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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도 문화재위원회 제8차 근대문화재분과 회의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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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TS-00118876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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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TS-00118876334_1
발행기관
문화재청
발행연도
2017
KDC
600
답변 불가 (is_impossible)
False
문맥 (context)
원주 지역의 개신교는 1905년 모스 목사의 선교로 시작되었으며 이를 기점으로 오늘날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의 전신이 되는 서미감병원(1913년)과 앤더슨 선교사 사택(1913년), 원주읍교회(1916년), 해외여성선교회 지부(1916년), 모리스 선교사 사택(1918년) 등 관련 시설들이 건축되었으나 한국전쟁과 근현대기 도시 개발 과정에서 모두 멸실되고 현재는 모리스 사택만이 남아 있다. 동 건물은 의료선교단의 일원으로 원주에 온 모리스 선교사 부부의 거주를 위한 주택으로 1918년에 건립되었다. 당시 원주에서 선교 활동 중이던 앤더슨 선교사가 미국에 보낸 편지에 의하면 1918년 11월에 모리스 선교사를 위한 주택이 완공되었다는 내용을 알 수 있다. . 또한, 앤더슨 선교사의 편지에 동봉한 것으로 보이는 사진 속에는 당시 공사 현장에서 인부가 지게를 이용해 목부재를 운반하는 모습이 찍혀 있고 그 아래에 친필로 “Mr. Morris's house. jiggyman with 8"X4" timbers. wonju, korea"라 쓰여 있는데 지게를 지고 있는 인부를 가리켜 ‘jiggyman’으로 표현한 것이 이색적이다. ‘조선내화주식회사 구 목포공장’은 오늘날 목포시 온금동 일대의 유달산 기슭에 자리 잡고 있다. 최초 1938년 내화벽돌 및 내화물의 제조, 판매 등을 위한 목적으로 일본인 사토가 ‘조선내화공업주식회사’를 건립하였으며, 해방 이후에는 한국인 손용기씨에게 불하되어 1947년 ‘조선내화화학공업주식회사’로 새롭게 출범하였다. 이후, 한국 전쟁 과정에서 심하게 훼손되고 또한 심각한 재정난 등으로 인해 당시 내화 원료의 광산을 소유하고 있었던 이훈동씨(현, 조선내화주식회사 창업자)에게 공장 인수를 권유함에 따라 1953년 공장을 인수하게 되었고 그 후로 철광 산업의 발전과 함께 지 속적으로 공장을 확장, 운영하여 오다 1997년 폐쇄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본래 공장 부지는 바다를 매립하여 간척지로 조성한 곳으로 과거 공장 전면으로는 내화물의 원료를 실어 나르기 위해 작은 배들이 드나들었던 선창(현지에서는 ‘째 보선창’으로 불려오고 있음)이 있었으나, 현재는 사라져 그 흔적을 살펴볼 수는 없다. 1938년 7월 일본인 사토에 의해 조선내화공업주식회사가 설립되어 내화물 생산을 하였다. 해방 후 1947년 손용기 대표이사를 중심으로 공장을 인수하여 조선내화화학공업주식회사로 상호를 변경하여 설립하였다. 6.25 한국전쟁 직후인 1953년 이훈동 회장이 회사를 인수하고 파괴된 공장을 복구하여 1960년대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 전성기를 맞이하였으나 광양 및 포항 제철소를 중심으로 주력 업종이 설립되면서 점차 목포 공장의 가동이 축소되었고, 1997년 목포 공장 전체가 가동이 중지되었으며 생산 현장과 일부 시설물을 보존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대상물은 조선내화주식회사의 주력 업종인 내화물(耐火物)를 생산하는 생산라인에 관련된 공장 건물 3동과, 굴뚝 3개소, 사무실동, 사택이다. 