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맥 (context)
1999년 3월 러시아와 북한은 ‘즉각적인 군사개입 및 지원’ 보다는 러시아와 몽골, 베트남 간 우호관계 기본조약처럼 “안보위협 발생시 지체없이 상호 접촉할 것”을 내용으로 하는 신조약을 가조인한 후 2000년 2월 9일 평양에서 ‘조·러 친선 선린 및 협조에 관한 조약’에 정식 서명하였다. 북한은 군사외교 측면에서 볼 때 중국과의 유대관계를 가장 중시하고 있는 가운데 양측은 1971년 8월에 체결한 군사교류 협정에 의거하여 매년 2~3회 군사대표단 상호 교환방문을 통해 실시하고 있다. 2000년 10월 중국 인민지원군의 6.25전쟁 참전 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츠하오톈 국방부장을 단장으로 하는 군사대표단이 방북하였고, 환영식에 당·정·군 간부들이 모두 참가한 것은 올브라이트 미국 국무장관 일행 환영행사에는 군 간부들만 참가한 것과 대조를 이루었다.
북한은 2003년 4월 조명록 군 총정치국장이 중국을 방문하고, 이어 5월 중국 고위군사대표단이 방북하여 핵 관련 입장을 교환하고 북·중 군사관계 전반에 대해 논의하였다. 2006년 1월 김정일이 군 원로들을 대동하고 중국의 광저우 등 산업지역 시찰 및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이어 4월 차오강촨 중국 국방부장 일행이 방북하여 군사 분야의 친선 협조관계 발전에 합의하였다. 2008년 12월 12일 양광례 중국 국방부장은 북한의 대외사업 담당자들과 만나 양국 군대 간 상호교류와 협조 강화를 강조하였다. 2011년 8월 북·중 조약 체결 50주년에 즈음하여 전창복 인민무력부 후방총국장을 대표로 하는 북한 군사대표단이 방중하여 양측의 군사관계를 더욱 증진시키기로 하였다. 그 밖에 2001년 5월 북한 공군대표단의 파키스탄 항공단지 시찰을 비롯해 6월 고위대표단이 미얀마를 방문하여 방위산업 협력 문제를 논의하였다. 2008년 7월 북한 군사대표단이 몽골을 방문하여 농업 개발과 관련한 논의를 나누었으며, 2012년 5월 리영호 총참모장 등 고위군사대표단이 라오스를 방문하기도 하였다. 같은 해 9월 강표영 인민무력부 부부장 등 군사 대표단이 인도네시아를 방문하였으며, 2013년 4월 아프리카, 6월 쿠바를 각각 방문하였다.
냉전 시기 북한의 외교는 한반도의 공산화와 대남 외교 우위 확보를 위한 외교 역량 강화에 주력해 왔다. 탈냉전 이후에는 체제안정과 생존에 중점을 두고 실리외교를 추진하는 방향으로 변화하였다. 냉전 시기 북한의 대외활동은 사회주의권, 제3세계, 개발도상국을 비롯한 비동맹 국가들에 집중되어 있었다. 사회주의 국가들과의 관계를 중시하게 된 것은 미·소를 중심으로 한 냉전체제의 구조와 이념갈등 요인 때문이다. 반면, 비동맹 국가들과의 외교관계가 활발하게 된 이유는 북한이 반제국주의 이념을 내세우면서 남한과 수교 경쟁을 벌였기 때문이었다. 탈냉전 이후 북한은 소련의 해체와 동유럽 사회주의권의 몰락으로 국제적 고립 상태에 직면하였다. 북한은 체제안정과 생존에 중점을 두고 서방 세계와의 관계 개선을 강화하는 등 외교 다변화를 추진하여 왔다. 더욱이 사회주의 국가들의 체제전환 이후 북한은 국제적 고립에서 탈피하고 체제 안정성 확보와 경제난 극복을 위해 중국 및 러시아와의 전통 우호관계를 강화하면서 한편으로 미·일 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북한은 특히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를 체제유지를 위한 핵심 관건으로 보고 대결 상황 속에서도 관계 개선 노력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왔다. 북한은 미국과의 직접 협상으로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체제안전을 보장받으며 핵문제 해결을 통한 경제적 실익을 추구하려 하고 있다. 1990년대 이후 북한은 수차례의 미사일 발사 및 핵실험으로 한반도에 위기를 조성한 후 이를 매개로 체제보장과 경제지원을 동시에 얻어 내려는 ‘벼랑끝전술’을 구사하고 있다. 그동안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해 여러차례 양자·다자 회담을 개최하여 노력하였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핵실험 등 군사적 도발로 인해 북핵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북한은 5차례의 핵실험(2006.10., 2009.5., 2013.2., 2016.1., 2016.9.)으로 국제사회의 비난과 유엔안보리의 대북제재를 받고 있다. 또한 북한의 천안함 폭침(2010.3.), 연평도 포격도발(2010.11.), 장거리 미사일 발사(2012.12.), 잠수함발사 탄도미사일 시험(2016.8. 등), DMZ 목함지뢰 폭발(2015.8.) 등으로 국제적 고립이 심화되고 있다.
