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맥 (context)
이를 타개하기 위해 이에 기획재정부 및 관련 부처에서는 ‘유로화’를 기반으로 하는 금융 거래를 USD 매개가 아닌 것으로 미국 정부로부터 암묵적 승인을 받게 되고, ‘특별한 유로화 결제시스템’을 통해 한국-이란간의 직접 금융거래를 2016년 9월부터 시행하게 되었다. 이 시스템은 한국-이란 직접 거래에 국한하여 미국의 제재가 되지않는 유로화 결제 시스템이며, 수출입대금을 원화 또는 유로화로 선택하여 결제하는 것인데,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금융제재가 해제될 경우, 첫 단계에서는 이란의 경우처럼 제3국 제재의 해제가 될 가능성이 크고, 그럴 경우 역시 USD 달러화를 매개로는 거래가 어려우므로, 남북 간 직접 거래의 경우 수출입대금을 유로화나 위안화 등 제3의 화폐로 선택하여 결제하는 시스템으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대안 모색은 남북 간의 거래가 ‘내국 간의 거래’로서 국제사회의 묵인 내지 승인을 받지 못하고, 국제사회에서 향후 남북 간의 거래에 국제법의 엄격한 적용을 요구받거나, 그동안의 내국 간의 거래로서 특별한 이의제기를 받지 않는 상황과 달리, 직접적인 이의제기를 받거나 할 경우에 대비한 것이다. 이러한 대비는 현재까지는 남북관계의 특수성으로 인하여, 북한의 핵개발 및 핵실험 등으로 인해 국제사회의 경제제재가 날로 심화되는 상황에서도 남북 간에 협력과 교류가 평화통일이라는 공통의 가치와 목적을 가지고 지속되어 온 상황과 달리, 현재는 남북 간의 협력과 교류가 거의 단절되고, 한국 정부가 대북경제제재에 어느 때보다 적극적이고, 독자적인 제재 조치를 취하고 있는 만큼, 향후 남북 간의 특수 관계를 국제사회에서 주장하기 어려워 질 수도 있다는 전제 하에 대안을 살펴본 것이다.
최근 북한의 핵개발과 탄도 미사일 발사 등으로 초래한 남북한간 군사적, 정치적 긴장상태가 심화되고 있고 이에 따른 개성공단 폐쇄 등 국내외 대북제재의 수위도 높아지면서 남북한의 교류협력도 급속히 냉각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북한의 분단 상황은 영구할 수 없으며 어떤 형태로든 한반도의 통일은 독일의 통일처럼 예측하지 못한 시기에 올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통일 이후 벌어질 많은 문제에 대비해 다양한 시나리오를 통해 그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통일준비의 첫 걸음일 것이다. 통일 이후, 독일과 같이 남한의 헌법을 중심으로 북한의 법체계가 남한의 법체계에 흡수되면서 남북한 법제가 자연스럽게 통합되는 것을 기대할 수 있으나, 한반도를 둘러싼 복잡한 국제관계, 정치상황에 따라 남북한간 체제의 통합이 어떠한 방향으로 진행될 지는 예상하기 어려우며 한반도의 특수성을 감안할 때, 남한의 일방적인 북한체제의 흡수를 가정한 통일 독일의 사례를 일방적으로 적용하기도 어렵다.
우리나라의 장례문화의 변천과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삼국시대에는 매장이 선호되었다. 대부분의 고분은 왕족이나 귀족층의 묘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서민들의 묘지는 봉분조차 없는 것으로 추측된다. 통일신라시대에는 불교의 영향으로 화장제도가 도입된 것으로 보인다. 이 시대의 고분은 묘지에 비각을 세우거나 십이지신상을 배치하는 등 묘지가 화려하지만 부장품의 수가 감소하고 분묘의 크기도 작아지고 있다. 불교의 대중화에 따라 스님은 물론 왕족이나 귀족 계층에서 화장이 성행하고 있었으며, 화장한 유골은 산골하거나 매장하였다. 고려시대에는 건국 초부터 불교를 국교로 정함에 따라 고려시대 사람들은 사원이나 승려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는 일상생활에 따라 화장이 성행하였다. 불교를 국교로 삼으면서도 풍수지리사상이 성행하였으며 장사제도에서도 유교, 불교와 더불어 풍수지리 사상이 영향을 미쳤다. 충렬왕 이후에는 주자학이 전래되면서 불교식 화장제도를 금지하고 주자가례에 의한 관혼상제의 시행을 주장하는 신진 사대부와 주자학자들의 건의에 따라 공민왕 때부터 화장을 금하기 시작하였다. 이때부터 주자가례가 행하여지고 매장과 삼년상을 치루는 상례방식이 보편화되면서 화장이 점차 줄고 매장 풍습이 확대되었던 것이다.
