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맥 (context)
재일조선인사회는 1960년대부터 시작되어 1970년대에 들어서는 직접적인 평양 방문을 통해 무용 전수와 교육을 받았다. 1990년대에는 북한무용가를 직접 일본으로 초청하여 무용기초훈련을 받게 했다. 이로써 북한에서 볼 수 있는 멋진 모습을 그대로 재현할 수 있었다(김채원, 2011). 가와사키에서는 1980년대 후반부터 재일조선인(옛 이주자)이 주체가 되어 재일한인을 포용하며 상호 문화 교류를 증진시키고 있다. 다른 한편에서는 조선학교가 주체가 되어 재정을 충당하기 위해 고유 음식을 만들며 문화행사를 열어 전통문화를 계승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 먹거리를 매개로 재일한인들뿐만 아니라 일본인들까지 모이도록 하면서 치마·저고리 등 한복가게, 민예품 가게 등 전통문화 관련 가게들이 자리를 잡아 소위 ‘장터’를 형성하고 있다. 행사 때에 전통예술을 공연하기도 해서 한민족 전통문화를 체험할 수 있다(배정호 외, 2005: 133) 선진국으로 부상한 한국이 한류를 통해 재일조선인 사회에도 문화적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최근 재일한인 단체가 운영하는 ‘한국어교실’에 일본인들과 함께 재일조선인(일본 귀화자 포함)들도 그곳을 찾기 시작했다고 한다.
재일조선인의 문화적 동질성이 갈수록 약해지고 있으며, ‘문화의 혼종성’이 갈수록 강해지고 있다(김진환․김붕앙, 2012: 222). 2011년 재일조선인에 대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41.7%가 특별한 행사에 ‘한복을 입는다’고 답했고, 36.9%가 ‘밥상에 꼭 김치가 있어야 한다’고 응답하고, 64.3%가 ‘ 관혼상제를 전통풍속을 따라야 한다’고 답했다. 또한 69.4%가 ‘부모를 꼭 자녀가 봉양해야 한다고’ 답했으며, ‘부모봉양의 책임이 자녀에게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62.4%에 달했다. 이는 한민족이 중요시해온 효 관념이 재일조선인 삶 속에서도 작동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김익현․나지영, 2012: 287∼288). 그럼에도 조상에 대한 제사나 명절을 보내는 것은 세대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이들이 일상적인 대화에 사용하는 언어는 조선어가 2%에 지나지 않고, 81.2%가 일본어를 쓴다(김진환․김붕앙, 2012: 216).
1988년에 가와사키 시에 재일조선인(옛 이주자)을 중심으로 재일한인(신이주자)를 포용하는 방향으로 상호시민 교류를 추진하고 서로의 역사, 문화 등을 이해하는 목적으로 ‘후레아이관’(ふれあい館, ‘만남’이란 뜻)을 설립했다. 이 사업은 어린이 문화사업 센터, 아동 보육, 사회교육 사업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후레이관은 1980년대 이후 가와사키의 재일조선인과 일본인 시민운동 그룹, 시당국의 협력을 통한 선구적인 재일외국인 시책의 시도로 평가된다. 한편 1998년에 설립된 재일한인의 고령자클럽인 도라지회가 결성되었다. 이들은 지금도 레크레이션 자원봉사자를 중심으로 경쾌한 음악에 몸을 움직이며 운동을 하며 대화를 나눈다. 이 도라지회를 기반으로 2006년에 가와사키 시 할머니와 할아버지 2000명의 네트워크가 결성되어 ‘가와사키 재일한인 생활문화자료관’ 사이트를 개설했다. 이 사이트를 통해 태평양 전쟁 전후 재일한인의 생활을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다. 민족차별 가운데 가와사키 남부에 살던 제1세대 재일한인들의 식생활과 결혼 문화 등을 엿볼 수 있다.
