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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행정부의 대중동 정책 아시아 재균형 정책과의 상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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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Y_201506230907083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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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기관
국립외교원
발행연도
KDC
340
답변 불가 (is_impossible)
True
문맥 (context)
오바마 행정부의 대중동 정책에서 의미하는 다원주의는 단순히 상대주의적 포용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었다. 이면에는 중동에서의 정책실패를 자각하고, 빠른 시간 내에 중동에서 벗어나려는 의도도 함께 반영되어 있던 것으로 평가된다. 즉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통해 정권교체를 이끌어냄으로써 민주주의 정부를 수립·정착시키고 동시에 외교적으로는 ‘확대 중동구상(The Greater Middle East Initiative)’을 통해 민주주의 기반 조성을 추진했으나, 여전히 중동 정세는 불안하고 심지어 악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중동 문제에 관해 미국은 ‘개입할수록 어려워지는’ 사안으로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차원에서 미국은 이라크 철군, 아프가니스탄 철군 및 테러와의 전쟁 종식을 선언하면서 중동은 유럽 및 역내 당사국들과 책임을 공유하는 ‘다자적 관리’를 추진하려 했다. 현상 유지(status quo)를 전제로 일정 부분 관여하며, 오히려 대외 역량의 중점을 아시아 지역으로 이동하려는 이른바 ‘아시아 재균형(Asia Rebalancing)’을 추진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미국의 중동 정책은 현재 격변기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장 대표적인 변화의 현상은 과거 압도적 우위를 자랑하던 초강대국적 지위의 변화다. 이집트·리비아에서 목도했던 것처럼 우유부단함과 좌고우면하는 모습을 국제사회에 계속 보여주었다. 1990년 이라크전 ‘사막의 폭풍작전’을 이끌던 미국의 위용은 사라진 지 오래이다. 물론 여전히 부동의 세계 제1위 국가임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미국의 국력을 바탕으로 국제문제에 개입, 자국의 규범과 가치를 적극적으로 펼쳐나가던 부시 행정부 당시의 노선과는 판이하다. 계속되는 전쟁에 피로도가 축적되면서 미국은 이제 일정 부분 관여를 줄이고 싶어하는 특성을 나타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두 번째 특성은 중동에서의 한계를 일거에 해결하기 위해 가장 적대적인 이란과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미국의 국가이익 추구를 위해서는 여하한 상대국과도 대화할 준비가 되었음을 상징적으로 알리는 것이다. 발상의 전환에 가깝다. 물론 돌발적인 의사결정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이란 문제를 다루어옴에 있어서 일방적인 포용을 이야기한 적은 없다. 오히려 경제제재를 강화하면서 이란 내부에서 협상과 대화로 나가야 한다는 중산층의 목소리가 커지도록 정책 수단을 폈다. 그러나 냉전 붕괴 이후에도 여전히 아랍의 독재는 살아남았다. 오히려 민주와 독재의 구도 대신 문명 담론의 등장에 따른 새로운 기독교·이슬람 간 갈등구조가 부상하면서 독재정권은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다. 오히려 권위주의 체제를 더욱 강화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그리고 연이은 중앙아시아 및 동유럽의 민주화 혁명 흐름과는 전혀 상관없이 독재정권을 유지해왔다. 부시 행정부 당시 중동 민주화 구상, 즉 확대 중동구상의 강력한 민주화 프로젝트가 가동되었을 때에도 일정 부분 제도 변경만 가능했지 독재정권이 민주화로 이행한 경우는 없었다. 그만큼 중동의 권위주의는 강고한 체제였다. 이러한 맥락에서 2010년 12월 갑자기 도래한 아랍 정치변동은 미국 및 국제사회를 당황시키기에 충분했다. 사실상 미국 입장에서는 테러와의 전쟁을 가동하고 이라크 및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수행되는 상황에서 중동에서의 ‘현상 유지’를 선호해왔다. 수사학으로는 ‘민주화’를 언필칭 사용해 왔지만, 미국의 속내는 ‘혼란스런 민주화’보다는 ‘안정적 권위주의’를 선호했던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부시 행정부가 추진했던 ‘민주화’ 추진 프로젝트가 미국이 주도하는 제국주의적 간섭으로 받아들여지면서 중동 내 민주화 과정에 미국은 적극적으로 대처하기에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소위 ‘아랍의 봄’이 몰고 온 중동·아랍 내 정치 지각 변동은 컸다. 