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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위산업 후발국의 추격과 발전패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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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Y_201506101215390621
doc_id
PCY_201506101215390621_3
발행기관
한국국방연구원
발행연도
2015
KDC
340
답변 불가 (is_impossible)
True
문맥 (context)
예들 들어 Levi-Faur(1998)은 대만, 한국, 이스라엘을 비교하여, 세 국가 모두 식민지 경험이 있는 독립국으로서, 외국 자본 및 다국적 기업과의 연계가 부족하였고, 선진국으로부터의 경제적 원조 경험이 있으며, 1970~80년대에 급속히 성장하였던 경제상황을 근거로 세 국가 모두 후발국(개발도상국)으로 보았다. 특히 후발국 방위산업 문헌인 Brauer(2002, 2007)는 이스라엘을 개발도상국(developing country)으로, Brzoska(1999)은 저산업화 국가(less industrialized country)로, Kinsella(2000)은 3차수준(third-tier country)으로 분류하고 있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도, 2차대전 이후에 독립하여 산업화와 방위산업 진입을 시도하고, 1970~80년대 급속한 산업화에 성공한 점을 고려하여 한국과 이스라엘을 공히 방위산업 후발국으로 보고자 한다. 이 가운데 2차대전 이후 독립하고 뒤늦게 산업화에 착수한 국가로서, 방위산업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유하고 있는 국가는 한국, 이스라엘, 싱가포르가 대표적이다. 특히 한국과 이스라엘은 각 국가가 처해 있는 안보상황이 유사하고, 1인당 GDP 등 각종 경제지표도 유사하여, 의미 있는 비교분석이 가능할 것으로 판단된다. 사례연구를 위한 자료는 기존의 국내외 사례연구 및 정책연구 자료를 주로 활용하였으며, 한국과 이스라엘의 방위산업 전문가와의 인터뷰도 수행하여 수집하였다. 한국의 경우 방위사업청 및 국내 방산업체 소속 전문가를 대상으로 면담을 수행하였으며, 이스라엘의 경우 이스라엘 국방부, 이스라엘 산업무역노동부, 엘빗시스템즈, 이스라엘항공우주산업 등을 방문하여 전문가 면담을 수행하였다. 그렇다면, 안보 위협이 존재하는 한, 방위산업의 유지 및 육성이라는 문제는 국방관련 부처 및 국방정책이 간과하기 어려운 중요한 사안일 수밖에 없다. 특히 북한을 비롯한 주변국들로부터의 직・간접적 위협이 상존하는 한국의 상황에서는 더욱 중요하게 연구되어야 할 주제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방위산업은 현재까지 어떻게 성장하여 왔고, 앞으로 어떻게 발전되어야 할 것인가? 글로벌 방위산업 시장에서 한국은 2차대전 이후에 진입한 후발국으로 분류될 수 있다. 오원철(2006)에 의하면 한국은 자주국방이라는 목표 달성을 위해 1970 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방위산업을 육성해 온 상황으로, 다른 후발국들과 비교해보아도 그 진입 시기가 매우 늦은 편이라고 할 수 있다. 후발국으로서의 한국 방위산업은 그간 급격한 성장을 통해, 현재 군소요 무기체계의 상당부분을 국산화하여 군에 납품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해외 무기 시장에도 진출하고 있다. 한국은 1945년 독립 이후, 1948년 남과 북이 분단된 채로 건국되었으며, 1950년 한국전쟁 역시 종전을 맺지 못하고 휴전되면서 남북 간 대치상황이라는 지속적인 안보 위협에 처하게 되었다. 당시 반공을 기치로 삼았던 이승만 정권은 한국군 감축을 거론하였던 미국에 대항하기 위해 북진통일론을 주장하는 등 외부에서 주어진 안보위협을 안보위기로 확대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이승만 정권의 주장에 따라, 한국군 규모는 63만 명으로 상향조정되었고, 미군 2개 사단이 한국에 주둔하며, 미국이 한국 공군 제트 전투기를 교체해 주는 등 장비 현대화를 지원할 것을 확약하였다. 이는 안보위기에 따른 국내 무기수요 확대라는 효과로 나타났다. 이승만 정권 당시의 안보위기 조성과 무기수요 확대 동향은 1960년대 박정희 정권 초반기까지 지속되었다. 이 당시 북한은 매년 GDP의 11~18%의 군사비를 투입하고, 각종 무기를 자체생산하여 남한에 대한 안보위협을 지속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방위산업 육성 원칙에 따라 1972년에는 29개의 방위산업체가 지정되었으며, 그 수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게 되었다. 또한 방위산업 물자의 경우, 국방과학연구소를 중심으로 무기체계의 국산화 개발이 지속적으로 추진되었으며, 개발된 무기체계는 군에 납품되어 실전 배치되었다. 이 시기에는 거의 모든 탄약, 화포, 총포류가 개발되었으며, 로켓 및 유도무기 분야에서도 3.5인치 대전차 로켓탄이나 2.75인치 로켓탄이 개발되었다. 또한 함정 분야에서는 해군에서 필요로 하는 대부분의 함정을 건조하는 데 성공하였고, 일부의 함정은 해외에 수출까지 하였다. 이와 같이 1970년대 방위산업은 정부의 경제적 유인 제공하에 급속히 발전하였으며, 전례 없는 성과를 창출하였다. 그러나 이 시기의 무기개발은 주로 선진국 제품의 모방 및 개량개발 수준이기 때문에 기술 자생력을 갖추지는 못하였다. 두 번째로, 방위산업 육성을 추진하기 위해 정부가 내세운 정책은 주로 국내 기업들에 대한 경제적 유인이었다. 당시 정부는 자주국방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국내에 방위산업 물자를 공급할 수 있는 산업기반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였고, 산업기반을 확충하기 위해 군이 운영하는 군공창보다는 국내 민간업체를 집중 육성하고자 방위산업 육성 원칙을 세웠다. 방산업체에 의한 방산품과 민수품의 생산비율은 30:70으로 하며, 방산업체에 대해서는 적정이윤을 보장(방산원가제도)하도록 하였다. 이는 수요가 안정적이지 않은 방산물자의 특성을 고려하여 군수품 발주가 없을 때에도 민수품 생산을 통해 매출을 확보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주겠다는 의미이며, 방산업체가 생산하는 물품에 대해 이윤을 보전해 줌으로써 민간기업의 방위산업 진입에 대한 유인을 제공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방위산업 분야별로 적격업체를 선정하는 방산물자・업체 지정제도 역시 이 시기에 등장하였다. 1988년 등장한 노태우 정권하에서는 안보위기 조성 수준이 다시 높아졌으며, 방위산업에 대한 인센티브가 더욱 강화되었다. 당시는 구소련의 개혁・개방 분위기에 따라 동서 간 긴장이 완화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1987년 노태우 대통령 후보는 전시작전권 환수를 대선 공약으로 내세웠으며, 1989~1990년에 걸친 기간 동안에는 미국 정부의 주한미군 재조정안이 발표되면서 한반도 내 안보위기 조성의 수준이 높아지게 되었다. 이러한 논의는 자주국방에 대한 필요성을 다시 불러일으켰고, 정부는 방위산업에 대해 기존에 제공하던 유인 이외에 “국산무기 우선사용”을 기본원칙으로 삼는 연구개발기본정책방향을 설정하였다. 이상과 같은 1970~80년대의 경제적 유인 제공 위주의 정책은 국내 방위산업체들이 외부의 위험으로부터 보호되면서, 국내 방위산업을 유지하는 데 기여하였다. 그러나 20여 년에 걸친 지속적인 경제적 유인 강화로 인해, 방위산업에는 무기체계 분야별 독점 현상이 발생하였으며, 업체들은 높은 수준의 연구개발을 추구하기보다는 정부가 주문한 제품의 독점적 생산・납품에 치중하였다.
지시문 (instruction)
다음 문맥을 읽고 질문에 답하시오.
질문 (question)
1972년 방위산업 육성 원칙에 따라 지정된 29개 방위산업체의 명단은 무엇인가?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1. 1과제 해석task_interpretation

