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맥 (context)
평성과학도시가 1970년대에 들어서야 제대로 모양을 갖추고 제 기능을 발휘하게 되었다는 것은 이때까지 북한의 과학기술계가 전문 과학연구활동을 충분히 전개하지 못하고 있었음을 뜻한다. 전문 과학연구활동이 충분히 보장되지 못하면 과학기술 역량 자체가 줄어들게 되고 결국 기술지원활동까지 약화되기 마련이다. 1960년대 후반 이후 북한의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할 정도로 둔화되었던 이유에는 이처럼 전문 과학연구활동이 충분히 뒷받침되지 못했던 이유도 있었을 것이다. 1950년대 후반의 경제성장은 오랜 인테리들을 충분히 활용하고 나름대로 연구활동에 전념할 수 있는 조건을 1950년대 초반에 만들어주었던 정책이 효과를 발휘한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처럼, 1960년대 후반의 경제성장은 1950년대 말에 취했던 과학기술 정책과 연관성이 깊다고 할 수 있다. 자립경제노선을 견지하기 위해서는 그에 맞는 기술 개발이 뒤따라야 하지만, 전문 과학연구활동이 위축되면 북한 현실에 맞는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는 능력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학기술계의 성과를 북한 사람들이 체제의 우월함을 보여주는 구체적인 근거로 활용하였다는 점은 북한 사회에서 ‘주체’라는 말이 정착하는 과정을 살펴보면 좀 더 명확해진다. 원래 ‘주체’라는 개념은 1955년 12월에 김일성이 소련파를 사상적인 측면에서 비판하면서 처음 사용되었는데 ‘수정주의적 편향’이라는 비판이 되돌아와 사용이 자제되었다. 하지만 1958년 이후 독자노선을 강화한 북한 과학기술계에서 구체적인 성과들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주체라는 용어가 다시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과학기술 분야에서 주체를 세운 까닭에 자체 연료, 원료, 기술 등을 활용한 과학기술 활동이 성과를 거두었다고 강조하면서 주체에 대한 수정주의적 편향이라는 비판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1958 년 이후 과학기술 분야에서부터 다시 사용되기 시작하던 주체는 그 의 미와 적용범위를 더욱 확대하여 1960년대 초에는 사회 전 영역에서 적용되기에 이르렀다.
과학원을 비롯한 연구기관 전반에 대한 구조조정사업은 1963년부터 시작되었다. 1946년 ‘과학자 기술자 대회’, 1952년 ‘과학자 대회’에 이어 세 번째로 개최된 ‘과학자 기술자 대회(1963.3.20~22)’ 이후 연구기관 구조조정사업은 연구기관을 대대적으로 통폐합하는 방식으로 진행 되었다. 본 대회 폐막연설에서 김일성이 연구기관들의 ‘본위주의’로 인해 연구시설이 중복 설치되어 연구역량이 분산되어 있다는 점과 협동 연구활동이 제대로 안 되고 있다는 것을 지적한 뒤 취해진 조치였다. 과학원 연구소와 중복되지만 생산성마다 자신들의 소유로 연구소를 갖고 있으려는 본위주의로 인해 중복 설치된 연구기관이 많고 이로 인한 역량 낭비가 많았다는 것이다. 김일성은 텔레비전 연구 상황을 예로 들면서 체신성, 방송위원회, 기계공업성에서 제각각 연구역량을 꾸리고 있어 오히려 어느 쪽도 제대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당시 연구기관 통폐합 조치는 높아진 군사적 위협으로 인해 군사비비 중이 높아져 경제활동으로 돌릴 재원이 많이 부족해진 상황과도 연관 되어 있었다. 군사적 위협은 당시 북한 경제에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하였는데 베트남전이 더욱 심각해진 1965년 이후에는 북한의 경제 성장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전문연구활동이 상대적으로 위축되었다는 점만으로 1960년대 이후 북한의 과학기술이 쇠퇴하였다고 판단할 수는 없다. 전문연구 활동에 대한 지원이 시대적 상황 때문에 제한을 받았을 뿐, 그 중요성에 대해 북한 지도부가 깊이 인식하고 있었고 과학기술 정책의 우선순위도 여전히 높았으며, 1960년대 초와 같이 다양한 영역에서 성과를 거둔 것은 아니지만 1960년대 이후에도 여러 분야에서 과학기술적 성과들이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1973년에는 코크스를 쓰지 않고 무연탄만으로 강철을 생산하는 전 공정이 완성되어 ‘조강공업’이라는 이름을 얻었고 비날론 이후 두 번째로 ‘주체공업’이라는 호칭도 받았다. 그리고 1961년 전자계산기를 처음으로 조립하는 데 성공한 이후 컴퓨터 기술을 계속 발전시켜 1980년대 초에는 유닉스 컴퓨터를 생산할 수 있게 되었다.
이처럼 특정한 영역에서 발견되는 특징을 일반화시킨 일부 주장들과 달리, 서동만은 북한 사회 각 영역에서 제도가 정비되는 모습을 구체적으로 살핀 후 세 시기에 형성된 북한 정치체제의 모습을 구분해서 설명하였다. 그는 북한 사회주의 체제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는 ‘당=국가체제’가 1940년대에 이미 수립되었지만 이것이 전 사회적으로 일관되게 관철되어 시스템(system)이 완성된 시기는 1961년 즈음이라고 주장하였다. 즉 해방 직후 아래로부터 조직된 인민위원회와 위로부터 추진된 중앙집권화의 움직임이 결합하면서 토지개혁, 산업 국유화 조치 등이 이루어졌고 ‘조선로동당’이 창설되어 ‘당=국가체제’의 기본 골격이 형성된 이후 1958년까지 농업과 상공업의 집단화가 완료되었으며 이때부터 1961년경까지 사회 전 영역에서 ‘당에 의한 전 사회의 일원적 지도체계’가 완전히 확립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수령체계를 사회주의 체제 위에 구축된 제2차적 형성물로 볼 수 있다는 와다 하루키의 주장을 원용하면서 1967년을 레짐(regime) 차원에서 북한 체제가 형성된 시점이라고 설명하였다.
