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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후소득보장체계의 발전방향에 관한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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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nt_id
CNTS-00049145052
doc_id
CNTS-00049145052_13
발행기관
한국사회조사연구소
발행연도
2004
KDC
330
답변 불가 (is_impossible)
False
문맥 (context)
지역주의 선거는 정치권의 패권주의 및 유권자의 집단적 결집과 상호관련이 있다. 이 글에서 필자는 정치 패권주의를 제도 정치권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일종의 권력투쟁의 형태로 규정한다. 즉, 공식적 정치과정인 선거, 특히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에서의 정권장악을 위한 의지와 노력을 필자는 정치적 패권주의로 명명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 까닭은 한국정치의 권력구조가 대통령 중심제를 바탕으로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정치에서 모든 정치권력의 집합점은 궁극적으로 대통령이다. 그러나 유권자의 실제 투표 없이는 어떠한 권력도 창출될 수 없다. 실제로 지역주의 선거에 임하는 주체는 유권자인 것이다. 따라서 필자는 지역주의 선거의 원인을 다음과 같이 규명하고자 한다. 먼저 일인지배하의 강력한 권력구조가 있었다. 권력구조에 따른 권력투쟁이 치열한 선거 경쟁을 유발한다. 정치권의 권력지향적인 정치 패권주의는 선거 경쟁을 합리적인 것으로 정당화하면서 더욱 치열한 경쟁으로 격화된다. 정치권에서는 필승의 전략으로 특정지역의 ‘집단적 결집’을 가능케 하는 전략을 동원한다. Hardin의 집단적 결집 모델에 따르면, 선거 경쟁에서 승리한 쪽이 정치자원을 독점하는 제로섬 게임적 상황에서는 경쟁에서의 패배가 곧 정치적 배제를 의미한다(제3명제)(Hardin, 1995: 57∼59). 이러한 권력구조 하에서는 선거가 치열한 경쟁으로 비화되고 심할 경우 폭력적 마찰까지 유발할 수 있다. 한국의 선거에서 대통령 중심제라는 권력구조는 권력자원의 지역적 불균형과 맞물려 지역 간의 치열한 경쟁을 유발하고 있다. 그 까닭은 정책결정자(즉, 대통령)의 권한이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정권장악을 통한 변화의 추구는 열세집단에게는 합리적으로 보이기 때문에 이들은 필사적인 정권장악 경쟁에 돌입하게 된다. 예컨대 호남인들의 의식 속에 내재하고 있는 소외의식과 피해의식은 1971년 이후의 대선 때마다 유권자들로 하여금 강력한 ‘집단적 결집’의 위력을 과시하게 하고 있다. 호남 유권자들의 그러한 의식은 선거경쟁이 지니고 있는 승리자 독점방식(winner-takes-all system)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집단 간의 경쟁개념’이다. 한국의 제도 정치권에서는 이 개념을 유권자들을 동원하는 수단으로 잘 이용하고 있다. 전라도를 연고로 하는 제도 정치권의 정치적 결집은 상대 경쟁집단(경상도를 연고로 하는 정치권)의 대응적 결집을 가져오게 된다(Hardin의 제2명제). 이것은 기존의 원자화된 유권자들의 개별적 선택에 의한 정치시장 원리까지도 집단적 경쟁체제로 변질시키고 있다. 집단적 경쟁체제는 개별 유권자들을 특정 정당의 열렬한 지지자로 포섭하고 이들을 집단간 경쟁결과에 따라 정치적 만족감을 충족시키는 존재로 전락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정치권의 정치적 결집과 유권자들의 정당일체감 의식이 어우러져 집단적 결집으로 표출된다. 이것은 Hardin의 제2명제를 그대로 입증한다. Hardin에 따르면, 제한된 정치자원을 놓고 둘 이상의 집단이 경쟁하는 경우, 상대집단의 결집이 강해질수록 해당집단의 정치적 결집은 고양될 수밖에 없다. 가령 제13대 총선과 그 이후 발생한 ‘3당합당’은 이를 잘 증명하고 있다. 1970년 9월 26일에는 당시 야당이던 신민당의 대선 후보 지명 전당대회가 있었다. 경선 결과 예상을 뒤엎고 전라도 출신의 김대중이 신민당의 대통령 후보가 되었다. 하지만 야당 내부의 권력구조 문제가 유권자들의 지역주의 투표로 이어졌다는 단순한 주장은 설득력이 약하다. 또한 어떤 사람들은 지역주의 선거가 정치권과 유권자의 양 수준에서 이루어지는 상호작용이라는 Hardin의 집단적 결집 모델을 따를 경우, 특정 정당내부의 권력투쟁이라는 개별 사건만으로 당시에 지역주의 선거가 시작됐다고 보는 데에는 무리가 따른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또한 당시 여야 정치권에서 분명히 지역주의 투표구도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하더라도 그것이 유권자들의 의식과 연결됐다고 볼 수 있는 근거는 없다는 주장도 제기될 수 있다. 그러나 당시 신민당 대선후보 지명전에서 승리한 김대중 후보는 명백히 지역주의 투표 구도를 염두에 두고 있었으며, 이듬해에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호남 지역 유권자들은 신민당에 대한 정당일체감을 중심으로 하여 집단적 결집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지역주의 선거의 기원은 야당내부의 권력투쟁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한편, 그 해 11월 26일에 있었던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지역주의 선거행태는 나타나지 않았다. 당시 총선에서 집권 민주공화당은 득표율 32.4%밖에 기록하지 못했지만 과반수를 훨씬 넘어 전체 의석수 2/3에 불과 6석이 모자라는 110석을 얻어 원내 안정의석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중앙선거관리위원회a, 1964: 491). 1963년의 대선과 총선에서 공화당이 선전할 수 있었던 까닭은 특정 지역을 배경으로 한 네거티브 선거 전략이 주효했기 때문이 아니라 다음의 두 가지 원인에 기인한다. 첫째, 야당이 분열되어 선거구 당 많은 후보자를 입후보시켜 표가 분산되는 바람에 많은 지역구에서 공화당 후보의 당선이 가능했다. 둘째, 이 선거에서는 전국구 제도의 도입으로 공화당이 전국의석 배분에서 유리했다. 결국 1963년의 한국정치과정에서는 지역주의 선거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1970년 당시 신민당의 대선 후보로는 김영삼, 김대중, 이철승 등 3인이 치열한 경합을 벌이고 있었다. 당 대표인 유진산은 김영삼을 공식후보로 지명했다. 따라서 김영삼은 전당대회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고 있었다. 그러나 막상 전당대회가 시작되자 박정희의 전략적 계산이라는 의외의 변수가 생겼다. 경상도 정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경상도 표에 의해 대통령직을 유지하고 있던 박정희는 상대당의 같은 경상도 출신인 김영삼의 출마를 꺼렸다. 박정희는 김영삼을 저지해야겠다는 계산 하에 그의 경쟁자인 김대중을 지원했다(이한두, 1987:36). 박정희의 계산은 자신의 표밭인 경상도의 ‘집단적 결집’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 한편, 김대중은 집권당이 영남 후보를 내세우는 만큼, 이 선거를 영호남 대결로 이끌어가야 한다는 명분 아래 호남 출신 대의원들을 규합했다. 김대중의 계산 또한 집단적 결집 투표를 염두에 둔 것이었다. 이는 Hardin의 제2명제를 통해서 알 수 있다. 지역주의의 인위적 동원은 다음해(1971년)에 치러진 제7대 대통령 선거를 통해 본격적으로 구체화되었다. 당시 집권층은 닉슨 독트린, 전태일 사건 등 일련의 내외적 위기에 봉착하여 지역간 분할 지배 전략을 구사했다(박현모, 1996: 457). 이에 대해 정치적 권력구조(엘리트 충원)와 경제적 부의 배분에서 차별받고 있던 호남인들은 김대중이라는 유능한 정치인을 통해 자신들의 박탈감을 보상받으려 했다. Hardin의 다섯 명제는 모두 이 사례에 적용될 수 있다. 호남 유권자들은 투표를 통해 신민당에 대한 정당일체감을 보여주었다. 1971년의 대통령 선거는 영호남의 지역대결로 응축되어 나타났다. 지역대결이 본격화하는 계기였던 것이다. 김대중 세력(신민당)은 정권 장악의 효율적 수단으로 호남 유권자들을 동원했다. 동시에 호남 유권자들은 김대중을 대통령으로 만들어야겠다는 구체적인 정치적 이해와 인식을 공유했기 때문에 ‘집단적 결집’이 실제로 가능했다(Hardin의 제1명제).
지시문 (instruction)
다음 문맥을 읽고 질문에 답하시오.
질문 (question)
1963년 대선과 총선에서 민주공화당이 선전할 수 있었던 두 가지 원인은 무엇인가?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1. 1과제 해석task_interpretation

