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맥 (context)
그러나 ‘삼두체제’는 통합 방안으로 현실화되지 못하였다. 상해의 임시정부와 연해주의 대한국민의회 사이에 정부의 위치를 어디로 할 것이냐에 대한 견제도 작용하였지만, 이승만이 한성정부를 배경으로 활동을 시작하였다는 점이 크게 작용하였다. 이승만은 상해에서 수립된 임시정부에서는 국무총리이고, 한성정부에서는 집정관총재였다. 그러나 그는 임시정부의 명칭을 영어로 ‘Republic of Korea’라 호칭하고, 집정관총재를 ‘대통령’(President)으로 번역하여 대외적 명칭으로 삼았다. 뿐만 아니라 임시정부가 수립된 사실과 자신이 대통령이라는 사실을 국내외에 알리며 대통령으로 활동하고 있었다(고정휴 2004: 79). 안창호는 ‘삼두체제’로 통합을 이룬다는 방안을 접었다. 그리고 한성정부를 중심으로 세 임시정부를 통합하고, 이승만을 대통령으로 선출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이승만이 대통령으로 활동하고 있는 상황에서 다른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안창호는 8월 28일 임시의정원 회의에 출석하여 이승만이 한성정부의 대통령으로 활동하고 있으니, 한성정부를 중심으로 통합을 이루자며 의원들을 설득하였다(독립신문 1919).
대한제국 선포에 대한 열강의 초기 반응은 어떠했나. 각국은 내키지 않는 다는 태도였다. 일본 측은 언론 등을 통해 조롱하였고, 프랑스나 러시아 등에서는 “고종의 황제즉위와 대한제국의 선포를 동전 한 닢 만큼도 못하게 여긴다”는 등 냉소적 언급도 보였다. 이처럼 각국의 태도는 환영하는 모습이 아니었다. 이유가 있었다. 고종의 황제즉위와 제국 선포에는 중국에 대한 과거의 사대 종속 관념을 탈피하자는 것 외에도 보다 현실적인 목표가 있었다. 우선, 청일전쟁 이후 더욱 실추된 군주의 권위와 권력을 회복시키자는 뜻이 있었다. 다음으로 일본과 러시아 등 모든 외국의 간섭에서 벗어나 나라의 자주권을 행사하자는 뜻도 은연중 표현되고 있었다. 이 점은 독립신문의 언론 계몽운동, 독립협회 활동, 독립문 건립 과정 등에 잘 드러난다. 이중 독립문은 1896년 서재필 등의 발의로 건립이 추진되기 시작하여 대한제국이 선포된 다음 달인 1897년 11월 하순에 완공되었다. 독립문의 건립 결정에는 고종의 뜻이 반영되어 있었고, 거기에는 청국으로부터의 독립만이 아니라 일본, 러시아 그리고 구주 열강 모두로부터의 독립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우리 사회의 갈등은 대부분 정치적 쟁점으로 비화하면서 분쟁이 장기화되 는 악순환 구조까지 갖고 있다. 결과에 승복하겠다는 전제하에 조정에 참여 하고서도 결론이 제 마음에 들지 않으면 모든 절차를 걷어차는 후진적 행태는 개선될 기미조차 없다” (《조선일보》 2013년 11월 30일자, A31면). 이 같은 최근 한 일간지의 사설(“국가와 국민 생각이 다르면 이렇게 나라가 흔들린다”)이 잘 말해주듯, 현재 한국사회의 정치·경제·사회·문화 모든 분야에서 일어나는 갈등은 증폭되고 나라가 흔들리고 있는 것이 유감스럽지만 사실이다. 이런 점에서 《사회는 갈등을 만들고 갈등은 사회를 만든다》의 여러 곳에서 저자가 사회학자임에도 불구하고 우선 한국을 ‘갈등 정치’(politics of conflict) (p.26, 29, 38, 220)의 사회로 바라본 것은 시의성이 있으며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저자의 통찰은 단순히 이 지점에서 끝난 것이 아니다.
