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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 행정을 지향하는 행정포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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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Y_201709140328296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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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기관
한국행정연구원
발행연도
2017
KDC
350
답변 불가 (is_impossible)
False
문맥 (context)
유교정치사상에서는 요임금·순임금 같은 상고시대 성왕(聖王)들의 정치를 인정(仁政)과 덕치(德治)의 표상으로 삼고 있다. 뿐더러 경전 속에 산재한 성왕들의 치적들을 이상적인 정치 운영 방식으로 표본화시켜, 후대 국왕들이 마땅히 좇아야 할 전범으로서 강조하고 있었다. 이를테면 고대의 성왕들은 천명(天命)을 받기에 충분한 최고의 덕(德)을 지는 군주였다거나, 천하는 군주 혼자 소유한 천하가 아니므로 천하위공(天下爲公)의 입장에서 정치운영이 이루어져야 한다거나, 그러한 공적 정치 운영의 시행 방법으로서 다양한 국가 의례(儀禮)의 준수를 주장하였다. 군왕이 실천한 이상적인 정치 가운데서도 백미라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언론과 관련한 것이었다. 군주가 덕정을 이루기 위해서는 ‘언로를 넓게 열어 적극적으로 자신의 허물에 대해 들어야 한다’는 것이 언론에 대한 유교적 입장이었다. 이 같은 분위기는 세종이라 해서 크게 다르지 않아서, 그 역시 즉위 초반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대간의 언론을 제약하는 태도를 갖고 있었다. 이조참의에 제수한 인사를 사간원에서 반대하자 사간원 전원을 체직시키는가 하면, 사헌부에서 자신들의 상소를 접수하지 않는다며 승정원을 탄핵했을 때는 사헌부 관리들을 파직하고 좌천시켰다. 심지어 세종대의 의금부 옥졸들은 사헌부 관료들을 향해 “오늘은 비록 헌사(憲司)에 앉아 있으나 조만간 반드시 하옥되어 우리들의 통제를 받을 것이다”라고 비아냥거리기까지 할 정도였다. 언론에 대한 국왕의 제재는 세조 대에 정점에 이른다. 쿠데타를 통해 집권한 세조의 무단통치 앞에서 대간이 국왕과 공신들의 불법에 대해 적극적으로 간쟁하기가 어려웠다. 대간이 열을 올리는 안건은 대체로 반역 사건과 같이 세조 정권에 명백히 누가 되는 그런 류의 일들이었다. 일종의 어용 언론이 주를 이루고 있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세조 대 극심한 침체를 겪었던 대간의 언론은 성종의 즉위를 계기로 커다란 전환을 맞게 된다. 사실 성종 대는 권력구조 상에 커다란 변화가 일어나면서 왕권이 상대화되고 있던 시기이다. 어린 나이에 택현(擇賢)의 방식으로 왕위에 올랐던 성종은 대비와 원상들의 보호를 받고 있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세조와 같은 전제권력을 행사하기가 어려웠다. 오히려 경연(經筵)을 통해 국왕으로서 갖추어야 할 덕목들을 쌓아가면서 자신을 왕으로 선택한 것이 잘못된 결정이 아님을 증명해 내야 하는 부담을 갖고 있던 상황이었다. 이에 성종은 무려 8,700여 회도 넘게 경연에 참여하면서 호학군주(好學君主)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하였고, 원로대신들과 적절한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대간 또한 대신들의 권세에 위축되지 않도록 버팀목이 되어주는 등 안정된 정국 조성을 위해 진력하였다. 한편 세조 대의 공신들은 즉위 초반에는 원상제 시행뿐만 아니라 좌리공신 책봉에도 참여하는 등 세조 대 이래의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노령화에 따른 주축 인사들 대부분의 사거(死去)와 신왕(新王)과의 관계 조정 가운데 점차 영향력을 잃어 갔다. 특히 신숙주·한명회·정창손 등의 사망 이후에는 특별한 구심점을 확보하지 못한 채 특권 그룹으로서의 공신 권력을 유지하지가 어려워졌다. 국왕의 왕권 행사에서 전제적 성향이 대폭 축소되고 공신들의 권력 역시 크게 약화되는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청요직들의 영향력은 점차 강화되어 갔다. 