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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25인문정책연구총서_한국과 몽골의 유라시아-알타이 역사문화공동체 형성을 위한 인문학적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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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Y_20150812063437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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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기관
경제‧인문사회연구회
발행연도
KD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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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 불가 (is_impossible)
False
문맥 (context)
세 번째는 몽골 자원개발 분야에 있어서 한국의 참여 저조이다. 현재까지 몽골의 자원개발에 있어서 한국은 투자 규모가 작은 후발국의 위치에 있다. 이는 자원 10대 부국의 하나인 몽골의 자원 확보를 위해 시급히 개선되어야 할 문제이다. 네 번째는 투자협력 증대의 필요이다. 한국의 대몽골 투자는 최근 크게 증가하고 있으나 건별 투자금액이 작고 광업 부문에도 대규모 투자가 아직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양국은 기술협력 측면에서 지속적 관계 개선이 필요하며 인적개발, 관광개발 면에서도 많은 협력 과제가 있다. 몽골경제에 대한 각종 SWOT 분석을 보면, 몽골의 강점 요인으로 구리, 금, 석탄을 비롯하여 풍부한 광물자원을 보유하고 있으며 광대한 초원과 천혜의 관광자원을 갖고 있는 아시아 대륙의 요충지라 할 수 있다. 오유 톨고이 금동 광산만 하더라도 2016년에는 현재의 몽골경제 GDP와 맞먹는 규모의 가치를 생산할 것으로 예상되며, 총 540억 달러(2008년 몽골 수출액의 10배)의 수출금액을 창출할 것으로 예상된다. 즉 이 광산 생산량이 정점에 이르는 2016년에는 오유 톨고이 수출만 연간 27억 달러로 추정되고 있다. 몽골과 한국의 사회·문화에 대한 교류는 매우 활발하다. 그러나 1990년 수교 당시에는 정부 간 교류와 개별 차원에서 사회·문화 교류가 이루어졌고 본격적인 교류는 활발하지 못하였다. 몽골과 한국의 사회·문화 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진 것은 2000년대에 들어와서이다. 한국은 1997년 IMF 경제대란 이후 한국의 경제인들이 대거 몽골로 갔으며 이들에 의하여 몽골에 한인사회가 구축되었다. 몽골에 건너온 한인들은 초기에는 많은 어려움을 겪었으나 2000년대에 들어오면서 자리를 잡고 몽골 사회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였다. 한편 2000년대에 시작된 몽골 산업연수생 제도는 몽골에 한국 문화를 전파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한국에 산업연수생으로 가기 위해서는 한국어를 배워야 하기 때문에 급속도로 한국어 교육이 늘어났다. 또 이 시기 한류가 전 세계로 전파되면서 몽골에도 한류가 급속도롤 전파되었다. 한국에 산업연수생으로 갔다가 몽골로 돌아온 사람들에 의하여 몽골에서 본격적으로 한국에 대한 연구와 문화가 싹트게 되었다. 최근 몇 년간 한국과 몽골의 사회 문화 방면에서의 주목할 만한 교류는 다음과 같다. 양국의 교류에서 정치나 경제 분야에 비하여 사회 문화 분야는 소극적으로 다루어졌고 궁극적으로 양국의 문화를 이해하는 차원까지 가지 못하였다. 또 교류과정에서 한국 문화가 일방적으로 몽골에 전파만 되었을 뿐 몽골문화가 한국에 전파되는 경우가 적었다. 일부 몽골 촌(남양주 몽골촌 등)을 중심으로 몽골 문화의 전파가 이루어졌으나 관광이나 상업용에 그쳤고 본격적인 몽골 문화의 이해 수준까지 가지 못하였다. 학문적 교류는 한국 학자들의 몽골 연구 수준이 일천하여 한국이 몽골에서 몽골학을 일방적으로 받아들이는 시기였으며 한국의 몽골학이 몽골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하였다. 몽골 한국학의 경우는 한국학이란 학문보다 한국어 교육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시기이고 아직 한국학 연구의 단계까지 가지 못하였다. 또 한국과 몽골의 공동 발굴조사나 연구는 시작 단계일 뿐 성과를 내기까지에는 다소 시일이 걸릴 것으로 생각된다. 교육 분야에 있어서는 매우 괄목할 만한 발전을 이루었으나 한국인의 몽골에 대한 교육은 비교적 소홀한 편이다. 의료 분야에서는 한국이 일방적으로 몽골을 돕는 형식이었으며 상호 교류가 초보적 단계에 머물고 있다. 사회단체나 비정부기구의 몽골에 대한 봉사도 관광 차원에 머물렀고 본격적인 협조는 최근 시작하는 단계이다. 