고, 집은 다시 마을을 이루며, 마을은 국가를 이룬다. 여기에도 은장과 같은 사람이 존재한다. 서로 다른 사람이나 집단을 이어주는, 그럼으로써 가족, 마을, 국가라는 건축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보이지 않는 곳에서 누군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을 묵묵히 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이 사회가 굳건하게 서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지시문 (instruction)
다음 문맥을 읽고 질문에 답하시오.
질문 (question)
감은사지 동·서 삼층석탑의 옥개석과 옥개받침석을 연결하기 위해 사용된 재료는 무엇이며, 2012년 수리 시 서 삼층석탑의 은장을 복원할 때 기존의 철(Fe) 대신 사용한 재료는 무엇인가?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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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과제 해석
task_interpretation감은사지 석탑의 구성 요소인 옥개석 등을 연결하는 재료와 2012년 수리 시 복원에 사용된 새로운 재료를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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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정보 추출
information_extraction감은사지 석탑의 연결 재료와 기존 은장의 성분, 그리고 2012년 복원 시 사용된 재료에 관한 정보를 추출한다.
- 이 돌들을 연결하기 위해 쇠로 만든 은장이 사용되었다.
- 기존 석탑에 사용된 은장은 성분 분석 결과 90% 이상이 철(Fe)이었다.
- 2012년에 수리를 마친 감은사지 서 삼층석탑에는 티타늄으로 된 은장이 복원에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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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근거 선택
evidence_selection질문에서 요구하는 '연결 재료'와 '2012년 복원 재료'에 해당하는 문구를 선택한다.
- 쇠로 만든 은장
- 티타늄으로 된 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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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논리 통합
logical_integration감은사지 석탑의 돌들을 연결하는 데 사용된 것은 쇠로 만든 은장이며, 부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12년 수리 시에는 티타늄으로 된 은장을 사용했음을 결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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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결론 도출
conclusion_formulation연결 재료는 쇠로 만든 은장이고, 2012년 복원 시 사용된 재료는 티타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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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답변 생성
answer_generation추출된 정보를 바탕으로 최종 답변을 작성한다.
근거 (evidence)
- 이 돌들을 연결하기 위해 쇠로 만든 은장이 사용되었다.
- 기존 석탑에 사용된 은장은 성분 분석 결과 90% 이상이 철(Fe)이었다.
- 2012년에 수리를 마친 감은사지 서 삼층석탑에는 티타늄으로 된 은장이 복원에 사용되었다.
- 쇠로 만든 은장
- 티타늄으로 된 은장
최종 답변 (final_answer)
돌들을 연결하기 위해 사용된 재료는 쇠로 만든 은장이며, 2012년 수리 시 복원에 사용된 재료는 티타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