    1963년 대선과 총선 당시 민주공화당의 선전 원인 두 가지를 파악해야 한다.

  2. 2정보 추출information_extraction

    1963년 선거 결과와 그 원인에 관한 문장을 추출한다.

    • 1963년의 대선과 총선에서 공화당이 선전할 수 있었던 까닭은 특정 지역을 배경으로 한 네거티브 선거 전략이 주효했기 때문이 아니라 다음의 두 가지 원인에 기인한다.
  3. 3근거 선택evidence_selection

    제시된 두 가지 원인을 구체적으로 명시한 문구를 선택한다.

    • 첫째, 야당이 분열되어 선거구 당 많은 후보자를 입후보시켜 표가 분산되는 바람에 많은 지역구에서 공화당 후보의 당선이 가능했다.
    • 둘째, 이 선거에서는 전국구 제도의 도입으로 공화당이 전국의석 배분에서 유리했다.
  4. 4논리 통합logical_integration

    추출된 두 가지 원인을 정리하여 답변의 구조를 잡는다.

  5. 5결론 도출conclusion_formulation

    야당의 분열로 인한 표 분산과 전국구 제도 도입이라는 두 요인을 결합하여 결론을 도출한다.

  6. 6답변 생성answer_generation

    질문에 대한 최종 답변을 작성한다.

근거 (evidence)
  • 1963년의 대선과 총선에서 공화당이 선전할 수 있었던 까닭은 특정 지역을 배경으로 한 네거티브 선거 전략이 주효했기 때문이 아니라 다음의 두 가지 원인에 기인한다.
  • 첫째, 야당이 분열되어 선거구 당 많은 후보자를 입후보시켜 표가 분산되는 바람에 많은 지역구에서 공화당 후보의 당선이 가능했다.
  • 둘째, 이 선거에서는 전국구 제도의 도입으로 공화당이 전국의석 배분에서 유리했다.
최종 답변 (final_answer)
첫째, 야당이 분열되어 선거구 당 많은 후보자가 입후보함으로써 표가 분산되어 공화당 후보의 당선이 가능해진 점, 둘째, 전국구 제도의 도입으로 인해 공화당이 전국의석 배분에서 유리했던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