공장은 회사의 확장과 함께 증축이 이루어졌고 제품 생산에 따르는 생산라인을 살필 수 있으며 주요 시설물인 각 가마, 보이드 프레스, 건조기, 터널식 가마 2개소가 보존되어 있다. ‘고초골 공소’는 천주교 수원교구 소속 공소이다. 공소가 위치한 고초골(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학일리)에는 일찍이 천주교 교우촌이 형성되었으며 병인박해(1866년) 시기를 제외하고는 계속해서 그 맥을 이어왔던 곳으로 전해져 오고 있다. 현존 공소 건물은 공소를 목적으로 신축한 것이 아니라 인근(현 용인시 처인구 원 삼면 문촌리)에 위치한 가옥(한옥)을 해체하여 옮겨온 것이다. 본래 조선 영, 정조 시대의 무신인 이주국 장군의 생가 일곽에 포함되었던 건물로 최초 건립 당시의 용도는 알 수 없으나, 마을 주민들에 의해 전해 내려오는 구전에 의하면 ‘잠실(蠶室)’의 기능으로도 사용되었던 곳이라고 한다. 현존 공소 건물의 상량문에 의하면 신묘년(辛卯年)에 건립된 것으로 기록하고 있는데 건물(한옥)의 형태 등으로 미루어 볼 때 1891년에 신축이 이루어지고 그 후 오늘날의 위치로 이축해 온 것으로 판단된다. 다만, 이축 시점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관계자 및 주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고초골 공소의 신자 수를 기록한 최초의 통계 자료가 1900년의 것이며 당시 78명이 신자가 있었다는 것으로 보아 이 시기쯤인 것으로 보인다. 고초골공소는 천주교 수원교구의 공소로 1891년 원삼면 문촌리 414-4번지에 소재하는 이주국 장군 고택의 부속 건물을 이축하여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용인과 안성은 천주교 성지기 집중되어 있는 곳이지만 초기 한옥형 공소가 남아 있는 것은 매우 드문 사례이다. 문촌리 김상렬 씨의 증언에 따르면 공소 건물은 문촌리의 안 군수 댁 잠실을 헐어다가 지었다고 하였다. 이주국 장군 고택에 살고 있는 조길상(85세)씨에 따르면 고택의 부속건물을 헐어다가 지었는데 이주국 장군의 고택에 안 군수가 산 적은 있다고 하였다. 결국 증언상으로는 이주국 장군 고택의 잠실 또는 부속 건물을 철거하여 옮겨 지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증언으로 건물 연대는 확인할 수 없었으나 100년, 120년, 150년, 170여 년 전(원삼면지) 등으로 다양하다. 등록 신청된 ‘안심당’과 ‘육화당’은 전라남도 곡성군에 자리 잡은 성륜사 경내에 위치하고 있으며, 현재 사찰의 요사채로 사용되고 있는 한옥 건물이다. 성륜사는 대한불교조 계종의 사찰로 1989년 새롭게 중창 불사되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으며, 과거 고려시대에 이곳에는 나암사(羅巖寺)라는 사찰이 있었으나 조선 중기인 1700년대 후반에 인근의 사찰과 함께 폐찰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또한, 이곳은 성륜사가 중창되기에 앞서 우리나라 남종화(南宗畵)의 마지막 거장인 아산(雅山) 조방원(趙邦元) 화백(畫伯)이 남종화의 맥을 잇는 후배 양성을 위해 1987년쯤 문화예술의 교육과 창작 시설(화실)을 조성, 일정 기간 동안 운영하였던 곳이다. 조방원 화백은 시설 건립을 위해 1980년대 초반부터 인근 지역인 구례, 담양 등지에 현존하고 있는 한옥을 매입, 이곳에 이축(移築)하였다. 하지만, 얼마 후 여러 사정으로 인해 청화대종사에게 일대 부지와 함께 이축해 온 한옥을 시주하여 현재의 성륜사가 중창되게 되었다. 금번 문화재로 등록 신청한 안심당과 육화당은 원래 구례의 냉천마을에 있던 국포 고택(菊圃古宅)의 안채와 사랑채를 이축한 건물로 현재는 성륜사의 승방으로 사용 중이다. 성륜사는 18세기 후반 폐찰된 나암사(羅巖寺) 자리에 아산 조방원(雅山 趙邦元, 1926~2014) 화백이 전남의 문화예술촌을 꾸미기 위하여 국포고택을 포함한 한옥 등을 이축하여 조성한 장소를 성륜사 조실스님이었던 청화대종사(淸華大宗師, 1924~2003)에게 기증하여 1990년 중창하였다. 국포고택은 전남 구례군 마산면 냉천리 510번지였고, 1920년 김해김씨 안경공파 후손인 국포 김택균(菊圃 金澤均, 1872~1945)선생이 건축하였다고 한다. 