    질문은 1972년에 지정된 29개 방위산업체의 구체적인 명단을 요구하고 있다.

  2. 2정보 추출information_extraction

    문맥에서 1972년에 29개의 방위산업체가 지정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 1972년에는 29개의 방위산업체가 지정되었으며
  3. 3근거 선택evidence_selection

    문맥에는 29개의 업체가 지정되었다는 수치적 정보는 존재하지만, 각 업체의 이름이나 명단에 대한 정보는 전혀 포함되어 있지 않다.

    • 1972년에는 29개의 방위산업체가 지정되었으며, 그 수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게 되었다.
  4. 4논리 통합logical_integration

    제공된 정보를 종합하면 1972년에 29개의 업체가 지정되었다는 사실만 알 수 있을 뿐, 개별 업체의 명단을 도출하기 위한 추가적인 정보는 문맥 내에 존재하지 않는다.

  5. 5결론 도출conclusion_formulation

    질문이 요구하는 핵심 정보인 '업체 명단'은 문맥에서 명시되지 않았으므로 답을 결정할 수 없다.

  6. 6답변 생성answer_generation

    주어진 문맥만으로는 답을 확인할 수 없다는 최종 답변을 생성한다.

근거 (evidence)
  • 1972년에는 29개의 방위산업체가 지정되었으며
  • 1972년에는 29개의 방위산업체가 지정되었으며, 그 수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게 되었다.
최종 답변 (final_answer)
주어진 문맥만으로는 답을 확인할 수 없다.
분석 (analysis)
문맥에는 1972년에 29개의 방위산업체가 지정되었다는 사실은 명시되어 있으나, 해당 업체들의 구체적인 명단은 언급되지 않았다. 따라서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문맥 외부의 추가적인 정보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