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맥 (context)
읽기와 해석의 단계를 거쳐 비평을 하는 학습 주체의 활동은 ‘텍스트에 대항하는’ 것이다. 텍스트에 대항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텍스트 외부의 입장, 즉 자신에 대한 성찰이다. 고전 텍스트의 비평에서 역시 필요한 것은 현재에 대한 자기 성찰이며, 입장의 점검이다. 이런 비평은 “문학적인 텍스트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적 텍스트 사이의 길을 여는”, 즉 텍스트와 콘텍스트 사이의 관계를 형성하는 활동이다. 이와 같은 비평 교육의 구도는 고전 텍스트의 타자성에 대한 인식과 더불어서 현재의 자기에 대한 타자성을 인식하는 대화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비평 활동은 말이나 비평문, 혹은 개작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다. 바르뜨는 과학과 이데올로기가 텍스트의 평가 기준이 될 수 없음을 밝히면서, ‘쓰기’를 텍스트의 평가 기준으로 제시한다. 과학은 평가를 위한 것이 아니며, 텍스트의 이데올로기도 단지 재현의 가치이지, 텍스트라는 생산물 자체의 가치가 아니기 때문에 오직 쓰기라는 실천으로 텍스트를 평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바르뜨는 텍스트를 쓰기가 가능한 것과 더 이상 쓸 수 없는 것으로 나눈다. 그는 오늘날 쓰여지거나 다시 쓰여질(rewritten) 수 있는 것은 오직 쓸 수 있는 텍스트(the writerly) 뿐이라고 한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이 연구는 수용 미학에서 과거의 문학 텍스트에 대한 이해가 현재에 의해서 영향을 받는다는 관점만을 취하며, 가다머가 상정한, 이성으로 논증될 수 없는 정당성을 지니는 전통이라는 생각과 문학 텍스트가 유기적 통일체를 이룬다는 가정은 수용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연구에서는 한 시대의 지평은 결코 하나가 아니며, 행위자의 이데올로기적 실천에 의해 변형이 가능한 대상이라는 의미로 이해할 것이다. 그럼으로써 ‘과거와 현재와의 대화’라는 해석학의 추상적인 구도는 사회적으로 특수한 이데올로기적 입장에서 전통을 전유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개작자들이 어떤 이데올로기를 바탕으로 어떤 형식의 변화를 통해 어떻게 새로운 의미를 창출했는지를 살피는 것은, 지평의 융합을 통하여 고전 문학이라는 ‘타자’를 의미 있게 하는 작업으로 구체적으로 제시될 수 있으며, 이는 고전을 해석하여 현대적 의미를 덧붙이는 연구의 경향과는 달리, 각 시대의 문화적인 구조 안에서 고전에 대한 의미화 실천 작업을 구체적으로 가시화해 준다는 점에서 문학교육 연구에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할 수 있다.
