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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합이 기술혁신패턴에 미치는 영향과 대응전략 자동차산업과 디스플레이산업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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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Y_201708240236577781
doc_id
PCY_201708240236577781_33
발행기관
과학기술정책연구원
발행연도
2016
KDC
000
답변 불가 (is_impossible)
False
문맥 (context)
화학물질 규제와는 별개로 디스플레이 산업과 관련된 안전규제로는 전자파와 관련된 규제가 있다. 원래 전자파 규제는 전자파장해를 피하기 위한 목적으로 1990년부터 전기전자기기 등에 「전자파장해 검정규칙」을 적용하여 시행하여 왔다. 그러나 1990년대 동안 전자파가 인체에 유해하다는 문제제기가 계속되었고 한국에는 1987년에 국제방사선보호협회가 권고한 전자파인체안전기준 이외의 법적인 규제가 없다는 지적에 따라 2000년부터 「전파법」에 의해 인체에 유해한 전자파를 규제하게 되었다. 디스플레이 산업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규제들은 디스플레이 산업이 융합 산업임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그 융합의 범위가 심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화학물질 규제는 디스플레이 산업이 전자 산업이기는 하나 신소재 산업과 긴밀한 관계가 있음을 잘 보여주는 제도라고 할 수 있다. 기존의 「유해화학물질관리법」은 가습기 살균제 사건, 구미 누출 사고 등 화학물질 관련 사건사고의 발생이 증가함에 따라 2013년,「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과 「화학물질관리법」으로 강화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한국의 화학물질관리 관련 법률은 최근 전 세계의 화학물질 규제 기준이 되고 있는 유럽의 REACH(Registration, Evaluation, Authorisation and Restriction of Chemicals) 기준과는 다르기 때문에 수출 등을 위해서는 이중으로 규제에 대응해야 한다는 문제가 지적되고 있다. 소비전력과 관련된 규제는 지금까지도 직접적인 규제보다는 간접적인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에너지공단에서는 의무적 신고제도인 에너지소비효율등급표시제도와 대기전력저감프로그램 및 자발적 인증제도인 고효율에너지기자재 인증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자동차 산업의 역사는 약 130년이 되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산업 중 하나이면서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기업들이 2015년 사상 최대 실적을 발표하는 등 ‘성장하는 산업’이기도 하다. 미국 자동차 시장이 2015년 1,750만대로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으며, 2015년 약 8,500만대의 세계 자동차 시장은 세계 인구의 35%에 달하는 중국과 인도 시장의 성장으로 2020년까지 1억대로의 추가성장이 예상되기도 한다. 자동차 산업은 고용 효과가 매우 크며, 국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큰 산업이다. 국내 자동차 산업은 2013년 기준 제조업 고용의 11.4%, 부가가치의 11.5%를 차지하였으며, 자동차 산업의 부가가치 생산액이 GDP(국내총생산)에 차지하는 비중은 3.9%에 이를 정도로 국내 제조업과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막대하다. 자동차 산업은 제품 가격이 높고 개발비가 많이 소요되며, 약 5년 정도가 소요되어야 제품 모델이 풀체인지 될 정도로 라이프 사이클이 길다는 특징을 가진다. 자동차 산업과 융합되는 추세를 보이고 있는 IT와 마찬가지로 현대 인간의 일상에 필수적인 소비재이면서도 상품 수명의 호흡이 길다고 볼 수 있다. 중고차 시장이 신차 시장에 비해 큰 규모로 존재하기 때문에 제품 평가가 장기간에 걸쳐 기업평가에 영향을 미치는 것 또한 자동차 산업의 특징이다. 자동차는 사람의 삶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그만큼 다양한 규제가 존재한다. 국가별로 안전 정책이 존재하며 규제의 정도가 강하다. 단적인 예로 자동차의 통행 방향이 다르기도 하며, 국가별 고속도로의 허용속도가 다르기도 하다. 과거 이런 안전 규제가 비관세 장벽으로 작용하기도 하였다. 글로벌 완성차 업체로 도약하는 단계에서는 본격적으로 전자, 화학 분야와의 융합이 심화되었으며 ICT 분야와의 융합이 새롭게 등장하였다. 선진국형 수요가 구축되며 한국 내 소비자들은 자동차 구매에 있어 연비효율을 중요시 여기게 되었으며 이에 따라 전자, 화학분야와 결합된 엔진 기술이 고도로 발달하게 되었다. 또한 1990년대와 2000년대의 주요 정부 R&D 사업에서는 차세대 아키텍처인 전기자동차, 지능형자동차 기술개발에 투자를 제공하였고 배터리, 소재, 반도체, 제철 산업 등과의 협업을 통해 관련 기술들이 개발되었다. ICT와 자동차 산업의 융합은 2000년대 이후 텔레매틱스라는 개념을 통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으며 내비게이션 서비스를 통해 빠르게 퍼지게 되었다. 최근에는 지능형 도로교통 시스템과의 결합을 통해 자동차 내의 기술뿐만 아니라 교통 플랫폼을 아우르는 형태로 ICT와 자동차 융합 기술이 확장되었다. 1990년대 이후에 있었던 한국 자동차 사업의 큰 변화이자 기회 중에는 해외 현지 생산의 확대가 있었다. 1996년부터 현대자동차는 해외 단일공장의 규모를 확대하기 시작했다. 이는 완성차 수입에 대한 세계 각국의 규제가 더욱 강화됨에 따른 조치였다. 해외 현지 생산 공장의 건설은 완성차 수입에 대한 규제와 더불어 환율 리스크에도 대응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었다. 또한 현대가 1997년에 처음 현지 공장을 건설한 곳이 터키였으며 뒤이어 추진한 곳이 1998년의 인도와 2002년의 중국이었다는 사실은 신흥국가의 자동차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목적 역시 무시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또한 2005년부터 생산을 시작한 미국 공장의 경우 KD 조립 방식을 넘어 현지에서 부품 조달을 비롯한 생산 전 과정을 실시함으로써 완전 현지화 된 자동차 공장으로 운영되고 있다. ‘신엔진 개발계획’에 따라 독자 엔진을 개발하고자 했던 현대자동차는 1983년 9월 1일에 본사 내에 엔진개발실을 신설하였다. 1년 뒤 기술개발실로 명칭이 변경된 엔진개발실은 1984년 11월 15일에 경기도 용인군 구성면 마북리의 마북리연구소로 재편되었다. 1983년에 연구원 다섯 명으로 시작하였던 엔진개발실은 마북리연구소로 옮겨갈 때에는 이미 빠르게 성장하여 연구원이 총 98명에 이르는 상태였다. 1984년에 마북리연구소는 총 13,855m2 에 본관, 시험A동, 공작동, 연구동, 배기시험동, 창고 등의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마북리연구소를 신설할 때에는 연구소의 규모가 개발팀의 인원에 비해 훨씬 넓었기 때문에 연구소의 일부를 현대모비스(당시 현대정공)와 공유하기도 했으나 곧 현대자동차 내 연구개발 인원이 급증하며 4년 뒤 2412평을 신축하여 시험B동, 엔진동력계실, 기숙사, 유류창고 등도 함께 갖추게 되었다.
지시문 (instruction)
다음 문맥을 읽고 질문에 답하시오.
질문 (question)
현대자동차가 1984년 마북리연구소로 재편될 당시, 엔진개발실의 연구원 수는 몇 명이었는가?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1. 1과제 해석task_interpretation

