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맥 (context)
이상의 역사를 살펴보면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의 핵개발과 포기 역사의 몇 가지 특이성이 나타난다. 그리고 이 특이성들이 합쳐져서 뜰라텔롤코 조약의 역사를 현재와 같이 만들어 왔다는 사실도 함께 볼 수 있다. 우선 보이는 특성은 다른 핵개발의 역사와 달리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는 외부적으로 뚜렷이 드러나는 안보위협이 없는 상태에서 핵을 개발해 왔다는 점이다. 미국과 각을 세웠다고 하여도 미국에 의해 공격을 당할 위협에 처한 적은 없었고, 양국이 서로에게 라이벌이라 하여도 이미 상당 수준의 공조체제를 수립하던 중이라 위협으로 발전될 가능성은 없었다. 오히려 두 국가의 핵개발은 국가 위신을 높이는 수단으로 인식된 경향이 있고, 특히 2차 대전 후 강대국으로 올라서고 싶은 열망이 핵개발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다. 특정 안보 위협이 없는 상태에서 개발된 핵이었기에 국내 정치·경제적 고려에 의하여 쉽게 포기할 수 있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1990년대 들어 두 나라와 미국 간의 관계는 다시 우호적으로 돌아선다. 당연히 그 시작은 두 나라의 핵 포기로부터 왔다. 그리고 그 기반에는 브라질과 아르헨티나가 군부 지배를 벗어나 민주주의를 회복한 데서 찾을 수 있다. 정치적 신뢰에 아울러 핵에 대한 신뢰를 양측 간에 구축할 수 있었고 미국은 그 대가로 두 나라에 대한 정치적, 경제적 지원을 약속하였다. 한편,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의 핵개발은 국내 정치·경제적 변화와 밀접한 연관을 맺으면서 이루어졌다. 두 나라의 핵개발에서 어느 요소가 더 크게 작용하였는가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있다. 그러나 상당 부분 정치와 경제 사이에 겹치는 부분이 많음을 고려하면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의 경우에는 국내요소가 국외요소보다 더 강하게 핵개발 역사에 관여하였다고 할 수 있겠다.
한편, 두 나라는 동시에 핵 문제에 관한 국제적 공조도 함께 발전시켰다. 1960년대 들면서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는 미국 주도의 비확산 노력에 반대 입장을 같이 표명하였으며, 이후 군사정부 시기를 지나면서 두 나라의 핵 문제에 대한 공조는 지속되거나 아니면 오히려 강화되었다. 여기에는 미국이 군사독재와 인권박해에 대한 규범적 반대와 두 나라가 미국의 핵 주도권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이 함께 기여하였다. 이런 협력의 기초위에 1990년에 이르러 두 나라는 핵 포기 공동선언을 하기에 이르렀다. 긴 시간을 통하여 쌓인 신뢰관계가 없었다면 서로 경쟁심리가 아직 남아 있는 상태에서 핵 포기를 위한 공동 전선을 형성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실질적 의미에서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의 핵 협력은 1970년대 후반 들어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핵 포기: 1990년 11월 28일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는 이과수(Foz de Iguazu) 선언을 발표하였다. 두 나라가 공히 핵개발을 중단하겠다는 선언이었다. 이어 1991년 7월 두 나라는 상호 핵사찰 절차를 제도화(BrazilianArgentine Agency for Accounting and Control of Nuclear Materials: ABACC) 할 것을 조약(과달라하라 조약)을 통하여 성사시켰다. 단순한 구두 선언을 넘어서 상호 핵개발의 의심을 없애기 위한 제도까지 만듦으로써 완전한 핵 포기를 상호간에 합의한 것이다. 이후 두 나라가 이룩한 비핵화를 위한 상호간의 노력은 획기적이라 할만큼 급속히 진행되었다. 각각 1993년과 1994년에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은 뜰라텔롤코 조약을 비준하였다. 무려 25년이란 세월을 지나고 나서야 두 나라는 마침내 뜰라텔롤코 조약을 비준하였다. 더 나아가 두 나라는 1994년과 1998년에 각각 핵 비확산조약에 가입, 비준을 마쳤다.