매장중심의 장사제도에서 화장중심의 장사제도로의 전환은 국토의 효율적 이용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또한 우리나라는 기당 묘지 면적이 크고, 풍수지리설의 영향 등으로 집단묘지 보다는 개인묘지를 선호하는 경향 때문에 전국적으로 묘지가 산재하고, 분묘가 급격히 증가하여 새로이 분묘를 설치하기에는 산지를 구하기가 쉽지 않은 처지에 이르렀다. 뿐만 아니라 그 동안 불법이나 무단으로 조성된 묘지로 인하여 문제되어 왔다.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장사제도인 매장문화가 오랫동안 지속되면서 전국 어디서나 크고 작은 묘지가 많이 설치되어 있다. 특히 국토의 70%가 산지로 구성되어 있고 인구밀도가 세계 3위이며 전통적으로 매장문화가 주된 장사방법인 우리나라의 경우 문제의 심각성은 다른 나라에 비해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장사문화는 저출산으로 인한 묘지관리 등의 어려움과 묘지가 전 국토의 1%를 점유하는 국토의 활용성 저하 등의 이유로 매장에서 화장으로 변화하고 있는 추세이다. 보건사회연구원의 설문조사에서 국민의 79.3%가 화장으로 나타난 결과도 이를 반영하고 있다. 실제로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화장률은 1991년의 17.8%에서 2011년에는 71.1%로 급속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이에 따라 장사관련 법률의 경우에도 적지 않은 변화가 있었다. 현행 「장사 등에 관한 법률(이하 장사법이라고 한다)」은 1961년에 제정된 ‘매장 등 및 묘지 등에 관한 법률’을 2000년에 전면 개정한 내용이 근간을 이루고 있는 바, 장사법은 2007년에 다시 대폭 개정하였으며, 현재는 2015년에 개정된 법률이 현재 시행되고 있다.
이때부터 매장에 대한 심각성을 인식하면서 묘지의 증가를 억제하기 위하여 1981년부터 묘지의 집단화 및 화장의 확대를 추진하는 “묘지 등의 설치 및 관리 운용지침”(보건사회부훈령 제426호)을 마련하였고, 1991년 7월 5일 시행된 “묘지 등의 설치 및 관리 운용지침”(보건사회부훈령 제623호)에서는 묘지의 사용기간을 15년 시한부로 권장하는 것을 명시하면서 시한부매장제도를 공식적으로 거론하기 시작하였다. 그 후 입법예고와 각계의 의견 수렴 과정을 거쳐 2000년 1월 12일 매장법을 전면 개정한 「장사 등에 관한 법률」(법률 제6158호, 2001년 1월 13일 시행, 이하 ‘장사법’이라 한다)에서 시한부 매장제도를 도입하게 되었다. 매장중심의 문화로 인하여 좁은 국토에 묘지가 점유하는 면적이 많아서 국토의 잠식, 생태환경의 훼손 등 여러 가지 사회문제를 낳고 있어서, 화장율이 증가하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지만, 봉안묘, 봉안당 등의 시설도 자연훼손문제, 호화봉안시설 문제 등의 부작용이 노출되고 있기도 하다. 그래서 장사법은 2007년 개정을 통하여 환경 친화적인 장사제도로서 자연장을 도입하였다.
지시문 (instruction)
다음 문맥을 읽고 질문에 답하시오.
질문 (question)
우리나라의 장례문화 변천 과정 중 고려시대에 화장이 성행하게 된 배경과 이후 화장이 점차 줄어들게 된 원인은 무엇인가?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
1과제 해석
task_interpretation고려시대 화장 성행의 원인과 화장이 감소하게 된 역사적 배경을 파악해야 한다.
-
2정보 추출
information_extraction고려시대의 종교적 상황과 화장 문화에 대한 정보를 추출한다.
- 고려시대에는 건국 초부터 불교를 국교로 정함에 따라 고려시대 사람들은 사원이나 승려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는 일상생활에 따라 화장이 성행하였다.
-
3근거 선택
evidence_selection화장이 줄어든 시점과 그 원인이 되는 사상적 변화를 나타내는 문구를 선택한다.
- 충렬왕 이후에는 주자학이 전래되면서 불교식 화장제도를 금지하고 주자가례에 의한 관혼상제의 시행을 주장하는 신진 사대부와 주자학자들의 건의에 따라 공민왕 때부터 화장을 금하기 시작하였다.
- 이때부터 주자가례가 행하여지고 매장과 삼년상을 치루는 상례방식이 보편화되면서 화장이 점차 줄고 매장 풍습이 확대되었던 것이다.
-
4논리 통합
logical_integration불교를 국교로 삼아 화장이 성행했던 상황과, 이후 주자학 전래 및 신진 사대부의 건의로 인해 화장이 금지되고 매장이 보편화된 인과관계를 연결한다.
-
5결론 도출
conclusion_formulation고려시대 초반에는 불교가 국교였기에 화장이 성행했으나, 충렬왕 이후 주자학이 전래되고 신진 사대부들이 주자가례에 따른 관혼상제를 주장하며 공민왕 때 화장을 금하면서 매장 풍습이 확대되었다는 결론을 도출한다.
-
6답변 생성
answer_generation추론된 내용을 바탕으로 질문에 대한 최종 답변을 작성한다.
근거 (evidence)
- 고려시대에는 건국 초부터 불교를 국교로 정함에 따라 고려시대 사람들은 사원이나 승려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는 일상생활에 따라 화장이 성행하였다.
- 충렬왕 이후에는 주자학이 전래되면서 불교식 화장제도를 금지하고 주자가례에 의한 관혼상제의 시행을 주장하는 신진 사대부와 주자학자들의 건의에 따라 공민왕 때부터 화장을 금하기 시작하였다.
- 이때부터 주자가례가 행하여지고 매장과 삼년상을 치루는 상례방식이 보편화되면서 화장이 점차 줄고 매장 풍습이 확대되었던 것이다.
최종 답변 (final_answer)
고려시대에는 불교를 국교로 삼아 사원 및 승려와 밀접한 일상생활을 영위함에 따라 화장이 성행하였다. 그러나 충렬왕 이후 주자학이 전래되면서 주자가례에 따른 관혼상제 시행을 주장하는 신진 사대부와 주자학자들의 건의로 공민왕 때부터 화장이 금지되었고, 이에 따라 매장과 삼년상을 치르는 상례 방식이 보편화되면서 화장이 점차 줄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