역사적 관점을 중점 선택할 경우 한국은 공동학술답사, 세미나, 공동 나담 등을 통해 몽골인들에게 한국의 특수성을 체계적으로 홍보함으로서 심정적 동일민족 공유가 가능해 진다는 장점을 지닌다. 또 그 추진사업도 비용이 크게 들어가지 않은 장점이 있는데 대표적인추진사업으로는 고대의 경우 양국민족문화 원형복원사업(동몽골지역 양국합동 지표조사 및 고고 발굴 등 고대동몽골 역사문화지도 공동제작), 고려시대의 경우 몽골제국(원)과 고려와의 관계(한ㆍ몽교류사), 조선시대의 경우 조선여행기에 나타난 몽골연구, 현대의 경우 일제강점기 시대 몽골지역에서의 조선인 독립운동가 연구, 북한과 몽골 관계연구, 동북공정 공동대응 등을 손쉽게 제시할 수 있다. 역사적 관점 선택의 장기적 장점은 한국과 몽골의 역사ㆍ문화공동체라는 이론창출이 가능하며 이를 바탕으로 경제, 문화체험관광 등 후속사업의 지속적인 전개가 가능하다. 또 몽골은 자연 및 역사조건 상 북방유목민족국가 유산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관광대국으로 발전이 가능한 나라이며, 역사를 공유하는 한국은 이 사업을 공동으로 추진할 수 있다. 한국의 지자체들은 몽골의 각 지자체들과 역사교류 연계를 맺어 지역경제협력 및 공동 문화 사업을 전개할 수 있다. 즉 지자체 영토의 해외 확장과 같다고 볼 수 있다. 독일, 헝가리, 프랑스, 터키의 몽골접근은 정치적, 경제적 이유가 아닌 문화적인 접근이 특징이다. 이는 그들의 역사와 관계된 흉노나 돌궐 때문이다. 먼저 정치적·경제적 관계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독일, 헝가리, 프랑스, 터키와 몽골의 정치적·경제적 관계는 거의 관련이 없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미미하다. 그러나 미래에 몽골의 자원 즉 구리, 금, 우 라늄, 석유, 석탄에 대한 관심과 개발투자가 이루어질 가능성도 있다. 문화적 관계에 대해서 살펴보면, 독일, 헝가리, 프랑스는 자국의 역사에 거대한 영향을 미쳤던 흉노와 몽골에 대한 관심이 많다. 특히 독일의 몽골연구는 본 대학을 중심으로 활성화되어 있다. 따라서 이들 나라는 몽골 서부지방에 위치한 고고학적 답사나 문화인류학적 조사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현재 독일의 신부인 카르피니가 방문한 카라코롬 유적을 독일과 몽골이 공동 발굴 중이며 동시에 몽골-러시아-독일 공동 발굴 팀도 가동 중이다. 이러한 역사문화인식을 근거로 몽골의 유적과 자연환경을 보러오는 유럽 관광객이 많다. 특히 독일의 관광객이 아주 많으며 헝가리의 경우 몽골과 동일민족이라는 인식하에 결혼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터키의 경우는 이들 나라에 비해 문화적으로 더 적극적이다. 즉 몽골은 돌궐의 역사적 고향이자 유적이 매우 많다. 이러한 관심은 1995년 터키 대통령이 몽골정부에 터키의 역사유물의 보호조치 및 대표 유적지 발굴을 제의(The Project of Turkish Monuments in Mongolia)하는 배경이 되었고 1997년 6월에 협약이 체결되었다. 그 협약과정과 내용을 간략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터키정부의 돌궐 유적발굴은 1995년에 터키 대통령이 몽골정부에 터키의 역사유물의 보호 및 대표 유적지 발굴을 제의하면서 시작되었다. 당시 터키의 대통령과 학자들은 몽골지역에 분포한 8세기의 돌궐비문(모두 돌궐 고유문자로 기록됨)들이 그들의 고유문화를 가장 잘 나타내주는 역사유적으로 간주했다. 특히 오르콘 강변에 위치한 쿨테긴 비문(732년), 빌게 카간 비문(735년)비문과 울란바타르 근교에 위치한 톤유쿠크 비문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돌궐유적이지만 하루가 다르게 훼손되어 가고 있었다. 이에 터키 정부는 이 유적들의 보호를 위해 국내에 다음과 같이 호소했다. 목축업은 몽골의 주요한 경제 수단이지만 자연의 제약을 매우 많이 받는 편이다. 자연의 제약으로는 눈이 너무 많이 오거나 범람, 강렬한 바람, 가뭄, 가축의 역병 등을 들 수 있는데 이때 수많은 가축이 폐사된다. 특히 겨울이나 봄에 추운 날씨로 말미암아 왕왕 대규모로 가축이 폐사하기도 한다. 몽골인들은 가장 심각한 자연적인 재해를 크게 차강조드(цааган зуд;백색의 조드)와 하르조드(хар зуд;검은색의 조드)로 나누고 있다. 차강조드는 눈이 너무 많이 내려 가축들이 먹을 것을 찿지 못해 굶어죽는 것을 말하는 것이며 하르조드는 가뭄으로 인해 풀의 부족으로 가축들이 굶어죽는 것을 말한다. 이 두 가지 조드 이외에 과도한 방목으로 인한 초원의 피해와 늑대에 의한 피해 등등 여타의 돌발적인 재해도 무시할 수 없다.
지시문 (instruction)
다음 문맥을 읽고 질문에 답하시오.
질문 (question)
몽골의 자연 재해 중 가축이 먹이를 찾지 못해 굶어 죽게 만드는 '차강조드'와 가뭄으로 인해 풀이 부족하여 가축이 굶어 죽게 만드는 '하르조드'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1. 1과제 해석task_interpretation