안채인 안심당은 상량문과 전언에 의하면 ‘경신(庚申)’년인 1920년에 건축된 것으로 판단되고, 사랑채인 육화당은 상량문은 확인할 수 없으나 전언에 의하면 그보다 2년 뒤인 1922년 건축되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그의 손자인 김원배(현 86세)가 소유하다가 1987년 아산 조방원이 전남의 예술촌을 조성하고자 하여 매매하여 곡성으로 옮기게 되었고, 잠시 조방원의 예술공간으로 활용되다가 성륜사에 기증하여 현재와 같이 승방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국포고택은 국포(菊圃) 김택균(金澤均,1872~1945)이 1920년대에 건립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데 김택균은 일제강점기 치산(治産)에 힘을 기울였고 시문을 남긴 문인이었으며 ‘홍제원’이라는 고아원을 경영하는 등 사회복지사업 활동가로 알려져 있다. 또한, 그의 아들인 김종필(1904~1990)이 금란회(金蘭會)를 통해 문인 교류와 사회사업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국포고택을 문인 교류와 사회사업의 공간으로 활용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오늘날의 성륜사 경내로 이축하기 이전 국포고택의 상황에 대해서는 전해지는 기록이 없어 정확히 파악할 수는 없지만, 주민들의 증언과 이축 당시 해체 작업에 참여한 목수 등의 증언에 의하면 전체적으로 대문, 사랑채, 중문, 안채, 화장실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고 한다. 또한, 구체적인 가옥의 배치 구조는 파악할 수 없지만 국토지리정보원에 소장된 1970년 항공사진을 통해 어렴풋이 그 윤곽을 확인할 수는 있다. 구례군 냉천마을 내 당초 고택 부지는 현재 나대지 상태로 있으며 주변으로는 토담 등의 시설물과 장독 등의 생활용품이 남아 있다. 성륜사의 승방인 안심당과 육화당은 원래 구례의 국포고택을 이축하여 사용하고 있는 건물로 1987년 이축 이전의 사진과 현황을 비교하면 1920년 건축된 원형을 잘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국포고택 해체/이축할 때 목수로서 관여한 공동수 목수에 따르면 조방원과 함께 7차례에 걸쳐 구례를 답사 방문하여 고택의 규모와 상태, 내력을 살피고 탐문했다고 하여 정성을 들여 고택을 선정하고 이축하였다고 한다. 공목수는 이축 전 과정에는 참여하지 못하고 이축할 현재의 자리에 기초공사할 때까지 참여했다고 한다. 기초 부분은 시멘트가 아니고 점토를 다져 기초를 했다고 한다. 공동수 목수에 의하면 안심당 일부 기둥이 원형으로 바뀌고 육화당 배면의 문짝이 교체된 것 외에는 원형 그대로라고 한다. 현재 안채였던 안심당과 사랑채였던 육화당은 부분적으로 노후화한 곳이 있지만 전반적으로 보존상태가 매우 좋은 편이다. 조사 대상 건축물은 1929년에 건축된 김언석 가옥으로 사랑채, 안채, 대문간채, 창고 겸 화장실로 이루어진 ‘ㅁ’자형 한옥구조이다. 최근까지 거주하다가 현재는 사용되지 않고 비워두고 있으며 가족들은 서측에 담장을 사이에 두고 주택을 지어 거주하고 있다. 김언석 가옥은 태안문화원에서 민속연구조사를 마쳤고 태안지역사회의 민속학적 중요성이 발굴되었다. 소장 유물은 문서, 사진, 미술품, 민속품으로 나누어지며 특히 상례 사진은 근대시기인 1961년 촬영한 것으로 당대의 상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소장된 유물들은 태안지역 사회 안에 성장하였던 한 집안의 정치적 사회적 영향력과 살림살이를 엿볼 수 있는 자료가 된다. 부동산 소유자는 국가문화재 지정을 통하여 체계적 보존 관리로 교육 및 관광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국가에 기부체납 의사를 밝혀왔고 이미 상례 사진은 국립민속박물관에 기증하여 특별전을 가진 바 있다.
지시문 (instruction)
다음 문맥을 읽고 질문에 답하시오.
질문 (question)
안심당과 육화당의 원형이 된 국포고택은 원래 어느 지역에 위치해 있었으며, 현재는 어떤 용도로 사용되고 있는가?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1. 1과제 해석task_interpretation