생산활동이 질적으로 성장하려면 기술혁신을 통해야만 가능한 것이고 기술혁신은 과학기술과 밀접하게 연관된 것인데 기존의 북한경제 연구들은 과학기술 활동을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결론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북한 연구에서 과학기술 활동이 고려의 대상에서 빠진 까닭은 북한 과학기술에 대한 연구가 미약하였기 때문이다. 북한 과학기술과 관련된 첫 학위논문은 박원규에 의해 발표되었는데 이는 북한의 과학교육정책을 중심으로 한 것이어서 북한 과학기술에 대해서는 본격적으로 다루지 못하였다. 북한 과학기술을 중심주제로 한 연구들은 1990년대에 들어오면서 조금씩 발표되기 시작하였지만 이 연구들은 대부분 보고서 형태로 발표된 것으로, 북한 과학기술 전체를 짧게 압축하여 다루려다 보니 그 내용이 피상적인 수준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고 북한의 여러 과학기관을 나열식으로 소개하는 정도에 그쳤다.
노동자들은 오랜 경험과 직접 작업을 담당하기 때문에 작업방법과 생산설비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개선의 여지가 많은 부분이 무엇인지 직감적으로 많이 알고 있었지만 이를 실현할 구체적인 이론이나 지식이 부족하여 현실화시키는 힘이 부족하였고, 과학기술자들은 구체적인 이론이나 지식은 풍부하게 알고 있었지만 실제 작업에 대해 자세하게 알지 못하므로 구체성이 떨어지는 단점이 있었다. 이런 점에서 기술혁신을 통해 생산성을 최대한 높이기 위해서는 노동자와 과학기술자들이 서로의 장단점을 잘 융합시켜야 한다는 측면에서 과학기술자들과 노동자의 협력사업이 강조되었다.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경험적 측면에서 문제점이나 개선점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고 과학기술자들은 이러한 제안들을 정확한 이론에 바탕하여 타당성을 구체적으로 타산해보고 명확한 실현방법을 찾는 것으로 역할 분담을 하였다.
지시문 (instruction)
다음 문맥을 읽고 질문에 답하시오.
질문 (question)
1963년에 개최된 '과학자 기술자 대회' 이후 진행된 연구기관 구조조정사업의 구체적인 방식과 그 배경이 된 김일성의 지적 사항은 무엇인가?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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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과제 해석
task_interpretation1963년 과학자 기술자 대회 이후의 연구기관 구조조정 방식과 김일성이 지적한 문제점을 파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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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정보 추출
information_extraction구조조정 방식과 김일성의 지적 내용을 문맥에서 추출한다.
- 연구기관 구조조정사업은 연구기관을 대대적으로 통폐합하는 방식으로 진행 되었다.
- 김일성이 연구기관들의 ‘본위주의’로 인해 연구시설이 중복 설치되어 연구역량이 분산되어 있다는 점과 협동 연구활동이 제대로 안 되고 있다는 것을 지적한 뒤 취해진 조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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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근거 선택
evidence_selection구조조정 방식인 '통폐합'과 지적 사항인 '본위주의로 인한 시설 중복 및 연구역량 분산, 협동 연구 미비'를 핵심 근거로 선택한다.
- 연구기관을 대대적으로 통폐합하는 방식으로 진행 되었다.
- 연구기관들의 ‘본위주의’로 인해 연구시설이 중복 설치되어 연구역량이 분산되어 있다는 점과 협동 연구활동이 제대로 안 되고 있다는 것을 지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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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논리 통합
logical_integration구조조정은 통폐합 방식으로 이루어졌으며, 이는 연구기관들이 각자의 소유를 위해 시설을 중복 설치함으로써 역량이 낭비되고 협동이 안 되는 본위주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임을 연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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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결론 도출
conclusion_formulation구조조정 방식은 연구기관의 대대적인 통폐합이며, 배경은 본위주의로 인한 연구시설 중복 설치, 연구역량 분산, 협동 연구활동의 부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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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답변 생성
answer_generation추출된 정보를 바탕으로 질문에 대한 답변을 완성한다.
근거 (evidence)
- 연구기관 구조조정사업은 연구기관을 대대적으로 통폐합하는 방식으로 진행 되었다.
- 김일성이 연구기관들의 ‘본위주의’로 인해 연구시설이 중복 설치되어 연구역량이 분산되어 있다는 점과 협동 연구활동이 제대로 안 되고 있다는 것을 지적한 뒤 취해진 조치였다.
- 연구기관을 대대적으로 통폐합하는 방식으로 진행 되었다.
- 연구기관들의 ‘본위주의’로 인해 연구시설이 중복 설치되어 연구역량이 분산되어 있다는 점과 협동 연구활동이 제대로 안 되고 있다는 것을 지적
최종 답변 (final_answer)
연구기관 구조조정사업은 연구기관을 대대적으로 통폐합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이는 연구기관들이 '본위주의'로 인해 연구시설을 중복 설치함으로써 연구역량이 분산되고, 협동 연구활동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김일성의 지적에 따라 취해진 조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