군사회담은 남북간 군사적 긴장완화와 신뢰를 구축하고, 남북교류협력을 군사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목적으로 개최되는 남북 군당국자간 회담이다. 남북국방장관회담을 정점으로 남북장성급군사회담과 남북군사실무회담(대령급)으로 연결되는 체계로 구축된다. 군사회담의 의의는 한반도에서 전쟁재발 방지를 위해 우발적 무력충돌 방지, 상호 자극적인 활동 자제, 상호비방 중지 등 긴장완화와 신뢰구축 문제를 협의 추진함으로써 비록 만족스럽지는 못하다 할지라도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에 긍정적 기여를 해온 것으로 평가된다. 남북 간에는 군사분야에서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남북국방장관회담, 군사실무회담 등 군사대화와 실무접촉이 이루어졌다. 2004년부터 2007년까지 총 23회 개최되었으며, 2004년 6월 3~4일 개최된 제2차 남북장성급 군사회담에서 「서해 해상에서 우발적 충돌방지와 군사분계선 지역에서의 선전활동 중지 및 선전수단 제거에 관한 합의서」가 채택·발효되었다. 이로써 쌍방의 함정이 대치하지 않도록 통제하고 상대측에 부당한 물리력 행사를 금지하도록 하고 있으며, 군사분계선 지역에서의 선전활동을 중지하고 선전수단도 제거하였다.
2005년과 2006년 제3·4차 남북장성급 군사회담 실무대표회담을 통해 우리측이 서해 해상 충돌 방지와 공동 어로수역 설정 문제를 제기하였으나 북한 측이 새로운 서해 해상경계선을 주장함에 따라 합의는 도출되지 못하였다. 그 후 2007년 12월 제7차 남북장성급회담(12.12.~14.)에서 「동서해지구 남북관리구역의 통행·통신·통관의 군사적 보장을 위한 합의서」를 채택하는 등 2000년 이후 남북 군사회담에서 12건의 합의서를 채택했다. 2011년 2월 개최된 제39차 남북군사 실무회담에서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도발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고위급 군사회담 개최 절차 문제를 협의하고자 했으나 입장 차이로 결렬되었다. 그간 회담에서 북측은 교류협력 지원 관련 군사회담에는 적극적인 태도로 임해왔으며, 장성급회담이 개최되어 긴장완화·군사적 신뢰구축 문제의 논의를 위한 협의의 장은 마련했으나, 북측의 해상분계선 재설정 등 근본문제 해결 주장으로 실질적 합의 도출에 한계를 보이고 있다.
북한 사회의 주민생활 변화는 자립적 생존방식 변화→ 문화행태 변화→ 정치의식 변화의 3단계 과정을 거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사회적 일탈을 동반하며 집단주의·수령제일주의에 입각한 주민 가치관을 개인주의·가족중심주의·배금주의로 바꾸어 가고 있다. 주민의 자립적 생존방식은 1990년대 중반 경제위기로 생산부문 80% 이상이 침체되고 국가공급이 단절되면서 생존 기로에 선 주민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 구축되기 시작하였다. 경제난 초기에는 소규모 장사, 소토지(화전) 농사, 밀수(강타기)에만 국한되었던 자립적 생존방식은 2000년대 들어 공설시장 운영에 힘입어 개인수공업, 고리대금업, 유통업 등의 다양한 유형으로 확산되고 있으며 중급규모의 장사(운송수단을 활용), 임노동을 동원한 소토지 농사, 군인과의 협업을 통한 밀무역, 개인수공업자의 임노동 채용 등의 방식으로 승화되고 있다.
지시문 (instru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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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question)
탈냉전 이후 북한이 국제적 고립을 탈피하고 체제 안정성과 경제난 극복을 위해 강화하고 있는 국가들과 그 목적은 무엇인가?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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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과제 해석
task_interpretation탈냉전 이후 북한의 외교적 변화 중 특정 국가와의 관계 강화 양상과 그 구체적인 목적을 파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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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정보 추출
information_extraction탈냉전 이후 북한의 상황과 외교 전략에 관한 정보를 추출한다.
- 탈냉전 이후 북한은 소련의 해체와 동유럽 사회주의권의 몰락으로 국제적 고립 상태에 직면하였다.
- 북한은 체제안정과 생존에 중점을 두고 서방 세계와의 관계 개선을 강화하는 등 외교 다변화를 추진하여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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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근거 선택
evidence_selection국제적 고립 탈피 및 체제 안정, 경제난 극복을 위해 관계를 강화하는 대상 국가를 명시한 문장을 선택한다.
- 사회주의 국가들의 체제전환 이후 북한은 국제적 고립에서 탈피하고 체제 안정성 확보와 경제난 극복을 위해 중국 및 러시아와의 전통 우호관계를 강화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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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논리 통합
logical_integration북한이 고립 탈피, 체제 안정성 확보, 경제난 극복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중국 및 러시아와의 관계를 강화하고 있다는 인과관계를 연결한다.
- 국제적 고립에서 탈피하고 체제 안정성 확보와 경제난 극복을 위해 중국 및 러시아와의 전통 우호관계를 강화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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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결론 도출
conclusion_formulation강화 대상은 중국과 러시아이며, 목적은 국제적 고립 탈피, 체제 안정성 확보, 경제난 극복임을 정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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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답변 생성
answer_generation질문에 대한 최종 답변을 작성한다.
근거 (evidence)
- 탈냉전 이후 북한은 소련의 해체와 동유럽 사회주의권의 몰락으로 국제적 고립 상태에 직면하였다.
- 북한은 체제안정과 생존에 중점을 두고 서방 세계와의 관계 개선을 강화하는 등 외교 다변화를 추진하여 왔다.
- 사회주의 국가들의 체제전환 이후 북한은 국제적 고립에서 탈피하고 체제 안정성 확보와 경제난 극복을 위해 중국 및 러시아와의 전통 우호관계를 강화하면서
- 국제적 고립에서 탈피하고 체제 안정성 확보와 경제난 극복을 위해 중국 및 러시아와의 전통 우호관계를 강화하면서
최종 답변 (final_answer)
북한은 국제적 고립에서 탈피하고 체제 안정성 확보와 경제난 극복을 위해 중국 및 러시아와의 전통 우호관계를 강화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