《사회는 갈등을 만들고 갈등은 사회를 만든다》라는 다소 무겁고 의미심장 한 제목이 잘 말해주듯 이 책의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갈등’이라 볼 수 있다. 그런데 사회학에서 ‘사회적 갈등’(social conflict)이라고 말할 때 이것은 단지 ‘갈등 정치’ 만이 아닌 ‘경쟁’(competition) 이라는 현상도 포함하는 등 실로 다양한 형태를 갖는다는 것을 재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경쟁은 사람들 간에 자원이나 이익을 통제하는 것을 놓고 갈등을 하되 실제로 물리적 폭력이 사용되지 않는 것을 기술하는 말이다. 이로써 규제된 경쟁은 동의된 규칙의 틀 내에서 해결되는 일종의 ‘평화로운 갈등’이다. 시장은 규제된 경쟁과 규제가 없는 경쟁 양자 모두를 포함한다. 그런데 시장 밖에서 일어나는 여타의 갈등들은 종종 한층 더 폭력적이며 규칙에 의해 잘 통제되지 않는다. 갈등은 폭증하나 정치는 없는 후진적 사회와는 달리 다원주의적 복합 선진 사회의 경우 위에서 언급한 여타의 갈등들은 통상 그들의 권력의 자원을 동원하는 정당들이 해결한다. 이런 맥락에서 저자도 “사회는 갈등을 통하여 변화하고 정치에 의해 관리된다.
보수와 진보의 근간을 역사적 경험에서 정리해보면, 보수란 도덕, 교양, 능력, 양보로 살아야 하며, 진보란 결기, 비판, 우애, 동료애로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보수다워야 한다’는 것은 도덕과 교양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뜻이며, ‘진보다워야 한다’는 것은 결기와 우애로 살아가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시대에 따라 지배 세력에 따라 부각되는 가치가 있는가 하면, 침잠하는 가치가 있기 마련이다. 가치로서의 보수와 진보는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경계의 이쪽과 저쪽 혹은 안과 밖은 인간이 함께 더불어 살기 좋은 세상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를 놓고 추구하는 사회 가치의 우선순위와 방법론의 차이일 뿐이다. 이를테면 보수가 강조하는 자유·성장·경쟁·효율, 진보가 강조하는 평등·분배·복지·형평은 어느 한 쪽이 절대선일 수 없다. 보수적 가치와 진보적 가치는 이분법적 대립의 실체가 아니다. 다만 우선순위가 다를 뿐이다. 다시 말해 시대 상황과 그 안에서 요청되는 사회적 목표를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효율이냐 형평이냐 혹은 개인의 책임이냐 사회의 책임이냐 또는 수월성이냐 평준화냐에 따라 방점이 달리 나타난다.
무엇보다 먼저 상대방의 자산, 상대방의 담론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여야 한 다. 저잣거리의 표현으로 적(敵)과의 동침인 것이다. 우리사회처럼 일도양단의 이분법이 광범하게 퍼져있는 경우에는 더욱 필요하다. 보수가 평등과 같은 진보의 가치를 주목하면 더 윤택해지고, 진보가 책임과 같은 보수의 가치를 주목하면 더 유연해진다. 보수가 수구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진보가 독단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상대의 존재적 가치를 겸허한 존경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자유민주주의자들은 ‘계급’을 배타의 대상이 아니라 매력적인 담론으로 인식하여야 한다. 이들은 평등을 논의의 한가운데로 끌어들여야 한다. 그래야 공정이 확보된다. 그런가 하면 사회민주주의자들은 ‘개인’이나 ‘책임’을 매력적인 담론으로 인식하여야 한다. 개인의 책임을 논의의 한가운데로 끌어들이면 주장은 훨씬 더 풍부해진다. 그래야 공생이 확보된다.
민주주의가 주는 최대 교훈은 진리는 외길이 아니라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반대 진영이 있기 마련이고 타협과 절충 없는 민주주의는 불가능하다. 이런 점에서 타협과 절충은 절대선이다. 타협과 절충의 규범을 일상화해야 한다. 갈등은 소멸되거나 분쇄되는 것이 아니라 관리되거나 조정되는 것이다. 조 정이란 적절한 선에서 타협과 절충을 만들어 낸다는 의미다. 서양에서 타협 혹은 절충은 사회적으로 높게 평가되는 긍정적 규범이자 덕목이다. 이들은 오랜 경험을 통해 갈등적일 수밖에 없는 사회관계에 있어 타협이나 절충을 바탕으로 문제 해결의 가능성을 숙지하고 있는 것이다. 타협이나 절충을 빼고 문제를 민주적·합리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사회에서 타협 혹은 절충의 의미는 그리 긍정적이지 않다. 타협과 절충은 서구 사회의 질서를 구축하는 핵심 가치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야합, 사이비, 협잡으로 받아들인다. 타협이나 절충은 매우 부정적인 행동이나 처신으로 여겨진다. 타협하고 절충한다는 것은 무언가 석연치 못하고 떳떳하지 못한 쪽이 제안하는 방편으로 여겨지곤 한다. 이런 점에서 한국사회는 갈등 문제를 풀어나가는 데 원천적인 한계를 안고 있는지도 모른다. 절충의 공간이 매우 협소하거나 때로는 아예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시문 (instruction)
다음 문맥을 읽고 질문에 답하시오.