    현대자동차가 1984년 마북리연구소로 재편될 당시의 엔진개발실 연구원 수를 찾는 것이다.

  2. 2정보 추출information_extraction

    마북리연구소 재편 시점과 엔진개발실의 연구원 수에 관한 정보를 추출한다.

    • 1984년 11월 15일에 경기도 용인군 구성면 마북리의 마북리연구소로 재편되었다.
    • 1983년에 연구원 다섯 명으로 시작하였던 엔진개발실은 마북리연구소로 옮겨갈 때에는 이미 빠르게 성장하여 연구원이 총 98명에 이르는 상태였다.
  3. 3근거 선택evidence_selection

    마북리연구소로 옮겨갈 때의 연구원 수가 98명임을 명시한 문장을 선택한다.

    • 마북리연구소로 옮겨갈 때에는 이미 빠르게 성장하여 연구원이 총 98명에 이르는 상태였다.
  4. 4논리 통합logical_integration

    1984년 마북리연구소로 재편된 시점이 연구원이 98명에 이른 시점과 일치함을 확인한다.

    • 1984년 11월 15일에 경기도 용인군 구성면 마북리의 마북리연구소로 재편되었다.
    • 마북리연구소로 옮겨갈 때에는 이미 빠르게 성장하여 연구원이 총 98명에 이르는 상태였다.
  5. 5결론 도출conclusion_formulation

    재편 당시 연구원 수는 98명이다.

  6. 6답변 생성answer_generation

    질문에 대한 최종 답변을 작성한다.

근거 (evidence)
  • 1984년 11월 15일에 경기도 용인군 구성면 마북리의 마북리연구소로 재편되었다.
  • 1983년에 연구원 다섯 명으로 시작하였던 엔진개발실은 마북리연구소로 옮겨갈 때에는 이미 빠르게 성장하여 연구원이 총 98명에 이르는 상태였다.
  • 마북리연구소로 옮겨갈 때에는 이미 빠르게 성장하여 연구원이 총 98명에 이르는 상태였다.
최종 답변 (final_answer)
98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