고전적인 미국의 동맹국이었던 이집트의 호스니 무바라크(Hosni Mubarak) 대통령이 하야한 것은 물론, 튀니지의 벤 알리(Zine El Abidine Ben Ali), 예멘의 알리 압둘라 살레(Ali Abdullah Saleh), 리비아의 카다피(Muammar Gaddafi) 정권이 차례로 무너졌다. 정권붕괴 사례 외에도 시아파(Shiites) 다수 거주 지역으로 이란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큰 걸프 왕정 국가인 바레인에서 정권붕괴 직전까지 가고, 상대적으로 평화롭던 오만에서조차 시위가 일어나면서 아랍은 미증유의 정치적 혼란 상황에 접어들었다. 사실상 미국의 내심은 기존 중동의 권위주의 정권유지를 원하고 있었다. 미국이 주도하는 테러와의 전쟁을 수행하는 데 훨씬 편리했다. 보이지 않는 적인 테러 집단과의 싸움은 법적·제도적·민주적 절차를 뛰어넘는 강력한 지도력과 공권력이 유용했다. 예방적 차원에서 선제적인 테러 근절을 위해 미국과 서방은 중동 내 권위주의 정권과의 협력을 유지해오던 터였다. 2010년 12월 갑자기 도래한 아랍 정치변동의 파고는 미국 대중동 정책에 일대 혼란을 초래했다. 예상치 못한 민주화 운동이 아랍 도처에서 발생하면서 이 정치변동의 흐름에 대하여 체계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인프라(infrastructure)나 준비가 부족했다. 실제로 아랍 정치변동 이전까지만 해도 중동·아랍권에서의 민주화는 요원한 것으로 보였다. 몇 차례 중동 민주화에 대한 기대가 상승했던 시점이 있었으나 늘 무위로 귀결되었기 때문이었다. 냉전의 강고한 진영론이 붕괴하고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던 1990년, 국제사회는 진영론에 편승하여 권위주의 체제를 유지하던 중동 독재정권들의 붕괴는 시간문제라고 보았다. 즉 미국과 소련의 안보우산 속에서 정권의 안위를 담보 받았던 친미 왕정과 친소 공화정 독재정권들은 위기에 처했다고 보았다. 미소의 진영론이 붕괴된 후 더 이상 후견인 역할을 해줄 세력이 사라졌기에 곧 독재는 붕괴하고 민주주의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는 기대가 상승했다. 아랍 정치변동은 기존 권위주의 공화정을 붕괴시켰다. 튀니지, 이집트, 리비아 및 예멘에서 정치변동으로 독재정권은 실각했다. 공화정 붕괴 후의 권력 공백 상태에서 정치권력을 획득하기 위한 다양한 정파와 세력이 난립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실제로 정치권력을 획득·수임하여 국가를 통치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진 정파나 조직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오랜 독재로 인해야당세력이 제대로 뿌리를 내릴 수 없었고, 아직 시민단체가 정치 구조를 안정화시킬 만큼 제도화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었다. 이 과정에서 가장 조직화가 잘 되어 있는 세력은 결국 이슬람이었다. 가장 유력한 세력으로 부상했다. 물론 이슬람 세력은 정치 조직화나 통치 경험은 일천하지만, 국민들의 지지를 가장 쉽게 획득할 수 있는 종교 기반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정치변동 이후 미증유의 사태 속에서 정치 상황을 관망하던 각 세력들은 정파를 조직·형성하여 제도권 정치로 뛰어들었다. 오랜 권위주의의 유산으로 아직 민주정치 제도화가 뿌리내리지 못한 상태에서 각 정파가 난립하게 되었고, 이 과정에서 이슬람을 기반으로 한 정파가 가장 쉽게 대중 속으로 침투할 수 있었다. 그러나 갑작스럽게 도래한 아랍 정치변동의 여파로 인해 기존 권위주의 정부가 붕괴되면서 미국은 일대 혼란에 빠졌고, 정변 이후 지속된 아랍권 위주의 공화국의 정치적 혼란상으로 인해 바뀐 환경에 조응하는 구체적인 중동 전략을 설정하지 못하고 ‘상황추수적’인 행태를 나타내게 되었다. 앞 장에서 살펴본 것처럼 오바마 정부는 중동에서의 개입을 최소화하고 다자적 차원에서 상황을 유지·관리하며 국내문제 및 아시아·태평양 세력판도에 더 중점을 두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이렇게 돌발변수가 발생하면서 상황 관리 자체가 불가능해지는 현실이 도래했다. 현상 유지를 위해서는 예측 가능한 행위자들의 존재를 전제로 한다. 그러나 일순간 아랍의 고전적 권위주의 지도자들이 동시에 실각하면서 향후 이 지역의 정치 역학을 주도해 나갈 세력이 누군지에 대해서도 불투명한 상황이 발생했다. 민주주의·세속주의에 기반한 자유정부가 들어설지, 아니면 군부 권위주의가 다시 힘을 회복하고 전면에 나설지, 혹은 이슬람 신정주의에 기반한 세력이 득세할지에 관해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오바마 행정부의 다원주의 및 점진적 미관여 노선에 심각한 도전이 발생했다.
지시문 (instruction)
다음 문맥을 읽고 질문에 답하시오.
질문 (question)
아랍의 봄 이후 부상한 이슬람 세력이 향후 중동의 정치 역학을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주도해 나갈 것인가?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1. 1과제 해석task_interpretation