    몽골의 자연 재해인 차강조드와 하르조드의 정의와 차이점을 비교하여 설명해야 함을 파악한다.

  2. 2정보 추출information_extraction

    문맥에서 차강조드와 하르조드에 대한 설명을 추출한다.

    • 차강조드는 눈이 너무 많이 내려 가축들이 먹을 것을 찿지 못해 굶어죽는 것을 말하는 것이며
    • 하르조드는 가뭄으로 인해 풀의 부족으로 가축들이 굶어죽는 것을 말한다.
  3. 3근거 선택evidence_selection

    차강조드의 원인인 '눈'과 하르조드의 원인인 '가뭄'을 핵심 근거로 선택한다.

    • 차강조드는 눈이 너무 많이 내려
    • 하르조드는 가뭄으로 인해
  4. 4논리 통합logical_integration

    두 재해 모두 가축이 굶어 죽는다는 결과는 동일하지만, 그 원인이 눈에 의한 먹이 부족인지 가뭄에 의한 풀 부족인지에 따라 구분됨을 통합한다.

  5. 5결론 도출conclusion_formulation

    차강조드는 과도한 눈으로 인해 먹이를 찾지 못해 발생하는 것이고, 하르조드는 가뭄으로 인한 풀 부족으로 발생하는 것이라는 결론을 도출한다.

  6. 6답변 생성answer_generation

    추출된 정보를 바탕으로 두 용어의 차이를 명확히 서술한다.

근거 (evidence)
  • 차강조드는 눈이 너무 많이 내려 가축들이 먹을 것을 찿지 못해 굶어죽는 것을 말하는 것이며
  • 하르조드는 가뭄으로 인해 풀의 부족으로 가축들이 굶어죽는 것을 말한다.
  • 차강조드는 눈이 너무 많이 내려
  • 하르조드는 가뭄으로 인해
최종 답변 (final_answer)
차강조드는 눈이 너무 많이 내려 가축들이 먹을 것을 찾지 못해 굶어 죽는 현상을 의미하며, 하르조드는 가뭄으로 인해 풀이 부족하여 가축들이 굶어 죽는 현상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