인물과 사건을 중심으로 한 제반의 이야기 구성 요소들의 유기적 결합이 서사의 중심을 이룬다는 점을 상기할 때, 사건 및 그것의 연쇄와 이로부터 생겨난 시간 구성을 또 다른 논의의 중심에 놓을 수 있다. 하나의 이야기가 있기 위해서는 적어도 시간 속에서 전개되는 사건의 재현이 있어야 한다. 이야기되는 모든 것은 시간 속에서 일어나며, 시간이 걸리며, 시간 속에서 전개된다. 그리고 시간 속에서 전개되는 모든 것은 이야기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문학은 음악과 마찬가지로 시간적인 예술이다. 만은 이에 대해 “시간은 그것이 삶의 매체이듯 이야기의 매체”라고 설명한다. 특히, 서사와 시간의 관계에 대해 리꾀르는 “시간은 서사적 양식을 통해 직조되는 한에서 인간적인 것이 되며, 서사는 시간적 존재의 조건이 되었을 때 그 완벽한 의미를 획득한다.”고 하였다. 이렇게 시간은 서사를 통해 언어적 형태로 옮겨져 인식 가능한 것이 되는 동시에, 서사는 시간에 의해 구성되는 문화적 산물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한편, 이와 같은 정신의 시간이라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심리학적 이론에 정면으로 대립하는 것이 아리스토텔레스의 ?물리학?에서 개진되고 있는 세계의 시간, 즉 우주론적 시간 개념이다. 이 우주론적 시간은 사유의 영역에 한정되지 않고 세계 그 자체를 규정하는 어떤 역동적 원리로 간주된다. 그리고 우주론적 시간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입장은 현대 물리학을 구성하는 객관적 시간이라는 개념과 계열체를 이루게 된다. 이 시간은 공적이고, 객관적인 시간이다. 이것은 바로 수학 방정식에서 기호 ‘t’로 표현되는 물리학에서의 시간 개념이다. 그것은 또한 우리의 경험적 시간과는 무관한, 상호주관적으로 합의되는 공적 시간이기도 한데, 우리는 시계나 달력 등의 도움을 얻어 사회적 행위나 커뮤니케이션의 목적으로 우리의 사적 시간 경험을 동시화하기 위해 그것을 사용한다. 특히 이 시간은 인간 경험의 주관적 배경보다는 자연에서의 객관적 구조를 지시하는 것으로 믿어진다.
이 두 다른 차원의 시간을 매개하는 것이 바로 서사의 시간이다. 허구적 텍스트에서 구성하는 허구적 시간은 달력의 시간과 그에 따른 제약을 벗어나면서 우주론적 시간과 현상학적 시간의 무한한 조합을 통해 시간의 상상적 변주의 모든 영역을 보여주게 된다. 허구는 상상력의 차원에서 자유로이 시간의 무한한 가능성을 탐구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허구는 시간성에 대한 일종의 실험실 역할을 한다. 시간과의 허구적 놀이는 허구적 텍스트 고유의 시간성을 다양하게 하는 것이다. 이런 시간에 대한 실험, 혹은 시간과의 놀이를 가능한 배경에는 이야기된 사건들과 서술자의 목소리가 맺는 다양한 관계가 있다. 서술자의 존재로 인해 이야기는 누군가의 경험에 속한 것처럼 인지되는데, 서술자의 목소리는 자기 고유의 시간과 이야기된 사건들이 속하는 고유의 과거를 동시에 갖고 있다. 따라서 이야기의 시간은 서술자의 고유한 시간과의 분리로 인하여 다양한 결합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서술자가 경험을 서사화함으로써 이해하는 과정에서 독서 행위를 포함한 수용 행위가 미리 관여한다는 점이다. 수용 행위는 이미 형상화 행위에 내재해 있으며, 이야기를 통해 만들어지게 될 효과는 미리 그 의미 생성에 기여한다. 그러므로 서사의 시간은 작자가 경험 세계를 이해하는 매체인 동시에, 독자에게 어떤 효과의 생성을 목표로 하는 전략으로서 기능할 수 있다. 즈네트는 이야기 시간과 서술 시간을 구분하면서 두 시간의 관계를 순서, 속도, 빈도의 측면에서 살펴고 있어, 구체적인 텍스트의 시간을 분석할 수 있는 가능성을 마련하였다고 할 수 있다. ‘순서’는 이야기에서 나타난 일련의 사건에 대한 시간 순서와 이런 사건이 서술에서 배열되는 시간 순서의 관계를 말한다. 그리고 사건들이나 이야기의 단위들이 요하는 시간과 서술에서 그것이 말해지는 유사 기간의 관련성은 ‘속도’에 해당한다. 끝으로 ‘빈도’는 스토리에서 반복과 서술상의 반복의 관계에 해당한다.