    안심당과 육화당의 원래 위치와 현재 용도를 파악해야 한다.

  2. 2정보 추출information_extraction

    안심당과 육화당이 이축되기 전의 위치와 현재의 사용 목적에 관한 정보를 추출한다.

    • 등록 신청된 ‘안심당’과 ‘육화당’은 전라남도 곡성군에 자리 잡은 성륜사 경내에 위치하고 있으며, 현재 사찰의 요사채로 사용되고 있는 한옥 건물이다.
    • 금번 문화재로 등록 신청한 안심당과 육화당은 원래 구례의 냉천마을에 있던 국포 고택(菊圃古宅)의 안채와 사랑채를 이축한 건물로 현재는 성륜사의 승방으로 사용 중이다.
  3. 3근거 선택evidence_selection

    원래 위치는 '구례의 냉천마을'이며, 현재 용도는 '성륜사의 승방' 또는 '사찰의 요사채'임을 확인한다.

    • 원래 구례의 냉천마을에 있던 국포 고택(菊圃古宅)의 안채와 사랑채를 이축한 건물
    • 현재는 성륜사의 승방으로 사용 중이다.
    • 현재 사찰의 요사채로 사용되고 있는 한옥 건물이다.
  4. 4논리 통합logical_integration

    추출된 정보를 결합하여 원래 위치는 구례 냉천마을이고, 현재는 성륜사의 승방(또는 요사채)으로 사용되고 있음을 도출한다.

  5. 5결론 도출conclusion_formulation

    질문에 대한 최종 답변을 구성한다.

  6. 6답변 생성answer_generation

    최종 답변을 작성한다.

근거 (evidence)
  • 등록 신청된 ‘안심당’과 ‘육화당’은 전라남도 곡성군에 자리 잡은 성륜사 경내에 위치하고 있으며, 현재 사찰의 요사채로 사용되고 있는 한옥 건물이다.
  • 금번 문화재로 등록 신청한 안심당과 육화당은 원래 구례의 냉천마을에 있던 국포 고택(菊圃古宅)의 안채와 사랑채를 이축한 건물로 현재는 성륜사의 승방으로 사용 중이다.
  • 원래 구례의 냉천마을에 있던 국포 고택(菊圃古宅)의 안채와 사랑채를 이축한 건물
  • 현재는 성륜사의 승방으로 사용 중이다.
  • 현재 사찰의 요사채로 사용되고 있는 한옥 건물이다.
최종 답변 (final_answer)
안심당과 육화당의 원형인 국포고택은 원래 구례의 냉천마을에 위치해 있었으며, 현재는 성륜사의 승방(또는 요사채)으로 사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