질문 (question)
대한제국 선포 당시 열강들이 보인 반응의 특징과 그 이유를 설명하시오.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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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과제 해석
task_interpretation대한제국 선포에 대한 열강의 초기 반응과 그 원인을 문맥에서 찾아 기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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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정보 추출
information_extraction열강의 반응에 대한 구체적인 태도와 그 배경이 되는 목적들을 추출한다.
- 각국은 내키지 않는 다는 태도였다.
- 일본 측은 언론 등을 통해 조롱하였고, 프랑스나 러시아 등에서는 “고종의 황제즉위와 대한제국의 선포를 동전 한 닢 만큼도 못하게 여긴다”는 등 냉소적 언급도 보였다.
- 고종의 황제즉위와 제국 선포에는 중국에 대한 과거의 사대 종속 관념을 탈피하자는 것 외에도 보다 현실적인 목표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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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근거 선택
evidence_selection반응의 특징(냉소적, 조롱)과 그 이유(군주 권위 회복 및 자주권 행사 목적)를 나타내는 핵심 문구를 선택한다.
- 일본 측은 언론 등을 통해 조롱하였고, 프랑스나 러시아 등에서는 “고종의 황제즉위와 대한제국의 선포를 동전 한 닢 만큼도 못하게 여긴다”는 등 냉소적 언급도 보였다.
- 우선, 청일전쟁 이후 더욱 실추된 군주의 권위와 권력을 회복시키자는 뜻이 있었다.
- 다음으로 일본과 러시아 등 모든 외국의 간섭에서 벗어나 나라의 자주권을 행사하자는 뜻도 은연중 표현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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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논리 통합
logical_integration열강의 부정적인 반응(조롱, 냉소)과 대한제국 선포의 목적(군주 권위 회복, 자주권 행사)을 인과관계로 연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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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결론 도출
conclusion_formulation열강은 대한제국 선포를 환영하지 않고 조롱하거나 냉소적인 태도를 보였으며, 이는 대한제국 선포가 군주의 권위 회복과 외세 간섭 탈피를 통한 자주권 행사를 목표로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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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답변 생성
answer_generation질문에 대해 명확하고 간결한 서술형으로 최종 답안을 작성한다.
근거 (evidence)
- 각국은 내키지 않는 다는 태도였다.
- 일본 측은 언론 등을 통해 조롱하였고, 프랑스나 러시아 등에서는 “고종의 황제즉위와 대한제국의 선포를 동전 한 닢 만큼도 못하게 여긴다”는 등 냉소적 언급도 보였다.
- 고종의 황제즉위와 제국 선포에는 중국에 대한 과거의 사대 종속 관념을 탈피하자는 것 외에도 보다 현실적인 목표가 있었다.
- 우선, 청일전쟁 이후 더욱 실추된 군주의 권위와 권력을 회복시키자는 뜻이 있었다.
- 다음으로 일본과 러시아 등 모든 외국의 간섭에서 벗어나 나라의 자주권을 행사하자는 뜻도 은연중 표현되고 있었다.
최종 답변 (final_answer)
대한제국 선포에 대해 열강은 환영하지 않는 태도를 보였다. 일본은 언론을 통해 조롱하였고, 프랑스와 러시아 등은 냉소적인 언급을 하는 등 내키지 않는다는 반응을 나타냈다. 이러한 선포의 배경에는 중국에 대한 사대 종속 관념 탈피 외에도, 청일전쟁 이후 실추된 군주의 권위와 권력을 회복하고 일본과 러시아 등 외국의 간섭에서 벗어나 나라의 자주권을 행사하려는 현실적인 목표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