흔히 현대소설과 비교해 고소설이 연대기적 시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평하는데, 이는 시간의 다양한 측면을 고려하지 않고, 즈네트의 ‘순서’에만 한정하여 논의하는 제한된 방식이다. 그러나 시간성을 보다 폭넓게 이해한다면 고소설에서도 시간적인 역동성을 발견할 수 있다. 이를테면, ‘속도’의 면에서 볼 때, 이야기가 얼마나 다양한 방식으로 얽혀 짜이며, 이런 역동적 구성이 수용자에게 얼마나 리듬 있는 속도감을 형성하는지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 있게 된다. 한편, 완판본에서 주로 서술되고 있는 시기는 단 5일에 불과하다. 이 5일 동안에 주요 사건이 모두 일어난다. 먼저 춘향이 광한루에서 몽룡을 만나, 춘향집에서 백년가약을 하고, 육체적 관계를 맺는 사건은 단 하루에 걸쳐 이루어진다. 이 특수한 하루는 텍스트상으로 60면(8~68면)에 걸쳐 펼쳐진다. 그리고 이별도 단 하루의 시간이 걸리는데, 이 역시 텍스트상의 길이로는 22면(92~112면)에 걸쳐 있다. 그런데 여기서 몽룡의 아버지가 ‘명일’로 떠나라고 몽룡에게 명령하는데, 몽룡은 그날로 떠나는 착오를 찾을 수 있기도 하다. 춘향과 몽룡이 한껏 이별의 정회를 나누는 장면에서 사령이 사또의 재촉을 전하는 것이 훨씬 극적이기 때문에 객관적 시간은 의미 있게 취급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지시문 (instruction)
다음 문맥을 읽고 질문에 답하시오.
질문 (question)
바르뜨가 제시한 텍스트의 평가 기준으로 무엇이며, 그가 텍스트를 분류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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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과제 해석
task_interpretation바르뜨가 주장하는 텍스트의 평가 기준과 텍스트의 분류 기준을 파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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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정보 추출
information_extraction텍스트에서 바르뜨와 관련된 내용을 추출한다.
- 바르뜨는 과학과 이데올로기가 텍스트의 평가 기준이 될 수 없음을 밝히면서, ‘쓰기’를 텍스트의 평가 기준으로 제시한다.
- 바르뜨는 텍스트를 쓰기가 가능한 것과 더 이상 쓸 수 없는 것으로 나눈다.
- 그는 오늘날 쓰여지거나 다시 쓰여질(rewritten) 수 있는 것은 오직 쓸 수 있는 텍스트(the writerly) 뿐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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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근거 선택
evidence_selection평가 기준에 대한 문구와 분류 기준에 대한 문구를 선택한다.
- ‘쓰기’를 텍스트의 평가 기준으로 제시한다.
- 바르뜨는 텍스트를 쓰기가 가능한 것과 더 이상 쓸 수 없는 것으로 나눈다.
- 오직 쓸 수 있는 텍스트(the writerly) 뿐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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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논리 통합
logical_integration추출된 정보를 결합하여 평가 기준은 '쓰기'이며, 분류 기준은 '쓰기가 가능한 것'과 '더 이상 쓸 수 없는 것'임을 정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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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결론 도출
conclusion_formulation질문에 대한 최종 답변을 구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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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답변 생성
answer_generation최종 답변을 작성한다.
근거 (evidence)
- 바르뜨는 과학과 이데올로기가 텍스트의 평가 기준이 될 수 없음을 밝히면서, ‘쓰기’를 텍스트의 평가 기준으로 제시한다.
- 바르뜨는 텍스트를 쓰기가 가능한 것과 더 이상 쓸 수 없는 것으로 나눈다.
- 그는 오늘날 쓰여지거나 다시 쓰여질(rewritten) 수 있는 것은 오직 쓸 수 있는 텍스트(the writerly) 뿐이라고 한다.
- ‘쓰기’를 텍스트의 평가 기준으로 제시한다.
- 오직 쓸 수 있는 텍스트(the writerly) 뿐이라고 한다.
최종 답변 (final_answer)
바르뜨가 제시한 텍스트의 평가 기준은 '쓰기'이다. 또한 그는 텍스트를 쓰기가 가능한 것과 더 이상 쓸 수 없는 것으로 분류하며, 오늘날 다시 쓰일 수 있는 것은 오직 '쓸 수 있는 텍스트(the writerly)'뿐이라고 하였다.