먼저 이 연구에서는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의 비핵화 협약, 즉 과달라하라 협약(Guadalajara Agreement, 1991)의 중요성을 뜰라텔롤코 조약의 성공과 연계하여 강조한다. 이 협약은 두 나라로 하여금 상호 핵 시설에 대한 투명한 관찰을 가능하게 해 주었고, 더 나아가 핵 포기에 대한 서로의 신뢰를 쌓아 어떤 경우에도 핵 무장을 재시도하는 일이 없도록 제도화하였다. 그러나 이 협약에 이르기까지 두 나라는 약 30여 년에 걸쳐 경쟁적으로 핵무장을 시도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뜰라텔롤코 조약은 철저히 무시되었다. 이런 의미에서 과달라하라 협약과 뜰라텔롤코 조약의 성공은 서로 필수조건이다. 여기에 맞서 다양한 주장이 제기될 수 있지만, 본 연구에서는 크게 외적 조건으로 분류하여 비교 검토한다.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은 두 지역 강대국으로서 비록 실제로 핵을 사용한 안보 위협을 서로에게 가한 일은 없으나 50-60여 년에 걸쳐 핵개발의 주도권을 잡기 위하여 서로 경쟁하여 온 사이였다. 1991년 두 나라가 합의에 의하여 핵을 포기하기까지 양국의 핵개발의 주된 이유는 경쟁국인 이웃 강대국이 핵을 발전시키는 것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두 국가가 서로 안심할 수 있는 감시시스템을 개발하는 것은 핵 포기를 위해서 뿐 아니라 향후 역내의 안정적인 비핵화를 보장하기 위한 중요한 기제였다. 결국, 두 국가를 서로 엮는 4방 안전보장체제(아르헨티나, 브라질, ABACC, IAEA)를 만듦으로써 남미에서 이웃 간의 양자 핵안전 협정이 온전한 역내 비핵화를 만드는 지름길을 제공하였다. 셋째, 역외로 눈을 돌려보면 뜰라텔롤코 조약의 구속성을 강화시켜줄 다수의 다자간 협약이 존재하였음을 알 수 있다.
남미에서 그러하였듯이 동아시아에서 핵 규범을 통한 핵 비확산 노력은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다. 북한은 핵비확산조약을 규범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미국과의 거래를 위한 도구로 사용하여 가입과 탈퇴를 번복하였다. 북한 핵을 둘러싼 미중간 불협화음은 핵 비확산에 대한 규범의 역할을 기대했던 동아시아에 큰 장애물이 되고 말았다. 주자하다시피 1968년 미국이 중국과 소련을 포함한 핵 보유 국가들과 핵확산금지조약을 성립시킨 것은 이념의 대립이 첨예화되었던 냉전 시기에 이념을 넘어선 국제적 협약으로 칭송될 만한 성과였다. 그럼에도 냉전이 끝난 시점에서 미국과 중국이 특정 비핵국가의 핵개발을 둘러싸고 합의를 도출하지 못한 것은 규범의 한계를 그대로 노출하였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오히려 규범보다는 개별 국가의 이익이 앞선다는 좋은 예를 선사하였다.
지시문 (instruction)
다음 문맥을 읽고 질문에 답하시오.
질문 (question)
브라질과 아르헨티나가 핵개발을 추진했던 주요 동기 중 하나는 무엇이며, 이들의 핵개발 과정에서 국외 요소보다 더 강하게 작용했던 요소는 무엇인가?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
1과제 해석
task_interpretation브라질과 아르헨티나의 핵개발 동기와 핵개발 역사에 더 큰 영향을 미친 요소를 파악해야 한다.
-
2정보 추출
information_extraction핵개발의 동기와 국내외 요소의 영향력을 설명하는 문장을 추출한다.
- 두 국가의 핵개발은 국가 위신을 높이는 수단으로 인식된 경향이 있고
- 2차 대전 후 강대국으로 올라서고 싶은 열망이 핵개발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
-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의 경우에는 국내요소가 국외요소보다 더 강하게 핵개발 역사에 관여하였다
-
3근거 선택
evidence_selection핵개발 동기에 해당하는 '국가 위신 제고' 및 '강대국으로의 열망'과 영향력에 해당하는 '국내요소'를 근거로 선택한다.
- 두 국가의 핵개발은 국가 위신을 높이는 수단으로 인식된 경향이 있고
- 2차 대전 후 강대국으로 올라서고 싶은 열망이 핵개발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
-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의 경우에는 국내요소가 국외요소보다 더 강하게 핵개발 역사에 관여하였다
-
4논리 통합
logical_integration핵개발의 동기는 국가 위신을 높이고 강대국이 되고자 하는 열망이며, 역사적 과정에서 국외적 요인보다 국내적 요인이 더 강력하게 작용했음을 결합한다.
-
5결론 도출
conclusion_formulation핵개발의 동기는 국가 위신 제고와 강대국으로의 열망이며, 더 강하게 작용한 요소는 국내요소이다.
-
6답변 생성
answer_generation질문에 대한 최종 답변을 작성한다.
근거 (evidence)
- 두 국가의 핵개발은 국가 위신을 높이는 수단으로 인식된 경향이 있고
- 2차 대전 후 강대국으로 올라서고 싶은 열망이 핵개발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
-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의 경우에는 국내요소가 국외요소보다 더 강하게 핵개발 역사에 관여하였다
최종 답변 (final_answer)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의 핵개발은 국가 위신을 높이는 수단이자 2차 대전 후 강대국으로 올라서고 싶은 열망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으며, 핵개발 역사에는 국외 요소보다 국내 요소가 더 강하게 관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