일본에서 다문화 담론과 논쟁이 활기차게 진행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후반부터다. 급격한 다문화 현상의 진행으로 인해 중앙정부 차원에서 외국인 주민과 현지 주민 사이의 사회적 통합에 정책적 우선순위를 둘 수밖에 없는 현실이 되었다. 이에 따라 일본 정부는 2006년 총무성을 중심으로 「지역에서의 다문화공생추진 플랜」을 책정해 전국의 지방자치단체에 대해 다문화공생시책을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시행하도록 지시했다. 가와사키 시의 경우, 선제적으로 다문화공생정책을 추진해왔다. 1975년부터 시영주택 입주 자격의 국적 조항 철폐, 아동수당 지급 개시 등을 이미 실시했다. 1986년에는 ‘가와사키 시 재일외국인 교육기본방침’을 제정했는데, 주로 재일한국․조선인 교육과 관련된 내용이었다. 1990년대에는 외국적 시민의식 실태조사 실시, 외국인 고령자 복지수당, 외국인 심신장애자 복지수당 지급개시, 시 직원 채용의 국적조항 철폐 등을 강력하게 추진해왔다(송석원, 2011: 137∼138).
재일한인들이 일본에 이주하기 시작한 지 1세기가 흘렀지만, 이주 역사 속에서 일본 내에 재일한인들이 작성한 문헌이나 자료가 상당히 많다. 이들 자료는 대부분 재일한인이 많이 거주하는 일본 관동이나 관서 지방을 중심으로 보존되어 있다. 관동 지방에서는 도쿄조선장학회도서관, 도쿄 사이타마 현 아리랑문화센터, 가와사키 후레아이관, 민단역사자료관이나 재일조선인역사연구소 등에 약 4만 권, 관서 지역에는 시가대학도서관 고(故) 박경식 문고에 약 10만 권쯤 소장되어 있다. 다른 한편으로 일본 시민들이 중심이 되어 2001년 도쿄 신오쿠보(新大久保)에 고려박물관을 개관했다. 그 당시에는 일본이 조선을 침략한 역사나 민족차별 실태가 교과서에 제대로 실리지 않아 시민들이 진짜 역사를 가르칠 장소의 필요성을 절감하여 이 박물관이 탄생하게 되었다. 고대에서 근대까지 한일 교류사를 보여주는 자료와 민속 공예품을 전시한다.
연변조선족자치주의 조선족 인구는 1952년 자치주가 설립될 당시 전체 인구의 73%를 차지했다(이윤기, 2005: 143).5) 1955년 자치주로 변경된 후 조선족 인구는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그러나 중국에 한국기업의 진출로 대도시나 한국행을 택하는 조선족 인구가 늘면서 1996년부터 조선족 인구가 급속히 감소하기 시작했다. 2000년 말 연변조선족자치주 전체 인구 218만4000명 가운데 조선족 인구는 84만2000여 명으로 전체 인구에서 조선족이 차지하는 비율이 38%에 그쳤다(이승률, 2011, 273). 이들이 이주해온 시기는 세 차례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17세기 후반 산해관 이남으로 옮겨가 조선인이 이 지역으로 잠입하여 백두산, 압록강, 두만강 이북의 광대한 용흥 땅을 개척하면서 주거지를 이루었다. 둘째는 19세기 중엽 청나라 때 한족의 이주가 지지부진하자 조선인 이주민으로 변경하는 정책을 택하여 그들이 이주하게 되었다.
