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맥 (context)
이렇듯 아파트 신축을 중심으로 한 부동산 시장은 김정일 집권 말기 및 김정은 집권 이후 당국이 고층 아파트 건설에 드라이브를 걸면서 더욱 활기를 띠고 있다. 북한 당국은 2008년에 평양 10만 호 건설을 발기하고 2012년까지 완공 목표를 설정했다. 김정은은 2012년 만수대지구에 45층의 초고층 아파트 단지인 창전거리를 완공한 바 있다. 이어 2013년에는 은하과학자 거리와 김일성종합대학 과학자아파트가 완공되었으며, 2014년에는 위성과학자 거리와 김책공업대학 교육자 아파트 건설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런데 국가 재정 부족 등으로 이러한 아파트 건설에 있어서 각 동별로 각 기관에 할당을 하고 각 기관의 자체적인 역량으로 건설할 것을 지시하고, 이에 따라 각 기관들은 경쟁적으로 민간자본을 끌어들이고 있다.
주거생활에 관한 몇 가지 지표를 통해서도 주민들의 생활수준의 변화를 볼 수 있다. 평안남도 순천시 주민들은 고난의 행군 이전에는 집에 너덜너덜 꿰진 종이장판을 깔고 있었지만 고난의 행군 이후에는 ‘레자’라고 불리는 고가의 중국 장판을 방바닥에 깔고 있다. 종전에는 간부들을 포함한 40% 미만의 주민이 겨우 흑백 TV를 보유하였으나 지금은 거의 모든 주민 가정에 컬러 TV가, 50% 이상의 주민 가정에 VCD플레이어가 있다. 지금은 집에 TV가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박막식 TV 정도는 되어야 한다. 불과 수명의 간부 댁에나 있던 집 전화기가 2007년에는 50세대에 1세대의 비율로 설치되었다. 시, 읍과 노동자구의 거의 모든 가정들은 전기를 이용해 밥을 지을 수 있는 전기밥가마(전기밥솥)와 전기로 채소를 볶는 채(菜)가마를 쓰고 있다. 주민들은 이러한 “기적”이 다 시장이 활성화된 덕택이라고 보고 있다.
1990년대 초중반 북한의 전통적 사회주의 경제는 심각한 기능부전 상태에 빠졌다. 전통적 사회주의 시대에 북한주민들은 사유재산권과 경제활동의 자유를 누리지 못한 채 국가가 시키는 대로 일해야 했지만, 그 대신 기본적 생계를 안정적으로 보장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식량배급제도가 무너지고 많은 국영기업들이 가동을 멈춤에 따라 북한주민들은 국가에 의존하는 기존 방식으로는 생계를 이어갈 수 없게 되었다. 대다수 북한주민들은 스스로 살 길을 개척해야 했다. 북한주민들의 이런 노력은 얼마나 성공적이었을까? 불충분하나마 우리가 구할 수 있는 여러 정보와 자료를 종합해 보면, ‘비교적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내릴 수 있을 것 같다. 지난 20여 년 동안 북한에서는 공식 사회주의 제도와 이념에서 벗어나는 경제활동이 꾸준히 출현 성장해 왔으며, 그 결과 북한주민들의 생활수준은 느리게나마 개선되어 온 것으로 보인다.
1990년대 중반 북한에서 심각한 기근이 발생한 후 남한과 국제사회는 대규모 식량원조를 제공하였으며, 원조는 북한이 기근에서 벗어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2000년대 후반 이후 남한과 국제사회의 식량원조는 거의 끊겼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줄어들었다. 중국의 식량원조는 계속된 것으로 보고되었지만 그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았다. 이 때문에 북한에서 다시 기근이 나타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흔히 제기되었다. 그러나 여러 국제기구가 북한 통계당국과 함께 조사한 바에 의하면, 북한의 식량사정은 그 후에도 오히려 조금씩 나아진 것으로 나타나며, 이런 조사 결과는 북한이탈주민 등이 전하는 정황 정보와도 잘 부합한다. 외부로부터의 식량 도입이 크게 줄어들었는데도 식량사정이 다소나마 나아질 수 있었다면, 이는 북한 내부 식품경제의 활성화, 즉 식량 및 기타 식품 생산량의 증가 및 유통 분배의 효율성 향상 덕분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수산업 부문의 개인 사업은 대체로 조그마한 어선을 한척 마련하는 데서 출발한다. 수산사업소나 수산협동조합에 소속 어선 중에서 기름이 없어 조업을 하지 못하는 배를 임대하기도 하지만, 최근에는 자기 자금으로 배를 구입해 국가 기관이나 기업소에 등록시킨 뒤 조업하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한다. 어선은 공장에 의뢰해서 제작할 수도 있고, 수산사업소 등 기존 기관의 중고 배를 인수할 수도 있으며, 가끔은 해상무역을 통해 중국의 중고 배를 수입하는 경우도 있다. 배의 임대는 연간 임대료를 지불하는 조건으로 계약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고, 기관 명의를 빌리는 경우는 해당 기관에 매달 일정 금액을 납부하게 된다. 어선을 확보한 개인 선주는 연료와 각종 어구 및 식량 등을 마련해서 고기잡이에 나가게 된다. 이 때 임금노동자인 ‘삯벌이’들을 개인적으로 고용하게 된다. 바다에 나가 고기를 잡게 되면, 먼저 해당 기업소에서 부여받은 계획 물량분에 대해서는 기업소에 넘기게 되는데, 이때 가격은 일반적으로 중국에 넘기는 가격을 기준으로 책정된다. 목표량을 초과한 물량은 가격을 높게 쳐주는 다른 기관이나 장사꾼에게 팔게 된다. 어획물을 구입한 기업소는 이를 중국의 수입상에게 넘기게 된다.