    질문은 아랍의 봄 이후 부상한 이슬람 세력이 향후 중동 정치 역학을 주도할 구체적인 방식에 대해 묻고 있다.

  2. 2정보 추출information_extraction

    문맥에서 이슬람 세력의 부상과 특징에 관한 정보를 추출한다.

    • 이 과정에서 가장 조직화가 잘 되어 있는 세력은 결국 이슬람이었다.
    • 이슬람 세력은 정치 조직화나 통치 경험은 일천하지만, 국민들의 지지를 가장 쉽게 획득할 수 있는 종교 기반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3. 3근거 선택evidence_selection

    문맥은 이슬람 세력이 유력한 세력으로 부상했다는 사실과 그 특징(종교 기반 지지)만을 제공할 뿐, 구체적인 주도 방식에 대한 정보는 누락되어 있다.

    • 가장 유력한 세력으로 부상했다.
    • 이슬람을 기반으로 한 정파가 가장 쉽게 대중 속으로 침투할 수 있었다.
  4. 4논리 통합logical_integration

    문맥의 정보를 종합하면 이슬람 세력이 부상했다는 점은 알 수 있으나, 이들이 어떤 정치적 메커니즘이나 전략을 통해 역학을 주도할지는 알 수 없다.

  5. 5결론 도출conclusion_formulation

    질문이 요구하는 '구체적인 주도 방식'은 문맥에 명시되어 있지 않으며, 이를 알기 위해서는 외부의 정치적 분석이나 추측이 필요하다.

  6. 6답변 생성answer_generation

    문맥만으로는 답을 확정할 수 없으므로 최종 답변을 작성한다.

근거 (evidence)
  • 이 과정에서 가장 조직화가 잘 되어 있는 세력은 결국 이슬람이었다.
  • 이슬람 세력은 정치 조직화나 통치 경험은 일천하지만, 국민들의 지지를 가장 쉽게 획득할 수 있는 종교 기반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 가장 유력한 세력으로 부상했다.
  • 이슬람을 기반으로 한 정파가 가장 쉽게 대중 속으로 침투할 수 있었다.
최종 답변 (final_answer)
주어진 문맥만으로는 답을 확인할 수 없다.
분석 (analysis)
문맥은 아랍의 봄 이후 이슬람 세력이 유력한 세력으로 부상했다는 사실과 그 특징을 설명하고 있으나, 이들이 향후 중동의 정치 역학을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주도할지에 대한 정보는 제공하지 않는다. 따라서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문맥에 없는 외부의 정치적 추측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