일제강점기에 철도를 통해 이주하는데, 요녕성에는 황해도․평안도․경상도에서 이주해 정착하게 되었고, 경상도․전라도․충청도 출신의 삼남지방 남한 주민은 주로 길림성 북부와 흑룡강성으로 많이 이주했다. 연변 지역에는 주로 함경도 출신이 많이 이주해 정착했다. 중국 국민으로서 조선족은 종족 거주지역과 국가 간 경계가 서로 동일하지 않은 과경민족(跨境民族)이다. 이 과경민족은 종족성과 민족성이 공존하는 다중 정체성을 띤다. 따라서 조선족사회의 문화 구조는 한반도문화(종족적 혹은 민족적 정체성)와 중국문화(국민적 정체성)가 융합하여 형성된 복합적 문화 특성을 가지고 있다(상게서, 2011: 260).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가 최근 민속자원을 발굴하고 민족문화를 계승․발전시키는 한편, 문화의 새로운 운동을 부단히 일으켜 조선족의 단결과 화합에 기여하고 있다. 가무의 고향으로 불리는 연변은 독특한 지역 우위로 중국의 다양한 민족 음악과 무용, 북한 및 한국의 음악과 무용 예술을 흡수하여 중국 조선족 특색을 갖춘 음악과 무용 문화를 형성했다. 최근 연변조선족자치주는 자원 전수조사와 등록 시스템 구축, 계승거점 건설 등의 조치를 취해 무형문화재 보호사업을 적극 추진했다.
지시문 (instruction)
다음 문맥을 읽고 질문에 답하시오.
질문 (question)
가와사키 시에서 1986년에 제정된 ‘가와사키 시 재일외국인 교육기본방침’의 구체적인 세부 조항들은 무엇인가?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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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과제 해석
task_interpretation질문은 1986년에 제정된 ‘가와사키 시 재일외국인 교육기본방침’의 구체적인 세부 내용을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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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정보 추출
information_extraction문맥에서 가와사키 시의 교육기본방침 제정과 관련된 문장을 추출한다.
- 1986년에는 ‘가와사키 시 재일외국인 교육기본방침’을 제정했는데, 주로 재일한국․조선인 교육과 관련된 내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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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근거 선택
evidence_selection제시된 근거는 해당 방침이 재일한국·조선인 교육과 관련된 내용이라는 포괄적인 성격만을 명시할 뿐, 구체적인 세부 조항이나 내용은 포함하고 있지 않다.
- 1986년에는 ‘가와사키 시 재일외국인 교육기본방침’을 제정했는데, 주로 재일한국․조선인 교육과 관련된 내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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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논리 통합
logical_integration문맥에는 1975년의 조항 철폐나 1990년대의 복지수당 지급 등 다른 시기의 정책적 시도들은 언급되어 있으나, 1986년 교육기본방침의 구체적인 항목을 결합하여 도출할 수 있는 정보는 없다.
- 1975년부터 시영주택 입주 자격의 국적 조항 철폐, 아동수당 지급 개시 등을 이미 실시했다.
- 1990년대에는 외국적 시민의식 실태조사 실시, 외국인 고령자 복지수당, 외국인 심신장애자 복지수당 지급개시, 시 직원 채용의 국적조항 철폐 등을 강력하게 추진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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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결론 도출
conclusion_formulation질문이 요구하는 '구체적인 세부 조항'에 대한 정보는 문맥에 명시되어 있지 않으므로 답을 결정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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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답변 생성
answer_generation주어진 문맥만으로는 답을 확인할 수 없다는 최종 답변을 생성한다.
근거 (evidence)
- 1986년에는 ‘가와사키 시 재일외국인 교육기본방침’을 제정했는데, 주로 재일한국․조선인 교육과 관련된 내용이었다.
- 1975년부터 시영주택 입주 자격의 국적 조항 철폐, 아동수당 지급 개시 등을 이미 실시했다.
- 1990년대에는 외국적 시민의식 실태조사 실시, 외국인 고령자 복지수당, 외국인 심신장애자 복지수당 지급개시, 시 직원 채용의 국적조항 철폐 등을 강력하게 추진해왔다
최종 답변 (final_answer)
주어진 문맥만으로는 답을 확인할 수 없다.
분석 (analysis)
문맥에는 1986년에 제정된 교육기본방침이 재일한국·조선인 교육과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만 언급되어 있을 뿐, 질문이 요구하는 구체적인 세부 조항은 명시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해당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문맥 외부의 추가적인 정보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