그 결과 1960년대 중반에 사적인 농업생산은 농민소득의 3분의 1을 차지할 정도가 되었다. 사경지는 총 경지면적의 6% 이내로 제한하도록 되어 있었으나 실제로는 10%를 넘었고 일부 지역에서는 15%를 넘기도 했다. 그러나 마오쩌둥(毛澤東)은 1966년 ‘문화대혁명(文化大革命)’을 발동하면서 농촌의 ‘자발적 자본주의 경향’을 비판하고 집단주의 농업정책을 다시 강요하였다. 사경지는 5% 이내로 제한했고 농산물 시장에 대한 통제도 강화했으며 부식용 생산물에 대한 국가 수매도 확대하였다. 하지만 공식 식품경제가 불완전했으므로 비공식 식품경제를 아주 없애는 것은 불가능하였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주목할 점은 사회주의 경제에서 비공식 식품경제는 주로 부식용 식품의 공급을 담당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정치 및 정책의 변화에 따라 비공식 식품경제가 확대될 때에는 주식용 농산물, 즉 곡물보다 부식용 농산물(축산물 포함)의 생산과 소비가 훨씬 빠르게 증가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1970년대 말 이후 중국의 농업개혁은 과거의 공식 식품경제가 해체되고 비공식 식품경제를 공식화한 것이었는데, 여기에서도 동일한 현상이 나타났다.
중국의 경우에도 이러한 사정은 기본적으로 마찬가지였지만, 비공식 식품경제의 비중은 정치 풍향의 변화에 따라 큰 부침을 겪었다. 중국에서는 1950년대 중후반에 농업이 집단화되었으며, 그 직후에 ‘대약진운동(大躍進運動)’이라는 무리한 경제정책까지 실시함에 따라 대기근이 발생하였다. 그러자 1960년대 초에 류샤오치(劉少奇)를 중심으로 한 중국공산당 지도부는 집단농장(인민공사)을 유지하면서도 생산 인센티브를 높이기 위한 타협책을 실시하였다. 이 시기의 농업정책은 흔히 ‘삼자일포(三自一包)’라고 불린다. ‘삼자’란 ‘자류지(自留地)’, ‘자유시장’, ‘자부영휴(自負盈虧)’를 가리킨다. 자류지는 사경지라는 뜻이고, 자부영휴는 이익과 손해를 스스로 책임진다는 뜻이다. ‘일포’는 ‘포산도호(包産到戶)’로서 ‘호별 생산 청부제’라는 뜻이다. ‘포산도호’는 공산당 지도부가 지시한 것이 아니라 농민들이 자발적으로 실시한 것이었으며, 사실상 개인농 제도로 돌아간 것이었다. 즉 1960년대 초의 농업정책은 농산물(특히 주식용 농산물)의 국가 수매와 국가 유통 제도는 유지하되 집단농업은 상당히 약화시킨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지시문 (instruction)
다음 문맥을 읽고 질문에 답하시오.
질문 (question)
북한의 평양 10만 호 건설 사업이 완공된 구체적인 연도는 언제인가?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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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과제 해석
task_interpretation질문은 북한 당국이 발기한 평양 10만 호 건설 사업의 최종 완공 연도를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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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정보 추출
information_extraction문맥에서 평양 10만 호 건설과 관련된 시점 정보를 추출한다.
- 북한 당국은 2008년에 평양 10만 호 건설을 발기하고 2012년까지 완공 목표를 설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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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근거 선택
evidence_selection문맥에는 2008년 발기 시점과 2012년이라는 '완공 목표'가 명시되어 있으나, 실제로 사업이 언제 완공되었는지에 대한 결과 정보는 누락되어 있다.
- 2012년까지 완공 목표를 설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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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논리 통합
logical_integration2012년은 목표 연도일 뿐이며, 목표가 달성되었는지 혹은 실제 완공이 언제 이루어졌는지에 대한 사실 관계를 문맥 내의 다른 문장(창전거거리 완공, 은하과학자 거리 완공 등)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없다.
- 김정은은 2012년 만수대지구에 45층의 초고층 아파트 단지인 창전거리를 완공한 바 있다.
- 이어 2013년에는 은하과학자 거리와 김일성종합대학 과학자아파트가 완공되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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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결론 도출
conclusion_formulation문맥은 건설 목표와 개별 아파트 단지의 완공 시점만을 제공할 뿐, '평양 10만 호 건설'이라는 전체 사업의 실제 완공 연도는 명시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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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답변 생성
answer_generation주어진 문맥만으로는 실제 완공 연도를 확정할 수 없으므로 답변 불가능 판정을 내린다.
근거 (evidence)
- 북한 당국은 2008년에 평양 10만 호 건설을 발기하고 2012년까지 완공 목표를 설정했다.
- 2012년까지 완공 목표를 설정했다.
- 김정은은 2012년 만수대지구에 45층의 초고층 아파트 단지인 창전거리를 완공한 바 있다.
- 이어 2013년에는 은하과학자 거리와 김일성종합대학 과학자아파트가 완공되었으며
최종 답변 (final_answer)
주어진 문맥만으로는 답을 확인할 수 없다.
분석 (analysis)
문맥에는 평양 10만 호 건설의 발기 시점과 완공 목표 연도가 제시되어 있으나, 실제 사업이 언제 완료되었는지에 대한 결과 정보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목표 연도를 실제 완공 연도로 단정할 수 없으며 이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외부 정보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