청요직이란 홍문관·사간원·사헌부·예문관 등의 당하관 관직들로서, 당상관으로 오르는 과정에서 으레 거치기 마련이었던 엘리트 관료들을 가리킨다. 이들 청요직들은 국왕과 공신 등이 국정 운영에 독점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또 공적 기준에 입각한 관료제 운영이 활성화되는 상황에서, 긴밀한 연대 체제를 구축해 나가며 정치적 영향력을 키워가고 있었다. 정치적 파워를 키워가고 있던 청요직들은 다양한 언론관행의 정착을 통해 언론행정에 대한 개혁을 시도하였다. 언론관행이란 법전에 규정된 대간의 고유 권한은 아니지만 대간 활동 과정에서 그 필요성이 인식되며 대간의 권한으로 자리 잡았던 언론행정이라 할 수 있다. 청요직들은 이를 통해 대간의 언론 활동이 활발하면서도 지속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나갔던 것인데, 성종 대 정착되고 있던 언론관행으로는 풍문탄핵, 피혐, 서경 등의 활성화를 꼽을 수 있다. ‘풍문탄핵(風聞彈劾)’은 말 그대로 풍문을 근거로 탄핵을 하는 것을 말한다. 국초에는 대간이 풍문만을 가지고 대신들을 탄핵하는 일을 금했다. 국왕의 입장에서는 대간이 대신들을 함부로 탄핵하지 못하게 할 필요가 있었다. 위계질서를 중시해서이기도 했지만, 대신들에게 몇몇 비리가 있다 할지라도 국왕이 구상하는 정책들을 완수해 나가는 것이 보다 중요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왕권이 강했던 태종 등은 대간이 풍문만으로 탄핵하는 것을 금했다. 하지만 성종 대 언론이 활성화되는 가운데 풍문에 입각한 탄핵 활동 또한 늘어갔다. 급기야 대간에서는 풍문탄핵이 조정의 기강을 위해 꼭 필요하다는 입장을 강변하면서 점차 일상적인 언론활동으로 활용해 나갔다. ‘처치(處置)는 대간의 피혐에 대해 그 적절성을 가리며 사직이나 체직을 결정하는 절차를 말한다. 처음에는 국왕이 처치의 주체였으나 16세기를 경과하며 처치의 주체가 국왕에서 홍문관으로 옮겨가게 된다. 하지만 처치의 주체가 왕에서 언관들로 바뀌게 됨에 따라 피혐에 따른 대간의 교체가 그만큼 잦아져 조선후기에 이르러서는 커다란 폐단으로 인식되기도 했다. ‘서경(署經)’은 대간에서 5품 이하의 관직에 임명된 관료들의 신원을 조사하여 그 적절성을 가리는 일을 말한다. 고려시대는 모든 관원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었으나 국초에 5품 이하로 제한된 뒤 다소 위축된 측면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성종 대에 이르러 청요직들은 서경을 조금 다른 방식으로 활용했다. 즉 서경을 통해 5품 이하 관료들의 인사에 영향력을 행사하여, 청요직들이 국왕과 대신에 맞서 단일한 대오를 형성할 수 있는 인사권으로 이용하였던 것이다. 예를 들어서, 간쟁에 소극적이거나 국왕과 대신에 아부를 일삼는 사람들의 관직 임명 시, 대간에서는 그에 대한 서경을 거부하여 결국 임명이 취소되게 만들었다. 또 일상생활에서의 청렴도와 도덕적 흠결 여부까지도 서경의 통과 요건에 포함시켜, 조정에서 도덕적 권위가 갖는 위상을 높이고 그렇게 높아진 권위에 기대어 공론의 위상 또한 높여 갔다. 결국 대간의 대표적인 언론관행인 풍문탄핵과 언근불문, 피혐과 처치, 서경의 강화 등은 서로 시너지 효과를 내면서 언로를 넓게 열고 언론을 활성화시키는 데 커다란 기여를 했다. 하지만 보다 본질적인 측면에서 언론관행의 정착에 따른 언론활성화와 청요직들의 영향력 신장이 갖는 의미는 왕권을 도덕적 권위와의 대비 속에서 상대화시키며 공적 정치 운영의 기초를 마련했다는 데 있다. 즉, 청요직들이 공론으로 표방되는 언론을 매개로 ‘도덕적 권위’를 전유(專有)해 나가며 국정 현안에 대한 시비 분별의 주도권을 장악하게 됨에 따라, 왕권은 도덕적 권위에 위배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행사될 때 그 정당성이 용인될 수 있다는 분위기가 조성되어 갔고, 국왕은 사안마다 대간과의 시비 분간을 통해 정책 집행의 정당성을 확보해야 하는 부담을 갖게 되었다. 도덕이 군주보다 상위에 있다는 이른바 ‘도고우군(道高于君)’의 기치가 현실 정치 무대에서 실질적인 힘을 발휘하게 되면서, 유교적·보편적 가치로 수렴되는 도덕에 대한 추구가 군주의 명령을 무조건적으로 순종하는 것보다 더 의미 있는 일이라는 인식이 조선 사회 전반으로 확장되는 데 커다란 기여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시문 (instruction)
다음 문맥을 읽고 질문에 답하시오.
질문 (question)
성종 대에 청요직들이 서경(署經)을 활용하여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한 구체적인 방식은 무엇인가?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1. 1과제 해석task_interpretation

    성종 대 청요직들이 서경을 어떤 방식으로 활용하여 영향력을 키웠는지 그 구체적인 방법론을 파악해야 한다.

  2. 2정보 추출information_extraction

    서경의 정의와 성종 대 청요직들의 활용 양상에 관한 정보를 추출한다.

    • ‘서경(署經)’은 대간에서 5품 이하의 관직에 임명된 관료들의 신원을 조사하여 그 적절성을 가리는 일을 말한다.
    • 성종 대에 이르러 청요직들은 서경을 조금 다른 방식으로 활용했다.
  3. 3근거 선택evidence_selection

    청요직들이 서경을 인사권으로 이용한 사례와 구체적인 기준을 담은 문구를 선택한다.

    • 서경을 통해 5품 이하 관료들의 인사에 영향력을 행사하여, 청요직들이 국왕과 대신에 맞서 단일한 대오를 형성할 수 있는 인사권으로 이용하였던 것이다.
    • 간쟁에 소극적이거나 국왕과 대신에 아부를 일삼는 사람들의 관직 임명 시, 대간에서는 그에 대한 서경을 거부하여 결국 임명이 취소되게 만들었다.
    • 일상생활에서의 청렴도와 도덕적 흠결 여부까지도 서경의 통과 요건에 포함시켜, 조정에서 도덕적 권위가 갖는 위상을 높이고 그렇게 높아진 권위에 기대어 공론의 위상 또한 높여 갔다.
  4. 4논리 통합logical_integration

    서경을 단순한 신원 조사를 넘어 인사권 및 도덕적 권위 확보의 수단으로 활용했음을 결합한다.

  5. 5결론 도출conclusion_formulation

    청요직들은 서경을 통해 부적절한 인사의 임명을 취소시키고, 도덕적 기준을 강화함으로써 공론의 위상을 높이는 방식으로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결론을 도출한다.

  6. 6답변 생성answer_generation

    추출된 정보를 바탕으로 질문에 대한 답변을 구성한다.

근거 (evidence)
  • ‘서경(署經)’은 대간에서 5품 이하의 관직에 임명된 관료들의 신원을 조사하여 그 적절성을 가리는 일을 말한다.
  • 성종 대에 이르러 청요직들은 서경을 조금 다른 방식으로 활용했다.
  • 서경을 통해 5품 이하 관료들의 인사에 영향력을 행사하여, 청요직들이 국왕과 대신에 맞서 단일한 대오를 형성할 수 있는 인사권으로 이용하였던 것이다.
  • 간쟁에 소극적이거나 국왕과 대신에 아부를 일삼는 사람들의 관직 임명 시, 대간에서는 그에 대한 서경을 거부하여 결국 임명이 취소되게 만들었다.
  • 일상생활에서의 청렴도와 도덕적 흠결 여부까지도 서경의 통과 요건에 포함시켜, 조정에서 도덕적 권위가 갖는 위상을 높이고 그렇게 높아진 권위에 기대어 공론의 위상 또한 높여 갔다.
최종 답변 (final_answer)
성종 대 청요직들은 서경을 5품 이하 관료의 인사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인사권으로 활용하였다. 구체적으로 간쟁에 소극적이거나 국왕과 대신에게 아부하는 인물의 임명 시 서경을 거부하여 임명을 취소시켰으며, 일상생활의 청렴도와 도덕적 흠결 여부까지 통과 요건에 포함함으로써 조정 내 도덕적 권위와 공론의 위상을 높이는 방식으로 영향력을 행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